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상산(赤裳山 1,034m) : 기봉, 향로봉, 안국사
안국사 주차장 → 안렴대 → 기봉 → 향로봉 → 기봉 → 안국사
◇ 산행지 :전북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 산행일자 : 2016. 11. 12(일) 날씨 : 맑음
◇ 산악회및 산행 친구 : 연우회 친구들(재문, 재칠, 승우, 현철)
◇ 산행거리 : 트랭글 기준 4.21km
◇ 산행시간 : 1시간 48분 (안국사 구경 포함)
◇ 시간대별 요약
- 09:24 안국사 도착 산행시작
- 09:34 안렴대
- 09:41 안국사/안렴대/향로봉 갈림길
- 10:12 향로봉
- 11:09 안국사
- 11:12 안국사 주차장 산행마침
- 11:32 적상산 전망대
- 11:59 와인 동굴
- 13:07 양수발전소
- 13:40 산아래가든(식사 50분)
- 14:30 산아래 가든 출발
- 15:30 관저동 도착
※ 특기사항
① 적상산 세 번 산행 ( 2004. 12. 16, 2020. 10. 3 )
② 안국사 까지 차량 이용 산행
③ 양수발전소 방문
④ 와인동굴 방문
⑤ 원점회귀 산행
※ 산행 전 사전 조사
<적상산사고지>: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때 서울의 춘추관을 비롯한 전국의 사고가 불에 탄 후, 춘추관을 제외한 정족산, 태백산, 묘향산, 오대산 등에 새로운 사고를 설치하게 되었으나, 당시 우리나라 북방이 위험하여 광해 6년(1614) 천혜의 요새로 이름난 무주의 적상산에 실록전을 세우고 묘향산의 실록을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인조 19년(1641) 선원각을 세워 왕실의 족보인 선원록을 보관하게 되었다. 그 후 일본에 의해 사고가 폐지될 때까지 300여 년간 국가의 귀중한 국사를 보존했던 우리나라 5대 사고 중 하나였다. 현재 전라북도 기념물 제88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사고 터는 안타깝게도 적상산 양수발전소댐을 건설하면서 상부댐 안에 수몰되어 안국사와 함께 저수지 위쪽으로 이전하였다. 적상산은 사방이 깎아지른 듯 한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절벽 주변에 유난히도 빨간 단풍나무가 많아서 가을철이면 마치 온 산이 빨간 치마를 입은 듯 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산에는 고려 공민왕 23년(1374) 최영 장군이 탐라를 토벌한 후 귀경길에 이곳을 지나다가 산의 형세가 요새로서 적지임을 알고 왕에게 축성을 건의하여, 그 계기로 축성하였다는 적상산성이 있다. 그리고 고려 충렬왕3년(1227년) 월인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안국사 및 사고를 지키기 위한 호국사찰로서 조선시대 인조 21년(1643년)에 창건한 호국사터가 있다. 현재의 안국사는 이 호국사터에 자리하고 있다. (출처:다음백과)
<적상산(赤裳山)>: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赤裳面) 중앙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1030.6m이다. 덕유산국립공원 지역에 속하며, 4면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붉은색 바위지대가 마치 산이 붉은 치마를 입은 것 같다고 하여 적상(赤裳)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고, 한국 100경 중 하나로 꼽힌다. 중생대 백악기 신라층군(新羅層群)에 속하는 자색의 퇴적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상은 해발고도 850~1,000m의 평정봉(平頂峰)으로 주봉(主峰)인 기봉과 향로봉(1,025m)이 마주보고 있고, 정상 일대가 흙으로 덮인 토산(土山)이라서 나무숲이 매우 울창하다. 산정이 평탄한 반면 지면에서 산허리까지는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산세가 험준하며 물이 풍부하므로 방어상 유리한 조건을 갖춘 천혜의 자연요새이다. 그 까닭에 적상산성(사적 146)이 축성되었는데, 고려 말 최영 장군이 축조를 건의하였다고 전해진다. 산중에는 안국사(安國寺)와 조선시대에 승병을 양성하던 호국사(護國寺) 등의 사찰이 있고, 장도바위·장군바위·처마바위·천일폭포·송대폭포·안렴대 등의 자연명소가 있으며, 장도바위는 최영 장군이 적상산을 오르다가 길이 막히자 장도(長刀)로 내리쳐 길을 내고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다. 정상분지의 해발 800m 지대에는 산정호수(적상호)가 있는데, 양수발전소에 필요한 물을 담아두기 위해 만든 인공호수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
※ 적상산 산림청 100명산 선정 사유 : 가을에 마치 온 산이 빨간 치마를 입은 여인네의 모습과 같다 하여 이름이 붙여질 정도로 경관이 뛰어나며 덕유산 국립공원구역인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하였으며 고려 공민왕 23년(1374) 최영 장군이 탐라를 토벌한 후 귀경길에 이 곳을 지나다가 산의 형세가 요새로서 적지임을 알고 왕에게 건의하여 축성된 적상산성(사적 제146호)과 안국사 등이 유명하다.
※ 적상산 산행 등산 지도
※ 산행 후기
적상산은 2003년 10월 첫 산행을 시작한 후 2004년 5월 30일에 산행을 했었다. 이후 2016년 11월 12일과 2020년 10월에 산행을 했었는데 세 번 모두 안국사를 통해 산행을 했었기에 언젠가 기회가 되면 서창 등산로 입구에서부터 산행을 해 보아야겠다. 그리고 당시에 산행기를 적지 않았기에 그 때의 느낌을 다 알지 못하겠기에 산행기는 그때그때 꼭 적어야함을 새삼 깨달았다. 2004년엔 산행은 이제 오래되어 아무런 기억이 없고, 2016년엔 친구들과 함께 짧은 산행을 한 후 와인 동굴과 무주양수발전소 견학과 산 아래 가든 식당에서 뒤풀이를 했었고 2020년엔 10월엔 현철이 친구와 버섯을 따러 갔다가 한 군데에서는 아무것도 체취를 못해 금지구간에서 현철이는 버섯을 체취하고 나는 혼자 향로봉에 다녀왔다. 이번 사진은 2016년도 사진을 중점으로 사용하고 2020년 사진도 이용하여 산행기를 적었다.
※ 산행 사진
▲ 안국사 주차장에 도착해 산행을 시작한다.
▲ 안렴대로 향한다.
▲ 계단을 다 오르면 안렴대와 향로봉으로 가는 삼거리 지점에 도착 한다.
▲ 계단을 오르면 삼거리 이정표에서 잠시 오르면 조망이 좋다.
▲ 안렴대에 도착하여 바라 본 모습이 적상산 최고의 조망터다.
▲ 안렴대 안내판에 있는 내용을 옮겨 보면 적상산의 정상 남쪽 층암절벽 위에 위치한 안렴대는 사방이 천길 낭떠러지로 내려다 보여 이 곳을 오르는 사람들의 마을을 아슬아슬하게 한다. 고려 때 거란의 침입이 있었을 때 삼도 안렴사가 군사들을 이끌고 이 곳으로 들어와 진을 치고 난을 피한 곳이라 하여 안렴대라 불린다.
적상산 안국사로 실록을 이안하고 얼마 뒤 청군이 무주 깊숙한 곳까지 출몰하자 실록을 지키던 관리가 도망갔다. 스님은 안국사 뒤 안렴대에 실록을 숨기고 지켰다. 1643년 7월 대제학 이식과 검열 심세정(沈世鼎)이 이렇게 고했다. “적상산성에 청병(淸兵)이 들자 2~3명의 승(僧)만이 있었고 그나마 흩어져 도망하려 할 때 한 노승이 사고를 버리지 못하여 실록을 석굴 (안렴대)속에 깊이 감추어 무사히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그 노승은 승병장 상훈스님이다.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 안렴대를 다녀 온 후 다시 이정표 삼거리로 돌아 와서 향로봉으로 향하는데 향로봉으로 향하는 길은 마치 둘레 길을 걷는 기분이 들 정도로 등산로는 편하고 정비가 잘 되어 있다. 옆에는 출입금지 안내판이 있다. 적상산 기봉(1,034m)은 홍수예보시설과 각종 통신시설이 있어 탐방객 출입을 금한다며, 지도를 첨부한 안내문이 있다. 정상 역활은 향로봉(1,024m)이 하고 있다.
▲ 적상산 정상은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서 지나쳐 왔다. 향로봉으로 향하는 도중 만나는 적상산성 표시석.
적상산성(赤裳山城) : 사적 제146호로 지정면적 214,975㎡, 둘레 8,134m. 현재 북문지·서문지 및 사고지(史庫址)가 남아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이 산성은 석축으로 둘레 1만6920척, 높이 7척이었으나 이제는 폐성되었다고 한다. 당시 성내에는 비옥한 토지가 있었고 못이 4개소, 우물이 23개소 있었다.1612년(광해군 4)에 실록전(實錄殿)이, 1614년에 사각(史閣)이, 1641년(인조 19)에 선원각(璿源閣)·군기고(軍器庫)·대별관(大別館)이 1643년 호국사(護國寺) 등이 세워졌는데, 이들은 별장·참봉·승장 들이 거느리는 무리에 의하여 수호, 보존되었다. 성벽은 무너져서 숲 사이에서 겨우 그 모습을 찾을 수 있고, 사각과 기타의 건물들도 그 터만이 남아 있다. 불과 90여년 전만 하더라도 사각 등의 수리를 위하여 고종이 수리비를 지급하였다는 사실이 기록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건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나, 지금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이 성이 있는 상산(裳山)은 상성산(裳城山)이라고도 하는데 호남에서 영남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에서 신라로 가는 요로이기도 하였으며, 산 가운데에는 넓은 분지가 있다. 고려 말에 거란병이 침입하였을 때 인근 수십여 곳의 군현이 도륙되었는데도 여기에 사는 주민들만은 그 참화를 면하였다고 한다. 최영(崔塋)은 이 곳에 산성을 축조하고 창고 짓기를 건의하였으며, 조선 세종 때의 체찰사 최윤덕(崔潤德)도 이곳을 살펴본 뒤 반드시 축성하여 보존할 곳이라고 건의한 바 있다. 이러한 사실에서 이 산성은 고려 말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출처: 다음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향로봉 가는 길의 기괴한 모양의 나무를 지나면 아래의 서창 갈림길 이정표를 만난다
▲ 향로봉은 산의 모습이 향로를 닮았다는 데서 ‘향로봉’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북한산, 내연산,수락산등 향로봉은 제법 많다.
▲ 향로봉에서 친구들과
▲ 향로봉에서 바라 본 사천리 방향
▲ 안국사(安國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1277년(충렬왕 3)에 월인(月印)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조선 태조 때 무학대사(無學大師)가 복지(卜地)인 적성산에 성을 쌓고 절을 지었다는 설이 있다. 그 뒤 1613년(광해군 5) 3월에 증축하였고, 1864년(고종 1)에 이면광(李冕光)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에는 승병의 병사(兵舍)로 사용되었으며 주변에는 조선실록을 봉안하였던 사고(史庫)의 옛터가 남아 있다. 지금 절이 자리한 곳은 옛날 호국사(護國寺)가 있던 곳이다. 1989년 적상산에 무주 양수발전소 건립이 결정되자 안국사가 자리한 지역이 수몰지구로 편입되었으므로 호국사지로 옮겼기 때문이다. 1991년에는 일주문·선원·호국당 등을 이전 복원하였고, 이듬해 극락전·천불전·요사·청하루 등도 이전 복원하였다. 1994년에는 범종각을 지었고, 1996년에는 범종을 조성하였다. 출처: 다음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상부저수지(적상호)를 구경하고 적상산 전망대로 향한다. 아래 사진 적상산 전망대는 전망대라 보기에 뭔가 이상한 탱크수조 같이 보이는데 바로 양수발전시설인 조압수조다. 상부저수지(적상호)와 하부저수지(무주호)로 심야 시간 등 남아도는 전력을 이용하여 하부저수지에서 상부저수지로 물을 끌어 올린 후 전력이 부족한 비상시기에 전기를 생산,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 적상산 전망대에서 바라 본 하부저수지(무주호)
▲ 적상산 전망대에서 바라 본 적상산 기봉
▲ 적상산 무주머루와인동굴은 무주 수양발전소 건설 (88.04~95.05/7년)시 굴착작업용 터널로 사용하던 곳으로 머루재배 농가에게 희망과 자부심을 주고자 무주군에서 2007년 임대, 리모델링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매표소를 지나면 와인동굴이다.
▲ 친구가 근무하는 양수발전소 방문
▲ 양수발전소 방문 후 무주 산아래 가든에서 늦은 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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