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악회 월간 회보 "산"('08년 6월호) - 한국산악 고전을 찾아서(5)
설악행각(雪嶽行脚)
노산 이은상
삼연(三淵)의 도중(途中) 시화(詩話)
- ‘도로지’에서 인제(麟蹄)까지 -
이같이 폭우 속을 달리는 동안, 나는 다시 문득 삼연의 시화 일절(一節)을 생각합니다.
내가 가는 저 설악산에 누구보다도 인연이 중(重)한 삼연 김창(金昌) 옹(翁)이 설악 가던 중도(中途)에, 오늘 나 모양으로 폭우를 만나 어느 석상(石床) 아래에 들어갔더니, 마침 그때 거기에는 일(一) 노수(老)1)가 앉아있고, 일(一) 노승(老僧)은 자고 있었습니다.
공(公)은 시사(詩思)가 발(發)하여 미음(微吟)을 말지 못할쌔, 곁에 앉았던 노옹(老翁)이 “조대(措大)2)는 무슨 가구(佳句)를 얻었소”하고 묻는지라, 공은 일구(一句)를 읊었습니다.
선산일면지무분(先山一面之無分)
추우숙숙고작마(秋雨肅肅故作魔)
(선산(先山)이 알괘라 연분이 없어, 가을비 부슬부슬 갈ㅅ길을 막네)
노옹(老翁)은 공의 시구를 듣고, “좋기는 좋으나 ‘지(知)’자가 불온(不穩)하니, ‘비(非)’자로 고쳐 ‘선산(先山)이 연분 없음 아니언마는…이라 하는 것이 더 좋겠다”하자, 그렁저렁 비는 개는지라, 노옹은 떠나버리고, 공은 다시 자는 중을 일으켜 또한 논시(論詩)코자 하매, 중은 깨어나 무엇이 원망스러운 듯이,
노승침바랑(老僧枕鉢囊)
몽답금강로(夢踏金剛路)
숙숙낙엽성(肅肅落葉聲)
취기추산모(驚起秋山暮)
(늙은 중 바랑을 베개하고서 꿈속에 금강(金剛) 길을 밟으렸더니, 우수수 나뭇잎 지는 소리에 놀라 깨니, 가을 메ㅅ빛 저물었구나)
하고 일장(一章을) 읊은 뒤에, 또 어디론지 가버리더랍니다. (시화(詩話))
이 시화(詩話)를 문득 생각함은, 무론(毋論) 지금 내가 폭우를 만나고 있기 때문입니다마는, 다시 생각하매, 오늘날은 이 깊은 중중(重重) 산협(山峽)에도 문명(文明)이 들어와, 이같이 폭우가 쏟아지건마는, 자동차의 힘을 빌어서 갈길은 가고 보는 것입니다.
삼연(三淵)이 피우(避雨)하던 그 석상(石床)은 어디었든지, 좌수(坐)와 수승(睡僧)3)은 다 누구였든지, 그는 지금에 모르거니와, 그네들 타화(打話), 그같이 운치(韻致)스러웠던 것을 생각하면, 도리어 이 ‘문명’이란 싱거운 존재가 아니오리까.
비ㅅ발 속으로 얼른얼른 바라보매, 혹은 양삼가(兩三家), 혹은 사오가(四五家)로 여기서도 한 마을들을 이루고 사는 모양입니다. 사람이란 ‘생(生)’에 대한 애착(愛着)의 강렬(强烈)함이 저렇구나 하였습니다.
험산(險山) 석로(石路)를 낑낑대며 올라온 우리 차가 신월령(新月嶺)을 썩 넘어서서부터야 한번 긴 숨을 쉬며 내려가게 되니, 이 령(嶺)은 양구(楊口), 인제(麟蹄)의 군계(郡界)요, 여기서 인제읍이 사십(四十)리(里)라 합니다.
길이 내려간다고 해서 결코 평탄(平坦)한것은 아닙니다마는, 사력(死力)을 다하여 이 준령(峻嶺)을 올라오던 것에 비하면 참으로 쉽습니다. “모든 고난(苦難)을 겪은 값이로다”하였습니다.
우중(雨中)임에도 불구(不拘)하고 이십리 밖에까지 마중나온 신문 기자를 중로(中路)에서 반가이 만나, 같이 인제읍에 대이니, 평일(平日)보다는 시간(時間)여(餘)나 늦은 오후(午後) 칠시(七時)입니다.
차실(車室)에서 유지(有志)하신 여러분을 만나 깨끗한 숙소(宿所)로 인도(引導)함을 받았습니다.
이삼(二三)시간이 지난 뒤, 이 보잘것 없는 여인(旅人)을 찾아와준 여러분들이 돌아간 뒤에 문득 창 밖을 보니, 자연의 일이란 과연 신비막측(神秘莫測)입니다. 그렇게도 쏟아지던 폭우는 슬쩍 간곳이 없고, 명랑(明朗)한 추월(秋月)이 반공(半空)에 높았습니다.
나는 미친듯이 뛰어나갔습니다. 아름다운 자연 앞에, 신비한 자연 앞에, 본시 광인(狂人) 아닌자 누구오리까.
이 첩첩산중(疊疊山中)에 자리를 잡고 인제란 고을은 옛날 고구려(高句麗)에서는 제족현(猪足縣), 신라(新羅) 때에는 희제현(?蹄縣), 고려(高麗) 때에 금명(今名)을 얻은 곳으로, 우리 전역(全域)에서도 차석(次席)을 설어할 심산(深山) 벽군(僻郡)입니다.
동으로는 비봉산(飛鳳山)이 하늘을 찔렀고, 남(南)으로는 팔봉(八峰) 연장(連)이 부채살을 펴었는데, 서(西)으로는 아미산(峨嵋山)이 키 자랑하고, 북(北)으로는 기룡산(起龍山)(고명(古名) 복룡산(伏龍山))이 점잖게도 보입니다.
인가(人家)는 물에 잠긴듯 고요합니다. 이곳 주인(主人)들은 오늘밤 이 청추(淸秋) 월색(月色)을 손 차지로 빌려주고4) 다 깊은 잠속에 들었습니다.
비봉산(飛鳳山) 아미산(峨嵋山)이 동서(東西)에 마주 솟아
달을 반공(半空)에 띄워 주건 받건 놀리울쩨
북(北) 기룡(起龍) 남천(南天) 팔봉(八峰)이 둘러 구경 하는구나.
주인(主人)은 돌아 누워 깊은 잠 달다 하고
뜬 손이 혼자 말아 복(福)을 잠깐 빌렸나니
좋구나 이 산 이 달이 모두 내것 이라니.
남교(嵐校) 고역(古驛)을 향(向)하여
제이일(第二日) (시월(十月) 십일(十日)) 우(雨). 인제읍(麟蹄邑).
부득이 오늘 하루는 여기서 머무는 수 밖게 없습니다.
설악(雪岳) 일만(一萬)봉(峰) 삼십(三十)동천(洞天)!
무론(毋論) 이것을 전부 답파(踏破)하기는 본시부터 불가능(不可能)에 속(屬)하는 일입니다. 거의 세부지(世不知)5)의 숨긴 곳이라, 그 요처(要處)만 밟아보려함에도, 내 스스로 노정(路程)을 새로 만들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다소(多少)의 고기초(古記抄)와 설악도(雪岳圖)를 펴놓고, 수삼(數三) 전답인(前踏人)의 여러 경험담(經驗談)에 비추어 가장 이상적(理想的)이라 할만한 노정을 정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취(取)하려는 이 노순(路順)이 반드시 어떤이에게든지 이상로(理想路)라고 단정(斷定)하는 것은 아니며, 또한 지금은 “조도(鳥道)”이외(以外)에 인도(人道)라고 하는 사암간(寺菴間)의 연락로(連絡路)가 겨우 있을 뿐이나, 듣건대, 이번을 계기(契機)로 하여 군(郡)으로부터 탐승로(探勝路)를 닦으려한다 하니, 만일 길이 생긴 이후(以後)에는, 더 이상적인 노정(路程)이 새로 생길수도 있을줄 압니다.
여하간(如何間) 이번만은 나 스스로 한 “코스”를 정(定)하고서, 덮어놓고 개척적(開拓的)으로 들어가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
밤에 강연(講演)이 있어, 늦게야 여사(旅舍)로 돌아와, 창 밖에 비 소리를 들으면서, 명일(明日)의 천기(天氣)를 근심하다가, 잠깐 눈을 붙이고 깨어난 청명(晴明)한 제삼일(第三日)(시월(十月) 이일(二日)) 오전(午前) 육시(六時). 이번 길에 동반(同伴)으로 모인 우리 십오인(十五人) 일대(一隊)는 자동차에 올라, 설악산(雪岳山)하(下) 남교리(嵐校里)를 향하여 달립니다.
우리 일행(一行) 중에는 이곳 각방면(各方面)의 유지(有志) 이외에 특히 지로(指路)를 위하여 앞을 잡는 “심뫼만이”(채삼인(採蔘人))며 곰과 산돼지와 표(豹) 같은 짐승을 막기 위(爲)하여 가는 포수며 세상에 이산 승경(勝景)의 물영(物影)을 전하고자 나선 사진사(寫眞師)가 있어, 더한층 이채(異彩)스럽습니다.
평화(平和)와 정결(淨潔)의 새벽 빛에 싸인 인제(麟蹄) 시중(市中)을 돌아다보매, 그 아름다움이 결코 “채운간(彩雲間)의 백제성(百濟城)”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다시야 또 언제 이 산간(山間) 변군(卞郡)에 올 길 있으랴”하여, 연연(戀戀)코 섭섭한 마음에 연방 차밖으로 고개를 밀어 돌려다보면서, 야전(野田)간(間)으로 얼마쯤 달리다가, 노변(路邊) 강상(江上)에 고창(古蒼)한 정자(亭子) 일우(一宇)가 있음을 보니, 이것은 합강정(合江亭)입니다.
여기서 조금 올라가, 서화(瑞和)로서 오는 물과 설악으로서 오는 물이 이미 합하고, 그 합수(合水) 흐르다가 다시 여기에 와서 오대산(五臺山) 우통(于筒)으로서 오는 물과 또 합류되어 흐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합강의 정명(亭名)이 생겼거니와, 듣건데, 전일(前日)에는 합강정가(合江亭歌)가 행(行)하였다하나, 지금엔 들을길 없음이 퍽 유감입니다.
여기 한가지 부언(附言)하는 것은 지금 우리의 고문학(古文學) 중에 합강정가(合江亭歌)란 것이 있기는 하나, 그것은 전남(全南) 순창(淳昌)에 있는 합강정(合江亭)의 노래며, 또한 그것에는 부사(府使), 현감(縣監)에 대(對)한 다른 특수(特殊)한 관계(關係)까지 있는 민간(民間)의 풍속(風俗) 가사(歌辭)이므로, 이곳 합강정과는 상관없는 노래임을 주의(注意)해둘것입니다.
차평리(車坪里)라 이평리(泥坪里)라 하는 두어 촌락(村落)을 지나, 서호(西湖)라는데 대이니, 강상(江上)에 교량(橋梁) 역사(役事)가 한창입니다.
우리는 아직 자동차를 배에 실어 건느는수 밖에 없거니와, 배로 건느거나 다리 위로 건느거나간에 이 서호(西湖)의 승경(勝景)은 오직 한군데 초당봉(草堂峰)에 있겠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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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주석
1) 노수(老叟) : 노옹(老翁)
2) 조대(措大) : 예전에, 청렴결백한 선비를 이르던 말.
3) 좌수(坐叟)와 수승(睡僧) : 앉아 있던 늙은이와 잠자고 있던 중
4) 손 차지로 빌려주고 : 손님이 차지하도록 맡겨두고
5) 세부지(世不知)의 : 세상에서 알지 못하는
▼ 조선시대 해동지도 강원도 인제현 부분 : 인제의 향교, 관아, 객사, 창고, 합강정의 위에 진산인 복룡산, 아래쪽에 비봉산이 있고,
미시령, 오색령의 갈림길에 남교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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