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행각(雪嶽行脚) (8)
노산 이은상
특유(特有)한 ‘탕(盪)’의 경관(景觀)
이 칠곡(七曲)의 음율(音律), 이 구선(九仙)의 무용(舞踊)도 잠깐 본채로 떠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내 걸음이 실상인즉 무한(無限)히 야속합니다마는, 앞으로 기관(奇觀), 미관(美觀), 성관(盛觀), 장관(壯觀)을 더 보지 않으면 안되는 내 걸음도 다시없이 감사(感謝)함이 아니오리까.
이렇게도 아름다운 물, 깨끗한 물을 보내주시는 그 근원(根源)이야 오작히나 좋을가 하는 무한한 기대(企待)를 가슴에 품고, 구선의 전당(殿堂)을 벗어나는줄도 모르고, 아까운줄도 모르고, 언제 벌써 좌(左)로 건느고, 우(右)로 건느고 몇 번이나 지자(之字)풀이를 하였습니다.
가져야 할 계곡미(溪谷美)의 온갖 요소(要素)를 하나씩 하나씩 ‘또 있다 또 있다’를 자랑하면서 고내 보이는 이곳이라, 비록 한 걸음 사이야 ‘고기’요 또 ‘고기’겠지마는, ‘고기’란 ‘고기’가 활사(活寫)의 필름 같이 눈한번 감았다 뜬느 고 사이에 ‘야! 이것봐’를 연발(連發)하게 하고야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처 좌우(左右)는 둘러볼수도 없이, 앞으로 앞으로만도 직혀가기가 힘듭니다. 아니, 무론(毋論) 워낙 험난(險難)한 길이라, 발딛고 갈데를 조심함에도 좌우 살필 여력(餘力)은 없기야 없지마는…
그 때문에 잃어버린 승경(勝景)도 많으려니와 그중에 지로인(指路人)이 내 소매를 당겨주지 않았던들, 참말로 눈뜬 소경의 한탄(恨嘆)을 할뻔 한것은, 구선대에서 십오분쯤 올라온 때에, 계곡의 본류(本流)에서는 조금 떨어진 저편 좌벽(左壁) 위에 또 한번 기장(奇壯)한 응봉폭(鷹峰瀑)이 내려질림이외다.
이 탕수동(盪水洞)으로 몇 번 내왕(來往)한 토인(土人)들도 이 응봉폭은 못 보았노라 한다는 그만큼 불우(不遇)한 경승(景勝)이어니와, 세간(世間)에도 불우(不遇)한자가 실로 그 잘나지 않은자 없는 격(格)으로, 여기 이 불우한 승경(勝景) 응봉폭도 결코 남뒤질 어른이 아니십니다.
폭명(瀑名)은 그것이 응봉(鷹峰)의 하(下)에 있기 때문에 얻은것이고, 길이도 실로 수백척(數百尺)을 상하(上下)함직한 승관(勝觀)입니다. 그러나 남들 다 모인 자리에서 외로이 빗겨나 저 혼자 따로 선만큼, 그 불우(不遇)에 조의악식(粗衣惡食), 고심노사(苦心勞思)한 탓이온지, 수량(水量)은 여윈 품입니다. 아니, 하지만 사람도 고품(高品)의 선비는 그 몸이 비대(肥大)하지 않은 것 같이, 오히려 그 청수(淸秀)한 약류(弱流)가 어찌보면 외롭고 슬프시어도, 다시 보면 단단한 기개(氣槪)가 사람의 심장(心臟)을 은(銀) 화살로 쏘는것 같습니다.
나는 이제 ‘불우’의 슬픔을 노래하고 싶습니다. 특별히 시형(詩型)조차 저 약류(弱流) 장폭(長瀑)에 맞추어 연래(年來)의 신(新)제창(提唱)인 양장(兩章) 시조(時調)형(型)을 취(取)합니다.
까마귀 뭇 까마귀 내로라 다투어도
청강(淸江)에 숨어 뜰찌언정 백노(白鷺) 아니 좋을는가.
사해(四海)에 이름 날려 저뿐인양 할찌라도
파묻힌 천재(天才) 호걸(豪傑)이 더욱 아니 그리운가.
잘나고 품(品)도 좋아 저리 시원 하건마는
경(景)에도 불우(不遇)가 있다니 다시 한번 애닯아라.
여기서부터 올라가는 약(弱)한 오리(五里) 동안은 무슨 특수(特殊)한 경물(景物)이랄 것은 없는 그대로, 이 유벽(幽僻)함, 이 험준(險峻)함, 이 산기(山氣)와 아울러 무시무시한 깊은 협중(峽中)임을 발ㅅ걸음 걸음마다에 더욱더욱 느끼게 됩니다.
옛 사람이 산곡(山谷)의 성질(性質)을 말할 때,
다석자백이초(多石者白而峭), 다토자창이웅(多土者蒼而雄)1)
이라 하거니와, 여기 이 동곡(洞谷)을 평(評)함에는, 양자(兩者) 중에 그 어느 한편이 아니고, 양자(兩者)를 겸(兼)한자라 함이 옳겠습니다.
평활(平濶)한 석상(石床), 그리고 뇌락(磊落)한 암괴(岩塊)를 통(通)하여서는, 비류(飛流)와 징담(澄潭)이 끊임없이 군데군데서 영락(瓔珞)의 광채(光彩)를 뿜어내고, 울창(鬱蒼)한 송백림(松柏林), 홍태(紅苔)의 진퍼리2)는 높은자 깊은자에 실로 위대(偉大)한 단조(單調)를 지켰습니다.
이리하여 약 이십분을 지나 오르니, 금시로 이 산중(山中)에 무슨 큰 난리가 일어난줄만 속아보도록 장폭(長瀑) 대폭(大幅)이 성성(聲聲) 대후(大吼)하는양은, 묻지 않아도 이 동곡(洞谷)에 군림(君臨)하신 그 옥좌적(玉座的) 존재(存在)일씨 분명(分明)합니다.
과연 이 동곡을 탕수동이라 한 ‘탕(盪)’ 그것이 여기 이것입니다. 전후(前後) 합(合)하여 저 남교리(嵐校里)에서 이십리를 거(距)한 이곳에서부터 소위(所謂) ‘탕’이란게 시작됩니다.
폭하(瀑下)에 들어서자, 일목(一目)에 들어오는 삼절(三折)의 대폭(大瀑), 아니, 일(一)장폭(長瀑)으로 본다면 삼절(三折)이라 하겠지만, 실상인즉 별개(別個) 삼(三)대폭(大瀑)의 연속(連續)으로 볼 이 희유(稀有)의 장관(壯觀) !
또한 폭하에 괸 물을 아무데서고 대개는 담(潭)이라 연(淵)이라 하지마는, 여기서는 별로 이 ‘탕(盪)’이라 하는데, 그 까닭은 글자 그대로 한 반석(盤石)이 둘러패어 큰 석연(石淵)이 된때문이어니와, 또한 그대로 이 ‘반(盤)’이야말로 이곳 특유(特有)한 경관(景觀)입니다.
그래서 폭포(瀑布)도 좋건마는, 폭포는 이름조차 없어지고, 다만 탕(盪)의 이름뿐입니다.
‘독탕’(甕盪:옹탕)이라 ‘북탕’(梭盪:사탕)이라 ‘무지개탕’(虹盪:홍탕)이라 하고, 폭포는 각기 끼어 들어가 행세(行勢)를 얻어하는 셈입니다.
폭포가 없으면 탕이 없을 그 점(點)으로 보아서는 주객전도(主客顚倒)라 하겠지마는, 탕 때문에 폭포가 더 이름남을 생각하면, 탕의 이름으로 행세(行勢)하는 폭포도 그리 설을것3)은 없겠습니다.
조화(造化)의 고심(苦心) 역작(力作)
한 옛날 조화주(造化主)가 이 산을 만드시고 이 유벽(幽僻)한 동부(洞府) 속에다 신비(神秘)한 탕(盪)을 파내시기에 자갸도4) 응당 힘드셨을것입니다.
생각하면, 설계(設計) 기공(起工)이 있은 후 사람으로서는 할수도 없고 알수도 없는 오래오랜 세월(歲月)을 걸려서 지금 보는 이 탕을 준성(竣成) 한것이려니와, 그 같이도 천만년 긴 세월동안 파낸 이 탕은 그래 필경 누구의 목욕(沐浴)을 위함이리까.
보매, 사람도 이 탕속에 들기만 하면 생환(生還)할 생각은 끊어야겠고, 들으니 짐승이라도 빠지기기만 하면 그만이라니, 과연 이 탕은 무엇을 위하여 생김인지요.
천만년(千萬年) 큰 공(功) 들여 탕(盪)을 여기 파내시고
사람 짐승을 다 못 들게 하시거늘
눌5) 위해 이 맑은 옥수(玉水) 밤낮 괴어 두시는고.
송림(松林)에 높은 달이 하늘 먼길 가올ㅅ적에
이 탕에 잠깐 들어 쉬어 가라 하심이리
원컨대 이 허울 벗고 나도 달이 되옵고자.
떠도는 구름 송이 떠오고 떠가다가
뜬채로 여기 들어 근심 없이 춤추나니
차라리 이 허울 벗고 구름이나 되옵고자.
공산(空山) 나무나무 떨어지는 마른 잎도
마지막 거두어서 고이 씻어 보내시네
슬프다 사람 된 한을 예와 다시 알것구나.
이와같이 사람에게는 목욕을 허락하지 않는 탕이라 섭섭하지 않은 바도 아니지마는 그러나 이 신비한 탕을 보여주는 것만도 자연은 그만큼 은혜(恩惠)롭고 감사(感謝)한 존재(存在)가 아니오리까.
우리는 여기서부터 세상에서 쓰던 다른 모든 어휘(語彙)는 다 잊어버린듯이, 그저 ‘탕’ ‘탕’이란 말만 되뇌이면서, 탕 구경을 짚어 오릅니다.
저 아래를 지나올 때에도 말한것입니다마는, 여기서부터 또 다시 층층(層層) 탕탕(盪盪)이 다만 일(一)장석(張石)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봅니다.
무론(毋論) 길이 있을리는 없습니다. 이 무서운 물ㅅ가, 대반석(大盤石)의 등성이를 더듬어 올라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앞을 보자니 눈은 떠야겠고, 눈을 뜬즉 손발이 떨리고, 손발을 안떨려면 애초에 올라갈 생심(生心)을 그만두어야겠고, 기어이 구경은 해야하겠으매, 부득불(不得不) 내 병(病) 아닌채 사지한도(四支寒掉)의 전증환자(顚症患者)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초탕(初盪) 하(下)에서 한꺼번에 볼수 없던 삼탕(三盪)을 위에 와 내려보니, 초탕인 ‘독탕’은 독처럼 생겼고, 그 다음 ‘북탕’은 끝이 빤것이 다시 의논(議論)할 것 없는 ‘북’(梭:사)인데, 또 그 다음 ‘무지개탕’은 물형(物形)에 견줄 무엇이 없으므로, 그 장폭(長瀑)에 채홍(彩虹)이 움직임을 가져다 탕명(盪名)을 삼은 것 같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동곡(洞谷)이 우편(右便)으로 돌아들었는데, 반석(盤石)은 여전(如前)히 계속(繼續)되었으나 발 붙일 곳은 끊어집니다.
그리하여 잠깐동안 풀숲 길로 나서서 올라가게 됩니다. 그 일보(一步)와 이보(二步) 사이의 안위(安危)를 보증(保證)할 길 없는 경사(傾斜)진 반석의 길을 떠나는 것만도 너무나 고마워서, 뉘게 드리는 치하(致賀)인지도 불분명(不分明)한채, ‘참 감사합니다’를 발(發)하는 한편, 비로소 양미간(兩眉間)을 펴고서 탕류(盪流)의 경(景)을 마음놓고 보게 됩니다.
제(第)삼탕(三盪)을 지나서도 혹장(或長) 혹단(或短), 일대(一大) 일소(一小)의 차이(差異)는 있으나, 역시 유형(類形) 동질(同質)의 탕이 그대로 연속적으로 다섯이 더 있습니다.
이 오자(五者)도 하(下)삼자(三者)에 비(比)하여 결코 손색(遜色)이 없습니다마는, 무슨 불행(不幸)으로인지 이름이 없고, 다만 그중에서 최상(最上)의것을 용탕(龍盪)이라 할뿐입니다.
권소유(權小遊)의 기(記)에도 탕명을 명기(明記)하지 않음을 보면, 본시부터 무명씨(無名氏)로 살아오신 모양입니다.
어찌 생각하면 조그마한 돌맹이 하나에도 명자(名字)가 둘씩 셋씩 붙는데, 이런 신폭(神瀑) 영탕(靈盪)에 함자(啣字)가 없다니? 하겠지마는, 다시 헤아리면, 인간의 잡(雜)된 지식(知識)으로부터 무어라고 불리움을 받지 않으신 그것이 오히려 더 깨끗하고 더 빛남이 아니오리까.
내가 감(敢)히 후(後)에 오는이에게 더불어 의논(議論)하노니, 우리 이것만은 구태여라도 영원(永遠)한 무명씨로 그냥 모심이 어떠하니이꼬.
이대로 좋으이다 이대로 보시오들
사람이 짓는 이름 천부당(千不當) 만부당(萬不當)을
말로써 부르지 말고 마음으로 부르시오.
초탕(初盪)(甕盪:독탕)에서 최상탕(最上盪)(용탕(龍盪))까지 오르는 동안의 시간은 약 십오분이요, 수효로는 상하 합하여 대소간 팔폭(八瀑) 팔탕(八盪)입니다.
그런데 이 탕의 수효에 있어서, 토인(土人)들은 이르되 십이폭(十二瀑) 십일탕(十一盪)이라 하고, 권기(權記)에는 오폭(五瀑) 십탕(十盪)으로 적혔습니다. 같은 경(景)을 같은 눈으로 헤아린 것이 이같이 차위(差違)됨은 무론(毋論) 과장(誇張)으로나 취사(取捨) 여하(如何)의 소치(所致)이겠지만, 나는 우리 여러 사람의 일치(一致)한 계산(計算)에 거(據)하여 팔폭(八瀑) 팔탕(八盪)이라고 써두는 것입니다.
최상(最上) 용탕(龍盪)에는 수폭(垂瀑)의 나(裸)벽면(壁面)에 소위(所謂) ‘용혈(龍穴)’이란 것이 시꺼멓게 뚫렸는데, 자고(自古)로 토인(土人)의 기우처(祈雨處)라 하는만큼, 이곳을 단순(單純)한 승경(勝景)으로 보기보다는 오히려 신성(神聖) 영험(靈驗)한 존재(存在)로 알아왔던 자취도 살필 수 있겠습니다. 그는 여하간(如何間)에 탕변(盪邊) 암상(岩上)에 앉아 보매, 과연 급류탕쇄(急流碭碎)하고 만루력집(萬縷瀝集)6)하여 탕에 괸 물이 오히려 다시 떨어지기를 바삐하는데, 여파(餘波)가 사방(四方)에 흩어져 영영연(瑩瑩然)한 공화(空花)를 피어7) 그 끝이 없는양은, 사람으로하여금 술 아닌 술에 취(醉)하잖은 취중(醉中)으로 끌어들입니다. 이곳이야말로 조화(造化)의 고심(苦心) 역작(力作)한 곳이어니 어찌 도취(陶醉)를 사양(辭讓)할 것이며, 또한 어찌 도취(陶醉)를 피(避)할ㅅ길 있으리까.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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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주
1) 돌이 많은 데는 희고 날카롭고, 흙이 많은 데는 푸르고 웅장하다 - ‘노산산행기’(이은상저, 한국산악문고 1편, 한국산악회 1975년11월 발행)에서
2) 진퍼리 : "진펄"의 뜻으로 "땅이 질어 질퍽한 벌", “습지”를 말함
3) 설을것 = 서러울 것
4) 자갸도 = 자기도, 자기 자신도
5) 눌 = 누구를
6) 급류탕쇄(急流碭碎)하고 만루력집(萬縷瀝集)하여 : 급히 떨어져 부서지고 땅에 괴이기가 무섭게 - ‘노산산행기’(상동)에서
7) 영영연(瑩瑩然)한 공화(空花)를 피어 : 맑고 빛나는 꽃가루를 흩어 - ‘노산산행기’(상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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