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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2차(完走)

35구간. 복성이재→새맥이재→사치재→매요리→고남산→여원재

 

□ 백두대간 2차 35 구간 [대간 산행 1회째 ]

복성이재→새맥이재→사치재→매요리→고남산→여원재

◇ 산행지 :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 남원시 운봉읍 일원

◇ 산행일자 : 2011. 3. 5(토). 날씨 : 맑음

◇ 참가인원 : 대전시 산사모 회원 68명.

◇ 산행친구 : 기대 外 산사모님들

◇ 산행거리 : 도상거리 약21.48km (접속 없음)

<35구간> 여원재-5.47-고남산-5.0-매요리-3.3-88도로(사치재)-2.93-새맥이재-1.4-시리봉-3.38-복성이재

◇ 산행시간 : 후미기준 7시간 30분 소요 예상, 산행시간 6시간 5분<중식 15분 포함>

◇ 시간대별 요약

- 06:25 안영 IC 출발

- 08:00 복성이재 도착 시산제

- 08:15 산행시작

- 09:35 새맥이재

- 10:10 점심 식사 (15분)

- 10:34 사치재

- 11:12 유치 삼거리

- 11:20 매요리 휴게소

- 12:52 고남산

- 14:20 여원재 산행 마침.

- 14:33 운봉 (황산 토종 정육 식당) 회식

- 16:03 운봉 출발

- 17:30 대전 안영 IC 도착

 

특기사항

① 백두대간 2차 첫 산행.

 

② 사치재(88고속도로) 지하 굴다리 통과.

 

.

③ 매요리 휴게소 식사및 물 보충 가능.

 

 

④ 총원 68명으로 인해 45인승 버스 2대 출발.

 

 

⑤ 산행 후 운봉 식당에서 뒤풀이(황산 토종 식당)

 

 

 

 

 

산행지도및 고도표

 

산행 후기

1대간 9정맥을 마치고 목표산행은 이제 그만 두고 명산 위주의 산행을 하고자 했는데, 막상 산을 가려니 가 본 산중에서도 이름난 산과 그코스 그대로 나오니 체력 저하 우려도 있고 목표산행이 하나는 있어야 그래도 고민 하지 않고 산에 갈 것 같아 백두대간을 한 번 더 하기로 마음 먹었다.

첫 출발이라 그런지 아님 "대전시 산사모"의 명성 때문인지 출발 인원이 68명으로 차량도 2대 출발 한다. 시청으로 갈까 고민하다 돌아 올 때를 감안 하여 안영IC로 가기로 하고 친구에게 집으로 와 달라 부탁을 했다. 차량 2대 출발이라 인원 파악이 잠시 안되는지 회장님에게 연락이 온다. "천안의 박성범님 안영IC에 와 있느냐"고..

버스에 오르니 회장님 왈 "산행 마치고 도착하는 순서에 의해 회식 장소로 이동하여 두 버스 중 한 팀만 먼저 대전으로 온다"면서 "산행 예약을 하고 나오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예약 없이 출발지에 오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하신다. 차량에 탑승한 인원 일일이 인사를 시키시는 것으로 인사말은 마쳤는데.. 잠시 눈을 감은 것 같은데 어느사이 산행지 도착을 알린다.

산행지에 도착 간단히 시산제를 지내고 출발 하는데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좁은 길로 가니 추월 할 수도 없다. 어쩌다 오후조에 낑겨(?) 한참을 고생(?) 했는데 진행 할 수록 좁은 길에 비껴주지 않아 앞서 간 친구를 만나지 못해 안절부절 하다가 한참 후 만날 수 있었다. "산행 중 앞서가려는 것도 잘 하는 행동은 아니지만 산행 예절은 그래도 양보의 미덕이 더 있는 건 아닌지" 그런 씁쓸한 생각도 가져 보았다. 이번 백두대간 2차 산행을 하면서는 즐기면서 하고자 했는데 어느사이 젖은 산행 습관과 대전에 일찍 돌아 올 욕심 때문에 힘겹게 산행을 이어가야 했다.

백두대간 첫 종주 당시 한겨레 산악회의 완주 기념 바베큐 파티가 있어 인상 깊었던 매요리 마을에 도착하니 천안의 박성범님이 막걸리를 사 놓고 "한잔씩 하고 지나 가라" 면서 부르신다. 점심을 한 상태 였는데 두부에 매요리 휴게소 할머님이 건네준 김치 맛에 연거퍼 두 잔을 마시고나니 배가 많이 불러 산행에 지장이 있을 정도 였다.

고남산에 올라 인증 샷을 남기고 여원재로 향하는 길은 조급함으로 인해 더욱 힘겨움을 더했다. 여원재에 도착 해 보니 영선조는 이미 회식 장소로 갔고 20여명 남짓 버스에 승차 하니 바로 회식 장소로 이동 한다. 지리산 꺼먹돼지 회식을 한 후 1호차는 2호차를 남기고 출발..그것으로 산행 일정은 끝이다.

 

산행 사진

▲ 산행지 도착

복성이재는 복성(複星)마을에서 연유되어 생긴 이름인데 그 유래가 전해오고 있다. 복성마을은 장수군 번암면 논곡리와 남원시 아영면 성리 사이에 있는 조그만 한 산골마을로 행정구역으로 번암면 논곡리에 속한다. 이 마을은 백두대간의 능선이 크고 작은 봉우리를 이룬 첩첩산중이어서 농로도 제대로 없었다. 엣날에 변도탄 이라는 기인(奇人)이 있었는데 나라의 군량미를 관리하는 양관(糧官)으로 있었다. 어느 날 천기를 보고 삼년 내에 국가에 큰 전란이 잇을 것을 알았다. 앞으로 전란에 대비하여 국방을 튼튼히 할 것을 상소 했으나 평화시에 흑세무민(黑世誣民)한다는 이유로 삭탈관직을 당했다. 변도사는 하는 수 없이 피난처를 물색 하던 중 지리산을 의중에 두고 천기를 보니 북두칠성의 복성(複星)이 갑자기 남쪽에서 비치므로 별빛을 따라 지리산 쪽으로 가다가 별 빛이 멎은 곳에서 쉬었다. 이곳이 오늘날 복성부락에서 약간 떨어진 웃 복성마을이다. 변도사는 이곳에 움막을 짓고 피난을 했으며 전란 후에도 머물러 살게 되었다. 그로 인해 이같이 이름이 되었다고 전한다.

 

▲ 시산제 준비

▲ 무탈 산행 기원 하고..

 

▲ 단체사진 남기고

▲ 산행 시작

▲멀리 고남산이..

▲ 아막성터 (이 곳은 백제와 신라의 경계선에 있는 중요한 전략 요충지였다고 함)

 

 

▲ 새맥이재

▲ 멀리 고남산

▲ 지리산 휴게소

▲ 사치재 내려 가기 전 헬기장 (이곳에서 점심 식사)

▲ 사치재 (88 고소도로 확장 공사 중이며 굴다리 통해 대간 진행)

옛날 전란시절 재 아래 숲 속에 몇 집이 살고 있었는데 군사들이 이곳을 지나 갈 때에 이 마을 한 집에서 아낙네가 베를 짜고 있었다. 그 베 짜는 소리를 듣고 지나가는 군사들이 하는 소리가 그 새소리 참말 처량하다 하면서 동리가 있는 것을 모르고 지나갔다. 하여 모래재라 이름 하였다고 전한다. 풍수설에 의하면 비안낙사(飛雁落沙)라 하여 기러기가 모래밭에 앉은 형국이라 한다.

▲ 소나무 숲으로 이후 등로는 편한 편이다.

▲ 사치마을

유치(柳峙)-동국문헌비고와 여지도서에 있는 유명한 고개로서 장수군 번암면(幡岩面)유정리(柳亭里)로 넘는 고개.팔랑치와 접해 있고 길은 영남으로 통하여 관액이 될만하고 도적을 방어하는데 첫 길목이다.

 

 

▲ 매요마을 (운봉읍과 장수군과의 경계선상에 위치한 이 마을의 지세가 말의 허리를 닮았다 하여 처음에는 마요라 칭하다가 임진왜란 이후 사명대사가 전국산천을 유람하던중 이 마을에 들리니 매화향이 감도는 것을 느끼고 이 마을 사람들이 매화같이 선량할 것이니 지형과 인심에 어울려 매요라 하여 매요리라 바뀌게 되었다.)

▲ EBC 고참인 박성범님이 따라 주는 막걸리에 연거푸 두 잔을 마시고...

▲ 고남산에 있는 통신탑

▲ 고남산 정상에서 바라 본 모습 (덕두봉 쪽)

고남산(846m)- 산동면(山東面) 부절리(釜節里)와 운봉면 권포리(權布里)경계에 있는 산으로서 남쪽으로 반야봉을 비롯 수정봉이 보일 듯 말 듯 동쪽으로는 운봉 평야가 있다. 이 산의 고도는 846.5m에 지나지 않지만, 송신탑이 말해주 듯 중요한 통신시설의 한 곳이다.이 산은 또 "운봉평야"에 우뚝 솟아올라서, 예부터 전쟁터와 격전지의 방어선이 되곤했다는데, 지역 주민들이 "고남산"을 "태조봉"이라고 불러다는데, 그 까닭은 다음과 같다.고려말 우왕 6년(1380)에, 왜구 2천명을 이끌고 인월면 인월리에 본진을 둔 왜장 아지발도에,맞선 이성계가 무학대사와 변안렬을 참모로 삼고, 퉁두란을 아장으로 삼아 1천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한양을 출발하여 전주 한벽당에 잠시 쉬었다가 대오를 정비한 뒤 남원에 도착하였다. 이때 멀리 운봉쪽을 바라보니 고남산이 유난히 뾰족하여, 이곳에 올라 제단을 쌓고, 서쪽 기슭에 있는 창덕암 약수터에서 목욕재계하고, 3일간의 산신제를 올려 천지신명께 승리를 기원하고, 황산(荒山)에서 대승을 거두고 왜장 아지발도를 사살하였다. 왜장 아지발도는 일본에서 출발할 때, 애첩이 조선 황산의 산신이 크게 노하여 불길하다 하면서, 출정을 만류하였으나 애첩의 목을 단칼에 베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아지발도가 황산에서 죄 값을 받은 것이라고 하였다. 그 뒤 이성계가 조선 왕조를 건국한 뒤, 이 산의 이름을 "태조봉" 또는 "제왕봉"으로 불렀다고 한다.

▲ 고남산에 있는 통신탑

▲ 고남산 정상에서 바라 본 모습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보이는데 카메라 성능이 안좋아서 ㅠ)

 

 

 

▲ 여원재 산행 마침

여원치(女院峙)

남원시 이백면과 운봉면 사이의 고개로 일명 연재라고도 한다. 고개 서쪽으로 평원을 이룬 구릉이 운봉이다. 이곳에 상류가 있고 이 섬진강 사이에 남원시의 시가지가 펼쳐진다. 여원치는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국경선 이었다. 고려말 이성계 장군이 황산을 침입한 왜군을 무찌르기 위해 이곳으로 행군 했다. 행군도중 이 재밑에 이르니 백발 할머니 한 분이 나타나 ‘그대들의 지혜와 용모가 튀어나 이번 전투에서는 지리산 산신령님의 도움으로 승리할 것 이니 잘 싸워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성계 장군은 이 할머니의 말대로 황산 싸움에서 적장 아지발도 를 죽이고 대승리를 거두었다. 싸움을 이끈 이장군은 이 할머니의 예언을 기리기 위해 이곳을 여원치라 부르게 하였다고 전해진다.

 

▲ 회식 장소

▲ 꺼먹 돼지로 뒤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