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숭산(수덕산)과 함께한 겹벚꽃 문수사, 개심사, 해미읍성
주차장 → 수덕사 → 소림초당 → 만공탑→전월사→덕숭산 → 원점회귀
◇ 산행지 : 충남 예산군 덕산면 일원
◇ 산행일자 : 2024. 4. 28(일). 날씨 : 맑음
◇ 산악회및 친구 : 승용차 이용, 산행지기
◇ 산행거리 :7.08 km(트랭글 거리)
◇ 산행시간 : 2시간 50분 < 정상 휴식 30분 포함, 절구경 40분 제외>
◇ 시간대별 요약
- 05:40 반석사거리 출발
- 06:50 문수사 주차장
- 06:56 문수사 일주문
- 07:05 문수사
- 07:12 상왕산 산행 시작
- 07:30 상왕산
- 07:48 상왕산 산행 마침
- 08:50 개심사
- 10:12 해미읍성
- 11:20 덕숭산 주차장
- 11:30 중식 30분(토속식당)
- 12:03 수덕사 입구
- 12:14 수덕사
- 12:21 수덕사 산행 시작
- 12:40 관음보살입상
- 12:48 소림초당
- 12:50 만공탑
- 12:54 정혜사
- 13:01 정상 갈림길 삼거리
- 13:07 전월사
- 13:25 정상(휴식 30분)
- 14:06 갈림길 삼거리
- 14:50 수덕사 산행마침
- 15:01 환희대(절)
- 15:04 이응로 선생 사적지
- 15:12 선미술관
- 15:22 주차장
※ 특기사항
① 산림청,월간산,한국의 산하 선정 100명산
② 덕숭산 16년만의 세 번째(2005년 9월 11일, 2008년 12월 7일 이후) 산행
③ 상왕산(2008년 12월 21일 금북정맥 산행 후) 두 번째 산행
④ 문수사, 개심사 겹벚꽃 구경
⑤ 중식 현금 결제(주차권)
※ 산행 전 사전 조사
< 덕숭산 수덕사 전설> : 홍주마을에 사는 수덕이란 도령이 있었다. 수덕도령은 훌륭한 가문의 도령이었는데,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사냥터의 먼 발치에서 낭자를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집에 돌아와 곧 상사병에 걸린 도령은 수소문한 결과 그 낭자가 건너마을에 혼자 사는 덕숭낭자라는 것을 알게 되어 청혼을 했으나 여러 번 거절당한다. 수덕도령의 끈질긴 청혼으로 마침내 덕숭낭자는 자기 집 근처에 절을 하나 지어 줄 것을 조건으로 청혼을 허락하였다. 수덕도령은 기쁜 마음으로 절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탐욕스런 마음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절을 완성하는 순간 불이 나서 소실되었다. 다시 목욕재개하고 예배 후 절을 지었으나 이따금 떠오르는 낭자의 생각 때문에 다시 불이 일어 완성하지 못했다. 세번째는 오로지 부처님만을 생각하고 절을 다 지었다. 그 후 낭자는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했으나 수덕도령이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이를 참지 못한 수덕도령이 덕숭낭자를 강제로 끌어안는 순간 뇌성벽력이 일면서 낭자는 어디론가 가 버리고 낭자의 한 쪽 버선만이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바위로 변하고 옆에는 버선모양의 하얀 꽃이 피어 있었다. 이 꽃을 버선꽃이라 한다. 낭자는 관음보살의 화신이었으며 이후 수덕사는 수덕도령의 이름을 따고 산은 덕숭낭자의 이름을 따서 덕숭산이라 하여 덕숭산 수덕사라 하였다는 전설이다. 출처: <덕산향토지(德山鄕土誌)에 실린 내용>
< 예산 수덕사 대웅전(禮山修德寺大雄殿)>: 수덕사는 덕숭산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사찰로, 절에 남겨진 기록에는 백제 후기 숭제법사가 처음 짓고 고려 공민왕 때 나옹이 다시 고친 것으로 나온다. 다른 기록에는 599년[백제 법왕 1]에 지명법사(智明法師)가 짓고 원효가 다시 고쳤다고도 전한다. 석가모니불을 모신 예산 수덕사 대웅전은 고려 1308년[충렬왕 34]에 지은 건물로,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가운데 하나이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49호로 지정되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예산 수덕사 대웅전 [禮山修德寺大雄殿]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덕숭산 산림청 100명산 선정 사유 : 지역 주민들이 소금강이라고 할 만큼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경관이 수려하고, 도립공원으로 지정(1973년)되어 있는 점 등을 감안하여 선정 하였으며 백제 제29대 법왕 원년(599년) 지명법사가 창건한 수덕사(修德寺), 보물 제355호인 마애불과 덕산온천이 유명하다.
※ 덕숭산 등산코스
• 수덕사입구 상가 → 수덕사 → 소림초당 → 만공탑 → 정혜사 → 덕숭산 → 수덕사(1시간30분)
• 수덕고개→덕숭산→나본들고개 (2시간)
※ 덕숭산 등산 지도
※ 산행 후기
덕숭산에 대한 산행 기록을 찾아보니 2005년 9월 11일 첫 산행을 시작으로 2008년 12월 7일 금북정맥 산행 중에 간 내용이 있다. 그러니 덕숭산은 무려 16년 만의 세 번째 산행이다. 작년(2023년 4월 23일) 가야산, 일락산 산행하며 개심사로 하산하여 청벚꽃 왕벚꽃(겹벚꽃)을 너무나 인상 깊게 보아서 기회 되면 다시 가려고 하다 덕숭산과 연계 산행해도 좋을 것 같아 이번에 선택했다. 문제는 문수사 겹벚꽃도 워낙 유명하여 들려보려고 했는데 워낙 차가 많이 밀린다는 정보에 아침 6시에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산행 당일 아침 일찍 톡이 온다. 5시 30분에 출발하자는 거다. 그러더니 5시 40분까지 반석으로 오겠다고 다시 연락이 와 아침 식사하고 반석네거리로 갔다. 문수사 입구 주차장에는 6시 50분에 도착했는데 의외로 차가 많았다. 이른 선택을 잘했다며 겹벚꽃 구경했는데 때가 조금 늦어 꽃은 많이 지고 있었다. 문수사에서 상왕봉을 잠시 올라갔다 내려왔는데 상왕산은 2008년 12월 21일 금북정맥 산행 때 갔던 곳인데 전혀 기억이 없었다. 문수사에서 개심사 가는 길에 해미읍성이 보여 잠시 해미읍성을 한 바퀴 돌고 개심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수덕사 가는 길에 토속식당에서 된장찌개가 함께 나오는 산나물 비빔밥(12,000원)으로 이른 점심을 했다. 식사 후 수덕사 구경하고 산행은 시작되었는데 낮은 해발에 비해 산은 꾸준한 오름이었지만 중간중간에 구경거리가 많아 그리 힘들지 않게 정상에 올라설 수 있었다. 정상 인증하고 정상에서 과일을 먹으며 30분간 충분한 휴식을 하고 차량 회수를 위해 주차장으로 향했다. 점심 식사하며 현금 결제할 때 주차권(2,000원)을 준다기에 설마 하며 현금결제 했는데 주차장에 들어올 때는 간섭 안 하다 나갈 시 주차비를 받고 있었는데 그 수많은 차량의 주차비를 생각해 보니 어마어마할 듯했다. 대전으로 돌아오며 일정을 접었다.
※ 산행 사진
▲문수사 가는 길은 좁아서 조심해야 한다. 꽃철에는 일방통행을 하고 있다. 문수사는 문수보살에서 따온 이름으로 수덕사의 말사이며 절보다는 겹벚꽃으로 유명한 곳이다. 문수사 일주문에는 상왕산문수사라 적혀 있다.
▲문수사의 겹벚꽃은 사찰과 어우러진 모습이 아닌 일주문을 지나면서 진입로에 조성되어있다. 그래서 절보다 길이 예쁘다. 문수사 겹벚꽃은 피는 기간이 짧아 우리가 갔을 때는 이미 겹벚꽃이 지고 있었다. 일주문을 지나 길이 두 개 있는데 차량은 통과할 수 없으니 굳이 일방통행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하나를 정해 오르고 내려오는 길엔 또 하나의 길을 선택하면 양쪽의 꽃들을 다 감상할 수 있다.
▲겹벚꽃이 지고 있고 철쭉은 화려한 빛을 뿜고 있었다.
▲그나마 산쪽에 위치한 겹벚꽃이 화려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서산 문수사(文殊寺) 극락보전(極樂寶殿)」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장방형 평면에 다포식 공포를 얹은 맞배지붕 형식의 불전으로 정확한 중건 시기에 대한 고증 자료는 없으나, 주요 구조부에 대한 목재 연륜 연대 조사와 방사성탄소연대 분석을 통해 1630년대에 중건된 것으로 파악된다. 2024년 4월 2일 국가 유산 보물로 승격되었다.
▲부처님 오신 날이 가까워선지 연등이 화려하다.
▲문수사에서 상왕산으로 오를 수 있는 등산로가 있다. 2008년 12월 21일 금북정맥 산행 시 지나간 산이지만 문수사에서 쉽게 오를 수 있어 두 번째로 정상에 갔다.
▲문수사에서 상왕산 정상까지는 대략 20분 정도 소요되고 하산은 15분이면 된다.
▲문수사의 겹벚꽃은 이미 겹벚꽃이 지고 있었지만 화려함을 자랑하는 나무도 있었다.
▲서산 문수사의 겹벚꽃 터널은 방문자들이 먼저 만나는 이름다운 풍경 중 하나다. 주차장부터 사찰 주변까지 많은 겹벚나무가 식재되어 있어, 걸으면서 꽃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폭이 좁은 길에는 겹벚꽃으로 형성된 이름다운 터널이 펼쳐져 있다.
▲문수사의 겹벚꽃을 구경하고 개심사 가는 길에 가로수로 식재한 겹벚꽃은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저술한 유홍준 교수가 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스런 3대 사찰은 영주 부석사, 청도 운문사, 그리고 서산 개심사다. 개심사 일주문에는 상왕산 개심사라 적혀 있다. 금북정맥 길의 상왕봉 때문에 상왕산이라고 했는지, 백제 때는 가야산을 상왕산(象王山)이라 불렀는데, 신라통일 후 이 산 밑에 가야사를 세운 뒤 가야산이라 하여 백제 때 지은 절이라 상왕산이라 하는지는 정확 하지 않다. 일주문을 지나 개심사까지는 15분 정도 계단 길이 이어 진다.
▲국내에 네그루만 있다는 청벚꽃이 죽은 이들의 넋을 위로하는 명부전 앞에 피어 있는데 청벚꽃이 작년엔 예뻣는데 올해는 시기를 잘못 맞춰 그다지였다.
▲개심사 안양루와 대웅전 등을 구경하고 주차장으로 향한다.
▲상왕산 개심사는 겹벚꽃, 왕벚꽃, 청벚꽃이 유명하다. 특히 청벚꽃은 개심사에만 있다.
▲개심사 이 연못 배경 사진이 아름다운 곳이다.
▲수령 150년이라는 배롱나무 뒤로 안양루에 있는 <상왕산 개심사> 현판이 보인다.
▲꽃잎이 여러 겹으로 피는 벚꽃을 겹벚꽃이라 하는데 왕벚꽃이라고도 한다. 개심사 겹벚꽃은 많이 졌지만 저수지로 가는 가로수의 겹벚꽃은 화려하다.
▲신창 저수지에서 잠시 머물다 간다. 개심사에서 신창저수지까지 왕벚꽃 길이 일품이다.
▲신창 저수지에는 저수지를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다리도 있다.
▲수덕사가 있는 덕숭산을 가다 길가에 해미읍성이 있어 구경하고 간다. 사진은 해미읍성의 정문 진남문이다.
▲해미는 1414년(태종 14)에 충청도 덕산으로부터 충청도병마절도사영이 옮겨온 곳으로, 충청도병마절도사영이 청주로 이전한 1651년(효종 2)까지 군사적 거점이 되었던 곳이다. 해미읍성은 1491년(성종 22)에 축조되어 서해안 방어를 맡았던 곳이다.(출처:다음백과) 사진은 관아를 재현한 동헌 건물
▲우리나라에 조선시대 읍성으로는 남아 있는 곳이 고창읍성, 낙안읍성, 그리고 이곳 해미읍성이 있는데 이곳은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시기에 1,000여 명의 천주교인이 이곳에서 고문당하고 순교한 곳이라 한국 천주교 3대 성지에 해당하는 곳이기도 하다.
▲선조 9년(1576) 무과에 급제한 이순신 장군도 3년 뒤에 이곳에서 열 달 동안 군관으로 근무한 적이 있었고 다산 정약용도 천주교인이라는 이유로 열흘 동안 이곳에서 첫 귀양살이를 했다고 한다.
▲ 계단이 108개라고 하는데 청허정 정자 아래 계단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한다. 난 세다가 잃어 버렸다. ㅎ
▲정겨운 초가, 해미읍성은 작은 민속촌이다.
▲원래 이곳에 있던 관아 건물들은 일제 때 철거가 되었다고 한다. 그 대신 이곳에는 학교와 관공 시설들, 그리고 160여 채의 일반 민가도 들어서 있었는데 1973년 해미읍성 복원 때 모두 철거가 되어 바깥으로 옮겨졌다 한다. 사진은 옛날 옥(감옥이다.
▲해미읍성을 대충 구경하고 수덕사 주차장에 왔다. 수덕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관광객들로 5개 주차장이 거의 만차 수준 이었다.
▲수덕사 주차장에서 바라 본 덕숭산
▲수덕사 가는 길에 토속식당에서 된장찌개가 함께 나오는 산나물 비빔밥(12,000원)으로 11시 30분에 이른 점심 식사를 했다.
▲점심 식사를 하며 현금 결제할 때 주차권(2,000원)을 준다기에 설마 하며 현금결제 했는데 주차장에 들어올 때는 간섭 안 하다 나갈 시 주차비를 받고 있었다. 그 수많은 차량의 주차비 수익은 얼마일까 궁금해 졌다. 예산 수덕사 입장료는 문화재청 문화유산 관람료 지원 사업으로 2023년 5월 4일부터 무료 전환되었지만 실상은 국민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이다.
▲점심 식사 후 수덕사로 향한다. 주차장을 지나 수덕사 입구에는 사찰사유지라 오후 5시 30분 이후에는 출입이 안 된다는 안내문이 있고 ‘덕숭산덕숭총림수덕사’라는 현판이 있는 선문을 지난다. 조계종에는 8개의 총림이 있다. '총림(叢林)'이란 불전 법당뿐 아니라, 참선 수행을 위한 선원(禪院), 경전 교육을 위한 강원(講院), 계율 교육을 위한 율원(律院)을 모두 갖춘 사찰을 말한다. 8개의 총림은 해인총림 합천 해인사, 조계총림 순천 송광사, 영축총림 양산 통도사, 덕숭총림 예산 수덕사, 팔공총림 대구 동화사, 금정총림 부산 범어사, 고불총림 장성 백양사, 쌍계총림 하동 쌍계사다.
▲수덕사 일주문, 편액은 덕숭총림 수덕사 4대 방장을 지내신 송원 설정 스님의 글씨다. 설정 스님은 1942년 예산에서 태어나 주역의 대가인 부친에게서 한학을 배웠고, 13세 때 만공 스님에게서 계를 받았던 부친과 수덕사에 찾아와 출가하기로 결심하고 7년간 속가로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고 한다. 1980년에 수덕사 주지, 2009년에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2017년에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내셨다. 일주문 옆엔 문화해설사의 집도 있다. 두 번째로 지나는 금강문은 초서체 한자로 현판이 적혀 있었고 안에는 무서운 두명의 역사가 좌우에 서있다.
▲세 번째로 지나는 사천왕문, 문 안쪽에는 좌우로 사천왕들이 눈을 부라리고 서있다. 동방지국천왕은 나라를 다스리고 지키며, 손에는 비파를 들고 음악을 연주하며 백성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신이다. 남방증장천왕은 불자들에게 지혜와 복덕을 늘려주고 이익을 증장시켜 주며 금강검으로 불자에게 남아있는 번뇌를 끊어 지혜가 생기게 한다. 서방광목천왕은 인간의 선악을 살피고 손에 용과 여의주를 들고 있으며 잘한 사람에게는 여의주로 상을 주고 잘못한 사람에게는 용을 보내 비를 뿌리는 등 벌을 준다. 북방다문천왕은 사천왕 중 우두머리로 손에는 보탑과 보당을 들고 부처님의 도량을 수호하고 불법을 불자들에게 전하는 신이다.
▲사천왕문을 지나면 코끼리 석등이 있고 맞은편에는 포대화상이 모셔져 있다. 포대화상은 본명은 '계차'로 항상 포대자루를 들고 다녔기 때문에 포대화상이라 불렸고, 배가 나오고 대머리인 것이 특징이다. 미륵보살의 화신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배를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어 배 부분이 반질반질하다. 이후 황하정루를 통해 들어가면 대웅전이 있다. 대웅전이 오래된 건축물로 유명한데 대웅전 앞은 사월 초파일 연등이 걸려있다.
▲석가모니불을 모신 수덕사 대웅전은 고려 1308년[충렬왕 34]에 지은 건물로,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가운데 하나이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49호로 지정되었다. 대웅전 편액은 예술, 문화, 특히 서화에 능했다는 덕숭총림 수덕사 3대 방장 원담 진성(1926~2008) 스님의 글씨다.
▲수덕사 대웅전 뒤에 있는 나무는 ‘신록이 우거진 계절’, 녹음(綠陰)의 푸르름에 눈이 시리도록 예술이다.
▲수덕사 대웅전을 정면으로 두고 좌측으로 잠깐 이동하면 덕숭산 정상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목을 확인하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절을 끼고 가는 산행은 마음도 평온해지는 것 같다. 수덕사 자체가 등산객 친화적이라서 좋았지만, 최대한 수행에 방해되지 않게 문이 잠겨 있는 절은 지나치고 조용히 다녀왔다.
▲사면석불 : 1983년 예산군 봉산면에서 발견된 백제시대 사면불을 재현해 조성하였고, 약사불, 아미타불, 석가모니불, 미륵존불을 사방에 모신 사면석불을 지나게 된다.
▲사면석불이 있는 이곳부터 정혜사까지 '벽초 경선(碧超鏡禪)스님의 1080돌계단'이 이어진다. "인간의 백팔번뇌를 열 번 내려놓으라."라는 의미라고 한다. 벽초스님은 만공(滿空)스님의 법맥을 이은 수좌로 선농일치(禪農一致)를 실천하며 후학들에게 모범을 보였으며 황무지나 다름없던 사찰 전답(田畓)을 손수 개간하여 옥토(沃土)로 만들었고, 수덕사에서 정혜사까지 이르는 1080 돌계단을 쌓았다고 한다. 당시 주지 스님이었던 벽초스님이 정혜사까지 손수 만들었다는 1080 돌계단, 하나씩 밟고 올라선다.
▲소림초당 : 1920년 중반, 만공스님이 덕숭산 중턱 절벽 위에 지은 작은 암자다. 자연목으로 짓고 그 위에 이엉을 올린, 자연 그대로의 멋을 간직한 작은 초당이다. 정상까지는 1.22km 오르면 되는데, 만공스님이 "저곳에 초가집 하나 지으면 참 좋겠다"하였더니 벽초스님이 지으셨다고 한다.
▲소림초당에서 돌계단을 3분 정도 오르면 관음보살입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관음보살입상이 위치한 곳에 향운각은 들어갈 수 없는 곳으로 관음보살입상을 보고 되돌아 나와 정상을 향해 오른다.
▲덕숭산 관음보살입상은 만공스님이 1924년에 조성 봉안하였다. 관음보살입상은 관음보살의 덕으로 중생의 8가지 고통을 덜어주는 감로수 병을 손에 들었다. 머리에는 어머니의 은혜를 보답하기 위하여 관세음보살의 상호를 모시고 있다.
▲ 향운각쪽에서 바라 본 덕숭산 관음보살입상
▲향운각은 굳게 잠겨 있고 아쉽게 발걸음을 돌렸다.
▲정혜사(능인선원) 출입이 제한되어 만공탑으로 향한다. 5백년 이어진 숭유배불정책으로 조선시대의 불교는 그야말로 근근히 그 맥을 이어오다가 조선조말 경허 선사의 등장으로 홀연 불교중흥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1900년대 우리나라 불교계에서는 ‘북(北) 오대산에 방한암이 있고, 남(南) 덕숭산에 송만공이 있다“는 말이 든든한 버팀목처럼 회자 되고 있다. 그만큼 오대산의 한암 스님과 덕숭산의 만공스님은 당시 우리 불교계를 상징하는 두 거목이셨다.
▲만공탑은 만공스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47년에 세운 돌탑으로 전통적인 승탑의 형식을 벗어난 근대적인 기념탑으로 육각의 지대석 위에 둥근 고임돌을 놓고 그 위에 세 개의 기둥을 세운 후 둥근돌을 올려놓은 모습이다. 기둥의 삼면에는 검은 오석으로 면석을 만든 후 앞면에는 "만공탑" 좌우 옆면에는 "세계일화백초시불모"등 만공스님이 직접 쓴 글과 행장, 법훈 등을 새겼다. 탑 주위에 두른 육각의 돌난간은 후대에 만공탑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만공탑은 탑의 각 구조물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어 근대 사찰 조형물로서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왜색불교를 물리치고 한국불교의 자주성과 정통성을 지키기 위한 만공 스님의 사상과 불교의 교리를 상징적으로 잘 나타내고 있다.
▲정혜사는 599년 지명법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능인선원은 만공스님이 주석하며 선풍을 진작시킨 정진처다. 매년 철마다 수십 명의 스님들이 용맹 정진하는 우리나라 대표 선원이다. 외부인 출입을 금한다기에 열려있는 문틈과 담 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 마침 어느 스님이 나오고 있어 더이상 출입은 금했다.
▲이제 갈림길이 나온다. 정혜사를 지나 삼거리를 통과하는데 양쪽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지만 좌측은 짧으나 가파른 길(0.5km), 우측은 돌아가나 덜 가파른 길(0.74km)이다. 우리는 우측으로 향했다.
▲덕숭산 코스 중간중간 수행하는 곳이 있다. 전월사 "넘지 마시오"란 출입 금지와 같은 말인데 부드럽게 와닿는다.
▲전월사를 지나니 정상이 바로 앞이다.
▲덕숭산에서 바라 본 가야산 가야봉과 원효봉
▲2008년 12월 7일 금북정맥 산행 중에 간 덕숭산 인증사진, 지금도 이 표지석은 있다.
▲정상에는 이정목과 정상석, 국가지점번호, 등산 안내도가 있다. 덕숭산(수덕산)은 호서의 금강산이라고도 불리는 예쁘장하고 아담한 산으로 기슭에 수덕사를 품고 있으며 예산읍에서 서쪽으로 20㎞, 덕산면 사천리에 있다. 이 지방 현인들이 모여 수양하다 산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하여 수덕산이라고도 한다. 1973년 3월 6일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해발 580m의 덕숭산은 기암괴석이 풍부하여 바위들이 사람의 두개골이나 노적가리, 사나운 짐승이 입을 벌리고 있는 듯한 형상을 지닌 절묘한 형상을 지니고 있다.
▲사진 중간 멀리 수덕사 주차장이 보인다.
▲덕숭산 정상을 긴 코스로 올라 한 바퀴 돌아 짧은 코스로 하산하면 가파른 나무 계단도 만나고 이 이정목으로 온다.
▲정혜사의 겹벚꽃
▲염불원 가는 길옆에 법고 연습 하는 곳이 있다. 올라 갈 때 법고 소리가 요란하여 족욕을 하고 가 보니 스님이 두드리던 법고 연습기가 있었다.
▲수덕사 승가대학인 심우당은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예산 수덕사 환희대는 <청춘을 불사르고>를 지은 일엽 스님이 주석 열반한 곳으로 비구니 스님이 수도하는 도량이다. 입구에는 월송, 정진 두 비구니 스님을 기리고자 다보탑을 세우고 '이니보탑(二尼寶塔)'이라 명명하였다. 수덕사 환희대의 원통보전은 덕숭총림 초대 방장 혜암 스님이 증명하고, 2대 방장 벽초 스님이 터를 잡았으며, 3대 방장 원담 스님의 지휘하에 월송, 정진 두 비구니 스님이 건립하였다. 원통보전 편액은 원담 진성 스님의 글씨다.
▲고암 이응노 화백이 작품 활동을 하던 수덕여관과 우물, 암각화를 포함한 일대가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수덕여관은 화백이 1944년 구입하여 6.25 전쟁 당시 피난처로도 사용하였으며, 1959년 프랑스로 건너가기 전까지 머물면서 수덕사 일대의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에 옮기는 작업을 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수덕사 위쪽으로부터 내려온 좁은 개울물이 집 앞으로 흘러 지나가고 개울 건너편에 여관을 배치하였다. 가운데 안마당을 두고 'ㄷ'자 초가가 감싸고 있는 여관은 일제강점기 때 지은 것으로 보이는데 여관만 아니라면 소담하면서 궁색하지 않은 전형적인 농가 모습이다. 후면에는 이응노 화백이 사용하던 우물이 있다. 수덕여관 옆에는 이응노 화백이 '영화롭고, 마르고, 성하고, 쇠함' 즉, 모든 물질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라고 하는 불교의 '제법무상'의 의미인 '영고성쇠(榮枯盛衰)'를 표현한 추상화 암각화와 이 화백이 한글 자모 문자 추상화 암각화가 너럭바위에 새겨져 있다.
▲덕숭산 정상에서 내려와서 나오는 길에 수덕사 내 '선 미술관'이 있어 들어갔다. 『수덕사 선 미술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불교 전문 미술관으로 2010년 10월 26일에 개관했다고 한다.
▲이 미술관의 외형은 국보 제49호인 수덕사 대웅전의 맞배지붕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처음에 고암 이응로 화백의 세계를 접목시켜 건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불교 전문 미술관이라고도 한다.
▲차량 회수를 위해 주차장으로 돌아오며 산행을 마쳤다. 덕숭산 산행은 산행이라기 보다 주변 볼거리가 많은 게 특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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