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산 (曹溪山, 884m) : 장군봉, 선암사, 송광사, 연산봉
빈계재→고동재→고동산→장안치→큰굴목재→작은굴목재→조계산→접치
◇ 산행지 : 전남 순천시 낙안면, 주암면 일원
◇ 산행일자 : 2010. 6. 1 (화) 날씨 : 맑음 (저온과 시원한 바람으로 산행하기 좋았음)
◇ 산악회및 산행 친구 : 대자연 산악회 화요팀
◇ 산행거리 : 도상거리 14.2Km(이정목 16.2Km)
◇ 산행시간 : 6시간 20분 소요 예상 실제 산행 시간 4시간 45분 <점심 15분 포함>
◇ 시간대별 요약
- 08:30 서대전 진잠 체육관 출발
- 11:20 빈계재 도착
- 11:22 산행시작
- 12:43 고동재
- 12:59 고동산
- 13:12 점심 10분
- 14:16 장안치
- 14:26 큰굴목재
- 14:42 작은굴목재
- 14:55 배바위
- 15:07 조계산
- 15:23 연산봉 갈림길
- 16:08 접치 산행 마침
- 18:09 후미 도착
- 18:30 접치 출발
- 20:20 서대전 진잠체육관 도착
※ 특기사항
① 조계산 두 번 산행 (2004. 7. 15 첫산행)
② 저온 현상과 바람으로 산행 하기 좋았음.
③ 하산 후 씻을 곳 없음.
④ 후미 두 시간 기다림
⑤ 호남정맥 산행기로 100명산 산행기 대체
※ 산행 전 사전 조사
<송광사(松廣寺>: 사적 제506호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의 본사이며, 이전에는 대길상사·수선사라고 했다. 통도사·해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사찰로 꼽힌다. 창건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송광사사적비>에 의하면 신라 말 체징이 길상사라는 절을 지은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거의 폐허화된 것을 1200년 보조국사가 수행결사인 정혜사를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길상사로 옮긴 후부터 대규모 수도도량으로 발전했다. 이후 조선 초까지 진각·태고·환암·무학 등 15명의 국사를 배출하였다.화재와 6·25전쟁 등으로 많은 전각들이 소실 또는 파괴되어 다시 중건되었다. 현재 한국 선종을 이끄는 중심사찰의 역할을 하고 있다. 문화재로는 목조삼존불감(국보 제42호)·금동 요령(보물 제176호)·묘법연화경찬술(보물 제206호) 등이 있다.(출처:다음백과)
<선암사(仙巖寺)>: 한국불교 태고종 태고총림으로 대한 불교 조계종 제20교구 본사다. 신라 542년에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사적기〉에 의하면 875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1092년에 의천이 중창했으나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어 1660년에 재건을 시작했다. 1701년에 불조전이 완성되었고, 대웅전의 개수 및 승선교 축조 등 대대적인 확장과 정비가 이루어졌다. 1819년에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중건했고, 1823년 다시 화재가 나자 해붕 등이 중수했다. 사적 제507호로 지정되었다. 2018년 6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출처:다음백과)
※ 조계산 산림청 100명산 선정 사유 : 예로부터 소강남(小江南)이라 부른 명산으로 깊은 계곡과 울창한 숲·폭포·약수 등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불교 사적지가 많으며, 도립공원으로 지정(1979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하였으며 목조삼존불감(국보 제42호), 고려고종제서(高麗高宗制書 : 국보 제43호), 송광사국사전(국보 제56호) 등 많은 국보를 보유한 송광사와 곱향나무(천연기념물 제88호)가 유명하다.
※ 조계산 산행 등산 지도
※ 산행 후기
조계산은 2004년 7월 15일에 다녀왔는데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넘어 왔는지 송광사에서 선암사로 넘어 왔는지 정확한 기록이 없으니 알 수 없다. 암튼 산악회를 따라 갔고 절에서 절로 넘어간 기억만 있다. 먼 거리에 있으니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산악회를 따라 한 번 산행을 하고 싶다. 아래 글은 호남정맥시 쓴 산행기로 100명산 산행기를 대체 한다.
토요일 낙동정맥 산행 시 날씨가 너무 좋아 이번 산행도 그런 날씨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여름 날씨에 가까운 요즘의 날씨를 감안하여 물은 2리터를 준비했다. 0.5리터는 산행 전에 차에서 마시기로 하고 하산 하면 씻을 곳이 없는 점을 감안하여 피티 맥주병으로 물 한 병은 따로 가방에 넣고 진잠 체육관으로 향했다. 산행지가 조계산이라서 차안에 빈 좌석이 없을 것으로 예상은 했는데 오늘 내 자리는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아서 맨 뒤 좌석에 앉았는데 처음 온 여자 둘이서 엄청 시끄럽게 대화를 나눈다. 김대장님의 산행지 설명 때도 대화를 멈추지 않기에 “설명 좀 듣자”고 핀잔을 주었는데 그때 뿐 산행지 설명이 끝나니 다시 떠든다. 너는 떠들어라 나는 잔다는 식이어도 도대체 시끄러워 잠을 자지 못했는데 정읍 휴계소를 지나니 그때부터 조금 조용하여 잠을 청했다. 산행지에 도착하여 단체 사진을 찍고 출발했다. 처음 30분이 그날의 산행을 좌우 할 수도 있으니 오름길에 천천히 오른다. 약 30분간 힘들게 오르기만 하는데 그 이후 고동재 까지는 편한 능선 길이다. 고동산 정상에서 선두가 식사를 할 줄 알았는데 그늘이 없어 그늘이 있는 곳을 향해 지나쳐 가더니 그늘이 있는 곳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밥맛도 없어서 물에 말아 먹으니 식사 시간이 5분이나 단축되어 선두를 따라 나섰다. 선두는 가면서 산나물도 채취하며 가는데 나는 그냥 가면서도 엄청 힘들었다. 큰굴목재에 도착하니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넘어갔던 기억이 난다. 그날 소나기를 엄청 맞아서 공중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었던 기억에 지난 시간이 그리워진다. 작은 굴목재에서 정상인 장군봉 800m를 남기고 배바위로 오르는 길이 힘겹다. 밧줄을 잡고 배바위에 오르니 선암사도 조망된다. 역광이라도 흔적을 남기기 위해 정상에서 사진을 찍고 선두와 함께 하산 하는 길은 조금 가파르지만 선두와 함께라는 생각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산행을 마치고 찌개를 준비 하신 분 덕분에 김치찌개를 끓여 소주 한 잔 하니 오는 길은 잠에 빠져 먼 길이 가까웠다. 이제 호남정맥 남은 구간은 보충을 합해 8이다.
※ 산행 사진
▲ 빈계재에 정차 하기 힘들어 아스팔트를 조금 걸었다.
▲ 빈계재 : 순천시의 외서면과 낙안면의 경계 지방도 85호 2차선 포장도로이다. 빈기재/분계재(奔界峙-1760년 여지도)/(奔溪峙,分鷄峙)로 표기의 흔적이 보인다. 빈계재(牝溪峙)로 쓰인 기록은 조선조 말 金南波의 시집 風月集에 보인다. 한편, 백이산 아래에서 태어나 흙으로 낙안성을 쌓은 김빈길 장군의 이름을 따서 '빈길재'로 부르던 것이 오랜 세월 동안에 빈계재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빈계재의 '닭'과 오금재(낙안/승주;蜈蚣峙)의 '지네'를 대비시키는 설도 있으니 흥미롭다. 빈계재에서 도착 단체 사진 찍고 출발 한다.
▲ 빈계재에서 조금 오르면 철조망을 따라 걷는다. 좌우 측백 나무가 관리 탓인지 다르다.
▲ 낙안읍과 낙안벌
▲ 뒤돌아 본 백이산
▲ 고동재 : 고동산 정상에서 유래를 읽어 보면 한자로는 고등치(高等峙) 고동치(高動峙)라고도 했단다.
▲ 고동재에서 고동산 오르는 길
▲ 캔모아님이 잡은 내 뒷모습
▲ 낙안읍
▲ 고동산 유래에 대해 읽어 보니 임진왜란 발발 전에 산고동이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날씨가 흐리면 산고동이 울었다고 하는데 주민들은 산고동이 울면 비나 눈이 오겠구나 했단다. 산고동에 대해 다음에서 검색해보니 거북이 님의 블러그에 아래 글과 사진이 있다. 고동(우렁)은 물에서 산다.사진처럼 산(山)고동은 달팽이 보다 훨씬 더 크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는 육지에 사는 달팽이 종류로는 가장 큰 종이라는 생각이다. 산고동은 우리나라 어느 높은 산의 산자락 아래의 습기가 좀 있으며 고목이 많으며 바위돌들이 있는 곳에서 산다.(정확히는 그런 곳에서 보았다) 산고동은 소리내어 운다고 하지만 너무 희귀한 것이라 실물을 보기도 어렵고 울음소리를 들어 본 사람이 없는 듯하다.(전설인 듯하다) 산고동이 무엇을 먹고 사는지 아무도 모른다.
▲ 사진 발췌: 다음 블러그 거북이님. (산고동)
▲ 장안치 까지 차가 올라와 있다.
▲ 장안치의 이정표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장안리 장안마을과 낙안면 석흥리 흥림마을을 잇고 조계산 장군봉에서 고동산을 잇는 산줄기가 지나는 사거리 안부이다.
▲ 큰굴목재 : 굴목재는 선암사와 송광사를 왕래하는 지름길이다. 1600년대 이후 양사 고승들의 교류 기록과 보리밥집 아래 장안마을에서 풍암대사를 필두로 송광사 고승들이 많이 배출되어 현재 보리밥집 일대를 두 절의 경계 지역인 '지경터'라 불리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두 절간의 통행은 물론 장안계곡 아랫마을 사람들이 이 골짜기를 무시로 드나들었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1700년대 초의 조계산 지도에는 굴목재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하였으며1926년 육당 최남선의 남도순례 길로 그의 기행문인 '심춘순례’에 굴목재가 등장하게 되며 1960년대 국내여행의 대가였던 당시 이화여대 조필대 교수가 우리나라 여행 산길의 제1번지로 추천하기도 하였다. • 출처 : 조계산에서 만나는 이야기 / 순천시
▲ 조계산 도립공원이라서 등산로는 잘 정비되어 있다.
▲ 작은굴목재 :작은 굴목재는 탐방(등산)객들이 다니기 전까지는 이 고개는 주로 선암사 인근마을 사람들이 조계산 (장군봉)을 상징하는 골짜기인 장박골로 임산물을 채취하기 위해 넘나들거나 선암사(비로암)의 스님들의 포행으로 다니던 고개였다. 그 이름은 큰 굴목재의 이름을 벌어 작은 굴목재라고 부른 것이며 큰 굴목재와 같은 산줄기에 나란히 있으나 상대적으로 통행량이 적은 아우 고개라는 뜻이 담겨있다. 현재는 큰굴목재 못지않은 많은 탐방객들이 통행하는 고개로 자리매김하였다. • 출처 : 조계산에서 만나는 이야기 / 순천시
▲ 작은굴목재의 등산 안내도
▲ 배바위 : 배바위는 선암(船巖)과 선암(仙巖)으로 구분되는 전설이 있다. 첫 번째 배바위(船巖)는 이 바위에 배를 묶었다는 유래에서 나온 이름이다.“아득한 옛날 세상 전부가 물에 잠기는 홍수가 발생하자 사람들이 커다란 배를 이 바위에 묶어 견딘 끝에 살아났다." 실제로 배바위에는 배를 묶었다고 하는 대형 둥근 철고리가 박혀 있었다고 전해오는데, 이 고리는 배를 묶었던 전설의 고리가 아니라 일제강점기때 맥을 끊기 위해 일제가 박은 철주의 일종이라는 설도 있다. 두 번째 배바위(仙巖), 즉 신선바위와 관련된 유래는 “옛날 신선들이 이 바위 위에서 바둑을 두었다하여 신선바위라 불렀다.” 하는 전설과, 숙종 때 호암선사가 관세음보살을 보려고 이 바위 위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며 깨달은 바가 있어 선암사에 원통전을 지어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절의 이름을 선암사라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착한 홀아비와 손자가 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배바위 위에서 홍수를 피해 살아났다.'는 전설이 “송광항지"에 실려있다.• 출처 : 조계산에서 만나는 이야기 / 순천시
▲ 배바위 위에서(송산 송희석님이 찍어 준 사진) 뒷 배경은 조계산 장군봉
▲ 배바위에서 내려다 본 선암사
▲ 배바위 : “배바위란 아주 먼 옛날에 온통 물에 잠기는 어마어마한 홍수가 발생하여 사람들은 이 바위에 밧줄을 묶고 기다렸다가 홍수가 끝나고 살아 남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단다. 흡사 노아의 방주와 비슷하다. 1900년대까지도 조개껍질이 붙어 있었다고도 한다. 배바위를 신선이 이 바위에서 바둑을 두었다 하여 “신선바위” 즉 선암(仙巖)이라 부르게 된 데서 선암사가 유래 했다고도 하고 다른 전설은 “장군봉” 장군의 도장이라 하는 “인장”바위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 조계산 장군봉의 이정표
▲ 조계산 장군봉 : 장군봉은 조계산의 정상이며 선암사 배후 봉우리이다. 기록에 의하면 산의 이름은 신라 말 선암사가 창건되던 때에는 '청량산' 이었으나 '조계산' 으로 이름이 바뀌기를 반복하다 1825년에 조계산으로 정착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장군이라는 단어에서 느낄 수 있듯 잔주름 없이 우람차게 솟아 좌우로 균형있게 거느린 줄기에 의해 장군대좌(將軍大座)라는 경칭(敬稱)으로 불리기도 한다.
• 주변 봉(峯)과의 관계
장군봉을 중심으로 장군봉을 닮은 작은 장군봉이라는 뜻의 소장군(중봉)봉, 장군봉의 줄기에서 이어내린 줄기와 봉우리라는 연산줄기와 연산봉, 장군의 막사형태로 생겼다는 뒤편의 장막(박)골, 장군에게 술잔을 바쳐 경배한다는 옥녀봉과 같이 장군을 받들어 모시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들이 많다. • 출처 : 조계산에서 만나는 이야기 / 순천시
▲ 조계산 유래를 검색 해보니 본래 불교식 산명은 청량산이었으나 대각국사 의천이 바꾸었다 한다. 曹溪란 원래 중국 선종의 제6조 혜능의 별호로서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이 이 산을 돈오점수(旽悟漸修)“ 곧 문득 깨달은 후 점차 세속의 습을 제거해 나간다는” 수행법을 따르는 수선사를 열면서 산 이름이 처음엔 송광산에서 조계산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조계종은 16국사를 배출하면서 크게 흥성 불교계의 중심적인종파가 되었으며 그 중심점 역할을 한 사찰이 바로 송광사이다. 그래서 서쪽의 송광사를 일러 승보사찰이라 한단다. 동쪽의 선암사는 불교계의 다른 한 맥을 이끄는 천태종의 중심사찰이란다.
▲ 선두 분 들과 함께
▲ 연산봉 갈림길
▲ 접치 산행마침
▲ 접치(接峙) : 전라남도 순천시의 주암면 행정리와 승주읍 두월리 사이에 위치한 고개이다.남쪽의 조계산도립공원과 북쪽에는 오성산 사이에 위치한 고개이다. 호남고속도로와 22번 국도가 고개를 지나가며 서쪽으로는 주암천, 동쪽으로는 두월천 지류가 발원한다. 고개 서쪽 사면에 고개의 이름을 딴 접치 마을이 있다. 『호구총수』의 주암면에 접치(接峙) 마을이 기재되어 있어 그 이전부터 '접치' 지명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순천부읍지』에 접치령(接峙嶺)으로, 『대동지지』에는 접치(接峙)로 나오며 "부의 서쪽 60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청구도』(23층 13면)에 조계산에서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와 동리산 사이로 접치가 묘사되어 있으며, 『동여도』(20첩 4면), 『1872년지방지도』(순천), 『조선지형도』 등에도 접치가 기재되어 있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 산행마치고 버스가 오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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