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대간 2차 29구간 [남진 산행 제 34회째]
우두령→석교산→밀목령→삼마골재→삼도봉→백수리산→부항령→선황당재→덕산재
◇ 산행지 : 전북 무주군 설천면, 경북 김천시 부항면, 충북 영동군 상촌면 일원
◇ 산행일자 : 2012. 7. 14 (토). 날씨 : 흐린후 약한 비(활승안개로 인한 조망 없었음)
◇ 참가인원 : 대전시 산사모 회원 31명
◇ 산행친구 : 기대
◇ 산행거리 : 24.55km(포항 셀파산악회 실측거리 기준)
<29구간> 우두령→3.55→화주봉→6.78→삼막골재→0.72→삼도봉→8.2→부항령→5.3→덕산재
◇ 산행시간 : 8시간 30분 소요 예상 , 실제 산행 시간 9시간30분 소요 < 점심 20분 포함>
◇ 시간대별 요약
- 04:36 대전 시청 도착
- 05:10 대전 시청 출발
- 06:30 우두령 도착
- 06:36 우두령 산행 시작
- 07:26 1158봉
- 07:50 대평동 갈림길
- 08:00 화주봉(석교산)
- 08:40 1172봉
- 09:47 밀목재
- 10:16 1123.9봉
- 10:33 삼마골재(미나미골 혜인산장 갈림길)
- 10:56 삼도봉 점심(20분)
- 11:22 암골 갈림길(혜인산장 갈림길)
- 12:22 1170봉
- 13:21 백수리산
- 14:10 부항령
- 16:08 덕산재 산행마침
- 16:13 후미 도착
- 17:25 뒤풀이 마치고 덕산재 출발
- 18:53 대전 IC 도착
※ 특기사항
① 습한 날씨로 인해 산행 어려움(악전고투)
② 반바지 노팬티 남대문 개방 산행
③ 초반 컨디션 난조로 후미 산행 마침
④ 7명 부항령 탈출
⑤ 산행 후 덕산재 오리훈제 뒤풀이
※ 산행 전 사전 조사
금릉군 [金陵君] : 1995년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김천시에 통합되어 도농통합시를 이루었다. 경부고속도로와 경부선이 통과하는 교통의 요지이나, 남서부가 소백산지의 험준한 지형을 이루고 있어 개발이 지체되었다. 지금의 김천시 아포읍·농소면·남면·개령면·감문면·어모면·봉산면·대항면·감천면·조마면·구성면·지례면·부항면·대덕면·증산면 등 1개읍 14개면 151개 동리가 이 지역에 해당한다.이 지역은 조선시대의 김산군(金山郡)·개령현(開寧縣)·지례현(知禮縣) 등 3개의 독립 군현이 1914년 군면 폐합에 의해 통합된 곳이다. 어모면·봉산면·대항면·감천면·조마면과 행정구역개편 이전의 김천시 일대는 옛 김산군 지역, 아포읍·개령면·감문면·남면·농소면 일대는 대체로 옛 개령현 지역, 구성면·부항면·지례면·대덕면·증산면 일대는 대체로 옛 지례현지역에 해당한다. 1895년 지방제도 개편으로 김산군·개령현·지례현이 모두 군이 되어 대구부 관할이 되었다가, 1896년 경상북도에 속했다. 1906년 월경지정리에 따라 김산군의 비입지(飛入地)인 연명면이 개령군으로, 두입지(斗入地)인 황금소면이 충청북도 황간군으로 편입되었으며, 황간군의 두입지인 남면이 김산군에 이관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3군을 통폐합하여 김천군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김천역과 김천장이 위치하고 경부선의 통과지였던 김천면이 1931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1934년에는 위량면과 곡송면을 감문면으로, 과곡면과 석현면을 구성면으로 통합했다. 1949년 김천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분리되고, 김천군의 나머지 지역을 김천군의 별호였던 금릉군으로 개칭했다(→ 개령현 , 김천시 , 지례현 ).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행정구역 개편으로 김천시에 통합되어 도농 복합형태의 새로운 김천시를 이루었다. 楊普景 글 (출처:다음 백과사전)
<김천시 부항면 어전리 지명 유래>
1. 어전(漁田)·어전리·어전골 :
임진왜란 때 허인이라는 선비가 이곳에 피난 와서 보니 들판의 형상이 마치 물고기처럼 생겼다 하여 어전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또 다른 유래는 이 마을 이름이 없을 때 어떤 도인이 이 마을에 와서 보니 동네 서쪽의 작은 폭포수 아래에서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놀고 있어 어전이란 마을 이름을 지어 주었다 한다. 어전재·어전령은 어전리 서쪽에 있는 고개로 경상북도와 전라북도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데 삼국시대에 신라군과 백제군이 싸웠던 재라 한다.
2. 가목·가매실·부항(釜項) :마을이 위치한 곳의 형상이 가마솥과 같이 생겼다 하여 가매실이라 하다가 지금은 한자로 부항이라 한다. 우리말로는 가목이라 하는데, 이는 가매목에서 중간의 매자를 버리고 가목이라 하였기 때문이다. 가목재에서 감내의 큰 줄기 샘이 발원한다. 마을이름의 기원으로는 가마-가미-거무(거미)-거북의 의미 상통함으로써 농경사회에서의 숭배대상인 거북 신앙 곧 물신앙을 드러내는 상징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삼도봉(부항령) 터널];부항면은 국토의 대동맥인 소백산맥의 줄기인 삼도봉산이 병풍처럼 서 있고 산이 높아 사방으로 나가는 길이 없어 면관내에 들어오면 다시 들어왔던 길로 나가야만 다른 지역에 갈 수 있던 곳이었다. 그러나 1999년 12월 6일 삼도봉터널(391m : 경북 151m, 전북 240m) 개통으로 무주로 가는 길이 개통되어 영‧호남인이 더욱더 가까워졌으며, 삼도봉 터널 앞 소공원은 영호남인의 화합과 만남의 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교통량이 거의 없어 여름이면 500m 터널 양쪽으로 사람이 지나다닐 길이 없을 만큼 돗자리를 펴고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댄다고 하며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이곳을 지날 때 속도를 줄이거나 함께 피서를 즐긴다는 이야기도 있다.
※ 산행 지도및 고도표
※ 산행 후기
목표산행의 어려움은 때와 날씨 기타 등등 아무것도 따지지 않는 그야말로 무조건적인 산행이다. 그 이유는 한 구간이라도 빠지게 되면 보충하기 어렵기 때문에 나오는 이야기다. 하지만 최고 100mm가 넘는 장마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적은 량의 비라면 여름철 우중산행의 묘미도 있어 그다지 여건을 따지지 않지만 큰 비가 예고된 상태에서 준비하려니 마음이 무겁지만 별 수 없다. 이유 없이 무조건 가야 한다. 준비물로 우의는 하의까지 챙겨 넣으려다 더운 여름임을 감안하여 상의만 챙기고 이번에도 지난 산행과 같이 반바지 산행을 준비했다.
이사를 하고서 가장 불편한 점이 백두대간 산행을 가려면 이른 새벽이라 시청까지 가는 대중교통이 없다는 거다. 택시라도 집 근처에 있으면 좋으련만 반석 역에나 가야 한 대나 있을까 말까이기 때문에 이번에도 준비를 마치고 집사람을 깨웠다. 지난번에 출발 10분전에 도착하니 혼자 앉아 가려는 얌체족(?)이 많아 겨우 구걸 하다시피 자리를 양보 받아 친구와 같이 앉아 갈 수 있었던 까닭에 이번에는 지난번에 비해 매우 빠른 4시 36분에 시청에 도착하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매번 가던 기사님이 교체되어 이번에는 버스가 오지 않아 회장님이 버스회사에 연락하고 나서야 5시 조금 넘어 도착했다. 버스가 도착 하자마자 얼른 버스에 올라 좋은 자리를 확보하니 회장님이 산행지의 주의사항 등을 일일이 열거한 후 아직 다리가 불편해서 산행을 못한다고 하차 한다.
친구가 한전에서 승차하여 이른 아침 회장과 총무 그리고 김태련씨 등 여러 사람들이 산행 준비에 고생이 많다는 이야기 한 후 잠깐 눈을 감았듯 했는데 산행지에 도착했다. 전 버스 기사 분은 산행지에 미리 도착 전 산행 준비를 하라는 안내방송을 해 주어서 차분히 준비를 했었는데 이번에 처음 오셔서 그런지 우두령을 지나쳐 가려다 앞에 앉아 있는 분들이 여기라고 그만 정차하라는 말에 차가 섰고 모두들 우르르 또 몰려 나가는데 친구와 나만 겨우 눈을 뜨고 신발을 주섬주섬 신는다. 산행준비를 마치고 우두령 주변 사진 몇 장 찍으니 아무도 없다. 꼴찌로 출발한데다 일명 빼봉이라는 첫 오름 중에 잠시 볼일을 보고 뒤 쫒아 가니 아무도 없다. 가다보면 후미를 잡겠지 했는데 습한 날씨로 인해 고혈압 증상까지 겹쳐 완주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첫 갈림길에 도착하니 친구가 기다리고 있다. 현재 몸 상태를 이야기 하니 습해서 더 더우니 물을 자주 마시라고 한다. 석교 산까지 너무 힘들게 오른 데다 물도 많이 마셔서 가져 온 3리터의 물이 적게 느껴져 완주를 못할까봐 걱정하며 1172봉을 오르려니 정말 너무 힘들어서 죽을 맛이다. 1172봉에서 떡과 초코파이를 먹은 후 조금 컨디션 회복이 되어 이번에는 산행속도를 높이니 넝쿨과 수초가 반바지 입은 나를 잡는다.
삼마골재에 도착해서야 후미인 손성현님과 친구 그리고 현우에 만났는데 삼도봉에 도착하니 중간조격인 여러 사람들이 식사를 마치고 출발한다. 그 팀들에 비해 약 20여분 늦은 셈인데 친구와 나도 식사를 하려고 배낭을 내려놓으니 최후미가 도착한다. 천천히 여유부릴 틈이 없어 서둘러 점심을 먹고 일어서니 친구가 천천히 가자고 한다. 식사를 한 이후로는 등산로도 좋고 능선에 간간히 바람도 불어 큰 어려움 없이 진행 했는데 앞서간 팀들과 거리가 좁혀지지 않다 백수리산을 지나서야 10여명 정도 앞서 갈 수 있었다. 이후 더딘 진행으로 산행은 이어졌는데 안개로 인해 조망도 없고 습해서 갈수록 너무 힘들었다.
부항령에 도착하니 독대어멈님이 탈출을 하려고 준비 중이다. 마음 같아서는 지쳐서 나도 탈출하고 싶지만 일부 조금 남은 산행을 가지고 다시 올 수는 없어서 계속 진행하려니 너무 힘들다. 하산하여 나중에 들어 보니 7명이 탈출을 했고 탈출한 인원 때문에 결국 친구와 나는 후미조에 속해서 하산한 셈이다. 덕산재에 다와 갈 무렵 친구 왈 꼴찌는 하기 싫어 막판에 쉬지 않았다 한다.
덕산재에 도착 산행을 마치니 오리훈제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갈증이 너무 나서 우선 맥주와 동동주를 들이켠 후 전 주에 봐 두었던 곳에서 알 탕을 한 후 옷을 갈아입고 다시 뒤풀이 장소에서 동동주를 마신 후 차량에 탐승했다. 대전에 도착 친구와 한 잔 하려다 비가 많이 오고 집사람이 송촌에 있다 해서 친구와 술은 다음에 마시기로 하고 한전에 내려 집사람을 만나 집으로 갔다. 늘 내 발걸음에 호흡 맞춰주는 친구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 산행 사진
▲ 우두령 [ 牛頭嶺 ] 충청북도 영동군의 상촌면 흥덕리 피남절에서 경북 김천시 구성면 마산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한국지명총람』에는 우두령 대신 산 지명인 '우두산(牛頭山)'이 기록되어 있으며, 지명유래에 대해 산의 모양이 소의 머리처럼 생겨 지어진 이름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우두령은 조선 후기의 지리지와 고지도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여지도서』(황간)의 황악산 세주(細註)에 '우두령'이 기록되어 있다. 이후 『대동여지도』(황간)와 『동여도』에 각각 '우두령'과 '우두산(牛頭山)'이 기록되어 고개와 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1872년 지방지도』(황간)에도 표기자 변화 없이 '우두령'이 기록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일명 질매재라고도 불리우는데 ‘질매’라는 이름은 이 고개의 생김새가 마치 소 등에 짐을 싣거나 수레를 끌 때 안장처럼 얹는 ‘길마’ 같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질매는 길마의 이 고장 사투리다. 이 말이 한자화하여 우두령(牛頭嶺)이라고도 불리는 것인데,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두 이름이 별개인 양 둘 다 표기돼 있다.
▲ 우두령 석교산 진행 방향
▲ [석교산(화주봉 1195m )]:여지도서에 황악산은 추풍령-괘방령에서 와서 서쪽으로 석교봉-삼도봉을 일구었다. 하여 화주봉을 석교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 천안 박성범 선배님이 주신 산삼을 석교산 정상에서..(잘 먹었습니다. 덕분에 완주 했어요 ㅎ)
▲ 1172봉 오름 전에 있는 밧줄 구간
▲ 1172봉을 지나면 나타나는 넝쿨지대 (반바지 산행에 대한 넝쿨의 보복 ㅋ)
▲ 이렇게 키를 넘는 넝쿨 지역이 많다. 반팔 반바지는 이럴때 제일 안 좋다. 하지만 난 여름내내 계속 고집 할 거다.
▲ 밀목재:충청북도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의 가래점마을과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대야리 대야동마을 간을 왕래하던 고갯길로, 지금은 희미하게 흔적만 남아 있다. 면목재라고도 불린다. 물한리는 맑은 물이 끝없이 흐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대야리 마을은 원래 천지동(天地洞)이었으나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시골동네 이름에 걸맞지 않는다면서 정정하라고 어명을 내리자, 하늘천의 한일(一)과 따지의 흙토변(土)을 없애 대야리(동)가 되었다 한다. 물한리에서 부항면으로 넘어가는 또 다른 고개로는 백두대간 상의 삼마골재가 있다.
▲ 1124봉에 있는 삼각점
▲ 삼마골재 바로 전 헬기장
▲ 삼마골재 (미나미골 혜인산장 갈림길) :경상북도 김천시, 충청북도 영동군, 전라북도 무주군 등 3개 도가 만나는 화전봉(삼도봉) 북쪽 자락에 있는 고개다. 삼마골재 고갯마루는 화전봉으로부터 900m 떨어져 있다. 고개 서편은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이며, 김천에서 고개를 넘어가면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가 된다. 삼도봉에서 황악산 방면으로 내려가면 삼마골재에 이르고, 이 고갯마루에서 오른쪽 골짜기를 삼마골, 즉 삼막골(蔘幕谷)이라 하고, 왼쪽 골짜기를 미나리골이라 한다. 민주지산 주능선 북쪽 골짜기의 여러 물줄기가 미나미골(미니미골)에 합류해 황룡사 일원을 흘러가며 초강천의 상류를 이루고 있는 계곡을 물한계곡(物閑溪谷)이라 이른다.
▲ 삼마골재에 있는 이정목
▲[삼도봉(1,176m)]:민주지산의 봉우리로 백두대간의 줄기를 이루는 삼도봉은 경북(금릉군→현재 김천시로 편입), 전북(무주군), 충북(영동군)에 걸쳐 있다. 원래는 화전봉이었으나 3도가 만나는 지점이라는 뜻으로 불리게 됐다. 지리산의 삼도봉(날나리봉)이 전남북과 경남, 대덕산 전의 삼도봉(초점산)이 경남·북과 전북으로 불완전한 삼도인 것에 비해 완벽히 도를 나누는 삼도봉이다. 정상에 1989년 10월 10일 세운 삼도봉 화합탑이 서 있는데, 삼도를 상징하는 거북과 용,검은 여의주로 만들었다. 지역감정 타파를 위해 매년 10월 10일 삼도의 주민들이 모여 삼도화합제가 열리며, 삼도의 지방자치단체가 돌아가면서 주관한다. 이곳은 조선 태종 14년(1414)에 조선을 8도로 분할하면서 삼남의 분기점이 되었다 한다. 삼국시대엔 신라 백제가 격전을 치르며 세력균형을 유지했으나, 이후 역사가 흐르면서 삼도의 지리적·행정적 경계인 동시에 방언의 갈래 길로 굳어졌다 한다.
▲ 삼도봉에 도착 하니 중간조 격인 팀들은 거의 식사를 마치고 있었다
▲ 삼도봉 지나 두 번째 만나는 해인리 갈림길(암골 갈림길)
▲ 1170.4봉(박석산이라고 하는데 정상석도 없고 삼각점과 안내판이 설치 되어 있다)
▲ [백수리산( 1034m)] 김천 쪽 주민들은 '백도래산'이라 불렀는데 예전 이 산 아래 100여호의 가옥이 있다가 지금은 없어졌다는데, 산 이름이 이와 연관되었을 것으로 본다는 자료에 무주군 설천면에서 볼 때, 겨울이면 이 산에 특히 많은 눈이 쌓여 수리를 닮은 이 봉우리가 하얗게 보여서'백수리산'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정상에 헬기장이 있으며 넓은 공터로 사방이 나무들 우거져 있어 휴식장소로는 좋지만 조망하기엔 부적합하다.
▲ 백수리산을 지나고 나서 진행 하다 보면 김천시에서 등산로를 잘 정비 해 놓은 것을 알수 있다.
▲ 960m봉: 산행지도엔 "묵묘"로 표기된 곳인데 묘는 보이지 않았고 5m 정도 위가 정상인데 귀찮아서 묘는 확인 하지 않았다. 이곳에 오르기 전 친구에게 우회 하자고 했는데 길을 잘못 들어 고생 할 수도 있으니 우회 하지 말고 정직하게(?) 가자는 말에 1차 대간 종주 시 모르고 우회 했던 기억이 나서 이번엔 알고서 그냥 지나치면 안 될 것 같아 우회하지 않고 정직하게 산행 했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봉 이름도 없으니 우회를 해도 큰 의미는 없는 것 같다.
▲ 우회 하면 만나는 지점 (아래 이정목이 보이면 이곳에서 삼도봉 쪽으로 산행 시 우회를 해도 됨)
▲ [부항령(釜項嶺) 690m]:무주 무풍 금평리 숙뱅이-김천 부항 어전리 가목을 넘나드는 재. 백두대간의 오래된 고갯마루인 이곳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부항현’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이제는 고개의 구실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아래로 삼도봉 터널이 뚫렸기 때문이다. 고갯마루 일대에는 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고개 이름의 유래는 고개 동쪽 부락인 가목(가마목=부항) 마을이름에서 유래 되었다고 합니다. 부항령 아래에는 삼도봉 터널이 있는데 고개 아래에 터널을 뚫고 이름을 부항령터널이 아닌 삼도봉터널이라 하였다는데, 그 내력은 전라도와 경상도 땅 경계에 있는 터널이어서 어느한쪽의 지명을 따면 다른 한쪽이 소외되는 듯 하다하여 궁여지책으로 이곳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삼도봉의 이름을 빌려와 삼도봉터널이라 했다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지역 이기심이 부르는 터널명 같다.
▲ 853.2봉에는 삼각점과 안내판이 설치 되어 있다.
▲ 833봉이라고 이정목에 누군가 표기해 놓은 것을 보고서야 선황당재를 지나쳐 온 것을 알 수 있었다. 선황당재는 남서쪽으로 전북 무주군 무풍면 부평마을과 동북쪽으로 경북 부항면 어전리를 연결 하는 재인데 선답자들의 글을 보면 평평한 안부로 별다른 표식이 없어 모르고 그냥 지나쳐 오기 쉽다고 한다. 본인도 산행 중 심신이 지치고 관심 있게 보지 않아서 모르고 지나쳐 왔다.
▲ 폐광터: 폐광 지역임을 느낄수 없을 정도로 복원이 잘되어 있다.
▲ 833.7봉 (이곳에서 90도 꺽어 하산 하면 덕산재다)
▲ [덕산재 (644m)] 김천시 대덕면-무주군 무풍면을 넘는 30번국도이며 대덕산 아래 덕산마을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삼도봉과 대덕산 사이의 고개로 예전부터 전북과 경북의 서부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개였다. 지금은 무주에서 성주를 잇는 30번 국도가 지나간다. 고갯마루에는 휴게소와 주유소가 있다. 대덕면 덕산마을에 있는 고개라 하여 덕산재라고 한다. 일제 때 발행된 고지도에는 ‘주치령’으로 표기되어 있다.
▲ 덕산재 아래 생태 이동통로
▲ 덕산재 아래 생태 이동통로 옆 알 탕 장소
▲ 알탕 모습 (전신 누드인데 하반신은 잘랐음 ㅋ)
▲ 흥겨운 뒤풀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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