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산문선 / 1954년판 표지
한국산악회 월간회보 "산" 2008년 4월호 - 한국산악 고전을 찾아서(3)
설악행각(雪嶽行脚)(3)
- 설악(雪岳) 명칭(名稱)의 고구(考究)
노산 이은상
무론(毋論) 이 ‘설(雪)’은 우리 고어(古語)의 ‘’에 대한 음역자(音譯字)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 ‘’이란 것은 거기에 가장 중대차엄숙(重大且嚴肅)한1)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인 바, 그것이 지명 혹은 산천 명호(名號)로 쓰인 것에는 그 곳이 신성한 영역임을 표시한 경우입니다.
그런데 반도(半島) 산천의 명칭과 ‘’과의 관계를 말하기 전에 먼저 잠깐 이 ‘’의 의미에 대한 구명(究明)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말 가운데서 가장 허구(許久)한 역사를 통하여 겨레 전체가 그 정신적 입각(立脚)과 또는 이상을 오로지 ‘광명(光明)’ 일점(一點)에 두고서, 그 생활, 신념, 교의(敎義)의 가장 크고 가장 힘찬 표어로 이 ‘’이란 말을 보배로이 지녀온 것입니다.
이 ‘’은 ‘생명’의 절대 긍정, 절대 유지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인간 범유의 활동상을 총칭하여 가로되 ‘산다’ 즉 ‘생활한다’하는 것과 그것을 명사로 말할 때 ‘살음’ ‘삶’이라 하고 그 ‘사’는 사실의 표시요 요건인 ‘호흡’을 ‘숨’이라 하는 이 모든 말이 ‘’이란 어근에서 나온 것이겠습니다.
또한 그 ‘살’고 있는 주체를 일러 ‘사람’이라 하고, 이 ‘사람’이 그 ‘삶’을 향유보지(享有保持)하기 위하여 ‘숨’쉬는 것과 함께 절대 필요한 양식을 또한 ‘’, (남방(南方)에서는 ‘’)이라 하며, 그 ‘’로써 만든 음식을 먹는데, 사용하는 기구를 ‘술’(匙)이라 하고, 그리하여 다시 그 ‘삶’(생명, 영혼)을 담아가진 그 형식 즉 신체의 ‘외육(外肉)’을 ‘’이라 하고, ‘내담(內膽)’을 ‘슬개’ ‘쓸개’(‘슬’은 ‘’의 전음(轉音)) 등, 이러한 우리말의 연락(連絡)과 계통을 보아, 이 ‘’이란 것이 ‘생명’을 중심으로 하는 모든 것의 대표적 근본적인 말임을 분명히 알 것입니다.
또한 인생 생활의 방법 또는 태도의 가장 고품(高品) 상승(上乘)인 영혼의 향기 즉 정의, 강의(剛毅) 등의 총칭이라 할만한 ‘슬기’란 말도 한 가지 이 ‘’에서 파생된 말이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에 서광(曙光)을 던져 활동을 개시하게 하는 ‘여명’을 ‘벽’이라 하고, 그 진행을 ‘’라 하고, 그 방향의 ‘동(東)’을 ‘’또는 ‘시’라 하며, 효성(曉星)을 ‘별’ ‘별’ 이라는 것이며, 또한 모든 것의 연원(淵源), 천류(泉流)를 ‘샘'이라 함이, 다 이 ’‘이란 동어근(同語根)을 가진 말이라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란 것은 ‘생명, 생활, 호흡, 인간, 양미(糧米), 담(膽), 육(肉), 용기, 여명, 원천)’ 등을 전부 포함한 일(一) 어근(語根)이라 할것입니다.
여기서 이와같은 동일 계통의 한국어를 찾아내어 열거하자면, 그 번루(煩累)를 거둘 길이 없거니와, 그 말의 신성성을 불교에 가져가 비추어볼 것이면, ‘사리(舍利)’란 인도어도 주의에 치(値)할만한 말이겠습니다.
그것이 본시로 지극히 청정한 생명의 신비적 표시물(表示物)이자 ‘영골(靈骨)’이라 역(譯)하는 것이라든지, 또는 ‘사리불(舍利佛)’을 ‘신자(身子)’라고 한역(漢譯)함 같은것은 실로 흥미있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불교에서 ‘’(米)로써 사리(舍利)를 대용(代用)함 같은 예(例)는 여래(如來) 재세시(在世時)로부터 현금(現今)까지 통유(通有)한 일인만큼 ‘사리(舍利)’ ‘골(骨)’ ‘육신’ ‘미(米)’ 등을 동일히 존상(尊尙)하고 신성시하자, 또한 그 어계(語系)의 부합함을 보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여하간 이 ‘설악’의 ‘설(雪)’이란 것은 결국 신성을 의미하는 ‘’의 음역인 것임만은 개의(介疑)할 것 없는 일이라 봅니다.
즉 우리말로 ‘뫼’라 하던 것을 한자로 쓸 때에 ‘설악산’이라 한 것이요, 그것이 다시 불교도의 손에 의하여 석존(釋尊) 수도처(修道處)인 ‘설산(雪山)’의 명(名)으로도 쓰인바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설악의 ‘설(雪)’이 신성을 표시하는 우리 고어의 ‘’에 대한 음역자라 함은 위에 말한 바와 같거니와, 다시 한번 더 우리 반도의 산악 또 하천의 명호(名號)와 ‘’과의 관계를 좀더 고찰함과 아울러 ‘설(雪)’과 ‘’과의 관계도 더 분명히 해볼까 합니다.
이 ‘’의 역자(譯字)로는 그 류(類)가 심히 많음을 보게 됩니다마는, 대강 그 예를 열거하건 대 이러합니다.
제주도의 산명(山名)에 ‘사을악(沙乙岳)’(혹작(或作) 사라악(沙羅岳))이란 것, 단천(端川) 동(東)에 있는 ‘사을포(斜乙浦)’란 것, 그 원(源)을 묘향산(妙香山)에 둔 안주(安州)의 살수(薩水)(금(今) 청천강(淸川江))란 것 등은 무론(毋論) 한자음 그대로가 ‘’이매, 더 논할 것이 없거니와, 이 ‘’이란 것을 ‘전(箭)’이란 한자로 바꾸어 쓴 것으로 적지 않으니, 청풍(淸風)의 ‘전산(箭山)’이며 경성(京城) 동(東)의 ‘전교(箭郊)’며 또는 문천(文川) 동(東)과 평산(平山) 동(東)과 영평(永平) 남(南)에는 ‘전탄(箭灘)’이 있으며, 또한 ‘살고디’란 이름도 ‘전곶(箭串)’이라고만 쓰인 것이 아니라, 양구(楊口) 동(東)에는 ‘사리곶(沙里串)’이라고 쓰여있습니다.
그리고 이 ‘’은 ‘미(米)’자로도 번역되어 영유(永柔)의 진산(鎭山)은 미산(米産)(혹작 미두산(米豆山))이라 하거니와, 내 관견(管見)으로는 고성(高城)의 ‘삼일포(三日浦)’ 벽동(碧潼) 남(南)의 최고 험산(險山)인 ‘삼일산(三日山)’ 등도 ‘사흘’ 즉 ‘’의 역자(譯字)로 볼만한 것입니다.
또한 남양(南陽) 동(東)에 있는 ‘사라산(舍羅山)’이란 것도 무론(毋論) 이것의 역자려니와 이 남양에는 도명(島名)으로도 ‘수흘(愁訖)’, ‘소홀(召忽)’ 등의 ‘술’ ‘솔’ 같은 것도 실상은 ‘’의 전음(轉音)에 불과한 줄을 알 것입니다.
이제 다시 그 전음된 자의 류(類)로 영평(永平)의 ‘수일산(水日山)’이나 배천(白川)2)과 영천(永川)에 있는 ‘시천(匙川)’ 같은 것은 주의할 만한 것입니다.
그리고 연천(漣川) 남(南)의 ‘차탄(車灘)’, 하동(河東) 북(北)의 ‘차점(車岾)’, 괴산(槐山)과 보은(報恩)의 ‘차의현(車衣峴)’이며 능성(綾城)의 ‘차의천(車衣川)’이며 내지 금성(金城), 함흥(咸興), 양주(楊洲), 공주(公州) 등에 있는 ‘차유령(車踰領)’이나 또한 과천(果川)의 ‘수리산(修理山)’이며 그 밖에 임실(任實), 장수(長水), 서천(舒川), 화성(和城) 등에 있는 ‘영취산(靈鷲山)’과 언양(彦陽)의 ‘취성산(鷲城山)’, 양산(梁山)의 ‘취서산(鷲栖山)’, 중화(中和)의 ‘운취산(雲鷲山)’, 한산(韓山)의 ‘취봉산(鷲峰山)’, 고폐(高敝)의 ‘취령산(鷲嶺山)’ 등이 ‘차(車)’나 ‘차의(車衣)’나 ‘차유(車踰)’나 ‘수리(修理)’나 ‘취(鷲)’나 다 결국은 우리말의 ‘수리’ 즉 ‘’의 전음임에는 합일(合一)함을 볼 것입니다.
다시 ‘솔’로 전음된 자(字)를 보면, 상주(尙州)의 낙동강(洛東江) 상류를 따로 ‘송탄(松灘)’ 또는 ‘송라탄(松羅灘)’이라 함이든지, 개성(開城)의 ‘송악(松岳)’을 위시하여 연풍(延豊)의 ‘송현(松峴)’, 의주(義州)의 ‘송산(松山)’, 강진(康津)의 ‘송계(松溪)’ 기타 홍원(洪原), 해금강(海金剛), 보령(保寧)에 있는 ‘송도(松島)’ 등 ‘솔’로써 이름 얻은 곳도 심히 많거니와, 한가지 이 ‘송도’에 관하여는 혹 학자까지도 해금강(海金剛)의 ‘송도(松島)’를 일본인의 명명(命名)이라고 단언한 것을 보았습니다마는, 명종(明宗) 시(時)의 임동천(林東川) 억령(億齡)3)의 시(詩)가 있는 것을 보면, 일본인 소명설(所名說)의 잘못임을 지적할 수 있을뿐더러, 이 이름이 오히려 ‘’의 전음으로 남아 끼쳐진 자임을 알 것입니다.
이 밖에도 나로서는 경주(慶州)의 ‘치술령(鵄述嶺)’이나 고산(高山), 풍기(豊基) 등처(等處)에 있는 ‘두솔산(兜率山)’ 등이 다 ‘술’ ‘솔’ 즉 ‘’의 대역(對譯)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다시 여기에 총괄적으로 ‘’의 대역자를 열거하건대,
설(雪), 사을(沙乙), 사을(斜乙), 살(薩), 전(箭), 사리(沙里), 미(米), 삼일(三日), 사라(舍羅), 수흘(愁訖), 소홀(召忽), 수라(水羅), 시(匙), 차(車), 차의(車衣), 차유(車踰), 수리(修理), 취(鷲), 송라(松羅), 송(松), 치술(鵄述), 두솔(兜率) 등입니다.
더욱이 ‘설(雪)’이 ‘’의 역자임을 증좌(證左)하기에 호개(好個) 일례(一例)가 있음을 보는 것은 강계(江界)의 ‘설한령(雪寒嶺)’을 승람(勝覽)4)에는 ‘설열한령(薛列罕嶺)’이라고 쓰고, 그 주(註)에 ‘설한령즉차령(雪寒嶺卽此嶺)’5)이라 한 것입니다.
‘설(雪) ’자가 명명(命名) 본시로부터 ‘설(雪)’이란 한자 그것에 의의가 있은 것이면 다시 달리 전해질 이유가 조금도 없을 것입니다마는, 그것이 본시 우리 고어의 ‘’이란 것을 대역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혹은 ‘설열(薛列)’이라 혹은 ‘설(雪)’이라 쓰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지금 향하는 저 강원도(江原道) 인제(麟蹄)의 ‘설악산(雪嶽山)’이란 것도, 이러한 여러 가지의 고증(考證)에 비추어보아 ‘뫼’이던 것임이 분명한 동시에, 그 이름이 웅변(雄辯)하고 있는 만큼, 신산(神山) 성역임을 알 것입니다.
다만 ‘설(雪)’은 ‘’이란 것을 대역함에 있어서 될 수있는 대로 한자 그것으로라도 그 신성, 결백, 숭고함을 표시하고자 구태어 ‘설(雪)’ 자를 택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명산(名山)으로 하여 이 설악(雪嶽)과 더불어 관동(關東)의 쌍벽(雙璧)이라 할 금강산(金剛山)의 고호(古號)도 ‘상악(霜岳)’(서리뫼)이라 하였으니, 이도 또한 우리 고구(考究)에 의하면, 역시 ‘뫼’로 될 것임이 무론이여니와, 오직 그 신역(神域)임에는 금강(金剛)과 설악(雪岳)이 다 일치한 존재이었던줄을 알면 그만일 것입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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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주
1) 중대하고도 엄숙한
2) 황해도(黃海道) 연안(延安) 북동쪽에 있는 도시. 황해선에 연하는 연백평야(鉛白平野)의 중심지로 농산물의 집산지. 온천장(溫泉場)이 있어 휴양객이 많으며 토탄(土炭)의 산출(産出)이 많음.
3) 임억령(林億齡) : 조선 명종 때의 문신(1496~1568). 자는 대수(大樹). 호는 석천(石川). 문장에 뛰어나고 성격이 강직하였다. 을사사화 때 벼슬을 버리고 해남에 은거하였다. 문집에 《석천집》이 있다.
4) 동국여지승람
5) “설한령이 곧 이 산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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