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갑산 (七甲山, 561m) : 천장호 출렁다리, 삼형제봉, 칠갑산 휴양림
1일차 : 장곡주차장→백리산→금두산→삼형제봉→칠갑산→장곡사
2일차 : 칠갑문→천문대→자비정→칠갑산→칠갑문 원점회귀 후 천장호 이동
◇산행지 : 충청남도 청양군 대치면,정산면,적곡면 일원
◇ 산행일자 : 2016. 6. 5~6(일,월) 날씨 : 맑음
◇ 산악회및 친구 : 기대
◇ 산행거리 : 1일차 8km(이정표상 거리), 2일차 6km(이정표상 거리)
◇ 산행시간 : 1일차 3시간 30분 < 정상 휴식15분, 장곡사 구경 포함 > 2일차 2시간
◇ 시간 대별 요약 (1일차)
- 07:50 장곡사 입구 주차장 도착
- 07:55 주차장 산행시작
- 08:08 백리산
- 08:42 금두산
- 09:25 삼형제봉(마재 터널 갈림길)
- 09:53 칠갑산(15분 휴식)
- 10:08 칠갑산 출발
- 10:56 장곡사(10분 관람)
- 11:21 장승공원
- 11:24 장승공원 산행 마침
◇ 시간 대별 요약 (2일차)
- 10:37 칠갑문(한치 고개) 산행시작
- 10:46 칠갑산 천문대(스타파크) 10분 관람
- 11:15 다비정
- 11:33 칠갑산
- 12:27 칠갑산 광장 가든
- 12:37 칠갑문(한치 고개) 산행마침
※ 특기사항
① 칠갑산 휴양림 1박 2일 여행
② 칠갑산 2회,3회째 이틀 연속 산행
③ 천장호 출렁다리
④ 산림청 선정 100명산 인증 산행
⑤ 100명산 의문(?)
※ 산행 전 사전 조사
<칠갑산(七甲山) 도립공원>칠갑산(561m)은 크고 작은 봉우리와 계곡을 지닌 명산으로 자연 그대로의 울창한 숲을 지니고 있다. 1973년 3월 6일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면적은 32.542㎢으로 3개면에 걸쳐 있으며 주요 명소로는 정상, 아흔 아홉골, 칠갑산장(최익현 동상, 칠갑산노래 조각품 등), 장승공원, 천장호, 장곡사, 정혜사, 자연휴양림, 도림사지, 두률성 등이 있다. 특히 칠갑산은 계절의 변화가 뚜렷하여 봄에는 산철쭉과 벚꽃으로 단장하여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고 여름에는 울창한 천연림이 현대인들의 심신을 안정시켜주며, 또한 가을에는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어우러지며, 겨울의 설경은 천상의 세계에 들어온 듯한 느낌으로 다가와 사시사철 등산객들에게 독특한 묘미를 전해주는 명산이다. 칠갑산은 7개의 등산로가 개발되어 있으며 각각 특성을 자랑하고 있어 각자에 맞게 등산코스를 선택할 수 있어 꾸준히 관광객이 늘고 있고, 대중가요 '칠갑산' 노래로 일반인들에게 친숙하다. 출처: 한국 관광공사
<칠갑산(七甲山) 유래> : 우리겨례는 옛부터 하늘과 산악을 숭앙하여 왔다. 백제는 이 산을 사비성 정북방의 진산(鎭山)으로 성스럽게 여겨 제천의식을 행하였다. 그래서 산 이름을 만물생성의 7대 근원 七자와 싹이 난다는 뜻의 甲자로 생명의 시원(始源) 七甲山이라 경칭하여 왔다. 또 일곱 장수가 나올 명당이 있는 산이라고도 전한다. 충남 중앙에 자리잡은 칠갑산은 동쪽의 두솔성지(자비성)와 도림사지, 남쪽의 금강사지와 천장대, 남서쪽의 정혜사, 서쪽의 장곡사가 모두 연대된 백제인의 얼이 담긴 천년사적지이다. 1973년 3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고 이제 온국민의 애창 속에 불려지는 칠갑산 노래와 함께 백제인의 얼과 혼이 서린 칠갑산은 성스러운 산으로 다시 우러러 보아야 할 것이다. 칠갑산의 명칭은 원래 칠악산(七岳山)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명산은 대부분 '악(岳)'자가 들어있다. 예를 들면 설악산, 관악산, 월악산 등이 그렇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동국여지승람 권지18, 정산현 산천 편에 "七甲山 左縣西十六里有古城其號 慈悲城: 又見 靑陽縣 - 七甲山" 은 현서쪽 16里에 있으며 옛성의 터가 있는데 자비성(慈悲城)이라 부른다. 이 자비성을 일명 도솔성이라 부른다. 사찰 주변을 성으로 에워쌓인 것은 전국에서 희귀한 현상으로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백자왕자 또는 왕족의 교육을 하던 사찰이란 설과, 국가의 중대사 또는 외국의 사신을 영접하던 삼국시대의 불교 전성기의 유적이라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백제시대에 축성한 도솔성은 저 유명한 우리의 신라 향가 "도솔"과 그 명칭이 같다는 것이다. 도솔은 원래 범어(梵語)의 음역으로 지족, 묘족 등으로 의역되며 미륵보살이 사는 하늘이란 뜻이다. 신라 유리왕 5년에 지어졌다는 도솔가는 삼국시대 시가 중 최초의 정형시로 여기에 나오는 "칠악"이 오늘날 칠갑산의 옛 이름이다. 그러다가 백제의 서울이 扶餘로 정해지고 산천숭배사상(山川崇拜思想)으로 명산대천에 제례하는 행사가 국정의 큰 위치를 차지했다. 그래서 거국적으로 신앙 대상인 칠악산의 이름을 불가의 최고 신성한 이름으로 개칭하게 되었다. 즉 漆자를 "七"로 이 일곱 칠은 천지만물이 생성한다 는 "七元星君" 또는 "七星"과도 같은 風, 水, 和, 火, 見, 識의 이름이고 "甲"자는 천체 운행의 원리가 되는 육십갑자(六十甲子)의 으뜸인 "甲"자가 연유되었다 하며, 한편으로는 금강 상류의 지천을 굽어보는 일곱 장수가 나올 甲자형의 일곱 자리 명당이 있어 칠갑산이라 불렀다는 설도 있다. 출처: 한국 관광공사
※ 칠갑산 산림청 100명산 선정 사유 : 백운동 계곡 등 경관이 아름다우며 도립공원으로 지정(1973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하였으며 계곡은 깊고 급하며 지천과 계곡을 싸고 돌아 7곳에 명당이 생겼다는 데서 산이름이 유래 하였다. 신라 문성왕 때 보조(普照) 승려가 창건한 장곡사(長谷寺)에 있는 철조약사여래좌상(보물 제174호) 등이 유명하다.
※ 칠갑산 산행 등산 지도
※ 칠갑산 산행 후기
친구가 칠갑산 휴양림으로 1박2일 캠핑을 가자고 하여 칠갑산 산행 기록을 살펴보니 무려 12년 전인 2004년 1월 4일에 다녀 온 기록이 있다. 그때는 산행에 대한 기록을 중요히 생각지 않아 등산코스 조차도 기록이 없는데 아마도 제일 쉬운 코스인 산장로를 택해서 원점회귀 산행을 한 것 같다. 산림청 선정 100명산 정상 인증도 할 겸 캠핑을 가기로 하고 칠갑산에 대한 선답자의 글을 보니 장곡로로 올라 사찰로로 하산하면 차량 회수가 편한 원점회귀 산행을 할 수 있으며 지도에는 표기된 곳이 드문 백리산과 금두산을 갈 수 있고 삼형제봉을 지나 정상에 갈 수 있어서 친구에게 제안을 했다. 산행 당일 6시에 만나 아침은 반석역 근처에서 양평해장국으로 해결하고 남세종IC를 들머리로 하여 청양IC로 나와 장곡사로 향했다. 대전-당진 고속도로와 대전-서천 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에 청양을 가려면 대전-공주-청양 국도를 이용하여 가야 했기에 시간이 많이 소요 되었는데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오니 시간이 많이 절약되었다. 예상대로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주차장엔 차가 없었고 출발 할 때쯤 되니 그제야 차량 한 대가 들어온다. 산행을 시작부터 계단이었는데 오르자마자 백리산 표식이 붙어 있다. 이후 진행은 오르내림이 심한 편이었는데 “장곡로” 등산로에서야 겨우 두 사람을 보았을 뿐 사람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친구가 금두산 표식을 잘 찾아서 금두산 정상을 들린 후 삼형제봉에 오르니 이후 등산로는 수월 한 편이었다. 정상에 오르니 이른 시간인 탓에 사람이 많지 않아서 쉽게 인증을 한 후 장곡사로 향하니 하산 길이라선지 너무 편한 등산로다. 장곡사에 도착 할 무렵에서야 수많은 사람을 보았는데 시간상 산악회에서 많이 올 시간이었다. 불자는 아니지만 장곡사 절 구경을 하고 장승공원에 들러 주차장에서 산행을 마치니 산악회 버스가 10대 가까이 있다. 주차장에서 여러 가지를 팔고 계신 할머니에게 미나리를 산 후 청양 시내를 들려 소고기와 삼겹살을 산 후 휴양림에 가서 소고기로 소주 한 잔을 하고 낮잠을 잔 후 저녁엔 삼겹살로 또다시 소주 한잔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엔 친구 동생 부부가 준비한 짬뽕 해장국으로 식사를 한 후 텐트를 서둘러 걷고 “칠갑문”이 있는 “칠갑광장가든”으로 향했다. “산장로” 등산 코스는 역시 쉬운 등산로였다. 정상을 남겨 놓고 계단을 만나기 전까지 임도로 연결된 길은 속보로 걸을 수 있었고 어린 아이들도 많았다. 속마음은 정상에서 혼자 천장호로 가고 싶었지만 차량 때문에 “칠갑광장가든”으로 원점산행을 했고 아쉬운 마음에 천장호로 이동하여 출렁다리를 다녀온 후 대전으로 향하며 일정을 접었다.
※ 칠갑산 산행 사진
▲ 장곡사 주차장에 있는 산행 안내도(1일 차는 5번으로 등산 2번으로 하산했고 2일 차는 1번 왕복 했다)
▲ 장곡사 주차장에 안내 표시판은 잘 설치 되있다.
▲ 장곡사 주차장에서 시작과 함께 계단을 만난다.
▲ 고추 홍보를 위해 안내판 전체가 고추 형상인데 청양고추에 대해 알아보았다.
※ 청양고추(靑陽 고추, 영어: Chungyang Red Pepper)는 한국에서 재배되는 고추 중 가장 매운 고추 품종 중의 하나이다. 1983년 《중앙종묘》의 유일웅 박사에 의해 개발되었으며, 청송, 영양지역 고추재배 농가를 대상으로 3년간 연구 및 시험재배를 했기 때문에 청송(靑松)의 청(靑)과 영양(英陽)의 양(陽)을 따서 “청양고추”라고 이름 지었다. 청양고추의 매운 정도는 4000~1만2000 스코빌에 이른다. 청양(靑陽)고추는 종묘 업체인 중앙종묘에서 1983년 개발한 고추 품종으로, 중앙종묘는 청양 외에도 청명, 청복, 조은, 조향, 조홍 등 수십 종의 고추 품종을 개발하여 등록하였다. 그러나 1998년 IMF 사태로 인해 세미니스가 한국의 《흥농종묘》와 《중앙종묘》를 인수 합병하여 청양고추의 개발사가 흡수되었고, 개발자들은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고추 품종의 명칭과 동일한 지명을 사용하고 있는 충청남도 청양군 (靑陽郡)은 청양고추라는 명칭의 유래가 '1968년 중앙종묘회사에서 청양에서 고추가 잘 자란다는 이야기를 듣고, 청양군 (농업기술센터)구 농촌지도소 소장에게 품종을 골라줄 것을 부탁하고 좋은 종자가 선정되면 그 고추에 청양고추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청양군은 청양고추가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얻자 청양고추축제를 개최하고 청양군 농촌지도소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청양이 '청양고추'의 원산지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는 당연하게도 청송군과 영양군의 반발을 불렀다. 청양군은 2009년 군비를 들여 '식탁 위의 화려한 혁명 고추' 책자를 발간하면서 "청양고추의 원산지는 '청양'이라는 연구 용역 결과가 나왔으며, 이번에 청양고추 원산지에 대한 논란과 갈등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주장했다 또 "'청양고추 콘텐츠 구축 연구용역'을 맡은 평생교육실천포럼(대표 전도근)은 청양고추의 원산지가 '충남 청양'이라는 결과를 냈다"며 "청송의 '청'과 영양의 '양' 자를 따서 '청양고추'로 명명한 품종을 등록했다고 하나 종자를 만들었다는 어떠한 근거도 없다" 고 주장하였다. 청양군의 주장과는 달리, 주장의 근거로 제시된 당사자인 중앙종묘는 자사 홈페이지의 게시물을 통해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에 소과종이 대과종보다 가격이 높고 특히 국내 최대 주산지인 경상북도 북부 지방의 청송, 영양지역에서 소과종이 주로 재배되어 이 지역에 적합한 품종을 육성하고자 하였다'고 적시하여 명칭의 유래가 청양군과는 무관함을 밝힌 바 있다. 다만, 1998년 중앙종묘가 세미니스에 인수된 이후 홈페이지의 개편을 거치며 해당 게시물이 수록된 게시판은 사라진 상태이다.국립종자관리소에 청양고추의 품종개발자로 등록되어 있는 '유일웅' 박사는 조선일보, 파이낸셜뉴스등의 언론사 공식 인터뷰를 통해 '청양고추 품종은 제주산과 태국산 고추를 잡종교배하여 만든 것으로 경상북도 청송군과 영양군 일대에서 임상재배에 성공하였으며 현지 농가의 요청에 의해 청송의 청(靑), 영양의 양(陽)자를 따서 청양고추로 명명하여 품종등록 하였다'고 밝힌 바 있다. 더하여 청양고추의 유래에 대한 객관적인 학술 자료는 서울대학교출판부의 '한국채소종자산업발달사'에 "매운맛이 더하고 음식맛이 좋다고 하며 계속 공급해 줄 것을 요구해 와 청송의 '청'자와 영양의 '양'자를 합해 '청양고추'로 명명하고 시판하게 되었다"299페이지. '청양고추' 명칭유래에 대해 객관적으로 보자면 청양군 유래설은 지역이권에 민감한 지방자치제 군수의 영향(업무와 관련해서는 도단위 농촌기술원의 관리감독을 받지만 복무, 인사는 군청의 감독을 받는다.)아래에 있는 청양군 농업기술센터의 주장과 군비로 용역을 맡긴 '평생교육실천포럼'이란 단체의 신뢰성 여부가 논란이 될 수 있다. 반면에 청송, 영양 기원설은 중립적인 중앙 행정관서인 국립종자원의 기록및 청양고추 개발자인 유일웅 박사의 인터뷰 내용이 일치하며 학계(서울대학교)의 연구총서 자료등 중립성과 신뢰성을 보인다. 국립종자원과는 독립적으로 중앙행정관서인 농촌진흥청이 공식 발행한 연구 리포트(RDA Interrobang 2012. 8. 29.발행 79호 13페이지)에서 청양고추의 유래에 대해서 "1983년 중앙종묘가 개발한 품종인 ‘청양고추’는 식품회사에서 요청한 캡사이신 추출용 고추로 개발되었다가 시범 재배한 농업인들에 의해 풋고추로 개발- 청양이라는 이름은 바로 이 품종의 가능성을 알아낸 경북 청송과 영양지역의 농업인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지역명의 글자를 따서 ‘청양’이라 호칭..." 이라 보고하고 있다. 출처:위키백과
▲ 장곡사 주차장에서 산행 시작 후 10분 간 계단을 올라서면 백리산 정상에 설 수 있다. 옛 지도에는 나오지만 요즘 산행 안내도에는 백리산에 대해 잘 나오지 않는다.
▲ 산행 중 있을 수 있는 사건 사고에 대해서 대처 하기에 좋은 "국가지점번호"인데 너무 많이 설치 되어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적당히(?) 설치 해 놓는게 좋은데.. 너무 촘촘히 많은 것은 혈세 낭비 인 것 같다.
※ 국가지점번호는 도로명 주소법에 따라 산림, 해양 등 비거주지역의 위치를 나타내는 좌표로서 재난, 사건사고, 화재 등 응급상황 발생 시 신속한 위치 안내와 인명구조 등에 활용하기 위해 만들었다. 대한민국을 가로축으로 가나다라마바사 세로축으로 가나다라마바사아 이렇게 문자로 구분해서 각각의 칸을100km로 구분한 다음에 숫자로 10km 1km 100m 10m로 구분한다고 한다. 기존 위치 표시는 소방, 경찰, 한전, 국립공원, 지자체 등 위치 표지판을 기관별로 서로 달리 사용하여 유사시 이를 이용하는 시민들이 혼선과 불편을 겪고 또한 신속한 인명구조 활동은 물론, 기관 간 협업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이와 같은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통일적인 위치표시를 만들었고 2013년부터 시행 중이라고 한다.
▲ 산행 시작 후 이 밧줄을 만나면 그 위가 금두산 정상임을 알아야 한다. 백리산이나 금두산이나 "박건석"님이 표식을 안달아 두었다면 지나치기 쉽다.
▲ 삼형제봉 오르기 직전에 두 번째 만나는 데크
▲ 삼형제봉에 있는 안내판(마재 고개 갈림길이다)
▲ 삼형제봉은 군시설 헬기장이 있다.
▲ 삼형제봉에 오르기 전 오르내림이 심했지만 삼형제봉을 지난 후는 편한 등산로다.
▲ 칠갑산 정상 제단
▲ 칠갑산 정상 인증
▲ 칠갑산 정상엔 막걸리, 음료 등을 팔고 계시는 아주머님도 있었다.
▲ 멀리서도 보이는 이동 통신 통신탑도 정상 옆에 있다.
▲ 칠갑산 휴양림 갈림길
▲ 거북형상의 거북바위라는데 내가 보기엔 닮아 보이지 않는다. 아래에는 거북바위 전설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천장호의 용과 호랑이등 유난히 많은 전설들은 갑자기 만들어낸 이야기 같다.
▲ 장곡사 상대웅전
▲ 장곡사 하대웅전
<장곡사 (長谷寺)> : 충청남도 청양군 대치면(大峙面) 칠갑산(七甲山)에 있는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850년(통일신라 문성왕 12) 보조선사 체징(體澄)이 창건한 후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중건·보수되었다고 하나 자세한 절의 내력은 전하지 않는다. 지금은 절이 상·하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현존 건물들은 근세에 이르러 거의 개축·재건되었는데, 그 아담한 건축양식은 아직도 자랑하기에 충분하다. 경내에는 장곡사 철조약사여래좌상부석조대좌(鐵造藥師如來坐像附石造臺座: 국보 58), 장곡사 상대웅전(上大雄殿:보물 162), 보물 제181호인 장곡사 하대웅전(下大雄殿) 등이 있다. 또 아직 비늘 모양이 또렷한 1m 가량의 목어(木魚)와 850년이나 묵은 괴목 등은 유명하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장곡사 [長谷寺] 두산백과 doopedia
▲ 장곡사에서 장승공원 가는 길은 한적하다. 참고로 장곡사까지 소형차는 진입 가능 하다.
▲ 장곡사 일주문
<주병선 칠갑산 노래> :1985년 언더그라운드 라이브 클럽에서 록 음악 가수 첫 데뷔하였으며 1988년 제12회 MBC 대학가요제 금상 수상하였고 이듬해 1989년 1집 앨범 수록 곡 《칠갑산》으로 정식 데뷔하였다. 한때 국악 가수라는 닉네임으로도 유명하였던 그의 대표곡은 트로트 가수 윤희상의 1980년 오리지널 원곡을 1989년 리메이크한 《칠갑산》이 있다. 주병선은 여수시에서 태어나 전라남도 여수공업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그룹 사운드 활동을 하며 록 뮤지션의 꿈을 키우던 주병선은 추계예술학교(지금의 추계예술대학교)에 입학을 한 이후에도 계속 록 음악을 했다. 그러나 그는 국악학과 학생이었으며 부전공은 타악학이었고 록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음악이어서 록 음악과 국악, 그리고 타악기 연주 세 분야를 모두 습득하였다. 그 때 록 음악을 장르로 대학가요제 예심에 여러 번 출전 신청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예심에서 몇 번 탈락하였고 그 후 주병선이 가수로 데뷔하게 된 계기는 1988년에 제12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주병선 작곡, 작사로 이루어진 전통음악의 형식을 띤 가요〈고인돌〉로 출전하여 금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가수로 데뷔하였으며 1989년에 반도음반의 소속 가수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198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금상을 수상하고 가요계에 데뷔한 주병선은 이듬해 1989년부터 1집 앨범《칠갑산》을 발표하였다. 데뷔 직후 그에게 단 한번의 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는데 그것은 여성 가수 겸 뮤지컬 배우 진주 씨의 모친인 재즈 가수 출신의 유정금이 음악 프로그램이었던 주부가요열창에서〈칠갑산〉으로 출전하여 3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면서이다. 갑자기〈칠갑산〉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자 이 곡의 원곡자였던 주병선도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즉, 처음에는 노래만 알려졌지만 점차 주병선도 전국을 강타하여 일약 스타덤에 올라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이후 2집 앨범을 발표하였지만 워낙〈칠갑산〉이 유명했던 터라 다른 곡들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데뷔한 지 몇 년 뒤에 군에 입대하였다.제대 후 1992년 데뷔한 서태지와 아이들을 반도음반의 가수로 발탁하고 이듬해 1993년 발표된 서태지와 아이들의 곡〈하여가〉에 태평소 연주를 도입한 전통가요 형식의 코러스를 넣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1년 혼인빙자간음 및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된 바 있으며, 2007년에는 KBS 대하드라마 대조영 OST를 맡으면서 활동을 재개하였고 2008년에 7집 앨범을 발표하고 2009년에는 8집 앨범을 발표하였다. 8집《여덟번의 행복에 대한 고백》의 타이틀곡〈아리아리요〉는 룸바와 보사노바 리듬이 빛나는 신나는 트로트이면서 춘향전의 사랑가를 현대적인 느낌으로 새롭게 개사한 곡으로 인기를 얻었다. 이후로 각종 많은 공연 무대에 출연하고 있다. 출처: 위키백과
▲ 장승공원(1일차 산행 마침)
▲ 칠갑산 휴양림 입구
▲ 칠갑산 휴양림 캠핑 장소
▲ 점심(토치 등심 구이)
▲ 간편 하게(?) 텐트 설치 하고 낮잠을 잔다.
▲ 저녁은 삼겹살로..
▲ 칠갑대교 위에서 칠갑저수지를 건너며 차안에서 찍은 사진
다리길이는 짧은 308m다. 칠갑저수지는 청양군 대치면에 위치해 있으며 1991년부터 15년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2006년 10월부터 담수를 시작했고 이듬해에 청양군과 각계단체, 낚시 동호인들, 그리고 주민들이 치어방류를하여 지금의 칠갑지로 거듭났다고 한다. 그런데 청양군의 최대 농업용수 공급원 중 하나인 칠갑저수지는 불법낚시행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 칠갑문 ( 한치고개)
▲ 칠갑문 2일차 산행 시작 점
▲ 콩밭 메는 사진
▲ 콩밭 메는 아낙상
▲ 칠갑산 천문대(성인 요금은 3,000원인데 무료 개방 중이었다. 개인적인 생각에 3,000원 주고 볼 가치가 없어 보였다.
▲ 칠갑산 정상 500m 전 까지는 임도로 어린 아이들도 갈 수 있는 편한 길이다.
▲ 자비정(착공:1997. 7. 20, 준공:1998. 4. 29 )
▲ 친구는 256계단을, 나는 좌측 길을 선택했는데 도착 시간이 비슷 한 걸 보면 계단 보다 옆길이 더 나은 것 같다.
▲ 2일 차 칠갑산 정상 인증
▲ 하산시에는 친구가 우회를 내가 계단을 이용했는 역시 도착 시간은 비슷하다.
▲ 충혼탑
▲ 칠갑광장가든
▲ 최익현(崔益鉉, 양력 1834년 1월 14일 / 1833년 음력 12월 5일 ~ 1907년 1월 1일)은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의 정치인이며 독립운동가이자, 을사늑약에 저항한 의병장이다. 김기현의 문하에서 수학하다 이항로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흥선대원군의 월권행위를 비판하였다. 1855년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올랐으며 동부승지, 참의, 돈녕부의 도정 등을 역임했고 안동 김씨 세도정치에 반대, 1863년 흥선대원군의 집권과 개혁 정책을 적극 지지했다. 그러나 1874년 흥선대원군을 공격하여 실각시켰다. 그 뒤 의정부찬성 등을 역임하였다. 그는 고종 즉위 직후부터 나온 정도전 정인홍, 윤휴, 이현일 등의 복권 여론을 친구 김평묵과 함께 결사 반대하여 좌절시켰다. 1876년 강화도조약 반대에서 가일층 부각되었다. 도끼를 메고 광화문에 나아가 올린 개항오불가(開港五不可)의 '병자척화소'(丙子斥和疏)를 올린 뒤부터는 개항 반대와 위정척사운동을 전개했고, 을사늑약 이후로는 항일 의병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을 계기로 그는 공개적으로 의병을 모집하였다. 임병찬, 임락 등과 함께 전라북도 정읍 에서 거병하였으나, 곧 관군에게 패하여 체포되었고 대마도에 유배되었다. 유배 당일, 대마도주의 일본식 단발 요구에 대한 항의의 단식을 시작하였으나, 대마도주의 사과 및 왕명으로 단식을 중단을 하였다. 하지만, 단식의 후유증으로 3개월 뒤의 발병으로 75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1]사후 1928년 시호 없이 종묘 고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이 추서되었다. 그는 노론 화서학파의 지도자이자 노론내 위정척사파의 중심 인물이었고, 1905년 을사조약에 저항한 의병장의 대표적 인물이었다. 본관은 경주이고, 초명은 기남(奇男), 자(字)는 찬겸(贊謙), 아호는 면암(勉庵)이다. 김기현, 이항로의 문인이다. 출처:위키백과
▲ 칠갑광장가든 옆 면암 최익현 선생 동상(산행 마침)
▲ 천장호 이동
▲ 천장호는 청양군 정산면 36번 국도변에 위치하고 있다. 1,200㏊의 농경지 관개용 저수지로 1972년 12월부터 약 7년에 걸쳐 착공하여 1979년에 준공된 인공호반으로 청양 명승 10선중 하나이다. 2009년 출렁다리가 준공되면서 화려한 경관이 장관인데 호수에 비친 칠갑산 산자락은 수채화를 연상케 하고 <길이 207m. 폭 1.5m 높이 24m >의 천장호 출렁다리는 국내에서 가장 긴 다리로 다리를 건너가는 동안 30~40센티미터 정도 좌우로 출렁거리며 다리 중간 중간에 수면이 아래로 내려다 보여 아슬아슬함을 더해준다. 이 다리에는 용과 호랑이에 얽힌 전설도 있다. 칠갑산 아래 천장호에서 천년의 세월을 기다려 승천하려던 황룡이 자신의 몸을 바쳐 다리를 만들어 한 아이의 생명을 구하고 이를 본 호랑이가 영물이 되어 칠갑산을 수호하고 있어 천장호를 건너 칠갑산에 오르면 약을 다스리고 복을 준다는 황룡의 기운과 영험한 영물 호랑이의 기운을 받아 복을 받고 건강한 아이를 낳는다는 전설이다. 하지만 전설은 옛날이야기인데 천장호는 인공호로 최근에 만들어졌으니 이 모두는 청양군에서 마케팅 전략으로 만들어낸 이야기다. 조형물 역시 그래선지 허접한 느낌이다.
▲ 소금쟁이 고개는 천장호가 생기기 이전에 청양과 장평 청남을 오가던 사람들이 이용하던 고갯길로 전설에 의하면 어느 날 한 소금쟁이가 고개를 넘다 이 고개에 지게를 받쳐 놓고 쉬고 있는데, 호랑이가 나타나자 이 소금쟁이는 지게받침 지게 대를 빼놓은 순간, 지게가 넘어 지면서 항아리가 깨지는 소리와 하얀 소금이 쏟아지는 모습을 본 호랑이 슬금슬금 도망쳤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고개다.
▲ '세계에서 제일 큰 고추와 구기자'를 새겨놓은 상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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