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 ( 太白山, 1567m) : 장군봉, 천제단, 부쇠봉, 문수봉, 소문수봉
화방재→태백산→부소봉→깃대배기봉→신선봉→곰넘이재→고직령→구룡산→도래기재
◇산행지 : 강원도 태백시, 경상북도 봉화군 일원
◇ 산행일자 : 2011. 11. 19 (토). 날씨 : 가랑비후 박무 오후에 맑음(안개로 인한 조망 없었음)
◇ 산악회및 친구 : 대전시 산사모 회원 40명, 기대
◇ 산행거리 : 24.2 Km
◇ 산행시간 : 산행시간 8시간 5분 < 조,중식 20분 포함 >
◇ 시간 대별 요약
- 02:17 대전 IC 출발
- 05:32 화방재 도착
- 05:35 화방재 산행 시작
- 05:42 사길령
- 06:00 산령각
- 06:27 유일사 능선(갈림길)
- 06:40 유일사 쉼터
- 07:05 망경사 갈림길
- 07:15 장군단
- 07:19 천제단
- 07:26 하단
- 07:31 부쇠봉 갈림길
- 08:06 아침 (김밥 5분)
- 08:19 깃대배기봉(산림청 표석)
- 08:23 깃대배기봉(산악회 표석)
- 09:21 차돌배기
- 10:19 신선봉
- 10:45 곰넘이재
- 12:02 구룡산
- 13:40 도래기재 산행마침
- 20:00 대전 IC 도착
※ 특기사항
① 백두대간 산행기로 100명산 산행기 대체
② 태백산 총 4회 산행
③ 박무로 인한 조망 없었음
④ 산행 후 폐광에서 약식으로 씻음
⑤ 산행 후 오리 훈제와 송어회 뒤풀이
※ 산행 전 사전 조사 (문헌에 나오는 태백산)
< 환단고기> : 문헌(文獻)에 나타나는 태백산(太白山)은 3개가 있다. 백두산(白頭山)과 묘향산(妙香山) 그리고 지금의 태백산(太白山)이다. 태백산의 뜻은 “크게 밝은뫼”이며 “한밝달”또는 한배달”등 인데 모두 단군신화(檀君神話)와 연관이 있다. 5세 단군 구을 임술원년에 태백산에 천제단(天祭壇)을 축조하라 명하시고 사자를 보내어 제사하게 하였다.
<삼국사기> : 일성왕(신라7대왕으로 유리왕의 맏아들)5년 10월에 왕이 태백산에 올라 천제를 지냈고, 기림왕3년3월에 왕이 춘천에서 태백산을 바라보고 망제를 올리니 “낙랑”과 “대방”이 항복하여 왔다
<태종실록지리지> : 태백산은 삼척부의 서남쪽에 있는데 신라 때 오악 가운데 북악이라 하였으며 산꼭대기에는 산사가 있는데 이름하여 “태백천왕당’이라 하고 여러 고을 백성들이 봄 가을로 천제를 올린다
<동국여지승람> : 태백산은 삼산(山神山의 준말)과 新羅五岳(토함산(동악).팔공산(중악).계룡산(서악).지리산(남악) 태백산(북악))에 속하며 中祀(나라에서 지내던 “祭享”의 하나로 대사(大祀)보다 의식이 간단함)의 제를 올리던 곳이
<허당백집> : 三道(강원.충청.경상)의 백성들이 산꼭대기에 천왕단을 지어 놓고 단군(한배검)을 위한 祭祀를 지내니 “천제”를 모시고자 오가는 사람들의 어깨가 부딪치고 발뒤꿈치를 밟을 정도이다. 그 밖에 “부도지”와 “척주지”등에도 나타나는데 태백산에서 천제를 지내던 이러한 관습은 중국의 “천자”만이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있다고 하여 통일신라 이 후 맥이 끊어졌다가 조선의 마지막 황제 고종이 등극하여 연호를 “광무”로 고치고 “원구단”을 지어 천제를 올렸으나 일제강점기에 다시 폐지되었다가 광복 후 되살아나 나라가 위급할 때 마다 태백산에서 祭를 올렸다.舊韓末에는 의병장 신돌석 장군이 이곳에 올라 白馬를 잡아 기도를 올리니 하늘이 울었다고 하며 일제강점기 때는 천평(태백산아래)에 살던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독립”을 위한 기원제를 지냈다. 지금은 태백시가 주관이 되어 개천절 날 “天祭壇”에서 천제(예전에는 소를 통째로 祭床 에 올리고 天祭를 올렸다고 전해 져 오지만 지금은 소머리를 놓고 祭를 올린다)를 올리는 전통은 이어져 오고 있지만 국가의 공식적인 행사는 강화도 마니산에서 행하고 있으며 태백산에서는 무속인들이 주도하는 天祭가 더 유명하다. 태백산 정상에는 세 개의 祭壇이 북쪽에서 남쪽방향으로 일직선 나열 해 있으며 각 각의 명칭 및 용도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정상인 비로봉에 위치한 것으로 “천왕단”이라 하고 하늘(천신)에 제가 지냈다. 두 번째는 장군봉에 위치한 것으로 “將軍壇”이라 하고 장군(사람)에게 제사 지냈다. 세 번째는 비로봉 남쪽 끝 부분에 위치한 것으로 “하단”이라 하고 땅(지신)에게 제사 지냈다. 세 개의 제단을 통틀어 “천제단”이라 한다.
※ 태백산 산림청 100명산 선정 사유 : 예로부터 삼한의 명산이라 불리웠으며 산 정상에는 고산 식물이 자생하고 겨울 흰 눈으로 덮인 주목군락의 설경 등 경관이 뛰어나며 도립공원으로 지정(1989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하였으며 삼국사기에 따르면 산 정상에 있는 천제단에서 왕이 친히 천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음. 망경사, 백단사 등이 유명하다.
※ 태백산 산행 등산 지도
※ 태백산 산행 후기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 마음이 심란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비가 올 확률이 30%이고 산행을 끝마칠 즈음 날씨는 맑아진다 것에 위안을 삼았다. 요즘 들어 자꾸 백두대간 산행에 가고 싶지 않은 이유는 두 번째라는 특성 때문에 목표산행에 대한 의욕이 감소되어 나타나는 현상 같아 보여 다시금 마음을 다지고 산행 준비를 마쳤다. 도래기재에는 마땅히 씻을 곳이 없었던 기억에 물 2리터를 준비하고 갈아입을 옷과 회장님이 부탁한 불판을 챙겨 놓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도대체 잠이 오지 않는다. 뒤척이다 겨우 "단잠을 들었다"고 생각 할 즈음 알람이 울려 서둘러 배낭을 메고 나갔다. 산악회에서 이번엔 떡을 준비 할 것 같아 아침 대용으로 김밥 한 줄만 사고 원두막으로 가니 평상시와 다르게 5분 정도 빠르게 버스가 와 있다. 버스에 승차하고 늘 느끼는 것이지만 친구와 둘이 앉아 갈 자리가 이번에도 역시 없다. 몇몇 분들이 혼자서 편히 갈 욕심으로 통로에 각자 혼자 앉아 있다 보니 이번에도 친구와 나는 각자 떨어져 앉아 가야 했다. 버스가 출발하고 눈을 감았으나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아 비몽사몽으로 가다 휴게소에 들렀을 때 아침 대용으로 떡을 먹고 산행 준비를 하려니 창가에 앉아 있어 불편하다. 오늘은 어차피 천천히 산행에 임하기로 했으니 버스에서 내려서 산행 준비는 하기로 했다. 버스가 산행지에 도착하니 역시 우르르 몰려간다. 어찌하다 보니 사길령 이후 맨 꼴찌가 되어 한참을 진행 했는데 산령각에서야 후미를 따라 잡았다. 불빛이 강하지 않은 헤드랜턴은 박무로 인해 더욱 불편함을 가중 시켰고 어둠이 완전히 걷힐 때 까지 조심하며 산행을 진행 하다 보니 중간조를 쉽게 따라 붙지 못하고 진행해야 했다. 태백산 표시석에 도착 했을 때에야 중간조 끝을 따라 잡았는데 태백산은 역시 설산일 때가 제일이다. 태백산에 대해 늘 가지고 있는 환상적인 설산의 모습 때문에 밋밋한 주목만 있고 조망도 없게 만드는 박무가 너무 미웠다. 부쇠봉 삼거리에서 부쇠봉을 들리지 않고 깃대배기봉으로 바로 가는 곳으로 선두에서 바닥지를 놓아서 아쉽게도 이번 역시 부쇠봉은 들리지 못하고 지나쳐야 했는데 깃대배기봉에 다가가니 중간조가 아침식사를 하려고 자리를 펴고 있다. 친구와 나는 김밥으로 간단히 빠르게 요기를 하고 중간조를 앞서 진행 해 나갔다. 요기를 해서 이제는 산행 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줄 알고 진행 했는데 신선봉 오르는 구간이 이번 산행중 가장 어려운 시간이었다. 신선봉에서 곰넘이재로 가는 길은 신선봉을 올라올 때 힘겨웠던 것만큼 급 내리막길이다. 산행을 마친 후 오리훈제로 뒤풀이 하는 것을 감안하여 곰넘이재에 도착해서는 점심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는 와중에 중간조는 몰려왔고 우리를 또 앞서 나갔다. 고직령을 지나 구룡산 오름은 또 한 번 힘겨움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했고 구룡산만 오르면 내리막길로 끝인 줄 알았던 대간 길은 어림없다는 듯 도래기재를 얼마 남겨 두지 않고 요동쳤다. 도래기재에서 버스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니 영선조와 중간조는 열심히 오리훈제를 굽고 있다. 폐광 굴에서 준비한 물로 약식으로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 불판을 더 꺼내려니 회장님이 만류하며 그냥 앉아서 먹으란다. 역시 산행 후의 쏘맥은 별미다. 약 1시간 후 후미가 도착하고 영월의 송어회집으로 이동하여 송어회를 먹었는데 맛은 친구 말마따나 송어 회 맛이란다. 늘 선두에서 고생하는 회장님 이하 영선조님들께 감사드리며 늘 내 보폭에 맞춰 함께 해주는 친구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 태백산 산행사진
▲ 산행 시작점 화방재(936m) : '꽃방석 고개'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화방재(花房嶺)는 일명 '어평재(御平嶺)'라고도 하는데, 태백의 중요한 관문이다. 고갯마루에는 어평주유소가 있고, 어평휴게소, 작은 식당 등이 한 건물에 연이어 있고, 2층엔 민박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대간꾼을 위한 휴게소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옛 이름은 어평재로 영월에서 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단종의 영혼이 태백산으로 가는 길에 태백산 서쪽 기슭의 어평에 이르러 ‘이곳부터 내 땅(어평=御坪)’이라 했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그래서 어평재 라고 불린다.고개 마루에 진달래, 철쭉이 무성하기에 화방(花房)재라고 하였다. 화방재를 예전에는 정거리재라고도 했다. 31번 국도가 지난다.
▲ 사길령(四吉嶺): 태백산 북쪽 백두대간 등마루에 위치, 옛날 경상도로 통하던 고갯길이었다. 삼국시대에는 태백산 꼭대기로 나있는 천령(天嶺) 길을 통해 왕래하였으나 길이 높고 험하여 고려시대에 와서는 지금의 사길령으로 새로이 길을 내면서 새길령이라 했다. 사길령은 교통의 요지로 이곳을 지나는 상인들이 무사안전을 위해 고갯마루에 산령각을 짓고 태백산령께 제례를 올렸으며, 지금까지 매년 음력 4월15일이 되면 산령제를 통해 마을의 안녕을 빌며 제사하고 있다. 사길령은 옛날 강원도와 경상도로 통하는 큰 길이 있었으나 길이 불편해서 고려시대 때 새로운 길을 뚫었다고 전해진다. 이름도 새로 길을 뚫었기 때문에 ‘새길’이라고 했다. 이곳 샛길재에서 강원도와 경상도를 오가며 장사하던 보부상들에 의하여 건립된 산령각에서 매년 제사를 지낸 것에서 유래됐다. 사길령 산령제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옛날 고갯마루에 도적이 성행, 범이 나타나 사람을 해치는 것도 비일비재하여 고갯마루에 산령각을 짓고 안전을 기원했던 곳으로 전해져 내려온다.또 영월 땅에서 사약을 받고 죽은 조선 제6대 임금 단종대왕이 사후 그 혼령이 되어 태백산의 산령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새길재(또는 사길령) 산령각의 신위는 다른 산령각의 신위와 다르게 단종대왕이라고 하여 산령각 내부에는 백마를 탄 어린 임금이 그려진 탱화가 안치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출처: 다음 카페 동행-21 메아리님글 )
▲ 사길령(四吉嶺) 주변의 모습 (어두워서 못 보았던 모습, 선답자의 산행기에서 펌) 산림청 태백국유림관리소는 백두대간의 보호의식 고취와 홍보 강화를 위하여 태백시 혈동 산87-번지 사길령에 1,900만원의 예산을 투입, 2010년 5월 24일부터 6월 7일에 걸쳐 백두대간 표지석을 설치했다고 한다. 출처:태백정선인터넷뉴스
▲ 산령각 (어둡고 박무로 인해 산령각의 모습은 담지 못함)에 있는 이정표
▲ 유일사 능선 갈림길에 있는 이정표
▲ 유일사 능선길의 이정표 ( 2018년 1월 7일 산행 당시의 사진이다)
▲ 망경사 갈림길에 있는 이정표
망경사(望鏡寺)옆에는 우물인 용정이 있는데 이 용정은 해발 1,470m정도의 고지대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솟아 나오는 샘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100대 명수 중에서 가장 차고 물맛이 좋은 이 샘은 용왕각을 짓고 용신에 제사를 올리기에 용정이라 한다. 일설에는 이 우물이 용왕국과 통하여 있다고 한다. 옛날부터 이 물로 천제 지내는 제수(祭水)로 사용하였다 한다.(다시 태백산만을 갈 때는 망경사도 들러 보고 용정도 가 봐야겠다)
▲ 천제단 중 가장 위에 있는 장군봉의 장군단 : 나라를 지키다 순절한 장군(사람)들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태백산은 신라의 삼산오악 중 북악에 속하는 산으로 신령시 하여 주산으로 삼고 왕들이 이 곳에 올라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태백산 정상인 장군봉 일대는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을 산다는 주목 군락지다.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주목이지만 생로병사를 피해갈 수는 없다. 절반 이상 썩어나간 둘레를 구멍마다 시멘트를 채워 놓았는데 해마다 새 가지를 뻗어내는 주목의 자태에서 생명과 자연의 위대함을 본다. 아쉬운 건 눈꽃 없는 주목의 모습이다.
▲ 장군단 : 2018년 1월 7일 산행 당시의 사진
▲ 백두대간 당시엔 없었던 표지석이 2018년 1월 7일 산행 당시의 사진엔 있다
▲ 장군봉에서 바라 본 천제단 방향
▲ 태백산 정상 천제단 (한배검은 대종교에서, ‘단군’을 높여 부르는 말 )
태백산 정상에 자연석을 쌓아 만든 3기의 제단이다. 태백산은『삼국사기』를 비롯한 여러 기록에서 신산(神山)으로 섬겨져 제천의식의 장소가 되었음을 밝히고 있는데, 천제단 역시 이런 제를 올리기 위해 만든 제단이다. 태백산 정상에 있는 천왕단을 중심으로 북쪽 약 300m 떨어진 곳에 장군단과 남쪽 아래에 있는 이름없는 제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은 북에서 남으로 일직선상에 배열되어 있다. 천왕단은 2m 남짓한 높이로 자연석을 쌓아 남쪽으로 계단을 조성한 원형제단이다. 그 위에 4각 시멘트제단과 대종교에서 단군을 모신 장소로 성역화하는 과정에서 세운 것으로 알려진 비석이 있다. 1949년 조사기록에 의하면 당시에는 석단이 9층을 이루었기 때문에 ‘구단탑’이라고 하였으며 중앙에 태극기를 꽂고, 그 주위에 무속신들을 상징하는 각종 기를 세웠다고 한다.
장군단은 남쪽에 계단이 있는 석단으로 천왕단과 거의 비슷한데 천왕단 상부에 있는 4각 제단이나 비석 등은 없다. 천왕단 남쪽의 숲 속에 위치한 단은 특별히 지칭하는 이름이 없고 소박한 인상을 풍기는 단아한 제단이다. 제단을 세운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부족국가시대부터 이곳에서 천제를 지냈다고 전해지는 것을 보면 그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라, 고려, 조선을 거쳐 일제시대까지 이곳에서 천제를 지내고 그 의식이 아직도 이어져 매년 개천절에 하늘에 제사를 지냄으로써 국가의 태평과 안정, 번영을 기원하는 동제의 장소로 이어지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 천제단 : 2018년 1월 7일 산행 당시의 사진
▲ 태백산 정상에 있는 이정표
▲ 태백산의 뜻은 “크게 밝은 뫼”이며 “한밝달”또는 한배달”등 인데 모두 단군신화(檀君神話)와 연관이 있다.
▲ “하단”이라 하고 땅(지신)에게 제사 지냈다. 세 개의 제단을 통틀어 “천제단”이라 한다.
▲ 부쇠봉, 문수봉 갈림길(이곳에서 우회 하지 말고 곧바로 올라가야 부쇠봉 정상석을 볼 수 있는데 아쉽게도 우회하여 보지 못함)
▲ 부쇠봉 : 2018년 1월 7일 산행(유일사-천제단-부쇠봉-문수봉-소문수봉-당골 6시간5분 소요)시 인증
▲ 1차 때도 모르고 부쇠봉을 지났쳤는데 이 표지판을 보는 순간 우회했음을 알았어도 부쇠봉 다시 오르기는 귀찮아서 그냥 진행
▲ 중간조는 이곳에서 조식(친구와 나는 김밥 한 줄로 요기하고 바로 출발)
▲ 산림청에서 세워놓은 깃대배기봉 표지석
▲ 깃대배기봉 표지석은 두 군대에 있다. 차돌배기 방향으로 약 4분 진행하면 태백시 한얼뫼오름회에서 세워놓은 정상석이 또 있다.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보면 고도상으로는 산림청 정상석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나는데 왜 이런 일이 있는 것인지?
▲ 옛날 이 자리에 차돌이 박혀 있었다 하여 차돌배기라고 불리는 차돌배기 삼거리에 있는 이정표
▲ 처사경주손씨영호지묘라고 새겨 놓은 무덤이 정상을 지키고 있는 신선봉은 박무가 있기도 하지만 사방이 막혀 조망은 없다.
▲ 곰넘이재는 먼 옛날 천제를 지내기 위해 태백산으로 향하던 사람들이 넘던 고개요, 영남에서 강원도를 오고 가던 사람들이 넘나들던 고개이다. "곰"은 "검"에서 온 말로 "신"을 의미하고 태백산으로 천제를 지내려 가는 사람들이 이 고개를 넘어가며 행렬을 이루니 "신"이 있는 곳으로 넘어가는 고개라 하여 "곰(검신)님이"이라 불렀다. 즉, 웅현(熊峴)은 우리말로 "곰재" 혹은 '검재"이니 다른말로 "신령(神嶺)이다. 일설에는 "곰"을 "고개"로 해석하고 "님이"를 "넘이"로 봐서 "곰님이"는 "고개넘이"로 본다. 참새골은,동이정, 장부골, 석문동, 참새골 등 4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진 애당2리를 통칭하여 "참새골"이라 하는데, 참새가 날아가는 형세를 갖춘 산이 북쪽에 있다고 하여 "참새골", 또는 약수가 나오는 "참샘"이 있다고 하여 "참새골"로 불리는데 "정감록"에 의하면 십승지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참새골과 석문동을 이 고장 사람들은 열두 도심이라 한다. 열 두골짜기로 이루어진 참새골과 석문동은 시루봉 능선을 따라 구룡산에서 고직령. 신선봉. 차돌배기의 백두대간 마루금을 따라 각화산으로 가지를 내리는 산줄기의 내경에 속하는 계곡으로 행정상 애당리로 표현 하지만 다른 이름으로 열두 도심이라 이르고 그 뜻은 골이 깊어 들어 갈 때와 나올 때의 길이 다르다 하여 이른 말이라 한다.
▲ 곰넘이재에서 친구와 식사 하고 있는데 중간조가 몰려 온다 ( 광명님 사진에서)
▲고직령: 서벽리와 애당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높고 곧은 고개"하여 고직령이라 한다. 김정호의 대동지리 "산천조"에는 "고석령"으로 기록되어 있고 예배령(예배령)의 북쪽이라 했으며 "영가지"에는 "고적현"으로 또 다른 문헌에는 "곶적령"이라 기록하였던 것으로 곰넘이재와 함께 영남과 강원을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고개로 보인다. 옛날에는 이 고개에 호랑이가 많아 호환을 당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구룡산의 유래 : 경북 봉화군 서벽리에 위치한 구룡산은 태백산과 옥돌봉 사이에 있는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이루는 산이다. 강원도와 경상북도에 걸쳐있는 이 산은 해발 1.344m로서 태백산,청옥산,각화산,옥석산(옥돌봉)등과 함께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갈라져 나가는 곳에 있다. 이 산에서 발원하는 하천들은 남북으로 흘러서 각각 낙동강과 남한강으로 이어진다. 이 산은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하여 구룡산이라 하는데 용이 승천 할 때 어느 아낙이 물동이를 이고 오다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뱀봐라" 하면서 꼬리를 잡아당겨 용이 떨어져 뱀이 되어 버렸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도래기재의 유래 朝鮮時代에 역(驛)이 있어 “도역리(道驛里)”로 부르다 이것이 變音되어 “도래기“로 부르는 마을 이름에서 빌려온 도래기재 강원도 영월과 경북의 봉화로 나누어지는 도래기재를 경계로 하여 북쪽에는 소의 입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우구치”로 불리는 계곡을 따라 옥동천의 상류인 내리계곡이 형성되고 남쪽에는 “도래기”에서 금당계곡을 따라 운곡천이 發源된다.
▲생태 이동 통로가 있는 도래기재의 모습
▲ 오리훈제로 뒤풀이 한 장소
▲ 산행 마치는 내 뒤 모습을 담은 사진이 있어서..
▲ 오리훈제로 뒤풀이 한 후 옥동 송어회 집으로 이동 송어회 한 접시에 소주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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