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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2차(完走)

31구간. 빼재→갈미봉→대봉→월음령→못봉→횡경재→백암봉→동엽령

 

□ 백두대간 2차 31구간 [대간 산행 35회째 ]

빼재→갈미봉→대봉→월음령→못봉→횡경재→백암봉→동엽령→칠연폭포→안성 탐방지원센터

◇ 산행지 : 전북 장수군 안성면. 경북 거창군 고제면 , 북상면 일원

◇ 산행일자 : 2011. 8. 11(토). 날씨 : 맑음(시원한 바람으로 산행 하기 좋았음)

◇ 참가인원 : 대전시 산사모 회원 30명.

◇ 산행친구 : 기대

◇ 산행거리 : 약13.22km(포항 셀파산악회 실측거리 기준) 접속구간4.5km(칠연폭포 왕복0.6km) 합계:18.32km

<31구간> 빼재→3.96→대봉→1.11→달음재→1.2→지봉→1.66→횡경재→0.34→귀봉→2.75→백암봉→2.2→동엽령 계:13.22km

◇ 산행시간 : 6시간 50분<중식 20분, 칠연폭포 왕복 17분 포함>

◇ 시간대별 요약

- 05:00 대전 시청 출발

- 05:20 대전 IC 출발

- 06:25 빼재 도착

- 06:26 빼재 산행시작

- 06:56 빼봉

- 07:38 갈미봉

- 08:03 대봉

- 09:03 못봉(지봉) 점심 20분

- 09:53 횡경재

- 10:30 귀봉

- 11:00 백암봉(송계삼거리)

- 11:40 동엽령

- 12:43 칠연폭포 삼거리(칠연폭포 왕복 17분 소요)

- 13:00 칠연폭포 삼거리

- 13:16 안성 탐방 지원 센터 산행 마침

 

특기사항

① 비온 뒤 시원한 날씨로 인해 산행하기 좋았음(운무로 인해 조망 없음)

② 더운 여름임을 감안 2구간으로 나눔)

③ 칠연폭포 다녀옴

④ 반바지 산행(토시 이용 발 착용)

⑤ 산행 후 통안마을 아래 다리 밑 알탕및 뒤풀이

 

산행 전 사전 조사

[덕유산 향적봉과 무주 리조트] 1614m : 향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향적봉이라 불렸다는 덕유산의 주봉 향적봉에는 무주 리조트가 들어서 있다. 덕유산 해발 1520m까지 곤돌라로 오를 수 있어, 이곳에서부터 정상 향적봉(1614m)까지는 20분 만에 갈 수 있다.무주리조트는 무주군 설천면 심곡리 일대 그야말로 덕유산 국립공원 심장부에 들어서 있다. 1989년 이곳을 집단시설지구 및 국민체육시설지구로 용도를 변경한 후 대규모 리조트가 건설되기 시작했다.1990년 개장한 후, 1992년 당시 김영삼 대선후보가 이곳에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 유치를 공약한 후 이듬해인 1993년 덕유산 주봉인 향적봉(1,614m)인근 무려 90,000m2에 대해 자연보존지구에서 국민체육시설지구로 변경되었으며, 그 해 4월 김영삼 대통령이 동계유니버시아드 유치 약속을 하고 이에 따라 ‘국제경기지원에관한특별법’으로 이곳 국공유림 임대를 허가 했으며 국제대회 기준의 스키슬로프 확장을 위해 추가로 자연보존지구를 해제했다.1995년부터 본격 공사를 시작 한 스키슬로프로 인해 총 200만m2가 훼손되었다. 이 슬로프 공사과정에서 이식 대상이었던 나무들 가운데 주목과 구상나무의 이식 후 현재의 실태를 보면 얼마나 무성의한 이식이었으며, 그로인해 얼마나 귀중한 산림이 훼손되었는가를 알 수 있다. 당시 해발 1,000m 이상의 고지에서 자생하던 수령 300~400년 이상의 주목과 구상나무 256주와 70~80년 수령의 나무 113주 등 총 369주가 이식되었으나 이식 10년이 경과된 현재 구상나무는 단 1그루도 생존하지 못했으며 주목도 50%정도 생존되었으나 이 마저도 더 지켜보아야 할 상황이다.이와같이 보호수종의 이식이 실패한 이유는 스키장 건설에 눈이 멀어 이식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7년 1~2월에 동계유니버시아드 개최에 맞추어 최소한의 이식준비 기간(토양안정, 충분한 복토, 기후 등)을 고려하지 못한 채 서둘러 바로 옮겨 심은 결과 이같이 실패하고 만 것이다. 현재 죽은 나무는 제거하지 않은 채 고사목을 빙자한 횡사목으로 그대로 남아있으며 5~6년생 주목을 보식하는데 그치고 있는 현실은 우리가 얼마나 자연자원에 대해 무심하며, 덕유산이 스키장건설 하나 때문에 덕유산의 주요 식생대가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루었으며 앞으로도 훼손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덕유산] 1614m: 덕이 많고 너그러운 모산(母山)이라 하여 ‘덕유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옛날에 광려산(匡慮山), 여산(廬山)으로 불렸다. 이성계가 고려장군시절 이산에서 수도할 시절, 수많은 맹수들이 우글거리었으나 한 번도 해를 입지 않아 덕이 넘치는 산으로 덕유산이라 하였다고도 전한다. 경상남도 거창군과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安城面)·설천면(雪川面)의 경계에 솟아 있으며, 북덕유산(향적봉)과 남덕유산(1,507m)으로 나뉜다. 주봉인 향적봉에서 시작해 남으로 중봉, 덕유평전을 지나, 무룡산과 삿갓봉을 거쳐 남덕유산에 이르는 장장 100리에 걸친 산으로 덕유산맥으로도 불린다. 계곡은 총 8곳이 있는데, 특히 북동쪽 무주와 무풍 사이를 흐르면서 금강의 지류인 남대천(南大川)으로 흘러드는 길이 30㎞의 무주구천동(茂朱九千洞)은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명소다. 남덕유는 암봉 의지형에 날카롭다면 북덕유는 전형적인 육산으로 매우 유순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이중환의“택리지” 기록에 의하면 흙산인데 九泉洞이 있고 천석이 깊숙하다. 난리를 격을 때 이산에 숨어들면 적군이 찾지 못한데서 “덕이 큰산” “넓고 크다” 라고 하였다. 또한 임훈의 “덕유산향적봉기”에는 무주구천동을 불공을 이룬자 9천명이 머문 둔소라 했고 박문수어사가 천(千)씨 부자와 관련해 구천동민을 신도로 다스렸다. 구(具)氏와 천(千)氏가 많이 산다고 해서 具千洞이라 한다고 하는 말도 있다.백암봉-중봉-향적봉의 덕유평전과 주목, 향적봉에서의 조망은 매우 훌륭하며, 설경산행은 최고의 백미!! 그러나 향적봉은 대간길을 벗어나 있다.

 

산행지도및 고도표

 

산행 후기

이번 구간을 1차 때는 육십령~빼재 한 구간으로 했는데 더운 날씨임을 감안하여 2구간으로 나눠 빼재~동엽령, 동엽령~육십령으로 산행 한다니 반가울 따름이다. 더욱이 8월 들어 런던 올림픽을 보느라 생활 리듬도 엉망이라 산행 역시 저조하여 몸도 많이 무거운데 산행을 짧게 한다니 금상첨화다. 암튼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약 2시간 잠을 자고 일어나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 축구 전반전이 끝나 갈 무렵 집사람을 깨웠다. 택시가 있는 반석 역까지 대려달라고 했는데 너무 이른 시간인지 아님 축구를 보는지 택시가 없어 집사람이 출발지인 시청까지 대려다 주었다. 매번 산행을 할 때마다 집사람에게 불편을 주는 것 같아 콜택시를 이용 하려고 했는데 콜택시 예약제는 없다고 하며 약 10분전 콜을 달라 하는데 위치적으로 안 좋아선지 콜이 없을 것 같아 이번에도 결과적으로 집사람에게 피해를 준 것 같다.

시청에서 버스에 탑승 산행지 빼재로 가는 도중 축구 후반전을 보느라 모두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열심히 응원하여 일본을 2:0으로 대파하는 모습에 환호성을 지르며 산행지에 도착했는데 태권도 여자 결승을 보고 산행하자는 회장님의 제안에 모두들 수긍하더니 빼재에 도착 위성상태가 잠시 안 좋은 사이 모두 내리고 산행을 시작했는데 일본전 승리에 즐거운 마음으로 산행에 임할 수 있었다.산행시작과 함께 그동안 무리한 술 영향에 다리가 무거움을 느꼈는데 빼봉 가기 전 배가 아파 이중고를 느끼고 빼봉에 올라서서 겨우 후미를 따라 잡았다. 요즘 산사모에서 산행 하며 느끼는 것은 내 자신의 운동 부족이기도 하지만 후미조가 없어졌고 중간으로 가시는 분들도 일취월장하여 나는 거의 후미에 근접해서 산행한다는 것이다. 산행에서 순위는 중요하지 않지만 암튼 후미 산행은 즐거운 일이 아니다.

아침 대용으로 산악회에서 나눠준 떡을 먹기도 했지만 못봉 가기 전 10여명이 식사를 하고 있어서 친구와 나는 못봉을 지나자마자 아침 겸 점심을 하고 백암봉으로 향했다. 백암봉에 도착하여 덕유산을 다녀올까 잠시 망설이다 많이 가 본 덕유산 정상이라 큰 의미가 없어 동엽령으로 출발 했다. 동엽령 가는 길은 여러 번 와 봐선지 낯설지 않다. 그동안 숱하게 안성으로 하산 하며 한 번도 칠연폭포를 들리지 않아서 이번엔 칠연폭포를 갔는데 반드시 한 번 이상은 들려야 할 코스인 것 같다. 산행 마치고 안성 탐방 지원 센터 주차장에서는 씻기 불편하여 솔밭이 있는 통안마을에서 1차 알탕을 하고 뒤풀이 장소에서 2차 알탕을 하고 기분 좋게 취해 대전으로 향했다.

 

산행 사

[빼재] 920m(수령 또는 신풍령)에 세워져 있는 『백두대간 안내비』 적힌 빼재의 유래:『빼재』는 삼국시대부터 각 국의 접경 지역이었기에 전략적 요충지로서 수많은 민관군이 이곳에 뼈를 묻어야만 했고 임진왜란 시 이곳의 토착민들은 산짐승들을 잡아 먹어가며 싸움에 임했다. 그 산짐승들의 뼈가 이곳저곳에 널리게 됐다고 해서 “뼈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지며 뼈재가 경상도 방언으로 빼재가 되었다고 한다. 험준한 산길을 넘나들던 시절 고개를 넘던 사람들의 재물과 목숨을 빼앗아 죽은 사람의 뼈가 산을 이루어 뼈재요, 이 고개를 넘나들던 주민, 사냥꾼 혹은 산적들이 동물 및 가축들을 잡거나 약탈하곤 하면서 뼈를 버려 둔 곳이라 하여 뼈재. ‘빼재’는 ‘추풍령’을 본뜬 ‘신풍령’이라는 휴게소가 고개 아래쪽에 들어서면서 ‘신풍령’이라고도 불리기도 하나, 일제강점기에 고개 이름을 한자로 바꾸는 과정에서 ‘빼’를 ‘빼어나다’로 해석하는 바람에 지금은 어울리지 않는「수령(秀嶺)」즉 빼어난 고개라는 뜻의 표지석이 세워지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재 휴게소는 페업 상태고 이곳 주민들은 옛 이름인 ‘빼재’로 불리기를 원하고 있고 앞으로 이곳을 관통하여 뚫리는 터널 이름 또한 ‘빼재 터널’로 불리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한다.

빼재에 있는 조형물과 팔각정

빼재 산행 시작

빼봉에 있는 이정목

빼봉:빼재에서 유래되었다(국가시설물인 삼작점을 훼손 하지 말라는 안내판과 삼각점이 있다)

 

갈미봉[葛美峰]: 갈미봉에 대한 유래를 찾아 보니 봉우리의 형상이 갈모(비 올 때 갓 위에 덧씌우는 기름종이로 만든 고깔 모양의 가리개)와 비슷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대봉[臺峰]:인터넷을 찾아 보아도 유래는 알 수 없다.

대봉에서 바라 본 덕유산 황적봉

대봉에서 바라 본 남덕유산 방향

 

[지봉] 1342.7m: 지봉 정상에는 못봉으로 표시되어 있다. 지봉(池峰)의 연못 ‘지’를 따서 우리말로 못봉으로 해 놓았다.

 

▲ 못봉에서 바라 본 덕유산 황적봉

▲ 못봉에서 바라 본 백암봉 방향(못봉 아래서 친구와 점심 식사)

▲ 횡경재 가기 전 이름 없는 재(이곳에서도 송계사로 가는 등산로도 있고 등산로는 지도상 있는데 등산로 아님으로 표기돼 있다)

 

▲ 횡경재에 있는 이정표

▲ 횡경재에 있는 덕유산 안내도

▲ 횡경재에서 송계사로 갈 수 도 있다.

[송계사]: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원효와 의상이 652년(진덕여왕 6) 영취사(靈鷲寺)를 창건한 뒤 5개의 부속 암자를 세우면서 송계암이라고 이름 지어 창건했다. 임진왜란 때 영취사를 비롯하여 5개의 암자가 모두 불탄 뒤 폐허로 있다가 숙종 때 진명(眞溟)이 송계암만을 중건했다. 6·25전쟁 때 다시 전소된 것을 1969년 중창했으며, 1995년에 원정(圓靜)이 1969년 중창 때 건립한 영취루가 기울어진 것을 해체하여 다시 짓고 문각(門閣)이라 이름을 바꾸었다.

 

▲ 귀봉으로 추정 되는 곳에 있는 이정목

▲ 백암봉(송계삼거리)

▲ 백암봉(송계삼거리)에 있는 이정목

 

 

▲ 동엽령에 있는 이정목 (동엽령의 유래는 옛날에 경상도와 전라도를 넘나들던 보부상들이 주막집에서 만나 술도 한 잔 걸치고, 쉬어 가던 곳에서 유래가 됐다 한다.同(동),業(업)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 동엽령에 있는 덕유산 안내도

▲ 동엽령에 있는 전망 데크

▲ 동엽령에서 안성 가는 계단

 

▲ 칠연폭포 갈림길

칠연폭포(七連瀑布):폭포가 일곱 개가 연이어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 칠연폭포 갈림길에 되돌아 와서..

▲ 안성 탐방 지원 센터 가는 길에 본 계곡

 

 

▲ 안성 탐방 지원 센터 산행 마침

▲ 통안마을 다리 밑 알탕

 

 

 

▲ 뒤풀이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