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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2차(完走)

30구간.덕산재→대덕산→초점산→소사고개→삼봉산→호절골재→된새미기재→수정봉→빼재

 

□ 백두대간 2차 30구간 [남진 산행 제 33회째]

빼재→수정봉→된새미기재→호절골재→삼봉산→소사고개→삼도봉→대덕산→덕산재

◇ 산행지 : 전북 무주군 무풍면, 추풍령면. 경북 김천시 대덕면, 경남 거창군 고제면 일원

◇ 산행일자 : 2012. 7. 7 (토). 날씨 : 맑음(운무로인해 조망 없었으며 습해 더웠음)

◇ 참가인원 : 대전 대자연 산악회 회원 42명

◇ 산행친구 : 기대

◇ 산행거리 : 15.2km(포항 셀파산악회 실측거리 기준)

<30구간> 덕산재→3.05→대덕산→1.45→삼도봉→3.25→소사고개→3.1→삼봉산→4.35→빼재

◇ 산행시간 : 5시간 30분 <점심 20분 포함> 후미 7시간 10분 산행

◇ 시간대별 요약

- 06:00 반석역

- 06:43 롯데 백화점 출발

- 07:25 대전 IC 출발

- 08:47 빼재 도착

- 08:51 빼재 산행시작

- 09:23 된새미기재

- 09:51 호절골재

- 10:04 금봉암 갈림길

- 10:10 삼봉산

- 11:13 소사고개

- 11:15 점심(20분)

- 12:39 국사봉 갈림길

- 12:47 초점산(삼도봉)

- 13:21 대덕산

- 14:21 덕산재 산행 마침

- 16:00 후미 도착

- 16:11 뒤풀이 마치고 덕선재 출발

- 17:40 대전 IC 도착

 

특기사항

① 비온 뒤 습한 날씨로 인해 더움(운무로 인해 조망 없었음)

② 반바지 산행(토시 이용 발 착용)

③ 대자연 산악회 따라 3주 뒤에 있을 산행 미리 다녀 옴(역 산행)

④ 소사고개~삼도봉 구간 어려움 외 큰 어려움 없었음

⑤ 산행 후 덕산재 생태 이동 동로 옆 약수 알탕

 

산행 전 사전 조사

<무풍면[無風面]> : 무풍면은 전라도 무주와 충청도 영동 그리고 경상도 거창으로 갈라지는 곳이라며 그래서 '무풍 지경(地境)이'라고 부른다. 무풍은 소사동에서 발원한 남대천을 끼고 터전을 잡은 고을로, ‘무풍’이라는 이름은 이미 통일신라 때 지어졌다고 한다. 봉황을 닮은 대덕산 아래에 위치하여서인지(대덕산의 서북쪽) ‘정감록’은 전쟁 등 큰 재앙이 발생시 우리가 숨어야할 안전한 피난처 즉 三災不入之地(전쟁과 질병이 없고 흉년이 들지 않는 살기가 좋은 곳) 으로 십승지(十勝地)를 말하고 있다. 무풍은 피난하기 좋은 십승지 중의 한 곳일 뿐만 아니라 ‘삼豊’ 중의 한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같은 큰 전쟁이 벌어졌을 때 이 곳에 많은 사람들이 피난해 와 숨어 살았다고 한다. 그 후손들이 지금도 무주군의 대표적인 성 씨인 밀양 박 씨, 안동 권 씨, 문화 유 씨 등으로 살고 있다.무풍은 백제와의 사이에 나제통문을 경계로 예전에는 신라 땅이었다. 현재 행정구역은 전북에 속해 있으나 언어와 풍습, 생활은 경상도, 즉 김천과 거창에 가까운 곳이라고 한다. 신라 땅이었던 무풍은 본디 무산현이었는데, 경덕왕 때 무풍현으로 고쳐져서 지금의 김천인 개령군에 속하게 됐다고 한다. 그 뒤 1414년(조선 태종 14)에 무주현으로 편입됐고, 1914년부터 무주군 무풍면이 됐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까지도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 인위적인 행정 구역이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지만, 산줄기로 갈라지지 않은 한에는 한 마을 정서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왕조의 절대 권위보다 더 큰 산의 영향력이다. 이것이 백두대간의 진실이다.

 

산행 지도및 고도표

 

 

산행 후기

날씨가 더워지기 전에 한 구간이라도 더 해 두고 싶은 욕심 때문에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7월 28일 산사모에서 갈 30구간을 미리 다녀오자고 제안을 했는데 흔쾌히 동행 하겠다고 한다. 다만 약간 아쉬운 것은 지난 1차 백두대간 때도 빼재~덕산재를 했는데 이번 역시도 같은 수순이다. 산사모를 따라가면 덕산재에서 빼재로 산행을 할 텐데 미리 다녀오려니 딱 한 가지가 걸린다. 하지만 1차 때의 기억이 덕산재에서 대덕산을 오르려면 힘이 더 들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에 역 산행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대자연 산악회에 전화를 하니 자리를 만들어 준다고 오라고 한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려 이번엔 반바지 산행을 계획했다. 반바지를 입으면 시원해서 좋지만 수풀이 우거진 곳을 통과 하려면 수풀에 긁힐 염려도 있고 산행 시 잔돌 따위가 등산화 속으로 들어가면 산행에 큰 불편함이 있어 동네 뒷산이 아니면 가능한 한 긴 바지 산행이 좋은데 반바지 산행을 계획한건 토시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원래 사용 용도는 팔 토시로 처갓집에서 가져 온 것인데 발에 끼워 신어 보니 산행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반바지 산행을 결행하기로 했다.

이사를 하고서 불편 한 점이 있다면 대전IC 접근 방법이다. 주말이면 집사람이 주로 차를 이용하기에 대중교통 수단을 통해 산행버스에 접근하려니 집에서 일찍 나와야 하고 산악회 버스를 타도 대전 시내를 순회 하다 보니 차안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 그것이 너무 불편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이가 없음 잇몸으로 산다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일단 대자연 산악회의 버스 순환 노선을 보니 용문역에서 내려 롯데백화점에서 버스를 타면 될 것 같아 6시에 반석역에서 지하철에 탑승 했는데 이 번 한 번을 승차해 보니 중구청역에서 탑승하는 방법이 제일 좋을 하다.

롯데백화점에서 버스에 승차하니 제일 뒷자리를 배정해 준다. 늦게 신청한 이유도 있지만 지속적인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떨떠름함도 잠시인데 옆에 앉은 두 사람이 너무 떠든다. 그렇게 떠들고 싶어서 맨 뒷자리에 앉았나 보다. 버스는 서대전 사거리를 거쳐 대전역을 지나 대전IC에서 많은 인원을 탑승 시키고 고속도로에 올라선다. 고속도로에 올라선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산행지에 가기 전 까지 휴게소가 없다며 금산휴게소에서 15분간 정차 한다 해서 차안에 있어봐야 답답해서 휴게소를 들려 잠시 눈을 감았는데 곧 산행지에 도착한다며 산행준비를 하라 한다.

산행지에 도착하여 단체사진을 찍고 산행을 시작했다. 수정봉은 어딘지도 모르고 지나쳤는데 약 한 시간쯤 진행하니 호절골재 이정표가 나온다. 삼봉산을 지나면서 선두그룹으로 진행 했는데 소사고개로 가는 길은 길을 잘못 들어 알바 아닌 알바를 하고 소사고개에 도착하여 이른 점심을 했다. 점심 식사를 한 이후부터 체력은 보충되어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삼도봉에 오르는 구간은 이 번 구간 중 가장 힘들은 구간이었다. 이후 대덕산은 많이 힘들지 않게 올랐고 대덕산에서 덕산재 가는 길은 내리막으로 큰 어려움이 없었다.

여름 산행의 묘미는 뭐니 뭐니 해도 알 탕이다. 그런데 덕산재에 하산 해 보니 겨우 두 사람이 내려와 있었는데 그 두 분의 말에 의하면 씻을 곳이 없단다. 친구와 나는 여기저기를 둘러 보다 물소리를 듣고 철조망 사이를 기어서 들어가 보니 농사를 짓기 위해 호스를 이용하여 물을 받는 곳을 찾아냈다. 신선이 된 것처럼 제대로 알 탕을 하고서 산악회 측이 준비 한 막걸리로 하산 주를 했다. 후미가 올 때까지 막걸리 두 병에 취기를 느끼고 버스에 올라 송촌동으로 가니 집사람이 기다리고 있어서 같이 집으로 향했고 아이들과 집 근처 춘천 닭갈비집에서 소주 한 병 마시고 들어가서 잠이 들었다.

 

산행 사

▲ 차량 탑승 장소 용문동 롯데백화점 앞

▲ 금산 휴게소

▲ 빼재 도착

 

[빼재] 920m(수령 또는 신풍령)에 세워져 있는 『백두대간 안내비』 적힌 빼재의 유래:『빼재』는 삼국시대부터 각 국의 접경 지역이었기에 전략적 요충지로서 수많은 민관군이 이곳에 뼈를 묻어야만 했고 임진왜란 시 이곳의 토착민들은 산짐승들을 잡아 먹어가며 싸움에 임했다. 그 산짐승들의 뼈가 이곳저곳에 널리게 됐다고 해서 “뼈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지며 뼈재가 경상도 방언으로 빼재가 되었다고 한다. 험준한 산길을 넘나들던 시절 고개를 넘던 사람들의 재물과 목숨을 빼앗아 죽은 사람의 뼈가 산을 이루어 뼈재요, 이 고개를 넘나들던 주민, 사냥꾼 혹은 산적들이 동물 및 가축들을 잡거나 약탈하곤 하면서 뼈를 버려 둔 곳이라 하여 뼈재. ‘빼재’는 ‘추풍령’을 본뜬 ‘신풍령’이라는 휴게소가 고개 아래쪽에 들어서면서 ‘신풍령’이라고도 불리기도 하나, 일제강점기에 고개 이름을 한자로 바꾸는 과정에서 ‘빼’를 ‘빼어나다’로 해석하는 바람에 지금은 어울리지 않는「수령(秀嶺)」즉 빼어난 고개라는 뜻의 표지석이 세워지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재 휴게소는 페업 상태고 이곳 주민들은 옛 이름인 ‘빼재’로 불리기를 원하고 있고 앞으로 이곳을 관통하여 뚫리는 터널 이름 또한 ‘빼재 터널’로 불리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한다.

빼재에 있는 조형물과 팔각정

 

빼재에서 약 50m로 아스팔트를 걸어 내려가면 산행 초입이 나온다.

▲ 1차 때는 없었던 시설

 

[된새미기재]:수정봉(1030m)은 아무런 표식이 없어 구분이 잘 안되고 편안한 등로를 이어가다 우측으로 휘돌아 나가게 되어 있다. 그래선지 어딘지 모르고 지나쳐 왔고 선답자 들의 글을 보면 정상엔 잡목들로 전망이 가려져 있다고 한다.[된새미기재]는 봉산리에서 올라오는 소로와 만나는 지점이다. 고개이기는 하지만 허리 목은 아니다. 북쪽의 전북 무주는 지대가 높고 남쪽의 경남 거창은 지대가 훨씬 낮은 것이 확연하게 관찰된다. ‘큰(된) 새목 고개’이다. ‘된새목이재>된새모기재>된새미기재’로 변화했다. (신동길저/뫼따라 하늘까지 中)

[호절골재]:삼봉산과 1090봉 사이의 움푹 들어간 허리 목이다. 삼거리에서 금봉암으로 넘어가는 소로가 교차한다. 남동쪽으로 45°에 가까운 경사면이고, 북서쪽으로는 완만한 경사의 계곡인데, 채소밭이 펼쳐져 있고 여러 개의 지류가 모여 삼거리 독가촌 마을 앞을 지난다. 고개에는 공터가 조성되어 있다. ‘막힌(絶) 계곡(谷)의 안쪽이 매우 넓다(浩)’는 뜻인데, 오늘날 모두 채소밭으로 개간되어 있으니 기막힌 예언이 아닐 수 없다. (신동길저/뫼따라 하늘까지 中)

[금봉암]:고제면 봉산리 삼봉산(1,254m) 기슭에 있다. 금강은 본디 봉황새만이 깃드는 곳을 일컫는데 절이 황금빛 봉황의 이름을 갖고 자리 한다. 금봉암은 삼국시대 때부터 있었던 절 터에 1905년 주상면 거기리에 살던 불심 깊은 청송 심씨가 세운 절이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청송 심씨가 풍수지리가 잡아준 지금의 절 자리에서 원을 세우고 지금은 알 수 없는 가마솥 뚜껑 덮인 장수 샘물을 마셔가며 백일동안 단식기도를 드렸다 한다. 기도가 끝나던 날 이상하게도 어느 곳에서 날아 왔는지 알 수 없는 황금빛 새가 날아와 기도처를 세 번이나 돌고 난 뒤 어디론가 날아가 버려 그 뒤 절을 짓고 금봉암이라 이름 지었다고 전한다. 이 절에는 이름난 세 개의 바위, 세 개의 용머리, 세 개의 바위샘이 있다. 요사체 뒤에 용바위, 용굴에서 내려와 얼굴을 쑥 내민 세 개의 용머리가 있는데 맨 윗쪽 용머리가 옛날 거창 부사가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금봉암을 나한도량으로 영험 있는 기도처로 알려져 있으며 무엇보다 세 개의 샘이 자랑거리로 이름나 있다. 석불바위 뒤에 숨어 있는 샘을 피부병에 좋다 하며, 칼바위 위 바위굴 샘은 기도 샘이고, 용 바위 용굴 샘은 위장병에 효험이 있다 한다.

▲ 금봉암 가림길은 세 곳이 있다. 호절골재와 위의 곳 그리고 삼봉산 오름 바로 전 이곳 이다.

[덕유 삼봉산 (1254m)]: 삼봉산은 거창의 진산이다. 거창 고읍지 및 조선환여승람 거창군 산천조에도 ‘삼봉산은 거창 북쪽 오십리에 있으며 무주로부터 대덕산 서쪽 가지라 적혀 있다. 해발 1,254m의 거봉으로 봉우리가 셋이라서 삼봉(三峰)이란 이름을 얻었다. 향적봉에서 바라 봤을 때 이 봉우리가 뚜렷한 ‘山’자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금강산 일만 이천 봉우리 가운데 어느 한 봉우리를 옮겨다 놓은 것 같은 산세를 지니고 있어 소금강이라 부르기도 하는 삼봉산은, 정상의 주봉을 중심으로 투구봉 노적봉 칠성봉 신선봉 석불바위 장군바위 칼바위 등으로 이름 붙은 자연산경과 금봉암(金鳳庵)이 어우러져, 소금강의 신비경을 연상케 한다. 거창과 무주를 경계 짓는 삼봉산은 이 같은 덕유연봉(德裕連峰)이 시작되는 첫 머리봉.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삼봉산을 ‘덕유원봉’이라 부르며 자긍심을 내보이기도 한다. 금봉암의 바위 샘물과 관련하여 천지인(天地人)을 우러른 삼신사상(三神思想)과 인연이 깊다.

덕유 삼봉산에 있는 이정표

▲ 운무로 마을 풍경이 이채롭다.

▲ 소사고개로 가는 이정표가 없으면 직진 하기 쉬운 곳이다.

 

▲ 소사고개로 가는 길에 뒤 돌아 본 삼봉산

▲ 소사고개로 가는 길에 본 삼도봉(초점산)

▲ 소사고개로 가는 중(알바중 ㅋ)

▲ 소사고개로 가는 길에 산딸기 따 먹고..

▲ 소사고개로 가는 중 (알바)

▲ 소사고개

 

[소사고개(680m)]소사라는 마을 이름은 집집마다 마루 바닥에 가는 모래가 깔리는데, 일 년 내내 미풍이 불어 쌓여있는 모래가 모두 날아가 기쁜 마음으로 소사현(笑沙峴)로 불려 졌다 한다. 이 지역 일대는 정확한 대간 길의 독도가 까다로운데 그 이유는, 백두대간 대부분의 고개가 도(道)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나 소사고개(680m)는 경상남도 거창 땅이며 고갯마루에서 전라북도 무풍 방향으로 10여분 걸어 내려간 '도계'(道界) 마을이 경계지점이다. 따라서 고개 이름을 전라도 쪽에서는 '도마치'라고도 부른다. 도계에서 '항상 농사가 잘 된다'는 무풍(茂豊)까지는 약 9km다.

소사고개에서 약 1분 정도 올라 온 뒤 소사마을이 보이는 이곳에서 점심 식사(창고 우측으로 쉬어 가는 집이 있으며 물 보충 가능)

소사고개에서 삼도봉 가는 길엔 고냉지 채소 밭이 있다.

 

 

소사고개에서 이 지점까지는 임도 수준이며 이곳 부터 급 오름이 시작 된다.

소사마을과 삼봉산

▲ 국사봉 갈림길(수도지맥 갈림길)

[삼도봉] :삼도봉(三道峰)이란 이름 그대로 3개의 도(道)에 걸쳐있는 봉우리를 말한다. 그렇다면 남한에 삼도봉이란 이름을 가진 봉우리는 모두 3개인데, 다 백두대간 줄기에 있다.

 

1. 흔히 초점산 정상으로 알려진 삼도봉(1,248.7m)으로 경북, 전남, 전북을 구분 짓는다. 대화합기념탑이 위치한 민주지산 삼도봉의 남쪽 바로 이웃한 봉우리로 대덕산과 이어지는 산이다.

2. 지리산의 서부능선에 위치한 삼도봉(1,550m)은 경남, 하동군과 전남, 구례, 전북의 남원의 경계 지점에 솟아 있다. 반야봉 바로 아래 위치한 삼도봉의 원래 이름은 낫의 날을 닮아 낫날봉. 발음이 쉽지 않아 '날라리봉' '늴리리봉'으로 불리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의해 삼도봉으로 새 이름을 부여 받았다.

3.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민주지산의 삼도봉으로, 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 전북 무주의 경계한 삼도봉(1,177m)이다. 경계를 가르는 도가 완전히 달라 "오리지널"이라는 수식어가 흔히 붙는다. 이 삼도봉 정상에는 3개의 도시 주민들이 세운 대화합 기념탑이 있다. 국립공원 소백산과 속리산을 거쳐 추풍령에서 잠시 숨을 고른 백두대간이 덕유산을 향해 고도를 높이다가 3개도의 경계 지점에 이루러 우둑 솟구쳐 오른 봉우리이다.

 

 

 

[초점산 (삼도봉 1249m )]: 전북과 경북, 경남의 도계를 이룬다. 군으로는 무주와 김천, 거창이다. 민주지산이 있는 삼도봉에서는 매년 3개 도 합동으로 화합행사가 열리지만 이곳에는 그런 행사가 없다. 서족으로 덕유산의 군봉들이 가까운 거리로 다가서 있다. (신동길저/뫼따라 하늘까지 中)

 

[대덕산(투구봉1290.9m)] 대덕산은 이곳으로 살러 오는 사람은 모두 많은 재산을 모아 덕택을 입었다 하여 대덕산으로 불렸다 한다. 대덕산은 가야산을 향해 뻗은 능선을 사이에 두고 경북 김천과 경남 거창을 갈라놓은 삼도 분기점, 즉 해발1,250m의 초첨산을 옆에 둔 명산으로, 옛날에는 다락산, 다악산으로 불리었고 정사에는 기우단이 있었다고 전하는 명산이다.

 

▲ 맨 발 산행 한마디로 대단 하시다.

 

▲ 약수는 어제 내린 비로 풍족해 지지 않았고 오랜 가뭄으로 메말랐다.

 

 

[덕산재 (644m)] 김천시 대덕면-무주군 무풍면을 넘는 30번국도이며 대덕산 아래 덕산마을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삼도봉과 대덕산 사이의 고개로 예전부터 전북과 경북의 서부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개였다. 지금은 무주에서 성주를 잇는 30번 국도가 지나간다. 고갯마루에는 휴게소와 주유소가 있다. 대덕면 덕산마을에 있는 고개라 하여 덕산재라고 한다. 일제 때 발행된 고지도에는 ‘주치령’으로 표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