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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 산행기

두륜산(노승봉, 가련봉, 두륜봉)

오소재→ 오심재→흔들바위노승봉→ 두륜산(가련봉)→ 만일재→ 두륜봉→ 대흥사→주차장

◇ 산행지 : 전남 해남군 북일면 일원

◇ 산행일자 : 2023.11. 21 (화). 날씨 :  맑음 

◇ 산악회 및 참가인원, 친구 : 롯데산악회 회원 43명 , 정숙, 연자 

◇ 산행거리 : 9km

◇ 산행시간 : 4시간 25< 중식 30분포함>

◇ 시간대별 요약

- 07:00  원내동 롯데마트

- 08:05  이서 휴게소

- 09:30  군계 휴게소

- 10:50  오소재 주차장 도착

- 11:02  오소재 산행시작

- 11:39  오심재

- 11:51  흔들바위

- 12:13  노승봉(휴식 15분)

- 12:28  노승봉 출발

- 12:38  두륜산(가련봉)

- 13:10  만일재(중식 30분)

- 13:40  만일재 출발

- 14:01  두륜봉

- 14:58  표충사

- 15:08  대흥사

- 15:28  주차장 산행마침

- 15:56  주차장 출발

 

※ 산행 전 사전 조사

< 대흥사(大興寺 >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두륜산(頭輪山)에 위치한 신라시대의 절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22교구의 본사이다. 대둔사(大芚寺)는 남쪽 바닷가 구석에 자리잡은 작은 절이었다. 절이 들어앉은 두륜산의 옛이름이 한듬이었으므로 절도 오랫동안 한듬절로 불렸다. 세월이 지나면서 한듬은 한자와 섞여 대듬이 되었다가 다시 대둔(大芚)으로 바뀌었고 그에 따라 절도 대듬절, 대둔사로 바뀌어 불렸다. 대둔산은 중국 곤륜산(崑崙山) 줄기가 한반도로 흘러 백두산을 이루고 계속 뻗어내려와 마지막으로 맺은 산이라 하여 다시 백두의 두(頭), 곤륜의 륜(崙)을 따서 두륜산(頭崙山)이 되었다. 일제 때 지명을 새로 표기하면서 '頭崙山'은 '頭輪山'으로 바뀌었고, 대둔사는 대흥사(大興寺)로 고정되었다. 절이 두륜산 대둔사(頭崙山 大芚寺)라는 이름을 회복한 것이 겨우 1993년, 그래서 사람들은 요즘도 대흥사라는 이름에 더 익숙하다. 일주문이나 천왕문에도 대흥사라고 적혀 있다.(출처 : 해남 대흥사 - Encyves Wiki, 네이버 지식백과, 다음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특기사항

두륜산 네 번째

2014년 7월 5일 땅끝기맥 이후 두륜산 산행

③ 오소재 주차장 첫 산행 

아침 식사 김밥 체증 현상(점심 컵라면 식사) 

대전 도착 뒤풀이(가마솥에 누룽지) 

 

※ 두륜산 등산 지도

 

※ 산행 후기

두륜산은 2004년 4월 10일에 처음 산행을 했었다. 당시엔 산행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국립공원과 도립공원을 목표했던 까닭에 최우선으로 국립공원과 도립공원을 산행을 했기에 일찍이 다녀왔지만 산행기의 소중함을 몰라 산행기는 당연히 안 적었고 인증사진 또한 남기지 못했다. 그러다가 2014년 7월 5일 땅끝기맥을 하며 오소재 쉼터에서 산행을 시작해 대둔산 도솔봉 봉우리까지 모두 섭렵을 했고 2019년 12월 8일 가자산악회 산행 때에는 케이블카 타고 고계봉 정상에 올라갔었다. 그러니 이번이 네 번째인 셈인데 사실 그렇게 많이 설레는 산행은 아니었다. 하지만 거의 10년 만에 가는 산행이라 다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롯데를 따라 나섰다. 아침을 김밥을 준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아침식사를 집에서 하고 갔을 텐데 공지사항을 자세히 읽지 않아 그 사실을 모르고 갔으니 점심으로 빈 보온병만 가져갔으니 대략 난감하였다. 정숙이가 회장님에게 김밥을 하나 더 받아 아침식사는 차안에서 꼬마 김밥 세 줄과 정숙이가 준 계란 두 개로 해결했는데 김밥에 체해서 아주 불편한 상태로 산행을 시작해야 했다. 김밥에 대한 트라우마로 휴게소에 갔을 때 컵라면 하나를 구입해 점심은 김밥을 먹지 않을 생각으로 아예 차안에 두고 산행을 시작했으니 김밥에 대한 트라우마가 얼마나 심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단체 기년 사진을 찍고 트림을 하며 산행은 시작 되었는데 공부를 하고 오지 않아 오소재 주차장과 오소재 쉼터를 혼돈 했다. 오소재 쉼터는 지난 땅끝기맥중 산행을 시작한 비범정 탐방로이고 오소재 주차장은 정규 산행로인 것을 몰랐다. 길이 너무 잘 되어 있어 산행은 어렵지 않았는데 몸 상태가 불편해서 호흡이 거칠어졌고 결국 산대장이 준 소화제를 먹고 산행을 계속했지만 쉽게 컨디션 회복은 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빠른 걸음보다는 천천히 페이스를 끌어 올렸고 노승봉 정상에서는 정숙이를 한참 기다렸다 같이 산행을 하기 시작했다. 가련봉 정상에서 인증하고 점심은 만일재에서 모두 모여 했는데 준비해간 컵라면 하나만 먹어야 할 정도로 컨디션은 회복되지 않았다. 하지만 몸은 점차 되돌아오고 있었고 두륜봉 인증을 한 후에는 하산 길이라 너무 쉬운 길이었다. 표추사도 구경하고 대흥사 대웅전도 구경하며 산행은 잘 마쳤다. 돌아오는 길에 술을 마시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정숙이와 연자가 소맥을 권해서 마시니 소화에 도움이 약간 되는 것 같았지만 뒤풀이 때에도 조심을 하며 음식을 섭취해야 했다. 이른 시간에 대리운전을 불러선지 기사님은 빨리 왔고 해남을 다녀온 것 치고는 집에도 빠른 귀가였다.

 

※ 산행 사진

오소재 약수터 주차장(해남군 북일면 흥촌리 산117-8)에 도착해 단체 사진을 찍고 산행을 시작한다. 가련봉 최단코스 출발지인 오소재약수터 주차장은 주차공간이 넓으며 주차비도 무료이고 깨끗한 화장실도 있다. 정자가 있는 방향에 이정표가 있어 오심재/가련봉 방향으로 등산을 시작하면 된다.

단체 사진을 찍고 오소재 쉼터로 이동 하는 회원들을 보고 고개를 갸웃 했다. "오소재 쉼터" 위치는 가깝지만 다른 곳이고 오소재 쉼터에는 주차장이 없다. 이 오소재쉼터~너덜길 코스의 특징은 정상까지 편도 2.8km중 약 2km의 비좁은 비탈길과 크고 긴 너덜길 구간을 오르는 최단코스 중 하나이지만 비법정 탐방로다. 정상까지의 산행 시간은 내가 했던 땅끝기맥 산행기를 보니 대략 1시간 25분 정도 소요 되었다. 땅끝기맥을 하거나, 거친 산행을 즐기거나, 신비한 너덜 바윗돌 골짜기를 보려는 분들에겐 의미있지만 오소재약수터 주차장 입구에서 '오심재' 방향 코스 또는 반대편 '대흥사' 코스로 산행하는 것을 권장한다.​

결국 오소재약수터 주차장 입구로 돌아 왔다.  오소재(烏所峙 164m)는  해남군 삼산면과 북일면을 가로 지르는 827번 지방도가 지나가며, 예전에 오시미재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산적들의 행패가 하도 심해서 50명이상의 사람들이 떼를 지어서 넘어야 했다고해서 붙혀진 지명이라고 한다. 또 다른 설은 주작산의 암릉들이 까마귀의 집처럼 생겼다고 해서 오소재(烏所峙)로 부른다고 하며 오소재 약수터가 있고 좌측에는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는 오소재 쉼터가 있다. 

오소재 약수터 주차장 입구의 단풍나무는 남쪽임을 보여 주고 있었다.

주차장 옆에서 부터 등산로가 시작된다. 여기서 부터 가련봉은 2.6Km. 오심재 까지는 1.6Km다.

오소재 약수터 주차장에서 오심재까지는 약 1.6km로 경사도가 높지 않는 등산로이다. 흙길과 돌길이 번갈아 가며 있는데 크게 어렵지 않는 구간으로 평탄한 오름의 연속이다.

주차장에서 1.6km정도 올라오면 오심재다. 오심재에 도착을 하면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이곳에는 평상도 있어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올라가 주면 된다.

 오심재의 등산 안내도

노승봉까지는 600m정도 남아있다.

 오심재에서 바라 본 고계봉은 케이블카 이용시 쉽게 오를 수 있다. 오심재에서 고계봉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도립공원 보호를 위해 등산로가 폐쇄되어 있어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아 등산로도 좁고 일부 구간에는 조릿대로 인해 진행이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주차장에서 오심재까지의 1.6Km 구간은 평범한 구간이지만 산행은 그날의 컨디션이 제일 중요 하듯이 위체 증상으로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산행을 계속해야 했다. 오심재에서 노승봉, 가련봉 방향으로 올라가면 된다.

흔들바위에서 바라 본 고계봉

오심재에서 200m 정도 올라 오면 흔들바위로 가는 입구가 나온다. 가련봉으로 가는길에 흔들바위로 가는 갈림길이 하나 나오는데 흔들바위는 20m 떨어진 곳에 있어 흔들바위를 보고 다시 돌아와서 가련봉으로 오른다. 

움직인다는 기록이 있다는데 밀어도 흔들릴 기미는 전혀 안 보인다. 흔들바위에서 대흥사가 잘 조망 된다.

 흔들바위를 구경하고 다시 올라가면 노승봉 200m 남겨두고 다시 공터가 나온다. 이곳에서 노승봉이 잘 조망된다.

노승봉 오름 전 흔히 말하는 통천문 형태의 암문인데 2014년 7월 5일 땅끝기맥 할 때는 없었던 나무계단이 지금은 편한 산행을 하게 한다.

▲ 계단에서 바라 본 고계봉은 이제 케이블카 상부도 보여 준다.

▲ 노승봉 오름 전 계단에서 바라 본 주작산 덕룡산

▲ 바다도 조망 된다.

잠시 쇠줄을 잡고 오르면 곧 노승봉이다.

▲ 노승봉에서는 대흥사가 잘 조망 된다.

▲ <노승봉(老僧峰 685m)> : 두륜산 도립공원 안에 있는 봉우리로, 해남군 북일면과 삼산면의 경계 능선에 있으며, 정상은 넓고 편편한 암반으로 되어있으며 한 쪽에 오석으로 된 자그만 표시석이 있다. 지도를 보면 국토지리원의 25,000 지형도에는 건너편 고계봉을 ‘노성봉’으로 표기하고, 이 봉우리에는 이름이 없다고 한다. 노승봉을 능허대(凌虛臺)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하늘 높이 나른다는 뜻으로 중국의 경승지나 건물에도 많이 등장하는 단어이다. 우리나라에서의 지명에도 많이 보이는데 황해도 해주, 강원도 고성, 경북 울진의 지명에서도 보인다. 허공을 가른다, 승천하다, 비상하다의 뜻의 관용화 된 표현으로, 중국과 조선시대에 보편화되어 해변 절경지에 많이 등장하는 지명이라고 한다.

▲ 진행 방향 가련봉, 노승봉에서 15분 동안 휴식을 취하며 친구를 기다렸다.

▲ 노승봉에서 바라 본 대둔산 도솔봉

▲ 4개 봉우리 중 두 번째가 가장 높아 보이는데 가련봉 정상석이 있는 곳이다.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선두는 가련봉에 가 있다. 노승봉 지나 다시 나오는 나무 계단을 내려갔다 다시 한 번 나무 계단을 올라가면 가련봉 정상석이 나오며 정상은 시원한 조망을 선사 한다.

▲ <두륜산 가련봉(迦蓮峰 703m)> :두륜산 도립공원중의 최고봉으로 해남군 삼산면과 북일면의 경계 능선에 있다. 두륜산은 가련봉을 비롯해 두륜봉(630m), 고계봉(638m), 노승봉(682m), 도솔봉(672m) 혈망봉(379m), 향로봉(469m), 연화봉(613m)의 8개 봉우리(두륜8봉)가 능선을 이루며 8개 암봉이 둥근 원형으로 천상(天上)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땅에서 연꽃이 솟아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서산대사는 두륜산의 지세(地勢)를 말하기를 “북으로는 월출산이 있어 하늘을 괴는 기둥이 되고, 남으로는 달마산이 있어 지축이 튼튼히 연결되어 있고, 동의 천관산, 서의 선은산이 홀연히 마주 솟아있다. 바다가 둘러 싸 지키고, 골짜기는 깊고 그윽하니 이곳은 만세토록 불훼의 땅이다”라고 하였다. 이 예언에 따라 산내의 고찰 대둔사와 산림은 임진왜란 때와 한국동란 때도 전화(戰禍)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만일재와 두륜봉, 도솔봉 뒤로 달마산이 흐릿하다.

오리바위(?)를 찍었는데 완도 방면 다도해도 보인다.

▲ <만일재(挽日峙 549m)> :해남군 북일면과 삼산면을 잇는 두륜산 내에 있는 고개로, 가련봉과 두륜봉 사이에 있으며, 고개 정상에는 넓은 헬기장과 이정표가 있다. 지명유래는 만일암지(挽日庵址)에서 따온듯 하며 ‘해를 당겨 놓았다’라는 의미하고 한다. 가을이면 억새가 지천으로 피어 억새천국을 이루는 곳이라고 한다. 만일재(挽日峙)는 천년수 설화와도 관계가 있다고 한다. 옛날 천동(天童)과 천녀(天女)가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지상으로 내려가 불상을 조각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낮동안 불상을 조성하지 못하면 다시는 천상으로 갈 수 없게된 두 사람은 꾀를 내어 천년수에 해를 묶어 해가 지지 못하게 하고, 천동(天童)은 남암에서 천녀(天女)는 북암에서 각각 불상을 조각했다. 그러나 천동보다 일찍 조각을 끝낸 천녀가 빨리 천상으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에 해를 묶어놓은 줄을 끊어버리는 바람에 천동은 영원히 하늘로 올라가지 못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실제로 북암과 남암을 가보면 이 전설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하는데 북암에서는 마애여래좌상이 남암에서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미륵불입상이 있다고 한다. 만일재로 내려 오며 바라 본 두륜봉 

▲ 만일재로 내려오며 바라 본 다도해

▲ 만일재에서 바라 본 가련봉,  만일재에서는 점심 식사를 했는데 체증 현상이 있어서 컵라면 하나로 점심식사를 했다. 이제  두륜봉 입구 삼거리에서 두륜봉으로 향한다.

▲ 두륜봉 구름다리(白雲臺)는 자연석으로 이루어진 돌다리이며, 두륜산의 명물로 알려져 있다. 아름다운 구름다리는 두륜산 대흥사의 8경인 대흥팔경(大興八景)으로도 유명하다. 입구의 목재 데크 계단을 따라 올라서서 5분이면 두륜봉(頭輪峰)의 정상에 오른다. 구름다리는 하얀 구름이 바위의 틈 사이로 넘나든다고 하여, 두륜산 대흥사의 옛 사지(寺誌) 대둔사지(大芚寺誌 : 1823)에는 백운대(白雲臺)로 기록되어 있다.

2014년 7월 5일 땅끝기맥 할 때사진은 찍기 나름이지만 동물이 뽀뽀하는 모습이다. 흡사 계룡산 문다래미 같은 느낌이다.

▲ 두륜봉 구름다리 위에서 인증 사진을 많이 찍는데 위험한 곳은 가지 않는 스타일이라 포기 했다.

▲ 두륜봉: 대흥사에서 두륜산을 바라보면 마치 부처님이 누워있는 형상(臥佛)이라는데, 이곳 두륜봉(부처님 얼굴), 노승봉(부처님의 왼손), 가련봉(부처님의 오른손), 백년수(부처님의 심장), 고계봉(부처님의 발)에 해당된다고 한다. 두륜봉 정상에 오르면 두륜산의 최고봉인 가련봉(703m)과 노승봉(688m), 고계봉(638m), 향로봉(469m), 혈망봉(379m), 연화봉(613m), 도솔봉(671m), 투구봉(533m)이 우뚝 솟아 있고 강진만, 완도, 진도 일대의 아름다운 다도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 <두륜봉(頭輪峰 630m)>:두륜산 도립공원 봉우리 중 5번째로 높은 봉우리이지만, 두륜산의 주산으로 대접을 받고있는 봉우리다. 원래는 커다란 바위덩어리란 뜻으로 “한듬산”으로 불리다가, 그 이후 한듬, 대듬, 대둔으로 변해 대둔산(大芚山)으로 불리다가 백두산의‘두(頭)’와 중국 곤륜산의 ‘륜(輪)’을 따 두륜산(頭輪山)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정상석 아래 누워 있는 오석(烏石)에는 해남 청년 사랑회에서 “산은 오르되 이름은 없고 천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젊은 피땀으로 세웠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두륜봉 정상에서는 고계봉, 노승봉, 가련봉이 잘 조망 된다.

위봉으로 잘못 알려진 주봉(×533m)능선과 완도 

대흥사 이정표가 등장한다. 이제 대흥사와 표충사 이정표 따라 진행 하면 된다.

재미있게 생긴 바위들도 보이고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하산이다.

표충사 이정표 따라 하산 하면 된다.

진불암 입구 포장도로에 내려선다. 진불암은 패스하고 표충사로 향한다.

계곡으로 내려가 발 담그고 싶었다.

▲ 두륜봉에서 하산 시작 표충사까지 약 1시간만에 내려왔다.

▲ 표충사 가기 전에 바라 본 혈망봉, 향로봉

표충사 옆의 초의선사 동상: 법명은 의순(意恂)이지만 법호인 초의(草衣)가 더 잘 알려졌기에 보통 초의선사라고 부른다. 조선 정조 10년(1786) 전라남도 무안군에서 태어났는데 아명은 우순(宇恂), 자는 중부(中孚)였다고 한다. 15세 되는 순조 즉위년(1800)에 남평 운흥사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다.강진에 유배 왔던 다산 정약용에게 배우기도 했으며 추사 김정희와도 친교가 깊었다. 추사가 제주도에 유배 갔을 때도 위로 차 찾아갔었다고 한다. 한국의 다례인을 거론할 때 가장 많이 꼽히는 인물 가운데 하나이며 1828년 지리산 칠불암에 머물면서 지은 차서(茶書)인 다신전과 동다송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내용은 찻잎 따기, 차 만들기, 차의 식별법, 차의 보관, 물을 끓이는 법, 차를 끓이는 법, 차를 마시는 법, 차의 향기, 차의 색 등 20여 가지 목차로 상세하게 다룬 책이다. 그 외 저서로 '초의집(草衣集)' 등이 있다.

표충사 입구의 호국문은 사당이라 삼문형식을 갖추고 있다. 호국문 뒤 예제문 통과 후 표충사가 있다. 여기 표충사는 절이 아닌 서산대사 휴정과 사명대사 유정, 뇌묵당 처영을 기리는 사당이다

서산대사 휴정(休靜)은 어려서 고아로 자란 후, 출가하여 선가의 법을 체득하였다.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8도 16조 도총섭이 되어 유정, 처영과 함께 왜적을 물리치는데 커다란 공을 세웠다. 이 건물은 조선 정조12년(1778년)에 대사의 높은 공을 기리기 위해 왕이 친히 사액을 내리고 표충사 편액은 정조가 손수 써서 내려준 것이며 나라에서 세금을 면제해주는 특혜를 받았다.

표충비각:전라남도 기념물 제19호로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왜적 격퇴에 앞장선 서산대사를 모시는 사당으로 조선 현종 10년(1669년)에 건립되었다

가까이 자라는 두 나무가 서로 만나 합쳐지는 현상을 연리라고 하는데 오랜 세월을 함께하며 햇빛을 향해 바람을 따라 서로 부대끼고 겹쳐져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하는데, 대흥사에 가면 이 연리근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두 몸이 하나가 된다는 뜻으로 각각 부모의 사랑, 연인의 사랑에 비유되어 일명 사랑나무로도 불린다고 한다. 뿌리가 만나면 연리근, 줄기가 겹치면 연리목, 가지가 하나 되면 연리지 라고 부르는데 여기 대흥사 대웅보전 가는 길에 연리근이 있다. 뿌리는 하나이나 몸이 둘인 느티나무다.

화엄경은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이 되는 불교경전으로 원명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며, 현재 한역본(漢譯本)으로는 권수에 따라 불타발타라(佛陀跋陀羅)가 번역한 60화엄과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80화엄, 반야(般若)가 번역한 40화엄 등 세 가지가 있으며, 이들은 모두 우리나라에서 널리 유통되었다. 출처:다음백과

침계루(枕溪樓) : 북원의 출입문으로 남ㆍ북원을 가로지르는 계류 금당천(金塘川)에 면하여 자리한 2층 누각건물이다. 심진교를 지나 누 아래의 어칸 통로를 통해 중정으로 출입하며, 대웅전 맞은편에 자리한다. 침계루의 현판은 원교 이광사 글씨이고 침계루를 지나면 대웅보전이 나온다.

대웅보전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다포양식의 팔작지붕으로 1667년 중수 기록이 있으나 1899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다시 세운 것이다.이 대웅전은 이러한 요소들보다 원교 이광사와 추사 김정희의 이야기로 유명하다. 귀양 길에 대둔사에 초의선사를 만나 추사가 대웅전 현판의 원교의 글을 깍아내리며 떼라고 했고 유배가 풀려 돌아오는 길에 다시 원교의 글을 다시 걸어달라고 청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이야기가 낭설이라는 말도 있어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겠다. 대웅보전 왼편 백설당에는 추사의 무량수각 현판이 걸려있다.이 이야기가 진실이라면 오만했던 추사가 유배길에 스스로 깨우친 바가 있어 자신을 돌아보고 뉘우치며 자신의 과오를 인정할 줄 아는 인물이라는 것이고 또한 원교의 글 역시도 당대를 대표하는 필력이라는 의미가 되니 충분히 후대에 교훈을 주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 

대웅전과 대웅보전의 차이를 조사해 보니 대웅전은 중앙에 석가모니 부처님, 왼쪽에는 문수보살, 오른쪽에는 보현보살을 모신 곳이고, 대웅보전은 중앙에 석가모니 부처님, 왼쪽에 아미타불 부처님, 오른쪽에 약사여래 부처님의 삼계불을 모신 곳으로 격을 높여 대웅보전이라 부른다고 한다.  대웅보전 뒤로 보이는  두륜산은 영락없이 그 모양이 부처가 누워있는 와불의 형세를 나타낸다고 한다.

대흥사 일주문

계류 금당천(金塘川)

남쪽이라 그런지 단풍이 아직 곱다.

▲ 주차장 가는 길에 백화암도 있었는데 패스하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 주차장 산행마침

주차장의 산행 안내도

버스가 여기까지 올수 있는데 기사님은 멀리 매표소 입구에서 기다리다 우리의 호출을 받고 여기 주차장으로 왔다.

주차장은 넓게 마련되어 있고 주차료는 유료(승용차 3.000원)이며 매점, 화장실이 있다. 기와지붕 건물이 매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