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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산문선<설악행각(雪嶽行脚)>

설악행각(雪嶽行脚)(4)

설악행각(雪嶽行脚) (4) - 노산 이은상

 

장도진일반산화(長途盡日伴山花)1)

- 경성(京城)에서 소양강(昭陽江)까지 -

 

  이마큼 설악(雪岳)은, 신성한 존재인 동시에, 한국인에게 있어서는 문화 내지 역사와의 긴밀(緊密) 차(且) 엄숙(嚴肅)한 관계를 가진, 한국 마음의 한 개 표상(表象)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고인(古人)과 같이 융숭(隆崇)한 경배심(敬拜心), 그 엄숙(嚴肅)한 남무심(南無心)으로는 커녕, 단순한 자연미(自然美)의 애호심(愛好心)만으로도 설악 관성(觀省)하는 이가 태무(殆無)하여진 오늘의 현상(現狀)임을 생각하며, 그 까닭이야 어디 있든지간에 민연(憫然)한 마음을 금(禁)할 수가 없습니다. (중략)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차는 벌써 어딘지도 모를 산 모퉁이를 돌아가고 있습니다.

  경성(京城)서 인제(麟蹄)로 가는 차로는 홍천(洪川)을 경유하는 일로(一路)와 춘천을 경유하는 일로가 있는데, 전자는 시간이 빠른 득(得)이 있고, 후자는 경승(景勝) 고적(古蹟)을 보는 이(利)가 있으므로, 나는 일찍 춘천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춘천 경유로를 택했습니다.

  이씨조(李氏朝) 중엽(中葉)의 대문장가(大文章家) 월사(月沙)선생의 무덤을 ‘조종안’으로 지점(指點)하며, 양근(陽根) 가는 길로 갈리는 몫에, 한자로는 ‘사계(沙溪)’라 쓰고 부르기로는 ‘새내’라 하는 곳을 지나면서부터, 길은 점점(漸漸) 더 협미(峽味)를 띠고, 가을은 일층(一層) 더 심색(深色)을 보입니다.

  노변(路邊)이자, 산(山)이자, 야국(野菊)이 흩여진 곁으로, 머물줄도 모르고 달리는 자동차는 오히려 원망스럽습니다.

누구가 와서 이 노변(路邊) 산야(山野)에다 야국(野菊)을 일부러 뿌린대도, 이렇게야 골고로 다심(多心)도 하게 뿌릴수가 있겠습니까.

  길도 끝이 없고, 야국조차 끝이 없고, 산과 산은 다 뒤에 떨어져도 야국만은 오히려 끝이 없고…… 이를 일러 ‘장도진일반산화(長途盡日伴山花)’라 하오리까.

  산들한 가을 바람이 지날ㅅ적마다 야국이 송이송이 고개를 흔듭니다. 마치 사람은 노둔(魯鈍)하여서, 오묘(奧妙)한 자연의 일을 미처 깨닫지 못하는데, 저희는 벌써 인간의 일을 알아내었다는듯이……

  차는 어느덧 신연교(新淵橋)를 지나며, 부리산(鳳儀山)의 웅자(雄姿)를 향하여 달립니다.

  전에 보던 그 산이요 그 물이요 그 들판이라, 구면(舊面)의 반가움이 실로 고리(故里)를 찾음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전에 내가 이곳을 지날 때에는, 만산(滿山) 척촉()2)이 춘조(春鳥)의 노래에 맞추어 작열(灼熱)한 청춘(靑春)을 자랑했건만, 오늘은 노변 야국이 추엽(秋葉)의 탄식과 함께 황백(黃白)한 고독(孤獨)을 이기지 못합니다.

  정오(正午)를 조금 넘어 춘천(春川) 시가(市街)에 대었습니다. 춘천은 다시 보아도 맑은 곳이요 깨끗한 곳입니다.

  여기서 두시간을 지체(遲滯)한 뒤, 오후 3시경에 다시 인제(麟蹄)행 차에 올랐습니다.

  소양정(昭陽亭)으로 가는 강변 길에 와서는, 아직 소양교의 역사(役事)가 끝나지 않았으므로, 나루ㅅ배가 자동차를 업어 건넙니다.

  차차로 곳곳이 교량(橋梁)의 설비(設備)가 완전히 되면. 나루ㅅ배로 자동차를 건네주는 불편(不便)이 없어질것입니다마는, 그 대신 이것도 한가지 운치(韻致)로 보는이에겐 운치 하나가 덜어질 것이라고도 할것입니다. 여하간(如何間) 자동차를 실은 배가 중류(中流)에 떴을 때에 소양정 추색(秋色)을 바라보매, 량량()한 장류(長流)와 아울러 분명(分明)히 그 승경(勝景)임을 알겠습니다.

  더욱이 하늘과 강과 산이 서로 다 한껏 맑은 이 가을의 풍경(風景)은 참으로 아름답고 거룩합니다.

 

가을 강 가을 하늘 서로 제가 더 맑으려

구름도 걷힐러니 물결마저 고요한데

가을 메 저도 따라서 때를 바삐 벗더라.

 

 

 

자연(自然)의 자비(慈悲)와 위엄(威嚴)

- 소양강(昭陽江)에서 ‘도로지’3)까지 -

 

  차(車)가 소양강(昭陽江)을 건너서부터는 앞으로 갈 이백리 길이 바쁘다 하여, 있는 속력(速力)을 다 내는 모양입니다.

  언제 벌써 우수산(牛首山)을 지났습니다. 천천히 가도 좋은 길이었던들, 나는 예서 내려 우수산 팽오비(彭吳碑)를 볼것입니다마는, 시조(始祖) 왕검(王儉)이 신하(臣下) 팽오(彭吳) 를 시켜 진족(震族) 통일(統一)을 도모(圖謀)하시던, 그 오랜 자취 - 저 언덕 저 ‘수평’ 속에 있으리란 생각만 하고, 그냥 갑니다.

  ‘소머리’ 넓은 벌판에 황금(黃金)의 물ㅅ결을 치고 있는 벼 이삭, 조 이삭은 ‘이래도 굶는 이 있소?’하는듯이 자랑스러운채 오히려 딱한듯이 고개를 드리웠습니다.

 

소머리 너른 벌에 물결 치는 누른 곡식

무거워 드리운양 행인(行人)더러 하는 말이

이래도 굶는이 있소 볏는이4)가 있나요.

 

  입안으로 한숨을 죽이며, 멀리 들가를 바라볼 때, 구름 떠도는 산협(山峽) 길이 하도 좋기에, 물으니, 금화(金化) 가는 길이라 합니다. 언제고 또 한가(閑暇)한 틈이 있으면, 저 길을 꼭 한번 밟아보려합니다. 멀리 끝도 없이 가는 길 같아서.

  ‘천전(泉田)’이라 쓰고 ‘샘밭’이라 부르는 제법 큰 마을을 지나서, 산 투성이 강원도(江原道)에도 이런데가 있나 할이만큼 널리 펴인 벌판을 거치고나니, 다시 기다리던 사람 모양으로 쑥쑥 나서는 산과 산들이 옷 소매를 잡아당기며, 연방 제 인사부터 받고 가라 합니다.

  그러는 중에 어디로선지 ‘보는것보다 듣는것이 더 좋으니라’는듯이, 한줄기 청류성(淸流聲)이 눈까지 빼앗아다 듣는데 쓰려하기로, 대체 이 무슨 징조인고 하였더니, 알고보매, 고려(高麗) 중엽(中葉)의 이자현(李資玄)이 은거(隱居)하였던 청평산(淸平山) 청평천(淸平川)의 맑은 물소리입니다.

  청평거사(淸平居士) 이자현이 그 귀족(貴族)의 지위(地位)에 있어, 세간(世間)의 명리(名利) 복녹(福祿)을 누릴대로 누릴수 있었건마는. 젊어 일찍이 헌신같이 떨쳐버리고, 이 청평산 속에 들어와, 식암(息菴)을 짓고, 고상(高尙)한 기품(氣稟)을 상(傷)하지 않으려 하였습니다. 사회(社會)에 대한 모든 의무(義務)를 무겁게도 지고 있는 오늘의 우리들로서 보면, 그 같은 은둔(隱遁) 처사(處士)를 칭송(稱頌)할게 조금도 없습니다마는, 나는 그가 자연(自然)을 사랑하고 자연을 탐(貪)하던것, 세간에 있어 그 성기(性氣)를 더러일찐대, 오히려 떠나 물러나 그 고결(高潔)을 지키려던, 그 마음만은 숭상(崇尙)하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 차는 벌써 청평사(淸平寺) 십리(十里) 유곡(幽谷)도 저 멀리 아득하게 떨어쳐놓고, 약수(藥水)로 이름있는 추전리(秋田里)를 지나갑니다.

  이 추전리를 ‘가리ㅅ골’이라 함을 들으니, 추수(秋收)의 한국어가 ‘가리’임은 지금도 있는 말이어니와, 저 ‘カリィレ(가리이레)’란 것도 한국말에서 옮겨간줄을 알았습니다.

  말없이 가는 차 속에 적막(寂寞)과 피로(疲勞)를 잠깐 동안의 오수(午睡)로 씻고 깨어나니, 대인 곳이 양구(楊口)라 합니다.

고음(古音)엔 ‘불뫼’라 불렀을 비봉산(飛鳳山)의 엄전하신 모양을 향(向)하여, 한국 학도(學徒)의 머리는 저절로 숙여짐을 깨닫습니다.

  날도 이미 저물어가는데, 게다가 비 실은 구름ㅅ장이 군데군데서 하늘을 덮어듭니다.

  차는 다시 떠납니다. 구암교(九岩橋)를 건너 도촌(桃村)을 지나서니, 길은 하늘에 닿은 높은 산 고개를 향하여 나선상(螺旋狀)으로 오르게 되었는데, 점점 더 앞길이 캄캄해지며, 굵은 비ㅅ방울이 떨어집니다.

  멀리서 바라보매, 차로(車路)는 마치 투이()한 산성(山城)처럼 보입니다. 차로 이 높은 ‘도로지’ 열두고개를 넘어가야 합니다. 차가 영로(嶺路)의 첫머리를 들어섰을 때에 흑풍(黑風)은 차체를 날릴듯이 불고, 음우(陰雨)는 차로를 문을듯이5) 쏟아집니다.

  오정(午正) 전(前)에 그렇게도 청명(淸明)하던 일기(日氣)가, 이 깊고 높은 산협(山峽) 영로(嶺路)에 와서, 이렇게도 흉험(凶險)하게 변(變)할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나 이것은 자연이 내게 보이는 무서운 위엄입니다. 고즈낙히 안두(案頭)에 앉아 촌필(寸筆)로 능사(能事)를 삼던 내게 기어이 한번 보여주는 장부적(丈夫的) 기개(氣槪)입니다. 나는 차 안에 앉아, 이 뇌전(雷電) 폭우(暴雨) 속을 달리는채, 스스로도 방자(放恣)한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굽어보니 천장(千丈) 만장(萬丈) 공중으로 뜬양한데

눈앞은 번개칼질 우레 소리 어깨를 치네

사나이 숨긴 기운이 따라 한번 솟는구나.

시커먼 구름ㅅ장을 주먹으로 쳐 부시고

으악 큰 소리를 질러 어디 보내을고

비 속을 쏘아 달리며 자리 들썩 하는구나.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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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주)

1) 장도진일반산화 : 기나긴 길을 종일토록 산꽃과 같이 간다.

2) 척촉 : 철쭉나무

3) 도로지 : 강원도 양구군 남면 도촌리에서 원리로 넘어가는 고개. 도촌리의 옛지명이 ‘되레지’ 또는 ‘도리곶(桃里串)’이다.

4) 볏는이 : 옷을 벗는 사람, (= '헐벗는 사람'의 뜻)

3) 문을 듯이 : 묻을 듯이

 

▼ 조선시대 대동여지도에 춘천, 양구, 인제의 위치도. 양구~인제 길에 ‘도로지’가 ‘도리곶현(都里串峴)’으로 기록되어 있다.

 

▼ 조선시대 동여도 양구~인제 길에 ‘도리곶현(都里串峴)’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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