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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2차(完走)

27구간. 큰재→국수봉→용문산→무좌골산→작점고개→금산→추풍령

□ 백두대간 2차 27 구간 [대간 산행 4회째 ]

큰재→국수봉→용문산→무좌골산→작점고개→사기점고개→금산→추풍령

◇ 산행지 :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 , 경북 김천시 어모면, 봉산면 일원

◇ 산행일자 : 2011. 4. 16(토). 날씨 : 맑음

◇ 참가인원 : 대전시 산사모 회원 64명.

◇ 산행친구 : 기대, 돈민, 진석外 산사모님들

◇ 산행거리 : 도상거리 약19.67km

<27구간> 큰재→3.18→국수봉→2.47→용문산→5.13→작점고개→2.05→난함산 갈림길→4.19→498봉→2.65→추풍령 계:19.67

◇ 산행시간 : 후미기준 7시간 30분 소요 예상, 산행시간 6시간 <중식 20분 포함>

◇ 시간대별 요약

- 06:20 대전 IC 출발

- 07:37 큰재 도착

- 07:42 큰재 산행시작

- 08:45 국수봉

- 09:33 용문산 맷돌봉

- 10:15 갈현 고개

- 10:33 무좌골산

- 10:47 작점고개 (점심 20분)

- 11:43 난함산 갈림길

- 11:57 사기점 고개

- 13:00 498봉

- 13:28 금산

- 13:42 산행 마침(선두 5시간 5분, 후미 7시간 10분)

- 15:00 추풍령 출발

- 15:50 대전 IC 도착

 

특기사항

① 초여름 날씨로 인해 산행의 어려움.

② 작점 고개 이후 난함산 갈림길 까지 반칙(?).

③ 총원 62명으로 인해 45인승 버스 2대 출발.

 

산행지도및 고도표

 

 

산행 사진

재가 크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 큰재(320m) 도착 해서 단체 사진 남기고( 천리길님 사진에서)

▲ 큰재 산행 시작

▲ 상주시에서 걸어 놓은 이정표는 대부분 엉망이다. 국수봉까지 1시간 소요 된다.

 

국수봉( 菊水峰 )의 유래와 백두대간 설명판이 우측에 있는데 해발 795m로 되어 있는데 표석은 763m다. 물을 움켜 쥐었다는 뜻인 이 산을 상주시 에서 설치해 놓은 설명을 그대로 옮겨보면 국수봉에 서면 상주의 너른 평야와 백학산, 서산, 기양산, 갑장산, 묘함산, 황악산, 민주지산 등 주변의 산들이 전개되고 날씨가 좋은 날이면 백두대간 상주, 문경, 김천 구간과 소백산까지도 조망된다.국수봉은 웅산, 용문산, 웅이산 또는 곰산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어 지고 있다.정상은 충북과 경북의 경계이고 아울러 낙동, 금강의 분수령이므로 국수라고 한 듯 하고 웅신당 (일명 용문당) 이라는 대가 있어 천제와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중국의 웅이산과 같이 시초(蓍草)가 난다고 하여 웅이산 이라고 하며, 상주의 젖줄인 남천 (이천)의 발원지 이기도 하다.

▲ 용문산 거리가 잘못 표기 되어 있다. 김천시에서 걸어 놓은 것은 표식은 2310m이고, 포항 셀파의 실측은 2470m이다.

▲ 상주시가 말하는 용문산 정상 (용문사 갈림길) : 잘못 되어 있다. 상주시는 바로 잡아야...

▲ 용문산 기도원, 웅북리 갈림길(김천시에서 만들어 놓은 표식이 올바르다)

용문산 기도원은 1940년경 나운몽(羅雲夢) 목사가 입산하여 애향숙 기도원을 세우고, 차후 용문산 기도원으로 부르게 되었다.

▲ 용문산(龍門山):1800년경 박송(朴松)이라는 유생(儒生)이 산세를 보고 용문산이라 했다고 전하는데...

경기도 양평의 용문산(1152m)에 비해 이곳 백두대간 상의 용문산 설명은 영동군청과 김천 시청에 들어가 보아도 확인 할 수 없다.

 

▲ 용문산 정상에 있는 이정표

( 김천시에서는 작점고개까지 4100m로 표기 되어 있는데 포항 셀파 산악회 실측은 5130m인데 어느것이 맞는지 알수 없다)

갈현고개: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 죽전리(竹田里)에서 경북 김천시 어모면 도치량(道治良)으로 넘어 다니던 고개이다. 이 도치량은 최근 까지도 옻이 많이 생산되어 옻칠 하는 행랑 즉 도칠랑(塗漆郞)이라 하던 것이 변음 되어 도치랭이가 되었고 그 후에 도치량으로 변했다 한다.

▲ 무좌골산(474m):정상석도 없고 표식도 없고 정상엔 삼각점만 있으며 유래를 찾아 봐도 어느곳에도 나와 있지 않다.

▲ 작점고개에 있는 팔각정 (현판엔 "능치 쉼터"라고 되어 있다고 하는데 확인은 못했다)

▲ 작점고개<능치>: 충북 영동 추풍령면 작점리와 경북 김천 어모면 능치리 도계에 있는 능치(能峙)는 ‘곰재, ’곰티,이다. 이곳 능치는 용문산과 난함산 중간의 잘록(안부, 재)이다. 능치 주변 동으로 능점(能店) 능청(能靑)있는데 능점은 도자기점으로 현재도 사기점고개가 있는 것으로 보아 도자기하고 연관이 있었나 보다. 어모면의 어모는 어머니로 풀이할 수 있으며 물과 땅, 곧 지모신이다. 능치(能治) 혹은 능점(能店)은 곰(能-熊)마을에서 비롯한 것이다. 작점고개는 경북 쪽 사람들은 '성황데이 고개', 충북 사람들은 '여덟 마지기 고개'라고도 불렀다는데 충북 영동의 작점리 작점마을에서 비롯된 것 같은데 충북 영동군 보다는 경북 김천시에서 더 신경 쓴 흔적이 보인다.

▲ 천안의 박성범님이 준비한 곰취와 상추로 점심을 맛있게 하고..

▲ 인증샷 남기고..(1차 백두대간 할 땐 없던 조형물과 표석이다)

▲ 작점고개에서 난함산 갈림길은 시멘트 길로 걸어도 된다. 갈기봉 다녀오지 않는 반칙도 했다 ㅎㅎ

▲ 난함산 갈림길 :다수의 백두대간 종주 자료에는 난함산(卵含山)이 묘함산(卯含山)으로 표기돼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의 1:50,000 지도에 '卯含山'이라 표기돼 있기 때문이 빚어진 일이다. 난함산은 봉황새가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라하여 얻은 산 이름인데 산아래 마을이 봉황의 목에 해당한다 하여 봉황새 봉(鳳)자에 목항(項)자를 따서 봉항(鳳項)이라 했다. 이 마을은 원래 현재의 마을 자리에서 위쪽 난함산 방면으로 4백미터 정도 위쪽에 있는 불무골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1936년 병자년 수해때 마을이 매몰되고 많은 주민이 희생되어 현재의 자리로 이주해왔다고 한다. 난함산(733m) 정상에는 헬기장을 비롯한 KT이동통신 중계소가 설치되어 있다.

 

사기점고개에서 바라 본 난함산 : 이 고개 남쪽의 김천시 봉산면 사기점리는 옛날 사기를 구워 팔던 마을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개 이름이 사기점고개다. 이 고개 북쪽 너머는 영동군 추풍령면의 작점리다.

▲ 新 언중조 498봉에서

▲ 금산 북쪽은 칼로 두부를 베듯이 90도 수직 절벽으로 아래는 채석장이다. 감히 머리를 내밀어 내려다 보지 못할 정도로 아찔하다여기서 얼만큼의 석재를 캐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일제 강점기 때부터 돌을 캐었다하니 가히 상상이 된다. 혹자는 80년대에 이곳에서 1km정도 떨어진 추풍령 중학교에서 일제가 박은 쇠말뚝을 찾아 낸 것과 관련해 단순한 채석장이 아니라 일제가 우리 민족의 정기를 끓기 위해 대간을 훼손한 것이라고 주장하는바 그 주장이 틀린 소리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편으로 1962년 철도용 자갈을 구한다는 명목으로 헐리었다고 한다. 금산은 대간 마루금 가운데 자병산과 더불어 인간의 자연에 대한 탐욕과 몰상식을 적나나하게 드러내는 대표적인 곳으로 꼽히고 있다. 다행히도(?) 지금은 더 이상 파괴되지 않도록 그리고 산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보완장치를 해 두고 있다. 아마도 대간 마루금 산행이 트렌드로 자리잡으면서 대간꾼들이 지속적으로 항의하고 잔소리를 해댄 결과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

 

 

 

▲ 추풍령: 충청북도 영동군 추풍령면과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경계에 있는 고개.

높이 221m. 예로부터 괴산군의 조령, 영동군의 추풍령, 단양군의 죽령 등을 통하여 소백산맥을 넘었고, 이 가운데 대표적 관문은 조령이었다. 그러나 1905년 추풍령에 경부선이 부설되면서 영남지방과 중부지방을 넘나드는 관문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일대는 태백산맥에서 분기한 소백산맥이 조령까지는 높고 험한 장년기 산맥으로 이어지고, 조령에서 추풍령까지는 낮고 평탄해지다가 다시 높아지는 지형적 특색 때문에 교통의 요지로서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때는 군사적 요충지로 이용되었다.

▲ 인물 중신으로 사진을 잡다 보니 추풍령 글씨가 안보이네요. 썰마님 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