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 3일 지리산 (智異山 1,915 m) , 성중종주 3일차
세석대피소→촛대봉→장터목대피소→제석봉→천왕봉→법계사→로타리대피소→칼바위→중산리
◇ 산행지 : 전남 구례군 마산면. 전북 남원시 산내면. 경남 함양군 마천면, 하동군 화개면, 산청군 삼장면 일원
◇ 산행일자 : 2024. 10. 5(토)~7(월). 날씨 : 맑은 후 비
◇ 산악회및 친구 : 기대, 산행지기. 쑤기
◇ 산행거리 : 전체 39.2km(트랭글 기준), 3일차 13.1km
◇ 산행시간 : 3일차 6시간 50분<간식및 휴식, 절구경 1시간 20분 포함>
◇ 시간대별 요약
3일 차
- 07:00 조식(햇반)
- 08:18 세석 대피소 산행 시작
- 08:32 세석평전
- 08:44 촛대봉(왕복10분)
- 08:53 촛대봉 출발
- 09:48 연하봉
- 10:06 장터목 대피소(간식및 휴식20분)
- 10:25 장터목 대피소 출발
- 10:48 제석봉
- 11:09 통천문
- 11:24 칠선계곡 갈림길
- 11:28 천왕봉(간식및 휴식33분)
- 11:51 천왕봉 출발
- 12:04 천왕샘 하단
- 12:18 개선문
- 12:55 법계사(구경 14분)
- 13:09 법계사 출발
- 13:10 로타리 대피소(자연학습원 갈림길)
- 13:35 망바위
- 14:07 칼바위 삼거리 (간식및 휴식13분)
- 14:20 칼바위 삼거리 출발
- 14:48 통천길 입구
- 14:52 중산리 탐방지원센터
- 15:08 중산리 버스 정류장 산행마침
- 15:20 원지행 버스 탑승
- 16:00 원지 식당(삼겹살)
- 18:45 대전행 버스 탑승
- 20:18 대전복합터미널
- 20:36 닭똥집
- 21:50 시내버스 탑승
- 23:05 반석동
※ 특기사항
① 지리산 산행 20회 째
② 천왕봉 정상 9회(1박2일종주 2회, 무박종주 2회, 백무동 코스 3회, 추성리 코스 1회)
③ 세석 대피소 3번째 이용
④ 2박 3일 일정(대피소 2박)
⑤ 산행 당일 좋은 컨디션
※ 지리산 종주 산행 준비물
우의, 헤드랜턴, 목베개, 핸드폰 충전기, 보조배터리, 에너지 바 4개 이상, 김치비빔밥(홧앤쿡 2개), 양말, 갈아입을 옷, 칫솔, 구급용품, 물티슈, 티슈. 코펠 버너, 김치, 깻잎, 컵라면, 육류(돼지, 오리), 즉석북어국, 국그릇, 후라이팬, 햇반2개
※ < 중산리 종주코스 (약 34.2km+1.9km) >:성삼재 주차장 < 2.2km > 노고단대피소 < 0.4km > 노고단고개 < 2.1km > 돼지령 < 0.7km > 피아골3거리 < 0.4km > 임걸령샘 < 1.3km > 노루목 < 0.2km > 반야봉3거리 < 0.6km > 반야봉 < 0.6km > 반야봉3거리 < 0.2km > 삼도봉3거리 < 0.2km > 삼도봉 < 0.7km > 화개재 < 1.2km > 토끼봉 < 2.6km > 명선봉 < 0.4km > 연하천대피소 < 0.7km > 삼각고지3거리 < 1.4km > 형제봉 < 1.5km > 벽소령대피소 < 2.4km > 덕평봉(선비샘) < 1.8km > 칠선봉 < 1.5km >영신봉 < 0.6km > 세석대피소 < 0.7km > 촛대봉 < 1.9km > 연하봉 < 0.8km > 장터목대피소 < 0.6km > 제석봉 < 1.1km > 천왕봉 < 2.1km > 로터리대피소(법계사) < 2.0km > 칼바위3거리 < 1.3km > 중산리탐방소 < 1.9km > 중산리 버스정류장
※ 산행 전 사전 조사
< 지리산(智異山, 해발1,915m) >:지리산은 1967년 12월 국내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경상도 등의3개 도시와 시, 4개군, 15개읍. 면에, 속하는 산악형 국립공원이다. 지리산의 총면적은 약472제곱키로미터이고 이는 계룡산 국립공원의7배, 제주도 면적의4/1이자 서울시 면적보다는 조금 작은 크기이다. 지리산(智異山)의 명칭은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 라는 뜻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는 수많은 은자들이 이산에 숨어 도를 닦으며 정진해 왔음을 말해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은 지리산의 산세가 높고 웅대하여 수백리에 웅거하는 산으로, 백두산의 산맥이 뻗어내려 여기에 이른 것이라 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고 부른다고 전한다. 또한 지리산(地理山)혹은 방장산(方丈山)이라고도 하였는데, 두보의 시중 "방장은 삼한 외(方丈 三韓外)이다" 라는 주석에서 방장은 바로 지리산을 말한다고 전한다. 신라시대에 경주인들은 지리산을 남악(南岳)으로 삼아 중사(中祀)에 올렸으며, 고려와 조선에서도 이를 따랐다. 또한 "신동국여지승람" 은 이산을 둘러싼 10개읍이 있는데, 북쪽으로는 함양이, 동남쪽으로는 진주가, 서쪽에는 남원이 있다고 전한다. 산에는 기이한 봉우리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동쪽의 천왕봉과 서쪽의 반야봉이 가장높다 하였다. 산기슭에 먹구름 끼고 비가오며 천둥소리가 요란해도 천왕봉과 반야봉은 청명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해마다 가을 하늘이 높을 때면 북쪽에서 매가 몰려든다. 10개읍의 사람들은 다투어 그물을 쳐서 매를 잡았다고 한다. 항간에는 이산에 북극신(北極神)이 거주해 수많은 신선들이 모이고, 덕망 높은 승려가 거쳐를 두는 곳이라고 전해지기도 한다. 이를 증명하듯 지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에는 약1천년 전부터 성모사라는 사당이 자리를 지켜왔으며, 그 안에는 성모석상이 봉안되어 있었다. 또한 천왕봉에서 정면으로 바라다 보이는 노고단에는 남악사가 있으니 지리산은 금강산, 한라산과 함께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숭상된 영원한 우리민족의 산이다.여기에 묘향산을 더하면 우리나라의 4대신산(四大神山)이요 구월산을 합하면 5대 신산이되는데, 이 5대신산에서도 으뜸은 지리산이라고 전해진다. 지리산의 산세는 천왕봉에서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주 능선은 25.5km에 이르며 이산의 둘레는 320km에 달한다. 이넓은 터에 해발 1500m가 넘는 봉우리가 20여개가 있는데 그 가운데 동쪽의 으뜸은 천왕봉 (1915m)이고 서쪽의 으뜸은 반야봉과(1732m) 노고단(1507m)이다. 이를 세 봉우리를 지리산의 3대 주봉이라 부른다. 최고봉인 천왕봉(1915m)에서 능선을따라 서쪽으로이동하면 제석봉(1806m), 연하봉(1730m), 촛대봉(1703m), 영신봉(1651m), 칠선봉(1576m), 덕평봉(1522m), 명선봉(1586m), 토끼봉(1534m), 반야봉(1732m), 노고단(1507m), 만복대(1433m), 고리봉(1304m), 바래봉(1165m)이있으며, 천왕봉의 동쪽에는 중봉(1875m), 하봉(1781m), 써리봉(1640m), 웅석봉(1099m)이있다. 이 가운데 천왕봉에서 노고단사이의 산행을 종주산행이라 말하며, 동쪽 끝의 웅석봉에서 서쪽끝의 바래봉까지의 산행을 지리산 태극종주산행이라 부른다. 지리산에는 또한 20여개의 긴계곡들이 있다. 동쪽 천왕봉에는 칠선계곡, 한신계곡, 대원사계곡이 있으며 서쪽 반야봉에는 피아골 뱀사골, 심원계곡이 있는데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저마다의 매력으로 넘친다. 지질학적으로 볼때 이산은 애초에 넓은 바다로 속했으나 모래등이 퇴적된 뒤 선캄브리아기와 고생대를 거치면서 육지와 호수 바다로 번갈아 바뀌었다가, 중생대에 발생한 거대한 지각변동으로 우리나라 전지역이 육지로솟았을때 지리산이 가장 높이우뚝 솟았다고한다.
※ 지리산 산행 등산 지도
※ 지리산 산행 후기
노고단 대피소에 비해 시설은 좋지 않지만 그래도 세석대피소의 밤은 길었다. 비가 오는 관계로 산행 시작은 좀 늦추고 있었지만, 문제는 전날 사 놓지 않은 햇반 때문에도 산행은 할 수 없었다. 7시에 매점이 문을 열어 6시 40분쯤 내려가서 물을 끓이고 매점에서 햇반을 사서 아침 식사하고 대피소에서 쉬다가 두 사람이 연락되지 않아 8시 정도에 화장실을 가려고 나와보니 두 사람은 이미 산행 준비를 마치고 출발 상태라 서둘러 기대에게 비가 오지 않으니 출발하자고 했다. 이미 준비는 다 한 상태라서 바로 출발했다. 출발하며 무엇보다 좋은 건 비가 오지 않는 상태였다. 촛대봉에서 한 번도 오르지 않은 촛대봉에 올라 멋진 조망을 보았고 장터목대피소에서 물 보충과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천왕봉으로 향했다. 산행지기가 유난히 힘들어하여 물도 내 배낭에 한 병 넣었다. 9~10월 중에 천왕봉은 세 번째 정상에 올랐지만, 여유를 가지고 인증도 하고 휴식을 취한 후 중산리로 내려가는 길은 기분이 좋았다. 법계사도 구경하고 로타리 대피소에서 학습원으로 하산하자는 기대의 의견에 내려가서 버스 기다리고 있느니 중산리로 하산하자고 했다. 시간을 잘 맞춰 중산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원지행 버스가 바로 있어 화장실만 다녀오고 버스에 탑승했다. 원지에 도착하니 이번에는 기대가 또 서두른다. 바로 대전으로 가는 버스가 있으니 바로 가자고 한다. 옷도 못 갈아입었고 점심도 먹지 못했으니 서둘지 말고 천천히 가자고 화를 냈다. 다행히 내 의견에 따라 삼겹살로 점저를 했다. 그리고 18시 45분 대전행 버스를 타고 대전에 오니 20시 18분으로 일찍 도착하여 닭똥집에 가서 소주 한잔하고 헤어져 집에 오니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혼자 한 산행에 비해 여럿이 같이하니 장단점이 있었지만 2박 3일 일정이라 편한 산행이었다.
※ 지리산 산행 사진
▲세석대피소(1,557m)는 지리산 대피소 중 가장 큰 대피소로 예약 가능 정원은 185명이다. 세석대피소에서 아침 식사하고 비가 내리지 않기에 8시 조금 넘어 산행을 시작했다.
▲세석대피소에서 거림 갈림길 이정표
▲세석 갈림길 이정표(진행방향 장터목 대피소 3.4km/ 백무동 6.5km/ 거림 6.0km ), 2년전 백무동 방향 한신계곡으로 내려 갔었다.
▲비가 그친뒤라 운해가 멋지다.
▲뒤돌아본 세석대피소와 영신봉, 멀리 노고단과 반야봉
▲세석평전은 잔돌이 많은 평야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진행방향 천왕봉
▲촛대봉
▲촛대봉에서 바라 본 천왕봉
▲촛대봉 정상은 늘 지나쳐 갔는데 시간에 쫒기지 않으니 이번에 처음 정상에 올랐다.
▲촛대봉에서 천왕봉 시계방향으로 그랴말로 파노라마는 장관이었다.
▲촛대봉에서 천왕봉, 반야봉, 노고단을 다 볼 수 있었다.
▲촛대봉에서 천왕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찌ㅣ는데 바람이 엄청 세게 불었다.
▲촛대봉의 높이는 1,703m이며 명칭은 음양수 전설의 주인공인 연진 처자가 낮에는 세석평전의 철쭉밭을 가꾸고 밤에는 죄를 사하기 위해 촛불을 켜놓고 기도를 올렸던 장소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봉우리 모양이 마치 촛농이 흘러내린 것 같아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촛대봉에서 10여분 머물다 천왕봉을 향해 출발 했다.
▲뒤 돌아 본 촛대봉
▲진행 방향 연하봉
▲뒤 돌아 본 촛대봉 방향이다. 연하선경은 신선이 노닌다는 뜻으로 지리산 주 능선 25km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2.6km 구간으로 연하봉에서 부터 촛대봉, 세석평전, 세석대피소까지를 말한다.
▲연하봉이 지척이니 이제 가장 아름다운 구간이 끝나간다.
▲연하봉의 이정표(진행방향 장터목대피소 0.8km/ 지나온 세석대피소 2.6km)
▲연하봉의 높이는 1,721m이다. 연하봉 명칭은 아름다운 경치를 지극히 사랑함을 뜻하는 고사성어(연하고질, 연하지벽)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초창기 지리산 종주 산악회의 이름인 '연하반'에서 따온 명칭이라는 설도 있다. 연하는 안개와 노을을 뜻하며, 고요한 산수의 경치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연하봉 옆으로 가 뒤 돌아 본다. 노고단과 반야봉이 멀어 진다.
▲대신 제석봉과 천왕봉은 이제 가까워 진다.
▲장터목대피소는 1971년 4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지리산 산장'으로 시작하여 1997년 수용인원 155명으로 확장되었다. 장터목(1,653m) 명칭은 산청군 시천면과 함양군 마천면 사람들이 물물 교환과 물건을 사고팔던 장소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장터목대피소는 지리산 국립공원 대피소 중 최고봉인 천왕봉과 가장 가까운 거리(1.7km)에 자리 잡고 있어서 숙박객과 이용객이 많은 편이다. 장터목대피소는 그래서 '하늘 아래 첫 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장터목대피소 음수대, 예전에는 물을 구하려면 중산리 방향으로 돌계단을 약 40m 내려가야 해 불편했으나 현재는 취사장 바로 옆에 새 식수 공급 시설이 설치되어 있어 산객들에게 배려하고 있다.
▲천왕봉 방향의 장터목대피소 이정표, 이곳에서 중산리 하산도 가능 하다. 간식 및 물 보충, 휴식 20분 하고 천왕봉으로 출발했다.
▲천왕봉 오르며 뒤 돌아 본 모습, 노고단부터 반야봉,촛대봉이 확연이 들어난다.
▲중앙 멀리 보이는 반야봉은 여인의 엉덩이처럼 부드러운 쌍봉(반야봉과 중봉)이라는 점이다. 시인 이원규는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이라는 시에서 지리산 10경을 언급하면서 반야봉에 대해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거든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라고 했다.
▲제석봉에 숱하게 죽어 있는 구상나무의 본질은 세월의 무상함이 아니라 인간의 이기적이고 악한 본성이다. 울울창창 하늘을 가리던 구상나무 숲이 이렇게 된 것은 1950년대 후반 권력을 등에 업은 토호와 도벌꾼들의 욕심에서 비롯됐다. 당시 이승만 정권에서 장관 자리를 하던 이의 조카가 삼촌을 등에 업고 도벌을 주도했다. 이들은 장터목 아래 제재소를 차려두고 이 일대의 나무를 무차별로 베어내 산 아래로 실어 날랐다. 그러던 중 1959년 8월 한국산악회 학생산악훈련단에 참가한 사진가 김근원 선생이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까지 사진을 찍어 이들의 악행을 세상에 알렸다. 그런데 도벌꾼들은 조사단이 온다고 하자 도벌의 흔적을 없앤다며 산에 불을 질렀다. 그 결과가 지금의 제석봉이다. 고로 이곳은 고사목(枯死木) 지대가 아니라 소사목(燒死木) 지대이자 나무들의 공동묘지라고 할 수 있다.“ 출처:<국제신문,‘지리산, 구상나무와 케이블카’ 이진규>
▲제석봉 안전쉼터에서 바라본 모습, 운해가 멋졌다.
▲제석봉 안전쉼터에서 바라본 노고단, 반야봉과 주능선
▲제석봉(帝釋峰,1808m) 지명 유래는 제석봉에 있던 신당이던 제석당(帝釋堂)과 관련이 깊다. 제석봉은 제석을 산봉우리에 동일시해 숭배하여 일컬은 지명이다. 이제 천왕봉이 지척이다.
▲뒤 돌아 본 제석봉과 호구당터(1766m) : 제석봉 안부로 호랑이에게 물려가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달래주던 사당이 있었다고 한다.
▲진행 방향 천왕봉
▲통천문(通天門,1814m) :하늘을 오르는 문이라는 뜻으로 노고단에서 천왕봉으로 오르는 마지막 관문이다. 천연 암굴로 예로부터 부정한 사람은 출입할 수 없고 선인(신선)들도 반드시 이곳을 통과해야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고 한다.
▲뒤 돌아 본 제석봉 부터 좌측 촛대봉과 중앙의 반야봉과 노고단까지 조망이 멋지다.
▲지리산 서북능선까지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구상나무들이 고사되고 있어 안타깝다.
▲지나온 주능선을 모두 볼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칠선계곡 등산로에는 감시 카메라와 출입금지 안내판이 있다. 이제 5분 거리에 천왕봉이 있다.
▲천왕봉 정상이 눈앞이다.
▲지리산의 최고봉 천주(天柱) 글씨가 있는 곳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일월대(日月臺)도 마찬 가지다. 천주(天柱)는 정상 바로 밑에, 그 오른쪽에 일월대(日月臺)가 있다. 일출과 일몰, 월출과 월몰을 볼 수 있는 곳이다. 日月臺는 행서체로 음각돼 있다. 일두 정여창 선생의 후손이자 충청도 관찰사를 지낸 정태현 선생(1858~1919)이 새겼다고, 그가 남긴 죽언집에 전한다.
▲지리산은 두류산 또는 방장산으로도 부르는데 방장산은 불가에서 깨달음을 얻은 큰 스님의 처소를 일컫는 말이며 두류산은 백두산의 맥이 뻗어 내렸다는 뜻이다. <고려사>에 나오는 지리산 이름은 智異(山) 19, 地理(山) 2, 頭流1, 方丈(山) 2회이다. 즉 고려사에는 대부분 오늘날과 같은 ‘智異山’으로 나온다. 두류산을 나타내는 두류는 1회만 나올 뿐이다. 한편 <조선왕조실록>에는 지리산(智異山)이 74건, 두류산이 13건이 나타나고 방장산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공식적으로도 두류산보다 지리산이란 이름을 많이 썼다. 그러나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지리산을 유람하고 남긴 기록은 100편 정도인데, 그 가운데 유람록 형식을 갖춘 64편을 분석한 결과 제목을 지리산(智異山)으로 쓴 것이 10편, 두류산(頭流山)으로 쓴 것이 47편, 방장산(方丈山)으로 쓴 것이 7편으로 나타나 두류산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지리산 정상에서 2년 전과 같이 멋진 조망을 보았다. 올해 세 번 와서 처음 보는 장관이다.
▲천왕봉(天王峰) : 지리산의 최고봉 천주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지리산의 웅대한 기상을 상징하고 있다. 동서남북 사방을 둘러보아도 아무거칠 것 없는 천왕봉 정상에서의 전망은 장엄하기 이를데 없으며 특히 천왕봉에서 바라보는 석양낙조의 기관도 좋거니와 새벽 동녘 하늘가에 끝없이 펼쳐지는 구름바다의 운평선에서 떠오르는 천왕봉 해돋이의 장관은 천지개벽을 보는 것 같은 천하의 기관으로서 지리산 최고 명소로 꼽힌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지리산 천왕봉의 일출, 언제 쯤 볼 수 있으려나?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나?
▲지리산을 다녀온 횟수는 대략 20번 정도이고 천왕봉 정상은 이제 9번이다.
1. 2004년 7월 9일(백무동~천왕봉~중산리)
2. 2005년 6월 3~4일, 1박 2일 종주( 성삼재~세석대피소/천왕봉~중산리)
3. 2007년 5월 18일. 백두대간 무박 지리산 종주(성삼재~천왕봉~중산리)
4. 2007년 12월 31일, 종산 산행(백무동~천왕봉~중산리)
5. 2012년 10월 27일, 백두대간 무박 지리산 종주(성삼재~천왕봉~중산리)
6. 2022년 6월 1일, 백백종주 (백무동~천왕봉~세석~백무동)
7. 2024년 9월 6~7일, 1박 2일 칠성종주(칠선계곡~천왕봉~세석대피소~성삼재)
8. 2024년 9월 27일, 백대종주(백무동~천왕봉~대원사)
9. 2024년 10월 5일~7일 2박 3일,(성삼재~노고단대피소/세석대피소/천왕봉~중산리)
▲천왕봉 이정표(중산리5.4km/로타리대피소2.1km/장터목대피소1.7km/대원사11.7km /피밭목대피소4.0km)에서 중산리로 하산 한다. 모처럼 12년만에 중산리 코스로 이제 안전하게 하산 하는 일만 남았으니 마음이 편하다.
▲좌측으로 내려다보는 중산리가 아득히 멀어 보인다.
▲중산리 하산 길은 계단과 돌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 돌길이므로 스틱을 사용 안전하게 천천히 내려 가야 한다.
▲천왕샘 근처에서 올려다보는 천왕봉, 그런데 천왕샘은 어디인지 모르고 지나쳤다.
▲선답자의 글을 보니 천왕샘에서 1분 정도 내려가면 안전쉼터가 있다 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우리 일행은 천왕샘을 지나쳐 왔다. 예전엔 천왕샘 물도 마셨었던 기억이 난다.
▲죽은 주목이 멋진 모습이었다.
▲해발 1700m 높이의 개선문이다. 원래는 바위 두 개가 비슷한 높이로 있었으나 한 개가 붕괴하였다고 한다.
▲중산리 하산 길은 계속 돌길과 돌계단이다.
▲곰굴(?)
▲하늘 아래 첫 산사 법계사의 해발고도는 1,400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절이다. 부처님 진산사리를 모셔놓은 적멸보궁과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삼 층 석탑이 있다. 참고로 가장 낮은 절은 부산 기장의 해동 용궁사다.
▲지리산 법계사는 해인사의 말사로 삼국시대 승려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면서 창건한 적멸보궁 도량이다. 6·25 때 불탄 뒤 높은 그곳에 있는 탓에 재건하는데 쉽지 않았는지 토굴만으로 이어져 오다 최근에야 법당이 준공되었다고 한다.
▲계단에 올라서면 오른쪽으로 시선을 확 끌어당기는 게 있다. 이게 그 국사책에서만 보던 일본이 혈맥을 끊으려 박은 쇠말뚝이라고 한다. 도저히 말뚝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크기라 정말 엄청나구나! 실감할 수 있었다. 무슨 포탄인 줄 알았다. 일제강점기에 법계사가 흥하면 일본이 망한다는 속설에 지리산과 법계사의 혈맥을 끊는 쇠말뚝을 박았다고 한다. 이를 뽑아내 전시 중이다.
▲부처님 진산사리를 모셔놓은 적멸보궁엔 불상이 없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 천왕봉의 기운이 모여 있는 법계사에 인자한 할머니상이 산신할머니이다. 호랑이를 고양이처럼 다루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보물 473호로 지정된 법계사 3층 석탑이다. 자연 암반을 기단으로 삼은 이 방식은 신라 이래로 유행하던 방식이라고 한다. 3층 석탑 옆 바위에는 용궁암(龍宮岩)이라고 각자 되어 있다.
▲극락전은 문이 굳게 닫혀 있다.
▲로타리대피소 위가 바로 법계사이며 법계사에도 식수 보충이 가능하지만, 법계사 바로 아래 이곳에서도 식수 보충이 가능하다.
▲로타리대피소는 공사 중이다. 이곳에서 경남자연학습원 방향으로 내려가 순두류 탐방로를 통해 셔틀버스를 이용 하는 것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으나 2시 50분 버스 기다리느니 그냥 중산리로 내려가자고 했다. 결국 3시 20분 원지행 버스를 탓으니 탁월한 선택이었다.
▲로타리대피소 이정표
▲뒤 돌아본 천왕봉
▲망바위
▲내려가는 길은 지루하고 힘들기에 칼바위 삼거리에서 잠시 쉬었다. 우리가 내려왔던 천왕봉(오른쪽)과 장터목대피소로 가는 갈림길이다.
▲칼바위 삼거리에서 간식 및 휴식으로 13분 동안 있다가 다시 하산 한다.
▲칼바위는 칼날의 끝부분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계곡에서 잠시 발 담그고 가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버스 시간 때문에 늦출 수 없다.
▲통천길 들머리 성중종주의 날머리로 더 익숙하다.
▲여기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중산리 마을 입구까지 일반적으로 30분 걸리는데 18분 만에 걸어 내려왔으니 뛴 걸음이다.
▲중산리탐방안내소, 이곳에서 택시를 보았는데 그냥 걸어서 완주하고 싶은 욕심에 도로따라 걸었다.
▲중산리 버스주차장은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지리산대로 518 (중산리)에 위치한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지리산의 주요 버스 터미널 중 하나다. 중산리주차장 내에 있으며 지리산 천왕봉으로 향하는 최단 코스의 입구이기 때문에 이용객이 대부분 등산객이다.
▲원지행 15시 20분 버스를 놓치면 2시간을 기다려야 하기에 화장실만 얼른 다녀오고 버스에 탑승 했다.
▲경상남도 산청군 신안면 원지로 16 (하정리)에 위치한 원지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하차하여 화장실에서 약식으로 씻고 근처 삼겹살 집에서 점저를 겸 하고 대전행 버스를 탓다.
▲18시 45분 대전행 버스를 타고 대전복합터미널로 향했다.
▲20시 15분 대전복합터미널에 도착하여 닭똥집에서 소주 한잔하고 일정을 마무리 했다.
▲2박3일 일정 동안 친구가 잘 준비하여 1인당 비용은 대략 13만원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다. 끝으로 산행 소감은 노고단을 들리지 못해 조금 아쉬웠지만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파거불행(破車不行) 노인불수(老人不修) : 부서진 수레는 나아갈 수 없고 늙어서 수행하기는 어렵다고 하였으니 지리산 종주를 편하게 했으니 아직은 젊은 날인가 보다.
이원규 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시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 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 노을을 품으려거든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시려 거든 불일 폭포의 물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 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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