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악회 회보 월간 "산" (2008년 7월호) - 한국산악 고전을 찾아서
설악행각(雪嶽行脚) (6)
노산 이은상
초당봉은 강류(江流) 좌상(左上)에 보이는 일(一) 소도(小島)로서, 실로 이 서호 장강(長江)의 값에서 한냥만 남기고 아홉냥은 떼어 저 초당봉에 줄것입니다.
전일(前日)에 누구가 저기다 초당(草堂)을 지었든지는 모르나, 지금은 초당봉을 바라보며, 그래도 초당이란 이름 그것에 끌리어 고담(古譚) 풍경(風景) 같은 부질없은 상상(想像) 끝에 노래를 부릅니다.
초당봉(草堂峰) 강언덕에 초당(草堂) 한간 세운다면
밤ㅅ중만 강물 위에 글 소리 들리더니
날랑은 배ㅅ손이 되어 초당(草堂) 밑을 지나리라.
원통리(圓通里)(圓을 元으로 씀은 틀린 일) 송거리(松巨里)를 지나 어두교(魚頭橋)를 넘어서니, 소허(少許)1)에 불교설화(佛敎說話)를 가진 청동(靑銅) 벼래란 절벽(絶壁) 밑을 지나가게 됩니다. 이 청동 벼래는 수백장(數百丈) 수직(垂直)으로 깍아지른 청석(靑石) 절벽인데, 길 아래로 설악(雪岳)서 오는 대하(大河)가 흐름은 마치 평양(平壤)의 청류벽(淸流碧)과 같습니다.
절벽을 지나 얼마만에 강 건너 한 촌락(村落)이 있음을 보는데, 그곳은 지금 부흥동(富興洞)이라 하나, 실상은 와천(瓦川)이란 고호(古號)가 있는 곳입니다. 와천 뒤에 있는 두 소봉(小峰)은 학자봉(鶴子峰)이요, 그 뒤에 높이 솟은것은 학모봉(鶴母峰)인데, 우편(右便) 산곡(山谷)을 어은곡(魚隱谷)이라 하니, 이는 학이 있으므로 얻은 이름이겠고, 어은곡 우편 와천(瓦川)의 안산(案山)을 “부엉산”이라 하며, 로하(路下) 강중(江中)에 내어민 대암(大岩)을 구암(龜岩)이라 하여, 여러 어조명(魚鳥名)으로써 한판 재미있게 살림을 벌렸습니다. 그러고보매, 동명(洞名)의 “부흥(富興)”이란 것은 실로 “부엉”산명(山名)의 부질없는 한자(漢字) 대역(對譯)임을 알겠거니와, 이런 한역(漢譯)은 고유(固有)한 시적(詩的) 운의(韻意)를 상(傷)함이 크다 하겠습니다.
이리로 하여 앞으로 고(古) 원통(圓通)을 지나고, 정자문리(亭子門里)를 거쳐 남교리(嵐校里)에 대이니, 읍에서 오십리요, 이곳은 다 전일(前日)에 역(驛)이 있던 곳입니다. 그런데 남교(嵐校)를 혹 남계(嵐溪), 남계(藍溪), 남교(藍校)등 여러 가지로 쓰는 모양이어니와, 그 시비(是非)를 말한는 것은 아니나, 이미 그 이름대로 쓸찐대, 문적(文籍)에 가장 먼저 적힌 것으로 볼수 있는 “남교(嵐校)”로 씀이 좋을줄로 압니다.
▲ 최근의 설악산 남교리~십이선녀탕~대승령 등산코스 안내도 (실전명산순례 700코스, 홍순섭 저, 깊은솔 2004.2.20)
지리곡(支離谷)의 산주소(散珠沼)
남교리(嵐校里)에서 우편(右便) 대천(大川)을 건너, 활한바탕쯤 야로(野路)를 지나서니, 비로소 산곡(山谷)이 시작되는 초입구(初入口)에 돌무더기 산제당(山祭堂)이 있습니다.
이것은 물을것 없이 ‘설악주신(雪岳主神)’을 모신 곳으로서, 지금껏 행하고 있는 민간 신앙의 유물이어니와, 누구나 여기서 신성(神聖) 숭고(崇高)한 설악 자연(自然)에 대한 감명(感銘)의 불 세례(洗禮)를 받고 가라 하심인가 하고 생각하매, 가던 발을 잠깐 멈추고, 내 몸에 묻혀온 모든 과구(過垢)를 다 떨어버리어, 기쁘고 가뜬함으로 이 지선(至善) 지미(至美)의 왕국을 관성(觀省)하여야겠다고 느껴집니다.
관차초연물외신(觀遮超然物外身) 구제방촌괴평인(求諸方寸愧平人)
소소자유난기자(昭昭自有難欺者) 죄아기유설악신(罪我其惟雪岳神)2)
이라 한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의 시구(詩句)를 문득 생각합니다.
시인(詩人)은 결코 시(詩)를 쓰는자가 아닙니다.
시인은 진선미(眞善美)를 비치기 위하여 그 심경(心境)을 부절(不絶)히 불식(拂拭)하는자라야 할것입니다.3)
은기(隱欺)4)하지 못할 죄과(罪過)가 내 몸 내 마음 속에 그득하고도 홍진만장(紅塵萬丈)5) 속에서는 추호반점(秋豪半點)6)이 보이지 않았건만, 이 거룩한 자연의 문전(門前)에 이르매, 스스로 소소(昭昭)7)하여 설악신(雪岳神)에게 고(告)하지 않을 수가 없음을 느낍니다.
여기서부터 들어가는 산곡(山谷)을 ‘지리실’이라 부르는데, 한자 기록에는 ‘지리곡(支離谷)’이라 하였고, 혹(或) 본(本)에는 ‘지리실(支離室)’이라고까지 쓴데가 있습니다.8)
차차로 청기(淸奇)의 도(度)를 더하면서, 오관(五官)과 육정(六情)의 맹활동(猛活動)을 요구(要求)하는 수성(水聲) 산색(山色)은 너나없이 모든이의 얼굴위에 까닭없는 웃음을 재촉합니다.
앞서 가는 심뫼만이- 한곳을 가리키며, ‘저것은 첫구융소, 그 다음것은 둘째구융소’라 하는 말에 바라보니, ‘말구융’(마조(馬槽)) 같이 바위 흠이 패인것이 둘이 연(連)하여 이층(二層)의 소폭(小瀑)을 지었습니다.
푸르다못하여 검은 물 빛은 ‘이 쇠같은 반석(盤石)을 홈 파내기에, 나는 천만년(千萬年) 사력(死力)을 다하였노라’는 그 무서운 쾌심(快心) 노력(努力)의 자랑 같았습니다.
입구(入口)로부터 여기까지는 그래도 벌목상(伐木商)의 출입(出入)이 끊이지 않아서, 혼자 가도 갈만한 길의 형적(形迹)이 있습니다마는, 차츰 길은 우거진 초림(草林)과 흩어진 암석(岩石)에 그 실마리를 흐려버리고 다만 다람쥐 밖에는 첫 번 들어와 찾아갈 도리(道理) 없는 그런 곳이 시작됩니다.
두 언덕에는 옹울(?鬱)한 수림(樹林)이 낮이라고 오히려 귀화(鬼火)가 보일듯한데, 얼마쯤 더듬어 오르다가, 또 한번 ‘셋째구융소’를 보고서는, 소위(所謂) ‘안돌이바위’를 안고 돌아가게 됩니다.
일백(一百) 이십도(二十度)쯤 경사(傾斜)진 광대(廣大)한 반석(盤石)에는 오랜 창태(蒼苔)로 옷을 입혀서, 한발 아차하면 일순(一瞬)도 길다 하고 수중(水中)의 권속(眷屬)을 만들 곳인데, 다행히 손으로 안고 붙어돌아갈 바위가 따로 놓이어, ‘네 목숨은 내 붙들어주마’하는 바람에, 첫 몫에서부터 끊일뻔하는 ‘구경욕심’을 다시 살려가게 됩니다.
우리는 떨듯이하면서, 한 사람이 거의 이삼분(二三分)씩의 시간을 걸려, 이 고맙고도 밉고 밉고도 고마운 안돌이바위를 안고 돌아가매, 또 한번 ‘넷째구융소’가 있습니다.
이 ‘넷째구융소’를 지나서, 산주소(散珠沼)라는 일(一) 와폭(臥瀑)을 만나니, 이는 이렇듯한 험기(險奇) 속에서 별로 맛보는 달콤한 위안(慰安)입니다.
더구나 여기와서는 비교적(比較的) 광평(廣平)한 암석(岩石)이 순하게 엎드려서, 기대고 눕기를 청(請)하는 듯함이 험(險)을 지난 우리에게는 더한층 느낍습니다.
산이 ‘기장(奇壯)’하려하여 자연히 ‘험난(險難)’해진것임을 생각하면, 오히려 험난한 이것이 고맙기도 하겠지마는, 험난 중에 이런 ‘순평(順平)’이 있음을 만나매, 저는 참아 못 험한 그것이 수석(水石) 중에도 인자(仁慈)한 자품(資品)을 가진자 같아서, 만지고 밟는 여기서 그대로 안길데를 찾고도 싶습니다.
가벼이 날리는 듯 펑펑 ?히는듯 돌 뿌다귀에 부딪고, 돌 모서리에 미끄러지고, 돌과 셋이 뭉치어 한 알이 되었다가는, 다시 그것들이 서로 마주쳐, 열도 되고 스물도 되어 깨어지고 흩어져서, 돌확에 아람 같은 덩이를 지어 흘러내리는 저 산주소(散珠沼)의 경관(景觀)은 시로 금강(金剛)의 산주연(散珠淵)과 명실(名實)이 같은자입니다.
생기고 또 생기어 다함 없는 이 구슬을
헐고 또 헐어 아낌 없이 쏟는 여기
이 한알 주워간 사람 어느 뉘라 하더이까.
옥(玉)이라 팔더이다 옥이라고 사더이다까
사려 사올찐대 그 옥이야 귀하리까
보을뿐 쥐진 못함이 참 옥인가 하나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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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호 기사중 “삼연(三淵) 김창(金昌) 옹(翁)”을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으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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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주
1) 소허(少許) : 얼마 지나지 않아
2) 얼른 보면 세상물정 뛰어난 몸인 양 해도 / 가슴속 뒤져보면 남에게 부끄러운 일 많소이다 / 또렷도 할 사 스스로 못 속일 것 있거니 / 나를 죄 줄 이는 오직 ‘설악신’이로소이다. - 한국산악문고 1편(이은상저, 한국산악회 1975년11월 발행) ‘노산산행기’에서
3) 부절(不絶)히 불식(拂拭)하는자라야 할것입니다. = 끊임없이 쓸고 닦는 자라야 할 것입니다. - (상동)
4) 은기(隱欺) = 몰래 속이다.
5) 홍진만장(紅塵萬丈) = 붉은 티끌이 그득함.
6) 추호반점(秋豪半點) = ‘추호’는 가을철에 가늘어진 짐승의 털이란 뜻으로, 매우 적음을 나타냄. ‘추호반점’은 ‘털의 반쪽’의 뜻.
7) 소소(昭昭) = 밝히다. 드러내다.
8) 지리곡(支離谷), 지리실(支離室) : 지금의 십이선녀탕(十二仙女湯) 계곡. 대승령(1260m)과 안산(1430m)에서 발원하여 인제군 북면 남교리까지 이어진 약 8km 길이의 수려한 계곡이다. "지리곡(支離谷)", "탕수골" 또는 "탕수동계곡(湯水洞溪谷)"으로 불리웠다. 그러던 것이 50년대말부터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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