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대간 2차 32구간 [남진 산행 제 36회째]
육십령→할미봉→서봉(장수덕유산)→남덕유산→월성치→삿갓봉→삿갓골재→무룡산→동엽령
◇ 산행지 : 전북 장수군 안성면, 경북 함양군 서상면, 경북 거창군 북상면 일원
◇ 산행일자 : 2012. 8. 25(토). 날씨 : 흐린 후 맑음
◇ 참가인원 : 대전시 산사모 회원 34명
◇ 산행친구 : 기대
◇ 산행거리 : 19.31km(포항 셀파산악회 실측거리 기준, 안성 탐방 지원 센터4.5km 제외) 합계:23.81km
<32구간> 동엽령→4.1→무룡산→2.68→삿갓골재→4.15→남덕유산→1.3→장수덕유산→4.8→할미봉→2.28→육십령
◇ 산행시간 : 10시간 10분 <점심 20분, 접속 구간 1시간 45분 포함 > 후미 10시간 50분 산행
◇ 시간대별 요약
- 04:00 대전 시청 출발
- 04:20 대전 IC 출발
- 05:25 육십령 도착
- 05:29 산행시작
- 06:22 할미봉
- 07:02 삼자봉(경남 덕유 교육원 갈림길)
- 08:43 장수 덕유산(서봉) 점심(20분)
- 09:35 남덕유산
- 10:10 월성치(황점 갈림길)
- 11:11 삿갓봉
- 11:31 삿갓골재(삿갓골 대피소) 10분 휴식
- 12:36 무룡산
- 14:05 동업령(안성 갈림길)
- 15:12 안성 탐방 지원 센터
- 15:49 용추교 산행 마침
- 16:17 후미 도착
※ 특기사항
① 운무로 인해 조망 없었으며 초반 바람 많아 시원 했으나 중반 이후 습해 더웠음
② 서봉 근처 저혈당, 고혈압 증상으로 컨디션 난조(중반 이후 한 차례 더 역습)
③ 청우자님 삿갓재 대피소 참샘 물 1병 도움 받음
④ 올 여름 첫 긴바지 산행
⑤ 산행 후 통안마을 용추교 아래 다리 밑 알탕및 뒤풀이
※ 산행 전 사전 조사
<장수 경주마 목장> : 할미봉에서 바라다 보이는 장수마을에 위치하며 소재지는 전라북도 장수군 장계면 명덕리 1번지다. 제주경주마목장에 이어 국내 2번째 규모로, 마필 생산 및 본격적인 경주마 육성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46만평 부지에 내륙지역 경주마 생산지원을 위한 씨수말마사와 교배장, 경마장 등이 구비되어 있다. 교배기간(3~6월)중에는 짝짓기 과정을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다. (출처:네이버 백과 사전)
※ 산행 지도및 고도표
※ 산행 후기
이번엔 산행시간이 길어 시청에서 4시 출발이다. 산행시간이나 출발시간에 대해 문제는 없지만 택시가 문제다. 노은 2지구 반석마을의 취약점 중 하나가 새벽 시간 택시인데 집에서 늦어도 새벽 3시 30분에는 출발해야 하는데 택시가 없을까봐 집사람을 깨웠다. 택시 잡는 곳까지만 태워다 주기로 했는데 집 앞을 나서니 배회(?)하는 택시가 있어 얼른 갈아타고 집 사람을 돌려보내고 시청에 도착하니 택시비가 심야 할증으로 9500원이 나온다. 택시비가 조금 아깝지만 그 시간 대중교통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시청에 도착 대기 하고 있는 버스에 오르니 이미 많은 분이 탑승하고 있다. 너무 졸려서 눈을 감았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나눠준 떡을 먹고서야 약간의 포만감 때문에 잠이 들었는데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다. “뒤풀이용 족발을 구입하다 보니 약 2분정도 늦을 것 같다”고 회장님께 전해 달라 한다. 이후 원두막에서 일신님과 천안의 박성범 이사님이 탑승 하고서 대전을 벗어나 잠이 들었는데 어느 사이 산행지에 도착 했다.
산행지에 도착하니 아직은 어둠이 짙게 내려 있다. 이미 조석 간으로 계절의 끝에 와 있음을 실감하긴 했지만 강한 찬바람에 약간은 추운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육십령 표석 앞에서 스마트폰으로 도착 시간을 알기 위해 얼른 사진을 찍고 출발 했는데 이미 모두 출발하고 친구와 둘이 맨 뒤로 뒤쳐져서 산행을 시작했다. 전에는 육십령에서 바로 능선을 타고 시작했는데 생태이동통로를 만드는지 시멘트 포장도로로 우회하는 안내판을 따라 산행을 시작 했다. 이후 산행을 하며 별다른 특별함을 못 느끼다 할미봉 근처에서 무지개를 보고 할미봉에 도착하니 전에는 없던 커다란 표석이 있어 인증을 하고 서봉으로 향하였다. 할미봉을 지나 삼자봉이라 누군가 붙여 놓은 이정표 까지는 평상시에 비해 몸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는 친구의 말을 들을 정도로 가벼운 몸이었는데 서봉을 향하면서 저혈당, 고혈압 증상으로 컨디션 난조가 왔고 서봉에서는 친구에게 더 이상 갈 수 없다며 점심(?)을 하자고 했다. 그때가 8시 40분경이었으니 친구는 “떡 먹은 지 얼마나 되었는데 식사를 하느냐”고 반문 했지만 정상인이 아닌 나로서는 에너지가 너무 필요해서 친구에게 식사를 종용했고 식사를 한 이후로는 좋은 컨디션을 찾아 산행을 했는데 이후 좋은 산길을 만나면서 무리한 속도로 인해 또다시 컨디션 난조를 겪으면서 이후론 조심스런 산행으로 산행을 마쳤다.
이번에도 역시 버스는 용추교 아래 있었고 용추교로 걸어가는 동안에는 발바닥이 너무 아프고 따가운 햇살아래 너무 더워 힘든 시간이었다. 용추교에 도착 하니 이미 많은 분들이 뒤풀이 하고 있었다. 배가 몹시 고프기도 했지만 우린 술보다도 물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는데 후미를 태우러 간 버스가 오지 않아서 슬리퍼와 갈아입을 옷 때문에 족발에 쏘맥을 한참 마시고 난 뒤에야 버스가 와서 물속으로 들어가니 계절의 끝자락이듯 계곡물은 몹시 차가워서 짧은 알탕을 하고 버스에 올라야 했다.
※ 산행 사진
▲ 차량 탑승 장소 시청앞
▲ 육십령 도착
▲ 육십령(734m): 육십현(六十峴) 또는 육복치(六卜峙)라고도 하는데, 소백산맥 중의 덕유산(德裕山)과 백운산(白雲山) 사이에 있으며 신라 때부터 요충지로 알려져 왔다. 오늘날 이 고개는 영남과 호남지방을 연결하는 주요교통로로 전주~대구 간 26번 국도가 지나간다. 예부터 함양-장수 주민들의 물류를 교환했던 고개라고 한다.
※ 육십령 유래
1. 함양의 감영에서 이곳까지가 60리 길이고, 장수 감영에서 이 고개까지도 60리(24km)라고 하여 육십령이라 함.여암 신경준의 山經表 에는 "六十峙"- 南來 安義西六十里 長水北四十里 라고 쓰여 있다. 안의 서쪽 60리, 장수 북쪽 40리에 "육십령"이 있다는 뜻이다.
2. 이 고개를 넘으려면 크고 작은 60개의 고개를 넘어야 겨우 닿을 수 있어 육십령.
3. 옛날엔 이 고개에 산적들이 많아서 60명이 모였다가 올랐다는 이야기인데, 이 고개를 넘기 위해서 양쪽 산아래 마을에서 며칠씩 묵어가며 기다렸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밑에는 장정들이 모여 있던 주막이라 해서 장군동(壯群洞)이 있고, 산적을 피해서 살다가 이루어진 마을이라고 해서 피적래(避賊來)라는 마을이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한다. 어느 것이 맞는 것인지는 확실치는 않지만 역사적으로 보면<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남아있어 세 번째 이야기가 신빙성이 높다.
4. 박정희 대통령은 군장동 사람들에게 산 속 군장동에 살지 말고 길가에 나와서 살라고 흙벽돌집을 지어 주었다고 한다. 고갯마루 연립 주택식으로 지어진 하얀색 집들이 그때 박 대통령이 지어준 집들이다. 군장동에 사람이 살지 않게 된 것이 그때부터. 육십령마을이 군장동 사람들에게 새 삶의 터전이 된 것도, 고개이름이 육십령으로 불리게 된 것도 그때부터라고 한다.
▲ 육십령 등산 초입(현재 육십령에서는 생태 이동 통로를 만드는 중인지 공사가 한창이고 우회 등산로를 만들어 놓았다)
▲ 육십령 산행 시작 후 첫 이정표
▲ 할미봉 도착 직전의 무지재(산행 하면서 무지개는 처음 본 것 같다)
▲ 할미봉에 모여 있는 산악회원들
▲ <장수 경주마 목장> : 할미봉 정상에서 트랙이 보이는 곳이 목장이다. 말이 목장이지 종마장이라 한다. 한국마사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곳으로 저 종마장이 이곳에 들어올 때 말들이 많았다고 한다.즉 말 똥물을 마시게 될 지도 모를 마을 주민들이 저 목장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 찬성할 리는 만무였던 바, 위정자와 한국마사회는 저 시설이 들어옴으로서 지역 경제 발전에 획기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하는 장밋빛 청사진을 보여주며 교묘하게 주민들을 속여 허가를 받아냈는데 결국 저 시설의 직원들은 관사에서 생활을 하고 쇼핑이나 외식 등은 전주나 서울로 올라가고 관광 수입이라 해 보았자 눈에 보이는 것도 없다고 한다.
▲ 할미봉 옆의 암봉
▲ 할미봉 (1024m):지도에 이름은 없고 높이만 표시되어 있다.
※ 할미봉 유래
1. 할미봉 아래에는 성터가 있는데, 할미봉의 이름은 이 성터에서 유래한다. 옛날 어느 할머니가 치마폭에 돌을 날라 성을 쌓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할미봉이라 했다는 것.2. 할미봉 서쪽 산자락에 있는 반송 마을 사람들은 할미봉이 원래 ‘쌀미봉’인데 할미봉으로 부르게 된 것이라 한다. 조선 시대 때 이곳에 합미성이 있어 합미봉이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1961년 국토지리정보원 지명일람표에는 합미봉으로 고시)
3. 옛날 한 도승이 할미봉 정수리의 암장을 보고 우리나라 군사가 수년간 먹을 쌀이 쌓여 있는 형상이라 했다 하여 합미봉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지명 유래가 전한다.
▲ 할미봉에서 바라 본 월봉산 금원산 기백산 방향
▲ 대포바위 갈림길(안개가 짙어 남근 바위는 가 보지 않았다)
대포바위:할미봉의 턱밑에 위치. 임진왜란 때 장수를 치기 위해 육십령을 넘던 왜군들이 대포바위를 조선군의 대포로 착각하여 함양으로 우회해 남원을 쳤다고 한다. 그래서 장수군 일원이 피해를 면했다는 설이 있다. 또한 가까이 보면 남자의 성기와도 비슷하여 남근석으로 불리는데, 남자 아이를 못 낳는 여자가 이 바위에 다가와 절을 하고 치마를 걷어 올리면 남자아이를 낳는다는 전설이 있다.
▲ 할미봉에서 바라 본 진행 방향(장수 덕유산 방향)
▲ 할미봉
▲ 삼자봉이라는 표식이 붙어 있는 경상남도 덕유 교육원 갈림길(이곳 부터 서봉까지 저혈당 고혈압 증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 서봉(장수 덕유산) :옛날에는 남덕유산 또는 서봉을 봉황산 이라 하여 매우 신성시 했다고 한다. 문헌비교와 산경표에는 백두대간은 대덕산을 경유 덕유삼봉-백암봉-봉황산을 거처 육십령으로 간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남덕유산인지 장수서봉인지 가늠할 필요가 있다.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는 아래 사진에서 보듯 남덕유산을 봉황산이라 표기 하고 있다.
▲ 남덕유산 갈림길(남덕유산 정상은 여러 경로를 통해 대여섯 번 다녀와서 가지 않으려다 정상에 갔는데 왕복 6분 소요 되었다)
▲ 남덕유산(1507m):지리산 다음으로 크고, 넉넉하고 덕이 있는 덕유산이며, 덕유산의 연봉들의 남쪽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덕유(德裕)산에 남녁 남(南)자를 붙인 이름이다. 덕유산의 최고봉인 향적봉 일대를 북덕유산, 장수군에 있는 서봉을 장수덕유으로 일컫는다. 장수군 지역에서는 장수덕유산을 5대 명산의 하나로 꼽고 있다.덕유산하면 북쪽의 북덕유산과 주봉인 향적봉, 그리고 무주구천동의 33경만 생각하기 쉬우나 장수덕유와 이곳 남덕유산까지 덕유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남한에서는 지리산국립공원 다음으로 웅장하고 넉넉한 산이다. 덕유산의 한 봉우리는 무주에서 시작되고, 또 한 봉우리는 장수에서 일어나는데, 장수의 봉우리를 남덕유산이라 하며, 무주의 봉우리를 북덕유산이라 한다. 남덕유산은 대간길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임진왜란 때 일본인들이 이 산하에 와서 산을 보고는 크고 덕이 있는 산에서 싸울 수 없다 하여 퇴군했다고 전해진다.
남덕유산 (1508m) 은 북상면 월성리 ,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 , 전북 장수군 계북면과 경계하며 솟아있다 . 지도상 적힌 이름은 제 1 덕유산이며 옛날엔 황봉 (黃峰), 봉황산 (鳳凰山) 으로 불렸다. 2008 년 11 월 1 일부터 옛 이름인 봉황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등산길에 놓인 봉우리는 하봉 중봉 상봉으로 나누며 그중 동봉이 정상이 되는 봉우리이며 서봉은 장수 덕유산으로 불리 운다.남덕유산은 덕유산과 달리 장쾌한 사나이 기상으로 바위뼈대로 솟은 개골산이다. 산경치가 묘향과 금강을 닮아 황홀할 만큼 아름답다. 등산길은 가파르고 험준하여 7백여 철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 장수덕유산(서봉)에서 남덕유산을 경유 하지 않아도 되는데 우린 길을 잘못(?)들어 남덕유산을 다녀 온 결과가 되었다.
▲ 월성재(황점 마을 갈림길):월성재는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에서 유래 되었는데 월성계곡이 유명하다.월성계곡은 경남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 창선리에 위치하며 남덕유산(1507.4m) 동쪽 자락의 월성천을 따라 형성된 길이 5.5㎞의 계곡이다. 흔히 거창의 피서지로는 수승대와 금원산 일대를 최고로 꼽지만 호젓하기로는 월성계곡이 더 우위를 차지한다. 거창읍내에서 거열산성군립공원, 수승대를 차례로 지나고 북상면사무소 앞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남덕유산 방향으로 들어가면 병곡리와 산수리로 들어가는 갈림길 삼거리에서부터 월성계곡이 시작된다. 계곡의 폭은 그렇게 넓지는 않지만 주변 산세가 워낙 거대해 수량이 풍부한 편이다.
▲ 삿갓봉을 들리지 않고 우회 할 수도 있는데 삿갓봉으로 향했다.
▲ 삿갓봉: 삿갓 모양을 하고 있어 삿갓봉이라 불렸고, 삿갓골재는 무룡산과 삿갓봉 안부를 이루어 사람들이 넘나드는 고개다.
▲ 삿갓재 대피소 (1280m): 삿갓재 대피소는 2층으로 된 최신식 건물이다. 1층에는 보일러실과 취사장이 있고, 2층에 숙소가 있다. 등산객들은 1층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2층에서 숙박을 해결한다. 숙소는 2층 침상으로 되어 있으며, 총 7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이용료는 1박에 비 성수기 7000원, 성수기 8000원 이며, 침구류(담요) 대여료는 1장에 1000원이다. 숙소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한다. 이곳에서는 라면이나 과자류 등 인스턴트식품을 판매하며 캔이나 음료수 건전지 휴지 등 꼭 필요한 물건만을 판매한다. 사고를 우려해 술은 일체 팔지 않는다. 밤에는 심야전기를 이용해 난방을 하기 때문에 방의 1층은 따뜻한 편이다.
▲ 삿갓재를 지나 바라 본 무룡산 진행 방향
▲ 무룡산 오르기 전
▲ 무룡산(舞龍山1,492m)은 거창군 북상면 산수리와 무주군 안성면의 경계에 위치해 있는 산이다. 산수마을 사람들은 ‘흰덤뿌대기’라고 부르는 깨끗하고 신령스런 산이다. 옛 이름은 불영봉(佛影峰)이다. 백두대간상의 남덕유산과 북덕유산(향적봉)을 이어주는 산으로 용이 춤추는 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삿갓재 대피소에서 내려가는 길인 황점마을은 용의 꼬리에 해당한다. 황점은 옛 이름이 삼천동(三川洞)으로, 조선조 때 쇠가 많이 나던 곳이라 한다. 유황을 많이 구웠다는 데서 황점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 동엽령에 있는 시설물
▲ 동엽령: 덕유산의 옛 고개 중 동엽령(冬葉嶺, 1,320m)은 깊은 산중에 있는 덕에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겨울잎'으로 해석되는 그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이 일대에서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듣기가 어렵다.무주와 동엽령을 마주하고 있는 거창군에서 동엽령을 '동업이재'로도 부르는 것을 보면 이런저런 짐작을 해볼 수는 있다. 거창군이 발간한 <거창군사(居昌郡史)>는 동엽령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경상도와 전라도 지방의 토산품을 교역하기 위해 넘나들던 재이다. 재로 오르는 병곡 대하골(현재 거창군 북상면 병곡리)에는 옛날 동업이재를 넘나들던 나그네를 위해 술을 빚어 팔았다고 하는 주막터가 있다."
▲ 칠연폭포 갈림길
▲ 비가 많이 와서 조그만 곳도 엄청난 폭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 안성 탐방 지원 센터
▲ 용추교 아래 뒤풀이
▲ 뒤풀이 후 단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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