붉은 치마를 입은 것 같다는 적상산(赤裳山) 산행
서창마을→장도바위→서문지→향로봉→기봉→안렴대→안국사→사고지→송대→치목마을
◇ 산행지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일원
◇ 산행일자 : 2024. 3. 1(금). 날씨 : 맑음
◇ 산악회및 친구 : 승용차 이용, 산행지기
◇ 산행거리 : 10.9 km (도상거리 11.6km)
◇ 산행시간 : 6시간 < 중식 40분, 절구경 15분, 휴식 10분 포함>
◇ 시간대별 요약
- 06:30 반석동
- 06:48 반석역
- 07:00 월드컵 경기장역 출발
- 08:15 치목마을
- 08:28 서창마을
- 08:38 산행시작
- 09:50 장도바위
- 09:55 서문지
- 10:15 서창마을/향로봉/안국사 갈림길
- 10:30 향로봉(10분 휴식)
- 11:00 서창마을/향로봉/안국사 갈림길
- 11:19 안렴대 /안국사 갈림길
- 11:22 기봉
- 11:27 안렴대 /안국사 갈림길
- 11:37 안렴대
- 11:47 안렴대 /안국사/향로봉 갈림길
- 11:58 안국사(절구경 15분)
- 12:30 중식(30분)
- 13:17 안국사 대형 주차장
- 13:21 사고지
- 13:25 치목마을 /안국사 갈림길 하산 시작
- 13:52 송대
- 14:38 산행마침
- 15:24 와인동굴
※ 특기사항
① 적상산 4번째 산행
② 서창마을~치목마을 첫 산행
③ 와인동굴
④ 4월 30일까지 안국사 차량동행 금지
⑤ 승용차, 택시 이용
※ 무주 향로봉, 칠봉산, 명산 등산 지도
※ 산행 후기
처음 계획은 금강 물돌이 무주 향로봉 산행이었다. 그런데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니 적상산 향로봉이 많이 검색되었고 덕유산 국립공원 관리공단에 들어가 보니 덕유산에는 눈이 지금도 많아 입산이 금지되어 있고 적상산 향로봉은 출입할 수 있었다. 적상산은 지금껏 세 번 갔지만 승용차를 이용하다 보니 안국사까지 차를 끌고 가서 향로봉을 다녀오다 보니 정상적인 산행이 아니었다. 그래서 서창마을이나 치목마을에서 산행하고 싶어 적상산에 대한 선답자의 산행기를 읽어보니 택시를 부르면 원점회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인터넷을 검색해 적상면에 사는 택시 기사님에게 전화해 보니 9시 이전에 적상면에 도착하면 치목마을에서 서창마을까지 택시비를 2만원 받겠다고 하여 적상산으로 산행지를 바꿨다. 적상산이 덕유산 국립공원이니 취사는 불가하여 점심은 발열 식품으로 바꾸고 산행 시간도 짧으니 배낭은 최대한 가볍게 만들었다. 적상면에 8시 전후에 도착하기로 했으니 출발은 월드컵경기장역에서 7시 출발하기 위해 5시 40분 기상, 식사하고 6시 30분에 집을 나서 6시 48분 지하철을 타고 월드컵경기장역에 도착하니 6시 54분이다. 월드컵경기장에 도착하여 7번 출구로 나가는데 동행친구에게서 도착해 있다는 톡이 온다. 매번 늦는 편이었는데 웬일 하면서 반갑게 인사하고 운전은 내 몫이니 운전대를 잡고 출발했다. 금산휴게소를 들려 적상면에 가는데 금산휴게소 지났냐고 택시 기사님에게 전화가 온다. 네비를 보니 치목마을에는 8시 10분 도착이어서 조금 늦을 것 같다고 답변하고 운전하여 가는데 치목마을 도착할 즈음 또 전화가 온다. 치목마을 경로당에 금방 도착한다 했다. 경로당에 도착하니 택시가 기다리고 있어 주차하고 배낭을 택시 트렁크에 넣고 서둘러 승차했다. 기사님이 아침이니 택시가 오지 오후엔 5만원 줘도 올까 말까 한단다. 서창마을에 하차하여 2만원 지불하고 화장실을 찾는데 선답자의 글처럼 화장실은 없었다. 음식점 화장실은 잠겨 있어 산행 준비하고 출발했다. 서창마을에서 향로봉 오름길은 등산로가 잘 정비 되어 있고 계단의 폭이 낮아 산행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산행 중간에 동행친구가 볼일 볼 때 나 역시도 흔적을 얼른 남기고 산행을 계속했는데 고도를 높일수록 눈이 제법 있었다. 능선에서부터 향로봉까지는 편한 길이므로 향로봉 갈림길에 오니 산행은 이미 다 한 느낌이었다. 향로봉에는 예전에 없던 정상석이 있었고 서창마을 쪽으로 전망도 좋았다. 휴식을 취하며 정상 인증하고 간식을 먹고 안렴대로 가던 중 적상산의 정상인 기봉에 올라 정상 인증하고 안렴대로 향하는데 서창마을 입구 산불방지 기간 출입 금지 현수막이 떠올라 신경이 계속 쓰였다. 안렴대는 두 번 가 보았지만 역시 조망이 좋았다. 그곳에서 점심을 먹을까 하다가 또 산불방지 기간이 생각나 안국사로 서둘러 진행했다. 안국사 주변에서도 점심 식사하기는 불편해서 안국사를 내려오며 야자 매트에서 발열 식품으로 점심을 먹는데 치목마을로 하산하는 사람이 있어 산불감시 요원 보았느냐고 물으니 헐 3월 4일부터 산불방지 기간 적용으로 없다는 것이다. 동행친구도 3월 4일로 보았다는데 나만 왜 3월 1일부터 산불방지 기간 적용으로 보았는지 허탈하면서도 안심이 되었다. 산악회 버스를 타고 온 것도 아니기에 점심도 여유롭게 즐기고, 사고지 구경 갔는데 문이 잠겨 있어 의아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와인 동굴까지만 차량 출입이 가능했고 4월 30일까지 안국사까지는 차량통제 기간이었다. 그러니 적상산에 사람이 없었던 것을 산행 끝나고 와인 동굴 가서야 알 수 있었다. 사고지에서 전망대를 가고 싶어 하는 동행친구에게 산행 마치고 와인 동굴 갔다 전망대 오자고 유도했는데 결국 전망대를 안 가고 그냥 진행한 책임(?)은 고스란히 내 몫이 되었다. 암튼 치목마을로 하산은 산방 기간이 아니므로 편한 마음으로 진행되었고 가파른 곳이 많았지만, 국립공원답게 등산로는 잘 되어 있어 안전 산행할 수 있었다. 치목마을에서 와인 동굴로 이동 와인 동굴을 구경하고 반석동에 와 씻고 우리회에 참석 했다.
※ 산행 사진
▲서창마을 대형버스 주차장은 도보로 10분 아래에 있지만 택시를 이용하였기에 제일 높은 산촌마을 순두부집까지 왔다.
▲적상산을 오르는 등산로는 3곳 있다. 최단코스는 안국사까지 차로 와서 향로봉까지 1.7km를 왕복하는 방법이다. 안국사가 해발 900m라서 정상까지는 편한 산책길이다. 그러나 적상산 등산이 목적이라면 서창 방면과 치목 방면의 등산로가 제격이다. 서창은 향로봉을 바로 오르는 숲길 구간, 치목은 안국사를 바로 오르는 계곡 구간이다. 이제껏 세 번 모두 차로 안국사까지 와서 향로봉에 올랐으니 오늘은 서창에서 향로봉~안국사를 경유 치목마을로 하산한다.
▲서창공원 지킴터. 이곳에서부터 본격적인 등산로다. 서창마을(0.1 km) 향로봉(3.4km) 안국사( 3.7km) 이정표가 있다. 적상산의 최고봉은 기봉(1,034m)인데 통신시설이 있어 출입이 통제된다. 그래서 향로봉(1,024m)이 주봉 역활을 대신한다.
▲시작부터 국립 공원답게 돌계단이 낮게 깔려 있어 준비 운동하기 딱 좋았다. 이렇게 디딤돌이 놓여준 구간이 한참 이어지는데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내가 보기에 공을 많이 들여 만든 등산로 같았다.
▲초반에는 숲과 나무 데크 길이 이어지다가, 1km 조금 지나면 계곡과 합류하고 너덜과 바위 능선 구간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눈이 녹은 물이 많은지 제법 물소리가 듣기 좋았다.
▲등산로는 생각했던 것보다 순한 편이었다.
▲이 이정표까지 편하고 순한 길이었다.
▲이후 등산로가 지그재그로 된 것은 서문까지 그만큼 가파르다는 것이지만 지그재그로 오르는 길은 순했고 쉼터에는 눈이 쌓여 있어 앉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
▲낙석위험 지대를 통과한다. 국립 공원답게 안전시설이 잘 되어 있다. 바위 전체를 철망으로 감싸서 낙석 피해가 없도록 하고 있었다.
▲장도바위를 지난다. 장도바위는 고려 말 최영(崔瑩) 장군이 민란(民亂)을 평정하고 개경으로 향하는 길에 적상산을 오르던 중 앞을 가로막고 있는 바위를 긴 칼로 내리쳐 길을 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장도로 쪼갠 바위’라는 뜻에서 ‘장도바위’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경주 단석산은 김유신 장군이 검으로 바위를 내려쳐 바위가 깨졌다는 일화가 있는데 상대방에게 알리고자 하는 바를 재미있고 생생한 이야기로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행위인 스토리텔링이다. 예전에는 장도바위 사이로 걸어 올라갔다는데 지금은 계단이 설치 되어 있어 지나지 못한다.
▲장도바위를 지나 조금 더 진행 하니 추락주위 표시가 있어 조심스럽게 내려다 보았다. 서문 바로 밑이다.
▲장도바위에서 조금 더 오르면 적상산성 서문 이다.
▲무주 적상산성 서문지, 안내문을 옮겨 보면 서문은 일명 용담문이라고도 하였으며, 규장각에 소장된 <적상산성조진성책>의 기록에 의하면 2층 3간의 문루가 있었다고 전한다. 성문밖에 서창과 고경사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서창은 미창과 군기창이 있었으나 지형이 험하여 성내까지의 운반이 어려워 조정에 상소하여 성내 사고지 옆으로 옮겼다고 전하며, 지금도 마을이름을 서창이라고 한다.
▲서문지 지나 향로봉 방향으로 평탄한 등산로를 따르면 향로봉삼거리 능선까지 잠시 완만한 오름이 시작된다.
▲나무 가지의 눈은 녹았지만 산길에는 춘 삼월의 눈길이라 기분이 너무 좋다.
▲산행을 시작하고 1시간 35분 만에 향로봉 삼거리 능선에 도착 했다. 이제 부터는 익숙한 능선 길이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0.7km 가면 향로봉이고 오른쪽으로 1km 이동하면 안국사다. 향로봉에 다녀 온 후 안국사 방향으로 가다 기봉을 왕복 한 후 안렴대에 오르기로 한다.
▲향로봉까지 등산로는 넓고 평탄하다.
▲향로봉 가는 길에 나무가지에는 간 밤에 내린 눈으로 아직 녹지 않은 잔설이 남아 있다.
▲2004년 12월 16일, 2016년 11월 12일, 2020년 10월 3일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 향로봉 정상이다. 예전에는 이렇게 정상석이 없었다. 사진은 2016년 사진이다.
▲향로봉 정상에서 바라 본 모습이다. 우측 아래로 서창마을이 보인다.
▲적상산 향로봉 정상석은 2020년 11월 이후 세워진 것 같다. 암튼 정상석 인증은 처음이다. 향로봉은 산의 모습이 향로를 닮았다는 데서 ‘향로봉’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금강산, 북한산, 치악산, 내연산,수락산,향로산등 향로봉은 제법 많다.
▲덕유산대종주란? 등산인들 사이에서는 남한 땅을 대표하는 3대 능선 종주 코스로 지리산 주릉선 종주(노고단~천왕봉), 설악산 서북릉 종주(안산~대청봉), 덕유산 남북종주(남덕유산~향적봉)를 꼽고 있다. 그런데 장거리를 선호하는 등산인들이 이 주릉선종주의 범위를 차츰 넓혀감에 따라 지리산은 화대종주(화엄사~천왕봉~대원사), 설악산은 설악산종주(남교리~대청봉~미시령), 덕유산은 덕유산대종주(육십령~향적봉~적상산~남대천)가 탄생되게 되었다. 이 3개 코스를 3대 능선종주의 확장된 개념이기에 3대 중거리 종주 코스라 한다. 지금 이 지점이 남대천으로 가는 덕유산대종주 길이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육십령에서 설천봉까지 육구종주는 해 보았으니 설천봉~두문산~단지봉~적상산~남대천 구간을 나눠서 꼭 해 보고 싶다. 물론 화엄사~노고단과 지리산 천왕봉~화엄사 구간도 꼭 해 봐서 모든 구간을 섭렵 할 것이다.
▲적상산 향로봉 정상에서 인증 한 후 적상산 정상인 기봉을 가기 위해 향로봉 삼거리 능선으로 향한다.
▲향로봉에서 갈림길로 돌아와 안국사 방향으로 진행 한다.
▲적상산 정상인 기봉으로 향하면서 왜 인적이 드문가? 했는데 나중에 알 수 있었다. 4월 30일 까지 안국사 주차장에 차량 통제를 하고 있었다.
▲기봉 가는 길의 기괴한 모양의 나무를 지나면 아래의 안렴대와 안국사 갈림길 이정표를 만난다. 암 걸린 굴참나무의 모습이라는데 예전에 비해 현재는 나무 중간을 잘라 놓았다.
▲눈(雪)으로 잘 안보이지만 적산산성이라고 쓰여 있다. 하지만 어디를 둘러봐도 적산산성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주변에 널 부러진 돌들만이 산성의 일부였음을 알게 해준다. 적상산성은 고려후기에 축조된 대표적인 방어 성곽으로 1965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성벽은 무너져서 숲 사이에서 겨우 그 모습을 찾을 수 있고, 사각과 기타의 건물들도 그 터만이 남아 있다. 이 성이 있는 적상상은 상산(裳山), 상성산(裳城山)이라고도 한다. 고려 말에 거란이 침입하였을 때 인근 수십여 곳의 군현이 도륙되었는데도 여기에 사는 주민들만은 그 참화를 면하였다고 한다. 최영(崔塋) 장군은 이 곳에 산성을 축조하고 창고 짓기를 건의하였으며, 조선 세종 때의 체찰사 최윤덕(崔潤德)도 이곳을 살펴본 뒤 반드시 축성하여 보존할 곳이라고 건의한 바 있다. 이러한 사실에서 이 산성은 고려 말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적상산성 [赤裳山城]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향로봉을 다녀 온 후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삼거리에서 10분 정도 안국사 방면으로 진행하면 적상산 최고봉인 기봉에 갈 수 있다. 일반 등산로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데다 특별한 이정목이 없고 출입금지 표시 때문에 그냥 대부분 지나치기 쉽다. 이 이정표에서 적상산 정상인 기봉으로 오른다.
▲적상산 기봉은 높이 1030.6m로 덕유산국립공원에 속하며 붉은색 바위지대가 마치 산이 붉은 치마를 두른 것 같다고 하여 적상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기봉 출입금지 안내판에는 홍수예방시설 및 각종 통신시설이 있어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고 하는데 여기까지 와서 피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정상을 밟지 않을 이유는 없는 것 같아 정상에서 인증을 했는데 몰골이 말이 아니다.
▲적상산 기봉을 다녀 온 후 안국사와 안렴대 갈림길에서 안렴대로 향한다. 안렴대 가는길에 산불방지 기간 현수막이 걸려 있었는데 (통제기간2024년3월4일∼2024년4월30일까지) 나는 계속 3월 1일 이후라는 것으로 착각하며 안렴대로 향하는 길에서도 머뭇거렸다. 능선에서 본 산 표석인데 일제시대 산 관리를 위한 표석이라는데 뽑아 버려야 하는 않나?
▲안렴대와 안국사, 향로봉으로 가는 삼거리 지점의 이정표(안렴대 150m, 안국사 500m)가 있다. 통신탑을 지나 안렴대 방향으로 진행 한다.
▲삼거리 이정표에서 곱지 않은 계단 길을 내려 가다 적상산 최고의 조망처라는 안렴대에 잠시 오르면 조망이 최고다. 덕유산 설천봉 슬로프와 향적봉이 지척이다.
▲안렴대 안내판에 있는 내용을 옮겨 보면 적상산의 정상 남쪽 층암절벽 위에 위치한 안렴대는 사방이 천길 낭떠러지로 내려다 보여 이 곳을 오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슬아슬하게 한다. 고려시대에 거란이 침입했을 때 이 암반 아래에 있는 큰 석굴에 삼도안렴사(三道按廉使)의 관속(官屬)들이 피신하면서 안렴대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적상산 안국사로 실록을 이안하고 얼마 뒤 청군이 무주 깊숙한 곳까지 출몰하자 실록을 지키던 관리가 도망갔다. 스님은 안국사 뒤 안렴대에 실록을 숨기고 지켰다. 1643년 7월 대제학 이식과 검열 심세정(沈世鼎)이 이렇게 고했다. “적상산성에 청병(淸兵)이 들자 2~3명의 승(僧)만이 있었고 그나마 흩어져 도망하려 할 때 한 노승이 사고를 버리지 못하여 실록을 석굴 (안렴대)속에 깊이 감추어 무사히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그 노승은 승병장 상훈스님이다.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안렴대는 조각 케익처럼 바위 틈이 있는 낭떠러지라 추락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 하지만 적상산 최고의 조망처다.
▲적상터널이 보이고 올라 왔던 서창마을도 보인다.
▲우측으론 지나 온 향로봉이, 적상산 기봉 정상부의 통신시설물이 함께 보인다. 이제 안렴대와 안국사, 향로봉으로 가는 삼거리 지점의 이정표에서 우측 500m 거리의 안국사로 향한다.
▲적상산성 호국사비 : 적상산성 내 안국사 경내 남쪽 축대 아래 있는 호국사비는 적상산성과 관계된 기록을 비교적 상세히 담고 있는 조선시대의 비석이다. 호국사비는 1643년(인조 21) 이조판서 이직이 적상산성을 순찰하게 되었는데, 산성을 수비하고 있던 승병들이 정축란(1637년 호란)으로 모두 도망가고 군량미도 없는지라 이 사실을 왕에게 보고하고 아울러 사찰 건립을 건의하여 호국사를 창건하면서 세운 비이다. 현재는 글씨가 마모되어 거의 알아 볼 수 없고, 1898년(고종 35) 간행된 [적성지] 고적조에 비문의 전문이 게재되어 있다. 출처:대한민국 구석구석
▲적상산성 호국사비를 보고 안국사 주차장(평일 이용 가능) 옆에 있는 약수터를 지나 안국사 경내로 향하면 된다.약수터의 물은 음용이 불가해 보였다.
▲안국사(安國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1277년(충렬왕 3)에 월인(月印)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조선 태조 때 무학대사(無學大師)가 복지(卜地)인 적성산에 성을 쌓고 절을 지었다는 설이 있다. 그 뒤 1613년(광해군 5) 3월에 증축하였고, 1864년(고종 1)에 이면광(李冕光)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에는 승병의 병사(兵舍)로 사용되었으며 주변에는 조선실록을 봉안하였던 사고(史庫)의 옛터가 남아 있다. 지금 절이 자리한 곳은 옛날 호국사(護國寺)가 있던 곳이다. 1989년 적상산에 무주 양수발전소 건립이 결정되자 안국사가 자리한 지역이 수몰지구로 편입되었으므로 호국사지로 옮겼기 때문이다. 1991년에는 일주문·선원·호국당 등을 이전 복원하였고, 이듬해 극락전·천불전·요사·청하루 등도 이전 복원하였다. 1994년에는 범종각을 지었고, 1996년에는 범종을 조성하였다. 출처: 다음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안국사 성보박물관에는 세계 각국의 불상과 탱화, 불교 유물과 도자기 등 500여 점 이상을 전시하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자물쇠로 잠겨 있지만 개방 되어도 내부촬영은 금지되어 있어 사진은 못 찍는다고 한다. 경내에는 공사가 한창이다.
▲안국사 성보박물관 불상
▲범종각과 '선원록'을 보관했던 적상산 서고였던 천불전, 안국사를 구경하고 산행을 위해 발길을 옮긴다.
▲안국사를 나서며 덕유산 향적봉을 바라 본다.
▲안국사 일주문에는 한자로 앞면엔 적상산 안국사 (赤裳山 安國寺)라 적혀 있고, 후면엔 국중제일정토도장(國中第一淨土道場)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나라에서 제일가는 서방정토를 꿈구는 도량이라는데 불교에 대해 잘 모르니 공부 좀 해봐야 겠는데 화장실은 겨울철 식수 부족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잠궈 놓았다.이게 정말 서방정토 도량 맞나? 의문이다.
▲일주문을 지나자마자 우측 계단 내리막 진행하면 이정표(치목마을 3.7Km)가 나온다. 다시 아스팔트 도로를 만나 다시 직진하면 도보 데크 길로 진행하여 적상산 사고지까지 걷는다.
▲안국사 경내 취식 금지니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 산길에서 발열 식품으로 점심을 해결 한다.그 와중에 지나는 산객이 있어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니 우리가 내려 갈 치목마을에서 왕복 원점회귀 산행을 한다 하여 산불감시요원이 있느냐? 물으니 아이고~! 그제야 현수막(3월 4일 부터 출금)을 나 혼자 잘 못 본 걸 확인하고 마음을 편히 내려놓는다.
▲발열 식품으로 점심을 해결 한 후 산행을 계속한다.
▲안국사 대형 차량 주차장인데 왜 차가 없지? 하는 생각은 산행 마치고 와인동굴에서 이곳으로 이동 하려다 4월 30일까지 눈(雪)으로 인해 출입통제함을 알 수 있었다.
▲도로를 버리고 우측 치목마을 방향 진행해야 한다. 그러나 좌측의 적상산 사고지를 둘러보고 가기로 한다. 나는 여러 번 다녀 왔지만 동행친구를 위해 잠시 사고지를 경유 한다.
▲임진왜란 당시 전주사고의 실록을 제외한 모든 사고의 서적이 불타 버리게 되면서, 조선 왕실은 전주 사고본을 다시 필사하여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오지에 실록을 다시 조성하게 되었다. 그래서 조선 후기에 강화 정족산, 영변 묘향산, 봉화 태백산, 평창 오대산에 사고를 두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끝나고 후금이 북방을 위협하자, 묘향산 사고의 실록을 적상산으로 옮겨와 모시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곳에 사고가 건립되었고, 수호사찰을 두어 사고를 지키도록 하였다.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은 사고를 폐하고 황실문고 장서각으로 실록을 옮겨 갔으나, 6·25 전쟁 때 북한으로 유출되어 보존되고 있다고 전한다. 지금 사고 건물은 비교적 근년에 새롭게 복원한 건물이다. 그런데 사고지 내부는 구경은 할 수 없었다. 아래에서 차량 통행을 금지하니 이곳도 관람객이 없을 것 같으니 잠궈 놓았고 해설사도 없었다.
▲조선왕조실록 적상산사고지(복원 건물) 바로 앞쪽에는 양수발전소 상부댐, 적상호가 거울처럼 펼쳐져 있다. 상부저수지(적상호)를 잠시 구경하고 적상산 전망대로 향할까 하다가 산행 마친 후 차를 끌고 이곳으로 다시 오려는 나의 생각은 머루 동굴에서 차량 통제함을 알고서야 잘못 됨을 알았다.
▲적상산 사고 아래 쪽에 송대 - 치목으로 하산하는 등산로가 자리하고 있다. 치목마을까지는 2.7km 구간이다. 치목마을 갈림길로 돌아 와 이제 본격적인 하산이며 송대로 향한다. 치목마을 방면 등산로는 서창마을 등산로보다 조금 더 까칠한 느낌이다. 계곡 곁을 따라 너덜과 자갈밭을 따라 가파른 하산길이 이어진다. 하지만 시설이 잘되어 있어 걱정할 필요는 없다.
▲계곡을 건너는 다리도 보인다. 국립 공원 답다.
▲등산로는 서창마을에서 올라오는 등산로보다 좁았지만 잘 가꾸어져 있었다.
▲산허리에 적색 계통의 퇴적암이 절벽을 이룬 모습이 마치 적색 치마를 두르고 있는 것과 같아 적상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했는데 하산 중 붉은 자갈 같은 조각들이 땅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치목마을 하산길 중간 정도의 송대폭포 부근에 도착하니 가파른 계단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적상산의 바위 암괴가 협곡을 형성하여 협곡 사이로 물이 흘러들어와 폭포를 형성하고 있다. 송대폭포는 하나의 거대한 폭포이기보다, 수십 개의 층암 절벽을 따라 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적상산에서 만날 수 있는 최고의 비경 중에 하나로 꼽을 만하다.
▲이런 곳에 아래 사진처럼 안전시설이 있어야 했다.
▲아래 사진 멋진 소나무가 있는 곳에서 멀리 덕유산 향적봉과 설천봉의 슬로프가 선명하게 조망된다. 치목마을도 보인다.
▲하산 지점 1/3을 앞두고 치목마을까지 이제 비교적 평이한 숲길이 이어진다.
▲안국사 아래 치목마을(2.7km) 갈림길에서 1시간 5분 만에 치목마을에 내려선다. 공원지킴터에는 이정표(안국사 3.7km, 치목마을 01 km)가 있고 입산시간 제한 표시도 있다. 동절기 05~14시, 하절기04~15시다.
▲치목마을로 내려선다. 치목마을 치목마을은 적상산 동남쪽 양지바른 곳에 있고 산으로 오르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어 남쪽으로 우뚝 솟은 단지봉과 그 주변의 울창한 수림이 풍치를 이룬다고 하여 치목(致木)이라 불리고 있다.
▲치목마을에 들어서니 친절하게 주차장 표지가 보인다.
▲버스정류장 좌측으로 주차장이 있다.
▲공원지킴터에서 5분 정도 걸어 내려오면 치목마을 경로당이 있는 주차장에 도착 한다.선답자들의 산행기와 달리 화장실은 잠겨 있었다. 차량회수 후 머루 와인 동굴로 향했다.
▲주차 후 입장료(2,000원)를 내고 도깨비처럼 생긴 머루 정령이 입을 벌리고 있는 동굴 입구로 향하는데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머루 장승 부부의 표정이 우습다.
▲눈이 와선지 계곡물이 많아 작은 폭포를 이루고 있었다.
▲적상산 중간쯤에 자리한 무주 머루와인동굴 동굴이 생긴 건 무주양수발전소를 만들면서 터널을 뚫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작업용 터널이 2007년에 무주머루와인동굴로 변했는데 동굴 길이는 총 579m로 그 중에서 290m를 사용하고 있다고 하느데 동굴 안에서는 시음 행사와 와인 판매를 하고 있었으며 동굴 끝에는 족욕장도 있었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입장료를 제시하면 건빵 한 봉지를 제공한다기에 받아 먹어보니 맛이 제법 있었다.
▲포석정과 정감있는 물레방아도 있었는데 적상산 전망대는 차량 출입금지라 대전으로 향하며 일정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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