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흘산 (主屹山, 1106m) : 주봉, 영봉, 문경새재, 영남 제1관문
영남 1관문→여궁폭포→주봉→영봉조곡관(2관문)→영남1관문(주흘관)
◇ 산행지 : 경북 문경시 문경읍 일원
◇ 산행일자 : 2020. 10. 31 (토) 날씨 : 맑음
◇ 산악회및 친구 : 자차 이용, 산행 친구: 우경
◇ 산행거리 : 약 15 Km
◇ 산행시간 : 산행시간 5시간 23분 휴식시간 제외 < 점심 10분 포함 >
◇ 시간 대별 요약
- 09:25 문경새재 주차장 도착
- 09:30 산행시작
- 09:40 영남1관문(주흘관)
- 09:43 2코스 산행시작점
- 10:06 여궁폭포
- 10:32 혜국사(휴식 12분)
- 11:41 대궐샘(휴식 16분)
- 12:24 주흘산 주봉(휴식34분)
- 12:58 점심 식사 (10분)
- 13:08 주봉 출발
- 13:32 영봉
- 14:09 주흘산 주봉 영봉 갈림길(휴식40분)
- 14:49 출발
- 14:56 꽃밭셔틀
- 15:25 영남2관문(조곡관) 40분 휴식
- 16:05 출발
- 17:01 영남1관문(주흘관)
- 17:14 산행 마침
※ 특기사항
① 2005년 4월 5일 이후 두 번째 산행(첫 산행시는 날자외 내용 없음)
② 산림청 선정 100명산 정상 사진 인증 위해 산행
③ 자가용 이용
④ 동행자 산행 미숙으로 인해 총 7시간 50분 소요 산행
⑤ 도립공원(주흘관은 백두대간 산행 때 포함 4회 방문)
※ 산행 전 사전 조사
<문경새재>: 〈진도아리랑〉사설의 첫 대목으로 등장할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과도 관련이 깊은 곳이다. 새재는 경상북도 문경읍과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의 경계에 위치한 고개로 조선시대 영남과 한양을 잇는 제1대로였던 영남대로에 위치하고 있다.‘새재’라는 이름의 유래는 고갯길이 워낙 높아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데서 유래했다고도 하고, 고갯길 주변에 새(억새)가 많아 ‘억새풀이 우거진 고개’라는 뜻이라고도 한다. 또한 하늘재(麻骨嶺)와 이우리재(伊火峴) 사이의 고갯길을 의미하는 ‘새(사이)재’에서 연유했다는 주장이 있고, 하늘재를 버리고 새로 만든 고개라는 뜻에서 온 이름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새재의 어원에는 많은 유래가 있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지리학자들이 말하는 ‘새로 낸 고갯길’이다. 문경새재는 영남과 기호 지방을 연결하는 대표적인 옛길이었다. 선비들이 장원급제를 꿈꾸며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넘나들던 길로, 문경(聞慶)이라는 이름과 옛 지명인 문희(聞喜)에서 드러나듯 ‘경사로운 소식,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는 의미도 과거길과 관련이 있다. 영남은 물론 호남의 선비들까지 굳이 먼 길을 돌아 이 길을 택하기도 했다. 《택리지》에도 “조선 선비의 반이 영남에서 배출되었다”라는 구절이 있음을 볼 때 참으로 수많은 선비와 길손들이 이곳을 왕래하였음을 헤아릴 수 있다. 문경새재는 태종 13년(1413)에 개통되었다. 새재가 열리기 전까지는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계립령의 하늘재가 주요 교통로였다. 백두대간의 조령산 마루를 넘는 새재는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 중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사회, 문화, 경제의 유통과 국방상의 요충지였다. 새재는 세 개의 관문을 따라 옛날 선비들이 다니던 길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약 10km에 이르는 구간이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새재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초점(草岾),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조령(鳥嶺)으로 기록된 길로 조선시대 충청도의 한강 유역과 경상도의 낙동강 유역을 가르는 주된 도로였다. 새재는 임진왜란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당시 영남내륙을 지나 올라오는 왜군과 맞선 신립 장군은 새재를 버리고 충주 달천에서 배수진을 쳤지만 크게 패하고 탄금대에서 투신했다. 전후 조정에서는 새재를 막지 못한 것을 크게 후회하고 이곳에 전쟁 대비 시설이 없음을 한탄했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서애 유성룡은 관문의 설치를 주장하였다. 그 후 선조 30년(1597) 신충원이 파수관으로 임명되자 일자형의 성을 쌓고 가운데 문을 세워 고개 아래를 내려다보는 조령산성이 축조되었다. 새재길은 자연 경관이 빼어나고 유서 깊은 유적이 많이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고갯길에 얽힌 설화와 민요가 매우 다양하다. 이곳에는 임진왜란 이후 설치된 세 개의 관문이 사적 제147호로 지정되어 있다. 첫째 관문은 주흘관(主屹關)이다. 숙종 34년(1708)에 설치되었으며 세 개의 관문 중 옛 모습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 두 번째 관문은 조곡관(鳥谷關)으로 선조 27년(1594)에 신충원이 축성하였으며 중성(中城)이라고도 한다. 마지막 관문은 조령관(鳥嶺關)으로 새재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출처: 다음백과 우리명승기행 글 김학범
※ 주흘산 산림청 100명산 선정 사유 : 소백산맥의 중심을 이루고 문경새재 등 역사적 전설이 있으며, 여궁폭포와 파랑폭포 등 경관이 아름답고, 월악산 국립공원구역인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하였으며 야생화, 오색단풍, 산죽밭이 유명하며, 조선조 문경현의 진산으로 문경 1, 2, 3관문이 있다.
※ 주흘산 산행 등산 지도
※ 산행 후기
산행을 처음 시작하고 그 당시 목표는 국립공원과 도립공원을 모두 다녀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국립공원과 도립공원은 산행 시작 후 초창기에 주로 많이 갔었고, 당시엔 단순한 날짜만 기록 했을 뿐 산행시간이나 사진은 남겨 두지 못했다. 그래서 정상 인증을 위해 주흘산을 다녀오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산악회에서 자주 나오지 않아서 기다려 볼까 하다가 대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느낌이라서 승용차를 이용하여 다녀오기로 하고 같이 동행할 사람을 찾다 보니 마땅치 않아 우경 친구에게 산행 갈 거냐고 물으니 동행해 주겠단다. 그 친구의 산행 실력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그동안 산행은 좀 했느냐고 물으니 전에 보다는 실력이 늘었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그냥 믿어 보기로 하고 점심은 김밥으로 해결하자고 제안한 후 산행지인 문경으로 향했다. 문경새재 입구 주차장에 도착하니 주말이라 그런지 차량이 많다. 산행을 위해 온 분들도 있지만 주로 제1관문에서 3관문 까지 도보로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느낌이었다. 문경새재는 그동안 백두대간을 하며 대여섯 번은 왔었던 곳이라 눈에 익숙했는데 여궁폭포로 가는 길은 너무 오랜만에 온 탓인지 낯설었다. 여궁폭포까지는 거의 평길 이다시피 했는데도 우경 친구는 조금씩 처지기 시작했는데 해국사에서 부터는 혼자 절 구경을 하고 한 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그때라도 산행은 혼자서 했어야 하는데 결국 큰 낭패를 보았는데 산행은 어느 정도 속도가 맞는 사람이랑 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중간중간 많이 기다려야 했고 주봉까지 기다린 시간만 무려 1시간이었다. 주봉에서 간단히 김밥으로 점심 식사를 한 후 특단의 조치로 나는 영봉을 다녀 온 후 하산을 할 것이니 영봉 갈림길에서 꽃밭셔틀로 그냥 내려가라고 했는데 1시간 20분을 기다린 것을 생각하면 결론적으로 나는 부봉까지 간 후 2관문인 조곡문으로 하산했어야 했다. 암튼 영봉으로 가는 길은 혼자만의 산행이어선지 기다림 없는 진행으로 빠르게 영봉에 도착해 인증을 하고 부봉으로 갈까 고민하다가 우경 친구를 만나기로 한 곳으로 향했는데 그곳이 전화가 터지지 않는 곳이라 40여 분간 휴식을 취하며 족욕을 했는데 여러 사람들에게 혼자 내려오는 사람 없느냐고 물어봐도 보지 못했다고 해서 한참을 당황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만났는데 다리에 쥐가 났다나 어쨋다나 아휴 정말 돌아버릴 뻔 했다. 먼저 내려가서 기다린다 하고 조곡관으로 갔는데도 오지 않아 다시 40분을 기다리고 이제 구경하며 천천히 간다고 말 한 후에는 이곳저곳 다 들려 보고 제1관으로 가며 산행을 마쳤다. 그 이후로 그 친구와의 산행은 지금 이글을 적는 순간 1년이 넘은 시간도록 산행을 하지 않았으니 그 때의 심정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
※ 산행 사진
▲ 문경새재 주차장 주차요금은 일반 2,000원, 경차 1,000원이다.
▲ 문경새재 주차장에서 영남1관문 가는 길의 노란 은행잎이 만추의 가을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 선비들이 장원급제를 꿈꾸며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넘나들던 길이라고 선비 상도 세워져 있다.
▲ 주차를 하고 조금 걸으면 도립공원 입구에는 문경새재 도립공원 (아리랑 비림공원) 이 먼저 맞이하고 문경새재아리랑비 외에 새재비등 다른 기념비들이 세워져 있다.
▲ 문경새재 안내판
▲ 조선시대 선비들이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길 선비가 된 설레는 마음으로 지난다.
▲ 제 1관문을 지나면..
▲ 제1관문 통과하고 바로 우측으로 진입하면, 이정표가 나온다. 여궁폭포까지 0.8km 주흘산 정상(주봉)까지 4.5km 이정표가 안내하는 길로 들어선다. 본격적인 등산의 시작이다.
▲ 여궁폭포 :높이 10여m의 폭포는 수정 같이 맑고 웅장하며 7선녀가 구름을 타고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곳으로 형상이 마치 여인 하반신 같다고 하여 여궁폭포(여심폭포)로 불려진다고 하며 옛 이름은 파랑소로 불리웠다고 한다.
▲ 이정표는 대체적으로 잘 되어 있다. 이후 계곡을 끼고 등산로가 이어져,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올라갈 수 있다. 등산로가 거칠어지며, 거친 만큼 숨소리도 가빠진다. 오르는 내내 조망은 없으나, 계곡에서 들리는 계곡물 소리를 위안삼아 걷는다.
▲ 혜국사(惠國師) : 이 절은 신라 46대 문성왕(846년)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창건하고 원래 법흥사라 칭했으나 고려 공민왕이 거란족 침입을 당하여 이곳에 머무르게 된 이후 국은을 입었다하여 혜국사라고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동행 친구가 오지 않아 혼자서 절 구경을 하고 한참을 기다린후 산행을 다시 시작한다.
▲ 혜국사 유래(惠國寺) : 혜국사(惠國寺)는 통일신라(統一新羅) 문성왕8년(846) 보조국사(普照國師) 체중선사가 주흘산(主屹山) 기슭에 법흥사(法興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사찰이다. 고려말 공민왕(恭愍王)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으로 파천(播遷) 한 것을 계기로 나라가 은혜을 입은 절이라는 의미에서 혜국사로 불리게 되었다. 사적기가 없어 자세한 내력은 알 수 없지만 1873년 송장선사와 자장선사가 중창을 하고 근래에 여러 불사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금강문(金剛門) 대웅전(大雄殿) 만덕전(萬德殿) 산왕전(山王殿) 등 건물이 있으며 암자로 안적암(安寂庵)과 은선암(隱仙庵) 용화사가 있었다. 현재로는 안적암만이 보존 되고 있다.1979년에는 산중탱화에서 사리(舍利)가 나와서 봉안하고 있으며 자영당대사성연출세랍(恣影堂大師性演出世塔) 해월당여상지탑 (해月堂呂尙之塔) 해월당탑(海月堂塔) 연곡당사신지출세탑(淵谷堂思愼之出世塔)등 석종형 부도가 있다. 1999년 9월 9일 선도회장 황 경 연 근수 글씨
▲ 혜국사 구경을 하고 주봉을 향해 오르다 보면 굵직굵직 쭉쭉 뻗은 금강송을 만나게 된다. 금강송은 소나무의 ‘제왕’이라고 불리운다. 임금과 사대부의 관재로 쓰이며 속이 황금빛을 띠어 황장목이라고도 불렸다고 하며 궁궐과 고찰의 대들보로 사용 되었다 한다.
▲ 대궐터 약수(대궐샘)의 물은 시원하고 물맛도 좋은 편이었다. 산에서 마실 수 있는 물과 마시면 안 되는 물을 판단하려면 샘 위에 절이 있느냐 없느냐를 보라고 한다. 샘터 위에 절이 있다면 그 만큼 오수일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음용수로는 부적합하다는 설명이다.
▲ 완만한 등산이 계속 되다가 정상에 다다를 때 쯤 주흘산의 하이라이트 900 계단이 등장한다.
▲ 영봉을 가려면 주봉에 올랐다 이곳으로 다시 내려와서 우측으로 진행하면 된다.
▲ 주흘산 : 조령산, 포암산, 월악산 등과 더불어 소백산맥의 중심을 이루며 높이 1108.4m로 산세가 아름답고 문경새재 등의 역사적 전설이 담겨 있다. 또한 예로부터 나라의 기둥이 되는 큰 산(中嶽)으로 우러러 매년 조정에서 향과 축문을 내려 제사를 올리던 신령스런 영산(靈山)으로 받들어 왔다. 문경의 진산(鎭山)이기도 한 주흘산은 ‘우두머리 의연한 산’이란 한자 뜻 그대로 문경새재의 주산이다. 표지석 앞면엔 주흘산 1076m 뒷면에는 문경진산(聞慶鎭山) 1988,3 문경군청등산회라 적혀 있다. 출처: 다음백과 대한민국 구석구석
문화 해설사의 말을 들어 보면 문경사람들은 주흘산 정상을 예부터 주봉(1,075m)으로 여겼다. 그 이유는 ‘주위 경관과 전망이 뛰어나고 문경을 대표할 수 있는 봉우리로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주흘산 영봉(1,106m)은 표지석만 없다면 그냥 지나치고 말 것 같은 봉우리이다. 그 이유는 조망이 없기 때문이다. 주봉은 산봉우리 중 그 산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봉우리고, 최고봉은 산줄기 중 최고 높은 봉우리라는 의미다. 지형도에 의한 정확한 높이를 표기하면서부터 최고봉을 주봉으로 표시하는 경향이 생기는 바람에 영봉이 주봉보다 정상인 듯 느껴진다. 경남 합천 가야산의 주봉은 상왕봉이고 최고봉이 칠불봉이듯이, 주흘산의 정상은 주봉이고, 최고봉은 영봉이다’ 라는 상세한 설명으로 왜 주흘산의 최고봉인 영봉(1,106m)을 제치고 주봉이 됐는지를 알 것 같다.
▲ 주흘산 주봉에서 바라 본 문경읍 방면
▲ 주흘산 주봉에서 바라 본 관봉(1039,1m) 방면.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새재에서 관봉으로 올라 영봉을 거쳐 부봉으로 가 보고 싶다.
▲ 주흘산 주봉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내려와 친구는 2관문으로 오라 하고 혼자서 영봉으로 향한다.
▲ 주흘산 주봉에서 영봉 가며 바라 본 포함산, 대미산 방향
▲ 주흘산 영봉에서 바라 본 운달산 방향
▲ 주흘산 영봉 정상 인증
▲ 주흘산 영봉(1,106m)에서 하산한 등산로는 가파른 내리막이 계속되고 너덜 길 구간이기에 무릎에 부담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내림 길에 강한 나는 큰 어려움 없이 이곳 삼거리까지 진행 했다. 이곳에서 족욕을 즐기며 친구를 또 40여분 기다렸다.
▲ 꽃밭서덜에서 바라 본 부봉
▲ 꽃밭서덜 : 주흘산 해발 615m에 위치하는 것으로 ‘서덜’은 ‘너덜’의 지방 사투리입니다.꽃밭서덜은 진달래와 같은 야생화가 많이 피는 곳이란 뜻을 담아 꽃밭이 합쳐진 이름이라고 한다. 서덜이 생기는 까닭은 커다란 바위에 빗물이 스며들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므로 균열이 생겨 갈라지면서 쪼개져서 생긴 것이라고 한다. 태백산은 국가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고, 함백산은 민초와 오늘날 광부의 아내가 탄광에 들어간 남편의 무사 기원을 바라는 제단이 설치되어있다. 이곳 새재에도 조곡관 아래에는 장원급제를 기원하는 소원성취 탑이 있어 민초들이 소원성취를 기원하거나 아들 낳지 못하는 여인이 돌탑을 쌓아 기원하였다고 한다.
▲ 꽃밭서덜 이후 산길은 순탄한 길이다.
▲ 문경새재 2관문 조곡관 : 제 1관문인 주흘문에서 약 3km떨어져 있는 영남 제 2관문 조곡관은 문경새재 두번째 관문으로 조선 선조 25년(1592) 왜란이 일어난 후 충주사람 신충원이 이 곳에 성을 쌓은 것이 시초라고 한다. 문경새재는 임란 중이던1594년에 신충원에 의해 축조돼 3년 뒤인 1597년에 2관문인 조곡관이 축성됐고, 이후1709년(숙종34)에 1관문인 주흘관과 3관문인 조령관이 축성됐다고 한다.
▲ 문경새재 응암폭포
▲ 물레방아
▲ 꾸구리바위: 꾸구리는 잡식성 민물고기인데 다른 물고기를 잡아먹기도 한다. 이 꾸구리는 실제 문경새재 개울에서도 잡을 수도 있다고 한다.
▲ 무주암: 누구든지 올라 쉬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바위로 옛날에는 이 바위 아래에 무인 주점이 있어 술과 간단한 안주를 준비해 두었고, 길손들이 이 바위 위에 올라 주변의 경치를 즐기면서 목을 축인 후 마신만큼의 주대를 함에 넣고 가도록 했다고 한다. 새재골의 넉넉한 인심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바위 위에 앉으면 맞은편 조령산의 아름다운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 지름틀 바우는 바위 모양이 기름을 짜는 기름틀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며, 기름의 경상도식 사투리가 지름이라고 한다.
▲ 영남제1관(주흘관):남쪽의 적을 막기 위하여 숙종34년(1708)에 설관 하였으며 영남제1관 또는 주흘관 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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