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대간 2차 37구간 [대간 산행 41회째 ]
성삼재→노고단→임걸령→삼도봉→연하천→벽소령→칠선봉→세석산장→촛대봉→장터목→천왕봉
◇ 산행지 : 전남 구례군 마산면. 전북 남원시 산내면. 경남 함양군 마천면, 하동군 화개면, 산청군 삼장면 일원
◇ 산행일자 : 2012. 10. 27(토). 날씨 : 비
◇ 참가인원 : 대전시 산사모 회원 32명
◇ 산행친구 : 기대
◇ 산행거리 : 약28.13km (포항 셀파산악회 실측거리 기준. 접속구간:천왕봉→중산리 5.4km 포함 합계 33.53km)
<37구간> 성삼재→3.5→노고단→2.23→돼지평전→1.05→임걸령→2.15→삼도봉→0.75→화개재→1.25→토끼봉→2.94
→연하천→2.05→형재봉→1.3→벽소령→2.55→선비샘→1.5→칠선봉→2.0→세석산장→0.6→촛대봉→1.86→연하봉
→0.8→장터목→1.6→천왕봉
◇ 산행시간 : 후미기준 13시간 소요 예상, 산행시간 13시간 56분 <조식,중식 30분 포함>
◇ 시간대별 요약
- 10:15 대전 시청 출발
- 12:55 성삼재 도착
- 01:00 성삼재 산행시작
- 01:38 노고단 대피소
- 01:47 노고단 고개
- 02:33 피아골 삼거리
- 02:40 임걸령
- 03:06 노루목
- 03:37 삼도봉
- 03:47 뱀사골 갈림길
- 03:59 화개재
- 04:17 토끼봉
- 05:37 연하천 대피소(아침 식사 15분)
- 06:05 음정 갈림길
- 06:43 명신봉
- 07:18 벽소령 대피소
- 08:18 선비샘
- 09:40 영신봉
- 09:51 세석 대피소(점심 15분)
- 11:28 장터목
- 11:49 제석봉
- 12:08 통천문
- 12:28 천왕봉
- 12:42 천왕샘
- 13:21 법계사
- 14:35 중산리 입구
- 14:56 중산리 버스 주차장 산행 마침
- 16:23 후미 도착
※ 특기사항
① 우중 산행
② 일부 세석 대피소에서 탈출(기대도 탈출)
③ 컨디션 최상 이었음
④ 우의 상하의 모두 착용 산행
⑤ 산행 후 중산리 버스 주차장 뒤풀이
※ 산행지도및 고도표
※ 산행 후기
지리산 종주는 두 번 해 보았다. 한 번은 1박2일 또 한 번은 무박으로 했었다. 산행기록을 살펴보니 무박으로 한 산행이 13시간 40분으로 기록되어 있어 장시간 산행이니 만큼 준비 또한 철저해야 될 것 같아 우선 술을 마시지 않기로 했다. 산행 전 5일간 술을 마시지 않고 헬스장에 가서 몸을 만들기도 했더니 떠나기 전에는 자신감도 제법 생겼다. 다만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마음에 걸렸다. 강우량도 제법 많은 14~25mm라니 만일을 대비해 하의 우의도 준비를 했고 산장마다 물은 충분히 있으니 물은 1리터만 준비하고 스포츠 음료도 모처럼만에 한 병 준비했다. 배낭은 최대한 가볍게 하면서도 초콜릿과 비상 식품은 여유 있게 준비하고 저녁 식사를 한 후 도시락을 챙겨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시청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인원이 도착해 있는데 혼자서 앉아 가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번에는 내가 조금 늦은 탓에 친구와 같이 동석 할 수 없었다.
시청에서 10시가 넘어도 버스가 출발하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김밥 집 아주머니가 김밥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아서 늦어졌다고 한다. 회장님은 티눈 때문에 산행에 참석하지 못한다 하시고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하고 버스에서하차 한 후 이정재 대장님이 마이크를 잡고 산행 출발 시간이 산행 금지 시간이니 만큼 조용히 성삼재를 통과해야 한다고 주의를 준다. 버스 안에서 잠을 자 보려고 애써 보았으나 낮에 서울에서 내려 오며 버스 안에서 잠을 자선지 잠 한 숨 못자고 성삼재에 도착했다. 성삼재에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하는데 무슨 침투 작전마냥 헤드랜턴도 모두 끈 채 옆길로 조용히 잠입하여 성삼재 초소를 통과한 후 눈에 익숙한 시멘트 도로를 따라 산행을 시작하는데 랜턴을 켜지 않아도 될 만큼 길은 눈에 익숙하다. 산행을 시작한 후 약 40여분 만에 노고단 대피소를 또다시 조심스레 통과 한 후 산길로 접어들면서는 랜턴을 켰다. 이후 약간의 오르막 뒤에 노고단 고개를 지나면서 구례 방면을 보니 불야성을 이룬 듯한 야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지리산에서 보는 별만큼 아름다운 모습이 없다고 했는데 이번 종주에서도 역시 보지 못하고 비 안 오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생각하고 산행을 진행해야 했다. 이후 산행은 이정목을 보며 어디를 현재 지나고 있구나 하고 알 뿐 어둡고 흩뿌리는 비로 인해 길을 찾기 어려워 더디고 힘든 산행이었다. 5시가 가까워지면서 비의 양도 제법 많아지기 시작해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해서는 서둘러 아침식사를 했다. 아침이 가까워지면서 길을 찾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으나 비의양이 제법 많아지기 시작해 완주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 되었는데 벽소령대피소에 도착하니 하의 우의를 입지 않고는 진행하기 어려울 만큼 비가 많이 와서 하의 우의를 입고 산행을 진행 했다. 이후 많은 량의 비 때문에 옷이 젖었는지 친구의 산행속도가 약간 더딘 느낌이었는데 세석대피소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있는데 후미 대장님이 탈출을 유도한다. 친구는 추워서 더 이상 산행을 못하겠다며 세석에서 탈출하여 내려간다고 하는데 나는 신발도 젖지 않았고 몸 컨디션도 너무 좋아서 정이나 어려우면 장터목에서 탈출 하겠다고 말하며 친구와 헤어졌다. 악천후 속에서 완주 한다는 게 안전 산행보다 더 중요하지 않고 종주가 그리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은 했지만 현재 몸 상태가 너무 좋았고 장비도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어서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두렵지 않아서 친구에게 내려가라고 하고 산행을 다시 시작하여 장터목에 오니 이제 50분이면 천왕봉 정상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힘이 더 솟는 듯 했다. 천왕봉이 가까워질수록 비의 양은 점점 많아졌는데 장터목을 통과하면서는 멈출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멈춰서도 안 되는 상황이라 더딘 진행을 했다. 천왕봉에 올라서니 새 찬 비바람이 몰아친다. 이제 하산만 조심스럽게 하면 된다는 생각에발 길을 돌리려다 그래도 인증은 남겨야 할 것 같아 스마트 폰을 꺼내니 배터리가 없다. 억지를 부리다시피 서둘러 우의를 벗고 비를 맞으며 가방에서 배터리를 꺼내 인증을 하고 천왕봉을 벗어나니 몸 상태도 좋고 발걸음이 가볍다. 천왕샘을 지나 내려가는 과정에서 두 사람을 뒤로 하며 앞서나가니 친구에게 전화가 온다. 후미대장님이 인원파악을 위해 일부러 친구에게 전화를 하게 한 것 같은데 “법계사를 지나고 있으며 뒤로 5명이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남기고 서둘러 또 하산을 시도했다.
천왕봉에서 중산리 가는 길은 돌계단으로 장시간 산행을 하고 내려오는 등산인 들에게 많은 부담을 준다. 나 역시 지난번 종주 때 관절이 아파 고생을 했던 경험이 있어서 걱정을 했는데 이번엔 무릎이 괜찮아 편한 마음으로 내려 올 수 있었다. 그런데 내려오는 도중 주변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니 내려오는 도중 대부분 사람들이 무릎 통증으로 절룩거리며 고생을 하면서 내려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산행 습관이 잘못 되서 그런 것임을 이번에야 나도 알았으니 천 번을 넘게 산행을 하면서도 이제야 깨달았다는 것이 어떤 면으로는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관절이 아프지 않으려면 뒤꿈치부터 땅에 디뎌야 된다고 여러 사람에게 설명을 해 주면서 오다 보니 어느 사이 중산리 입구다. 산행을 마치고 버스가 있는 곳까지 셔틀버스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아스팔트를 걷는 시간은 약간의 짜증도 무탈 산행의 기쁨으로, 백두대간 2차 완주의 기쁨으로 묻어 버리며 걸을 수 있었다. 비가 오는 와중에도 땀을 씻어내기 위해 화장실에서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으니 기분은 더 업이다. 이후 축하주를 한참 마시고 나니 후미가 온다.
※ 산행 사진
▲ 성삼재 ( 사진 출처 :우리가 도착 했을 때는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선답자 아젤리아님의 사진에서 펌)
성삼재: 삼한시절의 전적지로, 마한군에게 쫓기던 진한왕이 달궁계곡에 왕궁을 짓고 피난하여 살 때였다. 북쪽 능선에 8명의 장수를 두어 지키게 한 곳이 팔랑재요, 동쪽은 황장군에게 지키게 하였으므로 황영재, 남쪽은 성(姓)이 각각인 세 사람의 장수를 보내어 지켰다 해서 성삼재라 하였다 한다.
▲ 산행 시작 하면 있는 탐방지원센터인데 우리는 이곳을 우회 하여 렌턴도 끄고 숨을 죽이며 통과 했다(사진 출처:산팅이님)
▲ 노고단 대피소 가는 길(사진 출처: 아젤리아님 다음 블러그)
▲ 노고단 대피소(사진 출처: 아젤리아님 다음 블러그)
▲ 노고단 대피소 (스마트 폰으로 내가 찍은 사진)
▲ 노고단 대피소 지나자 마자 나타나는 첫 이정목
▲ 노고단 고개 (이곳에서 노고단으로 갈 수 있다. 어둡고 노고단은 여러차례 갔던 곳이라 지나친다.)
▲ 노고단 돌탑(출처:ycs4894님의 다음 블러그)
노고단(老姑壇)은 전라남도 구례군에 있는 산으로 지리산의 한 봉우리이다. 지리산 국립공원 내에 넓은 초원으로 구성된 약 35만평 규모의 고원지대로 신라시대 때부터 제사 지내던 제단이 있다. 보통 노고단부터 천왕봉까지의 구간을 이르는 지리산 종주코스의 시발점으로 많은 사람이 찾고 있으며, 노고단 대피소가 위치하고 있기도 하다. 노고단 일대의 운해가 멋있다 하여 이 노고운해를 지리십경의 하나에 포함시킨다.(출처:위키백과) 노고단이란 도교에서 온 말로, 옛날 신라시대부터 지리산의 산신 선도성모를 모시는 남악사가 있었던 민속신앙의 영지다. 노고단이라는 명칭도 지리산 신령인 선도성모를 마고할미로 존칭하며 부르게 된데서 유래한다. 우리말로는 ‘할미단’이며, ‘할미’는 국모신(國母神)인 서술성모(西述聖母:仙桃聖母)를 일컫는 말이다.
▲피아골 삼거리:
피아골 : 6.25 동란 전후에 공비들의 본거지이기도 했고, 영화 '피아골'의 주 무대이기도 해서 우리 귀에 그 이름이 설지가 않다. 세간에선 이 곳이 임진왜란 때 많은 살상이 있었고, 한말(韓末)의 격동기, 여순반란사건, 6.25 동란 등 싸움이 벌어질 때마다 이 곳에서 피를 많이 흘려 '피의 골짜기'란 뜻에서 나온 이름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피아골은 피(血)와 관련지어 땅이름의 원뜻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피아골'에서 아는 '이'의 같은 소유격조사로 볼 수 있는데, '아'가 이런 식으로 쓰이는 예는 다른 땅이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피아골은 '파왓골'일지도 모른다.(참조: 옛글 모음자의 "아래아"와 "반시옷"을 표식하지 못하므로 그 부분은 청색 처리 하였슴)남부 지방에선 '밭'을 '왓'이라고 쓰는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왓'은 제주도에서나 '밭'의 뜻으로 쓰고 있을 뿐, 전라도 지방에선 그렇게 쓰고 있지 않으니 '피아골'의 앞 형태를 '피왓골'로 본다면 그것은 '피밭골'의 전음일 가능성이 있다. '밭'의 옛말은 '받'으로 지금의 음과는 별 차이가 없다. 결국 피아골은 '피받골'에서 출발한 이름이고, 이것은 피밭이 있는 골짜기란 뜻이 될 것이다.이것의 한자 지명 직전(稷田)이 이 생각을 더욱 굳혀 주고 있다. 출처:山 (글: 지명 연구가, 배우리)
▲ 임걸령:임걸령은 노고단에서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8km거리 능선상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 1,320m의 높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우뚝 솟은 반야봉이 북풍을 막아주고 노고단의 능선이 동남풍을 가려주어 산속 깊이 자리한 아늑하고 조용한 천혜의 요지이며 샘에서는 언제나 차가운 물이 솟고 물 맛 또한 좋기로 유명하다. 이곳은 옛날에 의적이나 도적들의 은거지였던 곳으로 유명하며 특히 의적 임걸(林傑)의 본거지였다 하여 임걸령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샘터에서 피아골족 암벽 밑에 막(幕)터가 있는데 이곳을 '황(黃)호랑이막터'라고 부른다. 옛날에 약초를 캐는 황장사가 눈내리는 겨울밤 이곳에서 천막을 치고 자다가 호랑이를 잡았다는 전설이 있다.
▲ 임걸령에 있는 샘물(물 여유가 있어서 지나쳤다)
▲ 노루목
1. 노루가 자주 다니는 길목. 2. 넓은 들에서 다른 곳으로 이어지는 좁은 지역.
노루목이란 명칭은 이곳의 암두(巖頭) 모양새가 마치 노루가 머리를 치켜든 모습이란 얘기와, 노루가 지나다니던 길목이라는 얘기가 전해져 온다. 또한 문순태의 장편소설 ‘철쭉제’에는 ‘산에서의 세 갈림길’을 흔히 노루목이라 한다고 적혀 있는데, 많은 사람이 쉬어가는 길목인 노루목에서는 흔히 세 갈림길을 만나게 되는 것으로 보아 이 역시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 삼도봉 : 일명 날라리봉 이라고도 하는데 삼도봉의 바위모양이 낫날같다고 하여 낫낱봉이라 하였던 것이 와전되어 날라리봉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삼도봉이 백두대간 상에 세 곳이 있다. 지리산에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경상남도가 경계를 이루는 삼도봉과 초점산에 전라북도 경상남도 경상북도가 경계를 이루는 삼도봉이 있다. 그 다음이 민주지산의 삼도봉으로 전라북도 충청북도 경상북도가 만나는 곳이 있다. 또 한 군데 충청북도 강원도 경상북도가 경계를 이루는 어래산(해발 1,63.6m)이 있는데 백두대간에서는 벗어나 있다.
▲ 돼지평전:예로부터 멧돼지들이 좋아하는 둥굴레가 많이 나는 곳이어서 이름이 생겼다.(일부에서는 원추리 뿌리를 캐먹는 멧돼지들의 모습이 많이 목격돼 돼지평전이 됐다는 설도 있음) 이곳 역시 어두워서 선답자의 사진에서 퍼왔다.
▲ 토끼봉이란 명칭은 주변에 토끼가 많다거나 봉우리가 토끼 모양이라서 그러는 게 아니고 반야봉을 기점으로 동쪽, 즉 24방위의 정동(正東)에 해당되는 묘방(卯方)이라 해서 토끼봉(卯峯)으로 부르는 것이다.
▲ 연하천 대피소
연하천 유래: 명선봉의 북쪽 가슴 턱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은 고산지대임에도 숲속을 누비며 흐르는 개울의 물줄기가 구름 속에서 흐르고 있다고 하여 연하천(烟霞泉) 이라 부르게 되었다.
▲ 연하천 대피소 (선답자의 사진에서 펌)
▲ 연하천 대피소에서 김밥 한 줄로 아침 식사
▲ 음정 갈림길
▲ 벽소령 대피소 (이곳에서 하의 우의를 입고 산행 진행)
벽소령(碧宵嶺): 광대한 지리산 중심부의 허리처럼 잘룩한 고개로서 그 주위가 높고 푸른 산릉이 겹겹이 쌓여 유적한 산령을 이루고 있다.달밤이면 푸른숲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너무나 맑아서 오히려 푸르게 보인다 하여 옛부터 이곳을 벽소령이라 부르게 되었다
▲ 벽소령 대피소 (선답자의 사진에서 펌)
▲ 선비샘: 덕평봉 남쪽 상덕평 능선 해발 1,500m에 있는 샘터를 선비샘이라 한다. 수량은 적으나 마르는 적이 없고 주위가 평탄하고 넓어서 야영하기에도 좋다. 이 샘을 선비샘이라 부르는 데는 한 화전민의 서글픈 사연이 있다. 옛날 덕평마을에 이씨 노인이 살고 있었다. 노인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화전민의 자식으로 가난에 쪼들리며 평생을 살았다. 배우지 못하여 무식한데다 몹시 추하게 생겨 주위 사람들로부터 천대를 받으며 노인은 한번이라도 남에게서 사람다운 대접, 선비대접을 받으며 살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살아생전 소원을 이루지 못한 그는 마지막 유언으로 상덕평 샘터 위에 묻어 달라고 부탁했고 효성이 지극한 두 아들은 아버지의 유해를 샘터 위에 매장 했다. 그로부터 매년 지리산을 찾는 등산객들은 샘에서 물을 마실 때면 반드시 노인의 무덤 앞에 인사를 하게 되니 생전에 그렇게 받고 싶었던 선비대접을 무덤 속에서나마 받게 되었다. 후일 동네사람들은 생전에 불우했던 이씨 노인을 위로하기 위해 이 샘을 선비샘으로 부르게 됐다.
▲ 선비샘(내가 지나 갈 때는 수량이 너무 적어서 물을 받을 수 없었다)
▲ 선비샘(선답자 사진에서 펌)
▲ 세석 대피소(이곳에서 친구와 점심 식사 후 친구는 거림으로 하산)
▲ 세석 대피소(선답자 사진에서 펌)
▲ 거림 갈림길
▲ 장터목 대피소
장터목(場基項) :천왕봉 남쪽의 시천 주민과 북쪽의 마천 주민들이 매년 봄과 가을에 이곳에 장을 세우고 생산품을 물물교환 한데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 장터목 대피소
▲ 제석봉 : 6,25 이후 까지만 하더라고 전나무 구상나무 들이 울창하였으나 자유당 말기 농림부장관의 삼촌 되는 자가 권력을 등에 업고 제석단에 재제소를 차려놓고 거목들을 베어내면서 말썽이 생기자 증거를 인멸한 양으로 제석봉에 불을 질러 나머지 나무마저 지금과 같이 횡사 시켜 버렸다고 한다.
▲ 통천문 : 하늘과 통한다는 마지막 관문인 통천문
▲ 천왕봉 인증
천왕봉(天王峰): 지리산의 최고봉 천주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지리산의 웅대한 기상을 상징하고 있다. 동서남북 사방을 둘러보아도 아무거칠 것 없는 천왕봉정상에서의 전망은 장엄하기 이를데없으며 특히 천왕봉에서 바라보는 석양낙조의 기관도 좋거니와 새벽동녘하늘가에 끝없이 펼쳐지는 구름바다의 운평선에서 떠오르는 천왕봉 해돋이의 장관은 천지개벽을 보는 것 같은 천하의 기관으로서 지리산 최고 명소로 꼽힌다.
▲ 천왕샘:남강댐의 발원지로 여기에서 솟구친 물은 덕천강을 따라 흘러, 남덕유산 참샘을 발원지로 하는 경호강과 남강댐에서 합류하여 남강을 이루어 낙동강으로 흘러든다.6m 정도의 바위 밑에서 방울방울 흘러 모인 샘물로, 1977년 덕산 두류산악회에서 석공을 동원해 물이 고일 수 있도록 홈을 파놓았지만 가물 때는 쉽게 말라버리기 일쑤다. 깍쟁이처럼 바위에 졸졸 흐르는 정도의 양이지만, 남강의 첫 물. 강이 되고 바다가 될 그 시초다.
▲ 법계사: 해발 1450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절. 서기 544년(신라 진흥왕 5년) 인도에서 건너온 연기조사가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하면서 창건. 깊고 깊은 산중에 위치한 탓에 법계사는 전란 때마다 수난을 겪었다. 그 첫 번째가 고려 무왕 6년 9월에 남원의 황산벌에서 이성계에게 크게 패한 왜구들이 황급히 도망가면서 지리산으로 들어가 불태운 것(법계사가 흥하면 일본의 기운이 쇠퇴한다는 전설 때문에 고려말 왜적 아지발도에 의해 소실), 두 번째가 조선시대 재건돼 많은 불자들의 기도처로 이용되던 중 1908년 지리산이 항일의병의 근거지로 활용되면서 박동의의 의병부대가 덕산에서 패한 뒤 법계사로 후퇴, 계속 항일전을 벌일 당시 일본군의 방화로 화마에 휩싸였다. 세 번째는 1948년 여수반란 사건을 겪으면서 지리산이 반란군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자 토벌군이 대원사와 함께 불태워 버린 것이라 한다.
▲ 중산리 다리 실질적인 산행 마침
▲ 버스 주차장 산행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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