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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 100명산 산행기

56. 속리산 (俗離山) : 충북 보은군, 괴산군, 경북 상주시

□ 속리산 (俗離山, 1058m) : 묘봉, 상학봉, 관음봉, 문장대, 비로봉, 천왕봉

갈령→갈령삼거리→형제봉→피앗재→천황봉→신선대→문장대→밤재→늘재

◇ 산행지 : 충북 괴산군 ,보은군 내속리면. 경북 상주시 화북면,문경시

◇ 산행일자 : 2008년 3월 15일 (토) 날씨 : 맑음

◇ 산악회및 산행 친구 : 자차이용, (기대)

◇ 산행시간 : 8시간 26분 산행 (식사 시간 20분 포함)

◇ 산행거리 : 20.6Km (포항 셀파산악회 실측거리 기준, 접속 거리 갈령 약 1.2 km 포함)

◇ 시간대별 요약

- 09:07 갈령 도착

- 09:14 갈령 산행 시작

- 09:40 갈령 삼거리

- 10:30 피앗재

- 12:35 천황봉

- 14:08 문장대 산장(점심 20분)

- 14:30 문장대

- 16:25 밤티재

- 17:38 늘재 산행 마침

 

※ 특기사항

① 백두대간 2차 첫 산행으로 잡음(기대 보충 산행)

② 산림청 선정 100명산

③ 문장대 산장 있었음(현재는 폐쇄 되어 없음)

④ 본인 차량 이용 갈령 도착

⑤ 당시엔 형제봉 표석 없었으며 문장대~관음봉~묘봉 구간도 금지 구간 이었음

 

※ 산행 전 사전 조사

< 속리산(俗離山) 유래> : 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과 괴산군,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는 1,058m이다. 784년(신라 선덕여왕 5)에 진표(眞表)가 이곳에 이르자, 밭 갈던 소들이 모두 무릎을 꿇었다. 이를 본 농부들이 짐승도 저러한데 하물며 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느냐며 속세를 버리고 진표를 따라 입산수도 하였는데, 여기에서 '속리'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전에는 9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어 구봉산(九峰山)이라 하였고, 광명산(光明山)·미지산(彌智山)·형제산(兄弟山)·소금강산(小金剛山) 등 여러 별칭을 가지고 있다.최고봉인 천황봉(天皇峯)을 중심으로 비로봉(毘盧峰)·길상봉(吉祥峯)·문수봉(文殊峯)·보현봉(普賢峯)·관음봉(觀音峯)·묘봉(妙峯)·수정봉(水晶峯) 등 8개의 봉(峯)과 문장대(文藏臺)·입석대(立石臺)·경업대(慶業臺)·배석대(拜石臺)·학소대(鶴巢臺)·신선대(神仙臺)·봉황대(鳳凰臺)·산호대(珊瑚臺) 등 8개의 대(臺)가 있다. 한국 팔경(八景) 가운데 하나에 속하는 명산으로, 화강암의 기봉(奇峰)과 울창한 산림으로 뒤덮여 있고, 산중에는 1000년 고찰의 법주사(法住寺)가 있다. 또한 속리산의 명칭은 최치원의 한시(韓詩)에서 유래됐다는 설(說)이 있다. 도불원인 인원도(道不遠人 人遠道) /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사람은 도를 멀리하려 하고, 산비리속 속리산(山非離俗 俗離山) / 산은 속세를 여의치 않는데 속세는 산을 여의려 하는구나. (출처: 한국의산)

 

※ 속리산 산림청 100명산 선정 사유 : 예로부터 산세가 수려하여 제2금강 또는 소금강이라고도 불리울 정도로 경관이 아름답고 망개나무, 미선나무 등 1,000여 종이 넘는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국립공원으로 지정(1970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하였으며 법주사(法住寺), 문장대, 천연기념물 제103호인 정이품송(正二品松) 및 천연기념물 제207호인 망개나무가 유명하다.  

 속리산 등산지도

 

 

 

※ 산행 후기

제일 큰 매형 장례를 치르느라 몸이 고달파 금요일엔 하루 종일 누워 있다가 저녁에 교차로를 산행광고를 확인 해 보니 마땅히 갈 만 한 산이 눈에 띠지 않는다. 봄이 오는 길목이라 사량도 산행도 있고 광양 매화마을을 중심으로 한 산행도 눈에 띠는데 시간 투자에 비해 운동은 안 될 것 같아 고민 하다가 친구에게 빚진 마음이 늘 남아 있어 친구의 백두대간 땜빵 산행을 같이 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백두대간 길인 지리산 종주(성삼재~중산리)시 무박산행으로 꼭 한 번 해 보고 싶어 친구에게 동행 해 줄 것을 부탁 했었는데 경험이 있으면서도 흔쾌히 동행 해 주어서 마음에 항상 빚으로 남아 있었는데 그 빚 청산을 위해 친구가 보충해야 할 구간을 물어 보니 다섯 곳으로 많기도 속리산 구간이 가장 좋아 보였다. 이유는 백두대간 1차 산행 시 하루 종일 비로 인해 제대로 조망도 못 한 구간이라 다시 한 번 가 보고 싶어 속리산 구간을 선택 했는데 문제는 경방기간과 출입금지 구간이 겹쳐 있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산행 당일 날 친구를 만나 산행할 때면 아침에 가는 중리동에서 설렁탕으로 아침 식사를 한 후 대전 IC고속도로에 진입 해 청원~상주(지금은 당진~영덕)간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화서IC를 빠져나와 산행 초입인 갈령에 도착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한 여름 대간 길에서 나는 보충 산행이었기에짧은 산행으로 괜찮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물을 보충 할 수 없는 곳에서 장시간 산행으로 모두 다 힘들어 했던 갈령이었고 이번 산행 구간인 속리산 구간에서 하루 종일 장대비와 초가을 날씨로 비로 인해 너무 추웠던 산행의 기억이 새로웠다. 산행 초입엔 산불방지를 위한 현수막에 출입금지를 표시하며 위반 시 최고 100만원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지만 이미 마음먹고 온 길 진행하니 다행히 감시 초소엔 사람이 없었지만 만일 공단 직원에게 적발 시 36계 줄행랑을 할 마음으로 입산을 시작 했는데 산행을 시작하여 백두대간 길의 실질적인 시작인 갈령 삼거리에 도착하는데 까지 제법 많은 땀방울이 얼굴에 맺혔다. 형제봉 입구에서 형제봉으로 알았던 바위를 지나고 나서 되돌아보니 멀리 형제봉의 위용이 보여 형제봉을 그냥 지나쳐 온 아쉬움을 느꼈다. 백두대간 길에 지친 산꾼들을 위한 휴식처를 제공하는 피앗재산장에서 걸어 놓은 안내판이 있는 피앗재를 통과 한 후 천왕봉으로 향했는데 천왕봉 근처에 와서는 공단 직원이 나와 있을까 봐 가슴 조리다 망원경으로 확인을 한 후 공단 직원이 없다는 확신이 서서 천왕봉 정상에 오니 MT 온 대학생들이 먹고 남은 사과를 산속으로 던지는 모습을 보고 한목소리 했다. "앞으론 과일 껍질이라도 다시는 버리지 말라"고 했는데 나 자신도 금지구간을 지나오며 위법을 했는데 엄격히 말해 산림을 훼손하며 온 것은 아니기에 한마디 한 것인데 다행히도 "죄송하다"란 말로 화답한다. 천왕봉에서 바라보는 속리산의 조망은 멋졌다. 가까이에 이렇게 멋진 산이 있음을 알면서도 늘 가까이에 있음으로 인해 소중함을 모르는 우리들 삶처럼 깨우침을 만들어 준다. 신선대에서에서 화장실 뒤로 잠시 빗겨 나와 바라보는 속리산의 조망은 너무 좋았다. 안 가 본 이들은 모르는 비경에 잠시 한 눈을 팔고 문장대 휴게소에서 먹는 점심(시래기 국밥)은 꿀맛이다. 물도 풍부하게 제공하니 배낭도 가볍게 하고 따뜻한 국밥도 먹고 일석이조인데 아쉽게도 현재는 폐쇄되어 없다. 문장대 정상에서 조망을 한 후 출입금지 구간(현재는 금지 구간이 아님)이며 충북 알프스의 마지막 구간이랄 수 있는 문장대~관음봉~상학봉~묘봉으로 가는 길도 확인 해 두고 공단 직원이 없음을 확인하고 다시 금지구간인 문장대~밤티재 구간으로 향하는데 금지구간이라 안전시설도 없고 위험천만이다. 그래도 대간꾼들이 매달아 놓은 밧줄에 의지하며 밤티재로 향했다. 이곳에서 보는 관음봉의 모습은 속리산의 뒷모습으로 색 달았다. 밤티재에 도착 하산 한 후 다시 늘재로 향해야 하는데 감시초소 앞에 차량이 있는 것을 확인 한 후 동물들을 위한 생태통로를 이용하려다 감시초소에서 눈에 뛸 것을 염려되어 우회하여 비탈길로 치고 올라가니 너무 힘든데다 관절상태도 안 좋은데 친구에게 불편함을 호소하면 혹여 다르게 생각할까 싶어 끝까지 동행 해 주기로 스스로에게 채찍을 가하며 늘재로 향했다. 늘재에 도착하여 차량 회수를 위해 히치하이킹을 시도하는데 다른 때는 잘 세워줬는데 차가 안 잡혀 일단 아스팔트길을 잠시 걸어 보자 했는데 이게 어인 횡재(?) 상주로 가는 버스가 늘티마을 앞에 있지 않은가? 승객이라곤 친구와 나 그리고 시골 아주머니 한 분이다. 시골 내음이 물씬 풍기는 버스로 약 10분간 오니 어이쿠 우리가 8시간 30분 이상 걸린 시간이 버스로 10분이라니! 대전 상주 간 고속도로 덕에 대전까지는 약 1시간 20분이었다. 다음엔 갈령에서 청계산을 지나 대궐터산에 한 번 가 봐야겠다.

 

※ 산행 사진

▲ 산행 전 차안에서 본 일출

▲ <갈령(葛嶺, 443m)> :경북 상주시 화북면 상오리와 화남면 동관리를 잇는 977번 지방도로 위에 있는 고개다. 6.25 한국전쟁 때 이곳에서 하송리까지 이어지는 계곡에서 화령장전투가 벌어져 국군 제17연대가 처음으로 인민군을 이긴 곳이다.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산줄기에 있는 고개다. ‘갈’에는 다음과 같은 경우를 생각해 볼 수가 있다. ① ‘칼’의 고어(古語)로서의 ‘갈’이다. 이 경우는 일반어사(一般語辭)에서는 ‘갈→칼’의 음운변천(音韻變遷)을 겪은 것으로 칼처럼 뾰족하게 생긴 산인 ‘갈미’가 있다. ② ‘갈대’의 고어(古語)로서의 ‘갈’이다. 현대어에서는 ‘대’가 첨가되어 사용되고 있다. ③ ‘가지(枝)’의 고어(古語)로서의 ‘갖’이다. ④ ‘갈래(分, 岐)’의 고어(古語)로서의 ‘가:1’이다. 후기 중세어에서는 ‘가:2, 가:3, 가리’ 등으로 나타나고, 고대 국어 ‘가라(加羅), 가락(嘉洛), 가야(伽倻)’에서도 보인다. 길이 갈라지거나 분수령이라 물이 갈라지는 경우에 지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자표기는 음차(音借)하여 ‘嘉樂, 葛’ 등이 많이 사용되고, 훈차(訓借)인 ‘岐’와 비슷한 글자인 ‘枝’가 사용되고 있다. 특히, ‘葛’이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훈(訓)인 ‘칡’과는 관련 없이 ‘갈라지다’라는 동사(動詞)의 첫 음절 ‘갈-’의 음차표기(音借表記)에 불과하다. 여기서는 ④의 의미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현대 국어에서 ‘재’는 ‘고개, 티’와 비슷하게 쓰이지만, 후기 중세어까지만 해도 ‘재’는 ‘성(城)’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성(城)’은 적을 감시하고 적의 침입을 막는 목적으로 만든 것이므로 지대가 높으면서도 요충지인 길목에 있기 마련이다. 그러던 것이 성의 효용가치가 줄어들면서 속뜻이 축소되고, 지금은 높고 험한 고개를 가리키는 것으로 되었다. 따라서 ‘재’는 ‘고개’보다 높고 험하며 의미도 ‘고개’가 주로 ‘현(峴)’과 대응하는 데 비해, ‘재’는 ‘성(城), 현(峴), 령(嶺), 산(山)’ 등과 폭 넓게 대응하고 있다. 물이 갈라지는 분수령(分水嶺)이나 산줄기가 갈라지는 곳에 붙는 이름이다. 한자 ‘갈(葛)’을 취하여 ‘칡’과 관련시키지만 ‘칡’과는 무관하다.》 출처:상주시 화북면사무소

▲ 산행 시작

▲ 갈령 삼거리 (백두대간 접속)

▲ 형제봉: 형제의 우의를 다지면서 정답게 산을 지키고 서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형제봉이라 한다. 출처:한국지역진흥재단(2008년 3월엔 없었던 표석이다)

 

▲ 피앗재: 충북 보은군 만수리와 경북 상주시 화북면 상오리를 이어주는 고개이다. 원래는 오지 중의 오지여서 난을 피하는데 적당한 자리라는 뜻으로 “피할재”였다가 피앗재로 불리 운다고 하는데 정확한 유래는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다.

▲ 2012년 현재의 피앗재 안내판

▲ 지금은 거의 사라진 016번호가 새롭다.

 

 

▲ 천왕봉

▲ 천왕봉에서 바라 본 문장대 관음봉 방향

▲ <속리산 천왕봉(俗離山 天王峯)> 속리산 천황봉(天皇峯)은 <대동여지도> <팔도군현지도> 등의 고지도에 천왕봉(天王峯)으로 표기되어 있다. 1911년 일본 육군참모본부에서 만든 한국지형도(충북대 도서관 소장)까지는 천왕봉으로 나와 있으나 일본총독부에서 만든 1918년 지도(국립지리정보원 소장)부터 천황봉으로 표기되기 시작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여지승람>에 따르면 속리산 산마루에 ‘대자재천왕사’라는 사당이 있었는데 천왕신이 해마다 10월 범날이면 내려와 법주사에 45일간 머물다 다시 상봉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이때 산중의 모든 사람들이 정성껏 신을 모시고 제사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법주사라는 고찰을 품고 있는 속리산의 봉우리 이름이 비로봉, 보현봉, 관음봉 등 대부분 불교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아 천왕봉도 동서남북을 지키는 네 명의 천왕 즉 사천왕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 속리산이 속해 있는 충청북도 보은군은 여러 차례 민원인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지난 2004년 1월 지명위원회를 구성했다. 보은군 박종기 군수를 위원장으로 하여 모두 6명의 지명위원은 지역 향토사학자를 비롯한 지역 원로들로 구성되었다.문화산림과 홍순조 주사에 따르면 현재 보은군 지명위원회는 충북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된 자료 등을 근거로 올해 안에 지명위원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일반 지명은 보은군청 행정과에서 담당하지만 산 이름의 경우 문화산림과에서 담당한다. 보은군청 문화산림과 043-540-3372. [출처] 월간마운틴 2006년 2월 / 정수정 기자

 

▲ 속리산 천황봉 표석은 사라지고 이제는 천왕봉 표석이 자리 하고 있다.

 

 

 

 

 

 

 

 

▲ 신선대 휴게소(문장대에 있던 시설처럼 이곳도 결국엔 없어지지 않을까?)

 

 

▲ 2008년 당시엔 있었던 문장대 산장(2012년 현재는 공단에서 철거 하여 없어 졌다)

▲ 시래기 국밥이 일품이었다.

 

▲ 문장대(文藏臺, 1033m)는 원래 큰 암봉 하나가 하늘높이 치솟아 구름속에 숨어 있다해서 운장대(雲藏臺)라 불리우던 곳이다. 조선 세조가 속리산에서 요양을 하고 있을 때 꿈속에서 어느 귀공자가 나타나 "인근의 영봉에 올라 기도를 하면 신상에 밝음이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전했다. 세조가 이 말을 듣고 운장대에 오르니 정상 부근에 삼강오륜을 명시한 책 한 권이 있었고 그 자리에서 하루를 지내며 글을 읽었다 해서 지금의 문장대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 밤티재는 상주시 화북면 중벌리와 장암리에 걸쳐 있다. 32번, 49번 국도와 37번 국도를 잇는 자그마한 도로로 문장대온천을 지난다. 고개 이름은 중벌리의 밤치 마을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 늘재(380m) 산행 마침 '늘재'는 '비탈이 길게 늘어진 재'란 의미라고 한다. (출처: 한국땅이름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