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미고개→시루봉→오도산→금동고개→ 떡갈봉→안산→ 먹치→ 만인산→ 만인산 휴게소
◇ 산행지 : 대전광역시 중구 대사동, 구완동, 이사동, 금동,어남동,하소동 일원
◇ 산행일자 : 2022. 10. 30 (일). 날씨 : 맑음
◇ 산악회및 친구 : 대중교통 이용
◇ 산행거리 : 23.7km
◇ 산행시간 : 9시간 30분 산행( 중식 30분 포함)
◇ 시간 대별 요약
- 07:30 테미고개 산행 시작
- 08:06 망향탑
- 08:37 시루봉
- 08:53 이사동 전망대
- 09:52 오도산
- 10:57 목달동 갈림길
- 11:18 금동고개
- 11:35 점심 식사(30분)
- 12:05 점심 식사 후 산행 시작
- 13:04 떡갈봉
- 15:13 안산
- 15:33 먹티고개
- 16:14 만인산
- 16:53 태실
- 17:00 만인산 휴게소 산행 마침
※ 특기사항
① 둘레 산길 4회 전 구간(12 구간) 마침 산행
② 둘레 산길 1~2 구간 5회째(보~만 4회,1.2구간 나누어 1회)
③ 보문산→만인산(2008년 이후 처음)
④ 낙엽 산행
⑤ 대중교통 이용
※ 산행 전 사전 조사
<대전광역시(大田廣域市)> : 대전시는 예전엔 순우리말인 한밭고을이라 불렸다. 지금도 한밭이라는 명칭은 여러 군데에서 쓰이고 있는 현재형 지명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는 신라 때는 비풍군, 고려 때 회덕현, 유성현 그리고 진잠현에 속한 지역이었으며, 조선시대 때 공주목의 회덕현과 진잠현으로 소속되어 내려오다가 고종 32년(1895년) 지방행정 제도의 개편으로 회덕군과 진잠현이 되었다. 이후 1914년 회덕군, 진잠군 및 공주군의 일부가 합쳐져 대전군이 신설되었고, 회덕군과 회남면(현재 인동, 원동, 중동, 정동, 삼성동)을 중심으로 대전면이 신설되어 현재의 대전시의 모태가 된 것이다. 다시 대전면에서 대전읍(1931년)으로 되었다. 이 당시 공주에 있던 충청남도 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하였으며 1935년 부제 실시에 따라 대전부로 승격되었다. 1935년 지방자치제가 실현되면서 대전시로 승격되어 개칭되었고 1989년 대덕군 전역을 편입시켜 되었으며, 1995년 대전광역시로 명칭이 개편되었다.대전시가 직할시로 승격됨에 따라 대덕군 산내면의 구완리, 무수리, 침산리, 목달리, 정생리, 어남리, 금동리를 법정동으로 산서동을 행정동으로 하여 현재 법정동 26개동, 행정동 25개동 면적 61.93㎢의 지역을 관할하는 자치구로 승격된 것이다.
< 대전둘레산길 1구간 (보문산길) > : 아! 대전이여.
보문산은 대전 시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산이다. 보문산 녹음은 대전팔경 중 하나로 선정되었으며, 보물이 묻혀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산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동춘당 송준길 선생은 그의 문집에서 보문산을 봉무산(鳳舞山)으로 불렀는데 이는 봉황이 춤을 추고 있는 산이란 뜻이다. 산 정상인 시루봉에 오르면 주변 조망이 매우 좋아 날씨가 맑은 날에는 멀리 계룡산, 대둔산, 서대산, 속리산 등이 보이며, 보문정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산줄기가 겹겹이 멋지게 펼쳐져 있고, 북쪽을 바라보면 대전 시가지와 대전둘레의 산들이 한눈에 펼쳐져 있다. 1구간 코스는 고촉사를 거쳐 시루봉에 오르는 초입에 힘이 들지만 이후 오도산이나 금동고개까지 그리 힘들지 않고 여유롭게 산행을 할 수 있다. 1구간 주변에 대전 아쿠아 월드와 한밭도서관, 대전시향토사료관, 보문산성 , 보문산마애여래좌상, 봉소루, 월송재, 보문사지 등이 있다. (출처 : 대전광역시청홈페이지)
< 대전둘레산길 2구간 (만인산길) > : 만 길이나 높고 깊은 만인산!
만인산은 태봉산이라고도 부르는데 조선 태조 이성계의 태실이 이곳에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산은 동구의 남쪽 끝에 있기에 대전 시민들이 마을 뒷산처럼 쉽게 찾지는 못하지만 만인산 휴양림은 가족과 함께 산길을 걷기에 참 좋은 곳이며, 특히 연인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3대 하천 중 대전천의 발원지가 바로 만인산 봉수레미골에 있으며, 산길이 부드럽고 낙엽송이 주변에 잘 어우러져 있어 멋진 분위기를 자아낸다. 2구간 코스는 동구와 중구의 구계와 대전시계에 주로 형성되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산길이라 주위를 잘 살피며 산행해야 한다. 만인산 정상에 오르면 주변의 조망이 좋고 특히 서쪽 능선이 아름답다. 근처에 서대산과 정기봉이 보이고 멀리 보문산, 식장산, 천비산이 눈에 들어온다. 2구간 주변에 신채호선생생가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태실과 주민들이 많이 찾는 만인산 푸른학습원, 만인산 휴양림, 만인산 휴게소가 있다. (출처 : 대전광역시청홈페이지)
※ 대전둘레산길 1구간 등산 지도및 관련자료
※ 산행 후기
대전 둘레 산길 전체 구간은 편의상 12구간으로 나누어져 있으나 1구간 종점과 2구간 시작점인 금동고개는 버스가 많이 다니지 않아 1~2구간을 한 번에 해 보고자 마음은 먹고 있었으나 지난번 3차 때에 1구간과 2구간을 나누어 해 보니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그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산행을 해 와서 자신감도 생겨 그동안 해왔던 보~만 구간의 산행기록을 찾아보니 총 3회 보~만 구간의 흔적이 있었다. 다만 2006년에 두 번과 2008년 5월 24일 산행기록이 있는데 7시간45분 소요된 내용이 있다. 그때는 지금에 비해 체력이 좋을 때고 2021년의 1구간 기록은 4시간 5분, 2구간은 5시간 40분산행한 기록으로 보아 적어도 9시간은 소요 될 것 같아서 고민에 빠졌다. 동절기이다 보니 해가 빨리 지는 것을 감안하여 동행할 친구에게 당초의 계획보다 30분 빨리 시작 하자고 이야기 했고 안 가 본 곳으로 진행하기 위해 테미고개에서 7시 30분에 만나기로 하고 배낭을 꾸렸다. 날씨가 추우니 김밥 보다는 발열 식품이 나을 것 같아 김치 비빔밥으로 점심을 준비했고 반찬은 멸치볶음과 고들빼기김치를 조금 챙겼다. 산행거리가 23.7Km인 것을 감안하여 술은 배낭에 넣지 않았고 충분한 물(2.8리터)을 챙겼다. 전날 마신 술 때문에 잠은 푹 잤고 5시 40분 알람에 깨어 아침식사를 하고 외삼중학교 앞 119번 버스 타는 곳으로 가니 버스 도착 시간이 늦어 반석역으로 지하철을 타러 갔다. 서대전역에 내려 119번 버스 도착 시간을 보니 너무 늦어서 택시를 잡아 테미고개로 가니 약속한 시간 보다 일찍 도착하여 산행초입을 찾고 있는데 산행 친구가 왔다. 마침 지나가는 동네 주민에게 산행 초입을 물어 보니 이곳은 패쇄 되어 산길이 없다고 한다. 택시 기사가 알려 준 초등학교 쪽으로 가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친구가 길이 있을 것 같다고 그냥 올라 가 보잔다. 올라 가 보니 등산로를 제대로 찾은 것 같았다. 친구에게 트랭글을 켜라 하고 본격적인 산행은 시작 되었는데 등산로는 유순하고 워밍업 하기 좋았다. 시루봉에 다와 가니 친구가 시루봉에 들릴 거냐고 묻는다. 우회로가 있는 줄도 사실 나는 몰랐는데 친구는 보문산에 많이 와서 시루봉을 우회 하는 길을 알고 있어 한 말 이었지만 시루봉이 1구간 시작점이니 당연히 들려야 한다고 했다. 시루봉은 둘레 산길 하며 8번 들린 셈이니 최소 10번 이상 온 것 같지만 감회가 또 달랐다. 둘레 산길 4차 마지막 구간이니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지만 암튼 1~2 구간을 잘해낼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섞여서 묘한 감정이 들었다. 시루봉에서 오도산 가는 길은 거의 하산 길이니 큰 어려움이 없었고 오도산을 오르면서 약간의 힘겨움이 있었지만 크게 힘들이지 않고 오도산에 올라 사한정에서 준비해 왔던 감을 깎아 먹고 금동으로 향했다. 금동고개를 지나 들마루가 있는 햇빛이 드는 곳에서 발열식품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데 부부가 온다. 어~! 그런데 롯데산악회의 산악대장이었다. 금동고개에서 우리와 반대로 보문산 가는데 우린 보문산에서 만인산으로 간다고 하니 시간이 괜찮겠냐고 반문한다. 시간은 충분하다고 하고 말하며 왜 이곳까지 왔느냐고 물으니 조망을 보러 왔다고 하며 보문산으로 향했다. 점심 식사 시간은 대략 30분 정도였고 떡갈봉으로 출발했는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 되었다. 계속적인 오르내림의 연속이었고 산악 오토바이 때문에 등산로가 망가져서 힘겨운 시간이었다. 컨디션이 좋아 다행이었지만 중간 중간에 쉬고 물과 에너지 바, 과일로 체력을 보충하며 산행을 계속해 나갔는데 안산에 도착해서야 만인산이 가까워지면서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체력이 고갈 되어 가는 시작이라 먹티에서 만인산 오름이 힘겨울 것이란 생각이 있었는데 의외로 쉽게 만인산 정상에 도착했고 정상 인증을 한 후 만인산 휴게소로 가는 길은 내림길이라 편한 발걸음을 했다. 태조 태실 건너기 전 약식 유격을 하면서 산행은 종료 되고 있었고 만인산 휴게소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501번 버스를 타고 대전역에서 친구와 12구간 완주 축하주를 마시면서 기쁨을 함께 했다. 반석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집에 와서 캔 맥주 한 캔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 산행 사진
▲ 대사동 보문오거리 가기 전 테미고개 정류장에서 산행을 시작 한다.
▲ 테미공원 갈림길 : 보문산으로 가는 사람들은 우리들이 올라 온 테미고개 보다는 주로 이곳으로 많이 진입 하는 것 같다.대흥동에 있는 테미공원은 보문산 줄기인 해발 108m의 수도산에 있다. 1955년 11월 음용수 보안 시설로 지정되어 출입이 제한되어 왔으나, 1995년도에 개방하여 자연경관을 최대한 살려 도심 속에 조성한 휴식공간이라고 한다. 4월에 는 벚꽃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한 번 가보아야겠다.
▲ 망향탑 : 1985년 12월 27일에 발의하여 1990년 6월 20일 건립 완공 하였다. 60만 실향민들의 망향의 한을 달래고져 이북 도민 망향탑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 일반적으로 둘레 1구간은 청년광장에서 고촉사를 경유하여 시루봉으로 오른다.
▲ 계단을 오르면 시루봉이다.
▲ 시루봉에서 바라 본 식장산과 계족산.
▲ 보문산 정상 시루봉의 이정표 (오도산 3.1km /이사동전망대 0.9km /뿌리공원교통광장 /오월드버스종2.4km) :시루봉(457.4m)에는 전망대 팔각정 보문정(寶文亭)이 설치되어 있다. 주변엔 이정표를 비롯 각종 안내판들이 여러 개 세워져 있다. 진행방향은 오도산 방향이다.
▲ 시루봉 보문정
보문산(寶文山, 457.6m) : 대전광역시 중구에 있는 산으로 1965년 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주봉은 시루봉이다. 시 중심부 남쪽에 솟은 산으로, 보문산이란 이름은 보물이 묻혀있다 하여(혹은 재물이 끝없이 나온다는 그릇인 화수분이 묻혀있어) "보물산"으로 부르다가 보문산으로 개칭하여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화수분 바가지 전설에는 화수분 바가지 안에 흙이 들어가자 끝없이 흙이 쏟아져 지금의 보문산이 되었다고 한다. 또 나무꾼이 죽어가는 물고기를 살려줘서 얻은 '은혜를 갚는 보물주머니'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보문산 녹음(綠陰)은 대전팔경의 하나로 꼽히며 대전광역시의 대표적인 녹음 공원이자 도시자연공원으로, 여러 문화재와 함께 보문랜드, 푸푸랜드, 청년광장, 보문산공원(사정공원), 야외음악당, 전망대, 유희시설, 케이블카 등 휴식공간이 잘 갖추어져 있어 시민의 사랑을 많이 받는다. 또 골짜기마다 20여 곳의 약수터가 있고 시루봉 아래 고촉사에는 미륵상을 닮은 자연 암석이 있다.
▲ 이사동 전망대 방향으로 가며 바라 본 보문산성(寶文山城) 장대루(將臺樓)
▲ 이사동 전망대 안내도
▲ 이사동 전망대에서 바라 본 식장산
▲ 오도산으로 진행 하면 된다.
▲ 보문산 순환 숲길 임도의 이정표
▲ 좌측 이사동, 우측 구완동 버스종점 갈림길 안부사거리
▲ 절고개 안부를 지났는데 고개 아래로는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 구완터널이 지나고 있는 지점이다. 이제 오도산 오름길인 가파른 침목계단을 올라야 한다.
▲ 침목계단에 이어 통나무 계단길로 바뀌고 5분정도 오르면 거대한 바위옆을 지나 우측 구완동 갈림길 능선 삼거리에서 고모재방향으로 오도산으로 향한다.
▲ 2021년 1월 24일 3차 둘레 산길 때의 사진( 이번에는 오도산 이정표도 못 보고 지나 쳤다) . 오도산 안내판에 나와 있는 글을 옮겨 보면 대전 중구 구완동에 소재한 산으로 산봉우리 모양이 칼날처럼 뾰족하여 능선으로만 올라갈 수 있으며, 일부는 돌로 성을 쌓았다. 일제 강점기 전북 익산 출신 오하, 이규홍 의병장이 1909년 이사동 송창재, 송덕재를 찾아가 일본군의 눈을 피해 수년간 은신하다가 일본 관헌에게 발각되어 오도산으로 올라가 저항했던 격전지 이기도 하다라고 적혀 있다. 오도산이란 이름은 어려움이 있어도 나의 할 도리는 한결같다는 뜻에서 오도산이라는 지명이 나왔다고도 하는데 안내판은 다섯길의 산이란 오도산(五道山)으로 표기 되어 있다.
▲ 나즈막한 오도산이지만 북동쪽으로 식장산(624m)이 우뚝 솟아 보이고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에서 대전통영고속도로가 분기하는 산내 JC가 내려다 보이며 산내 낭월동, 대별동 쪽 일부가 조망된다.
▲ 오도산(五道山)에서 바라 본 보문산 시루봉 방향
▲ 오도산(五道山) 사한정(沙寒亭)에서는 이사동 유교민속마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유교민속마을이 있는 이사동은 500여 년간 형성된 은진 송씨 집성촌이라 한다.
▲ 이사동 유교민속마을 누리길은 국토교통부 공모 환경문화사업의 일환으로, 2017년 8월부터 12월말까지 약 5개월에 걸쳐 유교민속마을을 둘러싼 누리길(6km)을 조성했다고 한다. 이 누리길은은 자연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전둘레산길과 동구 구도동 누리길과 이사동 내 상사리마을의 기존 등산로를 따라 만들었다고 한다.
▲ 사한정에서 바라 본 식장산(624m)
▲ 마경산에 대해 다음 블러그 마루금님의 글을 보면 마경산(馬鏡山)이라는 이름도 있으나 잘못 된 명칭이라고 한다. 지금은 마분산으로 가닥이 잡혔다고 한다. 대전동구문화원의 지명유래에 '공주말 북쪽에 위치해 있다. 산꼭대기에 커다란 말의 무덤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높이는 242미터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242봉은 현재의 삼각점봉을 말하며, 이 봉우리 명칭에서 빌려온 것 같다. 정상에는 산불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으며, 정상석은 없다고 한다. 암튼, 기회가 된다면 마경산인지 마분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강바위산과 함께 한 번 가 보아야겠다.
▲ 둘레길은 금동으로만 가면 된다. 이정표가 잘 되어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목달산(x375봉)이란다. 무수동임도 갈림길 이정표(금동1.89km /무수동임도0.74km /오도산2.4km/시루봉5.7km)가 있다.
▲목달산을 지나 가는데 굉음이 들려 뒤 돌아 보니 산악 오토바이가 질주 하고 있다. 얼른 피했는데 이곳은 산악 자전거도 오토바이도 출입금지 지역인데 몰상식한 사람들로 인해 등산로가 많이 망가져 있다.
▲ 삼거리 이정표 (금동 0.79km /목달동1.50km /오도산3.51km) : 목달동 방향은 석태산 방향이다. 1구간은 이정표에서 금동으로만 가면 된다. 석태산(411m)은 대전 중구 금동에 소재한 산으로 대전둘레산길 1구간 변곡점 371봉에서 약 1km 정도 벗어난 지점에 소재한 산이다. 목달동으로 연결된 능선에 있는 산으로 조망은 좋지 않다. 왕복 20분 정도 소요된다고 하니 기회가 있으면 꼭 가 봐야겠다.
▲ 이 지점에서 가파른 계단이 이어지고 잠시 후 아래 이정표가 나온다.
▲ 이정표 (금동고개0.6km /오두산3.7km /시루봉)
▲금동고개 아스팔트 2차선 도로에 도착한다. 이정표(장착동0.2km/금동버스정류장1.3km)와 30. 31번 버스노선 안내도가 있다.
▲ 금동고개 : 대전 동구 장척동과 금동 마을을 넘나드는 포장 2차선의 산서로가 지나가는 고개로, 총 12구간으로 구성된 대전둘레산길 중에서 보문산에서 시작한 1구간이 끝나고 만인산을 지나 태실까지 이어지는 2구간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 대전둘레산길 2구간 시작점이라는 안내판과 금동고개 이정표(만인산10.3km /떡갈봉3.0km)을 지나 산행을 시작하면 풀밭 능선을 잠시 지나고 우측으로 금동 마을이 내려다보이며 다시 숲으로 올라 작은 봉우리를 지나서 내려서면 떡갈봉을 향한 본격적인 오름길로 들어선다.
▲ 금동고개에서 약 600m 이동 후 들마루가 있는 이곳에서 롯데산악회 산악대장도 만나고 점심 식사를 했다.
▲ 제법 가파른 데크 계단 길을 오르면 잠시 완만한 능선 오름길이 이어지더니, 468.9봉을 오르지 않고 우회 할 수 있는 길이 나온다.
▲ 이동통신 기지국
▲ 이정표(만인산8.2km /떡갈봉0.8km /산정말1.6km /금동고개2.2km)가 있는 무명봉
▲ 475봉 신정말 갈림길 봉우리의 이정표 : 대전둘레산길을 걷는 분들은 이곳 475봉에 작은 돌탑이 있다고 돌탑봉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는데 무명봉이다.
▲ 떡갈봉(499.2m) : 대전시 동구 삼괴동 부락에서 맨 끝에 보이는 높은 산봉우리를 떡갈봉이라 부르는데, 떡이 열리는 참나무가 있었다고 하여 떡갈봉이라 불린다고 한다.
떡갈봉의 전설 : 옛날에 나무를 해서 금산장에 나가 그 나무를 팔아서 근근이 생활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식구래야 자기와 홀어머니 하나뿐인데 어머니가 먹고 싶다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서 어머니에게 드리는 효자였다. 산아래 집을 짓고 사는 그들에겐 가난이 몸에 배었지만 그의 어머니는 자식을 잘 둔 덕분에 잘 먹고사는 편이었다. 어느새 세월은 흘러서 아들이 서른이 넘었지만 장가를 못 보내서 어머니는 혼자서 부지런히 일하는 그의 아들이 불쌍하기만 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이 장터에 나가면 으레 뒷마당에 있는 고목나무 아래에 찬물을 떠놓고 산신령님께 아들이 장가를 들어 며느리가 하나만 들어오게 해달라고 빌곤 했다. 아들은 항시 부지런해서 그날도 지게에 어머니가 먹고 싶다는 조기를 두어 마리 매달고 집에 돌아왔다. 그때 아들이 집에 들어오는데 뒤에 고운 처녀가 따라 들어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색시를 만나서 데리고 들어오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게를 받쳐 놓고 아들도 색시를 보고 어리벙벙하는데 뒤따라 들어온 색시는 노상 뒤를 돌아보더니, 「마님, 저 좀 숨겨주세요. 저를 잡으러 포졸들이 오고 있어요.」 하고 애원하므로 어머니는 그 색시를 뒤뜰 짚 더미 속에 감추어 주었다. 색시를 감추고 앞마당으로 나오는데 포졸들이 몰려와선 여기서 색시를 못 봤느냐고 다그쳐 묻자 아들은 눈만 끔벅거리는데 어머니가 말하기를 저쪽 산너머로 도망갔다고 하니까 포졸들은 그쪽으로 바삐 쫓아가는 것이었다. 그날부터 쫓기어 이 집에 들어온 색시는 사화에 몰려 삼족을 멸하는 어는 대감집 딸로서 도망 다니다가 이 집에서 숨겨주자 이 집 며느리가 되었다. 어머니의 기쁨은 말할 수가 없었다. 색시는 고운 옷을 버리고 촌부의 옷으로 갈아입고선 부지런히 일을 했다. 아들도 나무를 해서 금산장에 불이 나게 다녀와선 자기의 아내와 집안일을 하고 해서 집안이 옛날보다 훨씬 깨끗해졌으며 아들이 글공부를 하여 집안에 윤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산으로 나무하러 갔다가 바위에서 뒹굴어서 다리를 다쳐 꼼짝도 못 하게 되었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해 와야 그날그날 살아가는 그들에게 큰 타격이 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다리를 다친 아들 대신 며느리가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게 되었다. 며느리가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면 겨우 집에서의 땔감밖에 안되었다. 며느리는 열심히 일을 했다. 고왔던 손이 터지고 얼굴 색깔이 검게 타고 너무 지저분한 옷을 걸치고 다녔지만 어딘지 모르게 깨끗한 아낙이었다. 밤에는 남편을 앞에 앉히고 가르쳤다. 천자문부터 시작하여 논어까지 슬슬 뜻을 새겨나갈 때 어머니가 덥석 병석에 눕게 되었다. 어머니는 병석에 누워서 찹쌀떡이 먹고 싶다 하자 아들과 며느리는 밤새 잠을 못 이루었다. 그 이튿날 아침 일찍이 며느리는 산으로 올라갔다. 오늘은 일찍 나무를 해서 금산장에 나가 팔아서 찹쌀떡을 사 오기 위해서였다. 어둠을 뚫고 산에 올라온 며느리는 열심히 나무를 했다. 나무를 해서 한 다발 꼭꼭 묶고 빨리 금산장에 다녀와야겠다고 머리에 이고 나오는데 그때서야 해가 뜨기 시작했다. 며느리는 걸음을 재촉해서 봉우리 한가운데로 나오는데 언뜻 앞을 바라보니 큰 참나무에 무엇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며느리는 신기해서 가까이 가보니 참나무에 매달린 것은 모두 찹쌀떡이었다. 며느리는 덥석 나무를 내려놓고 그 떡을 따기 시작했다. 그래서 찹쌀떡을 가지고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드렸다. 그 이튿날 산봉우리 그 참나무를 찾았다. 역시 찹쌀떡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며느리는 또 떡을 따 가지고 집으로 오는데 집 앞에 꽃가마가 놓여 있었다. 사화에서 풀려 그를 데리러 온 한양의 꽃가마였다. 며느리와 아들, 어머니는 그대로 모두 한양으로 떠나는데 며느리가 시녀를 시켜 떡이 열려있는 산봉우리에 다녀 가자고 하여 꽃가마를 타고 산봉우리에 갔었다. 허나 그 참나무는 있는데 이상하게도 떡은 간 데가 없었다. 며느리는 한양으로 발길을 돌리며 이 봉우리를「떡갈봉」이라 불렀다는데, 그래서 지금까지 떡이 열리는 나무가 있었다 하여「떡갈봉」이라 부르며 이 집 아들은 한양에서 아내 덕분에 큰 벼슬을 하였다 한다.
▲ 떡갈봉의 이정표(만인산7.4km /금동고개3.0km)
▲ 떡갈봉에서 잠시 진행하면 무인산불감시카메라와 삼각점이 있는 얼갱이산이다. 얼갱이산(490m)은 무인산불감시시설과 삼각점(금산 418)이 자리 잡은 산으로, 얼갱이가 체를 뜻하는데 이곳과 무슨 연관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실제 산행시는 그곳에 아무런 표식이 없어 얼갱이산인지도 모르고 지나쳐 왔다. 산이름을 언제부터 누가 그렇게 불렀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현재 산행기에 얼갱이산이란 이름이 간간이 나오니 굳어질지도 모르겠다.
▲ 좌측 상소동의 동구청소년수련원 방향 갈림길 이정표(만인산6.3km/청소년수련원2.5km/금동고개4.1km)
▲ 어남동갈림이정표(만인산5.6km /어남동/금동고개4.8km)
▲ 평상과 이정표(만인산5.3km/어남동/금동고개5.1km/떡갈봉2.1km)가 있는 443봉
▲ 가파르게 내려가다 다시 오르내려 가는데 오토바이에 파인 등산로가 힘들게 한다.
▲ 용궁사 갈림길의 이정표(만인산3.5km /용궁사0.6km /금동고개6.9km)
▲ 이정표(만인산 2.6km /시경계 어남동/금동고개7.8km)
▲ 안산(424m) 정상에는 국가지정번호 표시판(다마 9330 0097)이 있다. 안산에서 만인산 정상까지는 약 1시간 정도 소요된다.
▲ 안산(424m) 정상에서 바라 본 조망 (북쪽 지나온 떡갈봉 방향)
▲ 안산을 뒤로하고 급경사 내림 길을 내려서면 먹티고개다. 보이는 마을은 먹치마을이다.
▲ 먹티고개와 이정표(만인산 1.6km /금동고개8.9km)
▲ 먹티고개는 대전시 동구 하소동과 금산군 복수면 목소리를 잇는 고개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난다. 먹티고개는 석탄이 많이 묻혀있어서 주위가 온통 시커멓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실제로 먹티고개에 가까워지면 주변에 석탄처럼 시커먼 흙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 먹티고개에 내려서는 마지막 내리막길과 만인산 오름길에는 2014년 말경 사유지란 이유로 철조망으로 등로를 막았었는데 2016년 2월경 대전시에서 문제가 됐던 해당사유지를 매입했고 철조망등을 철거해 산행에 불편함이 없도록 만들었으며 아울러 계단 등 편익시설을 설치해 시민들의 안전산행을 도왔다고 한다.
▲ 이정표 (만인산0.4km /태실2.1km /휴양림2주차장1.1km /금동고개1.0km)가 있는 505봉까지 많이 힘들 줄 알았는데 컨디션이 좋아 비교적 쉽게 올랐다.
▲ 둘레산길1~2구간 산 정상에는 정상석은 없다. 만인산 정상 역시 삼각점 안내문, 삼각점(금산22/2003재설), 이정표(정기봉3.1km /태실1.7km /학습원2.3km /만인루0.5km)겸 정상표지목, 만인산 봉화대터 안내문이 있다.
▲ 만인산(萬仞山, 538m) : 충남 금산군 추부면과 대전광역시의 남쪽 동구 하소동 일대에 걸쳐있는 산으로, 고조선 때부터 정상에 봉수대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태실(胎室)이 있는 산이라고 해서 태실산(胎室山) 또는 태봉산으로도 부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진산)에 "군의 동쪽 20리에 있다. 성봉(星峯)이 있는데 땅이 두텁고 물이 깊으며 봉우리가 기이하고 빼어나게 우뚝 솟아 모양이 마치 연꽃같이 생겼다. 우리 태조의 태를 묻었다."라고 하여 관련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그만큼 산이 깊고 높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산으로, 일설에는 수많은 골짜기가 모여 산을 이루어서 만인산이라 불렸다고도 전해진다. 『여지도서』(진산)에는 "태실산(胎室山)은 군 동쪽 30리에 있다."라고 하여 태조 이성계의 태실이 안치되어 있던 만인산을 '태실산'으로 기록하고 있다. 『1872년지방지도』(진산)에는 만인산 아래 태조대왕 태실로 표기된 석실이 그려져 있다. 하소동에서 금산군 추부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태봉재라 한 것도 이에 연유한 것이다. 원래 태조의 태실은 함경도에 있었으나 무학대사(無學大師)가 만인산의 터가 명당이라 이곳으로 옮겨왔다. 태조 이성계의 태실은 일제강점기 때 파괴되었다가 복원되어 만인산 동쪽 자락에 위치한다. 산봉우리의 모양이 만발한 연꽃 모양을 닮았다. 숲과 계곡이 아름다운 곳으로 등산로와 숲속 자연탐방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만인산 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있다. 동쪽 능선에 만인루(萬仞樓)가 있으며 주변 일대가 조망된다. 남쪽 기슭에는 중부대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동쪽에는 금산군 추부면이 위치하며, 대전천이 만인산 계곡에서 발원한다.
▲ 2021년 1월 24일 3차 둘레 산길 때의 사진
▲ 만인산 정상에서의 조망(가운데에 있는 산은 서대산이다)
▲ 만인산 정상을 뒤로하고 작은 돌탑을 지나면 나무 계단을 따라 급하게 내려선다.
▲ 휴게소 갈림 이정표 (태실1.0km /학습원1.2km /휴게소0.7km /만인산1.0km)
▲ 이정표 (정기봉2.0km /태실0.5km /만인산1.5km)
▲ 출렁다리
▲ 태조대왕 태실
▲ 태조대왕 태실(太祖大王 胎室) : 조선을 건국 한 태조 이성계의 태(胎)를 안치했던 곳이다. 본래 함경도 용연(龍淵)에 있었으나 태조 2년(1393) 당시 전라도 완주군 진동현이었던 현재의 금산군 추부면 마전리로 옮겨 왔다. 태실은 몇 차례 중수 및 개수되었으며 일제강점기인 1928년 조선총독부에서 태실을 훼손하여 태항아리를 창덕궁으로 옮겨갔고 1993년 지역 주민들이 남은 석비와 석물을 수습하여 현재의 위치에 복원하였다. 비석 전면에는 '태조대왕 태실'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고, 후면에는 중건한 시기(1689년)가 새겨져 있다. 무학 대사가 함경도 용연지역에 있던 태조의 태를 옮겼으며 태자의 태도 함께 이곳에 묻었다. 그래서 나라에서 이 산을 봉산이라 정하였으며 조선 개국 이래 성역화한 곳이다.
▲ 태실 안내문
▲ 태봉재
▲ 이정표(휴게소0.2km /태실 /만인산1.7km /정기봉 1.4km)에서 휴게소로 향하며 2구간 산행을 마친다.
▲ 만인산 휴게소 주차장
▲ 봉이 호떡을 사려고 사람들이 줄서 있다. 휴게소에서 산행 마치고 옷 갈아 입고 501번 버스 타고 대전역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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