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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 100명산 산행기

68. 유명산 (有明山) : 경기도 가평군, 양평군

□ 유명산 (有明山, 862m) : 농다치 고개, 소구니산, 입구지계곡 

농다치 고개→소구니산→유명산→자연휴양림

◇ 산행지 : 경기도 가평군 옥천면, 양평군 일원

◇ 산행일자 : 2018. 7. 8 (일) 날씨 : 맑음 

◇ 산행거리 : 약 5.43 Km

◇ 산악회및 친구 : 가자 산악회 회원님들과

◇ 산행시간 : 3시간 40분 산행 ( 점심 30분 포함 ) 

◇ 시간 대별 요약

- 10:36 농다치고개 도착 산행시작 

- 11:19 소구니산

- 12:07 유명산

- 13:06 점심 식사 마침

- 14:16 산행 마침

- 16:57 뒤풀이 뒤 출발

 

※ 특기사항

① 2005년 이후 두 번째 유명산 산행  

② 한강기맥 구간     

③ 입구지 계곡 출입금지로 가지 못함 

 

※ 산행 전 사전 조사

<서너치 고개 유래>:  옛날에는 이 재가 숲이 울창하여 하늘이 서너치 밖에 보이질 않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리라고도 하며 仙遊於峙(선유어치): 신선이 이 고개에서 놀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며 옛날에 가마를 타고 올라가던 아가씨가 가마꾼에게 "얼마를 더 가야 하느냐"고 물으니까 그 가마꾼이 "서너치만 가면 됩니다." 라고 해서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며 신선이 잡은 고기가 여기서 鮮魚(선어) 가 되어 날았다고 해서 선어치가 되었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며 신선이 앉아 휴식을 취할 때 고기가 갑자기 선선해졌다고 붙여진 이름라고도 한다.

 

<양평(楊平) 지명 유래>: ‘양평’의 지명은 양근군과 지평군의 두 지역이 합쳐진 통합호칭으로 양평군(楊平郡)이라 불리게 되었다.양근군(楊根郡)은 본래 양근군 또는 항양군(恒楊郡)이라 불렸으며(고구려시대) 다시 빈양현(濱陽縣)으로 고쳤고(신라시대), 후일에 옛 지명인 양근현으로 고쳐(고려) 조선시대까지 계속 불리어 왔으나 고려시대에 잠시 영화(永化) 또는 익화(益和)라고도 했다. 다음으로 지평군(砥平郡)은 지현군(砥峴郡)이라 불렸으며(고구려시대), 다시 지평군으로 고쳤다(신라시대). 지역의 수준급수가 감무에서 현(縣)으로까지 승격된 적도 있는 곳이다. 두 연접지역이 1908년 9월 서로 합쳐 양평군이 되었다. 그 후 일제시대에는 주권이 상실되어 있었던 1914년 3월(甲寅年) 전국의 317郡 4,351面을 12府 218郡 2,517面으로 통폐합 조치한 강제령에 따라 양평군과 지평군이 합병되어 그 당시의 순수성을 담고 이어온 우리 민족의 고유한 지명들이 거의 말살된 채로, 두세 개 이상의 지명을 임의로 조작 합성어(合成語)가 되므로 써 양평군뿐만 아니라, 한국의 전 국토의 고유 지명은 구전(口傳) 또는 변음(變音) 속음화(俗音化)로 바뀌어 전해지고 있다.(출처:네이버지식 오픈백과)

 

※ 유명산 산림청 100명산 선정 사유 :  능선이 완만하고 부드러우며, 수량이 풍부한 계곡과 기암괴석 및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경관이 아름다운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하였으며 신라 법흥왕 27년(540년)에 인도에서 불법을 우리나라에 들여온 마라가미 스님에게 법흥왕이 하사한 사찰인 현등사가 유명 하고 자연휴양림이 있음  

 

※ 유명산  산행 지도

 

 

※ 산행 후기

유명산은 2005814일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는 처갓집 식구들과 휴가 중이었는데 혼자서 중미산-소구니산-유명산을 다녀온 후 내 차량을 이용해 그 다음날 용문산을 다녀 온 기억이 있는데 당시는 산행기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여 아무런 기록이 없다. 유명산은 한강기맥을 계속 했으면 다시 갈 기회가 있었기에 그동안 미뤄왔는데 목표 산행은 현재 중단된 상태라서 가보지 못하다가 친목산악회인 가자 산악회에서 간다고 하여 따라 나섰지만 산행기를 적는 지금의 시점으론 2년이 지난 시간이라 당시의 산행기 느낌은 적을 수 없다. 단체 산행이었기에 모두와 함께 움직여서 산행 속도는 아주 천천히 진행 했었던 것과 정상에서 모여 점심 식사를 했던 것 그리고 출입을 금지한 입구지 계곡으로 하산하지 못한 아쉬움과 산행 후 계곡에서 놀며 뒤풀이한 기억만이 남아 있어 상당한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사진은 남아 있어 이렇게 산행기를 기록한다.

 

※ 산행 사진

▲ 가평과 양평의 갈림길 농다치고개

 

농다치라는 이름은 어디서 유래한 걸까?

조선 중기 때 양평군 신복리에 최씨 성을 가진 마을 향리가 고개 넘어 가평군 방일리에 사는 박씨에게 무남독녀 외동딸을 시집보내게 되었다. 혼수로 딸이 태어날 때 심었던 오동나무를 베어 솜씨 좋은 목수에게 부탁하여 농을 제작하여 농속에 이불과 살림살이를 챙겨서 머슴인 돌쇠와 돌쇠 아버지의 지게에 지어 보내었다. 아씨를 짝사랑하며 숱한 밤을 가슴앓이 해오던 어린 머슴, 돌쇠는 고개 마루에 도착해서는 짝사랑 해온 여인에 대한 사랑의 표시인지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연인의 해코지인지, 지고 가던 오동나무 농을 도로가 비좁다는 핑계 삼아 도로 옆 바위에 쿵쿵 부치며 눈물과 콧물, 땀으로 범벅이 되어 운반하였다. 뒤따라오던 돌쇠 아버지가 보다 못해 애야 농 다친다! 농 다친다!”하고 주의를 준 것이 농다치고개라는 향토명이 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돌쇠의 사랑 표시는 눌언민행(訥言敏行, 말은 더디게 하고 실천은 민첩하게 하라) 교훈은 양평 서생들에게 크게 유행되었다고 한다. 출처:< 산림문화유산 리포터 유인호 

▲ 산행 시작점인 농다치 고개

 

농다치고개 [籠多峙]:경기도 양평군의 서북부에 위치한 고개이다. 옥천면 신복리 새말에서 양편으로 넘는 고개이다. 옛날 양근으로 시집가는 신부가 험한 고갯길이라서 '농다치리'라고 한데서 유래한 지명이라고 전한다. 동국여지지 양근군에 "노다령(勞多嶺)이 군 북부 이십리에 있고 노다치(勞多峙)라고도 칭한다."는 내용이 있다. 해동지도 광여도에는 노다치(老多峙)라고 기록되어 있다. 구한말지형도에 농다치현(農多峙峴)으로 표기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 고읍면 복동리에 위치한 농현(籠峴)으로 수록되어 있다. 휴양림이 자리한 중미산 중턱의 농다치고개에 오르면 멀리 남한강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농다치고개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지명, 2008. 12.국토지리정보원)

▲ 산행 시작점의 계단을 오르면서 산행은 시작된다.

▲ 산행 시작 후 처음 만나는 이정표

▲ 660봉에 있는 삼각점

 

▲ 선어치에서 오는 길과 합류점

 

 

소구니산에 대한 

1. 소구니 = 소근이 = 소근잇골 이두식(훈민정음 창제전 한자를 우리말에 맞도록 표기지명으로 외면이 터지고 속이 오그라들게 만든 그릇종류 2. 소쿠리라는 말이 변한 것이라는 설로 산세 모양이 소쿠리를 엎어 놓은 것 같다.3. 작은 입(小口) 모양을 가진 그릇산행 시작

 

 소구니산은 두 번째다. 나중에 한강기맥을 하게 되면 다시 와야 할 것 같다.

 

 

유명산 정상에서 바라 본 용문산

 유명산: 산 이름으로 널리 유명해진 산이다. 원래 지형도 상에는 산 이름이 없었던 것을 1973년 엠포르산악회가 국토 자오선 종주 등산 중 이산에 이르자 당시 일행이었던 진유명씨의 이름을 따라 산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러나 옛 지도 동국여지승람과 대동여지도에는 이미 마유산이라 기록돼 있었다. 이곳 일대에서 말을 길렀다 해서 마유산이라는 산명이 분명히 있으나 지금은 유명산으로 통칭되고 있다. 출처: 다음 백과 제공 대한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유명산 정상 근처에서 모두 모여 만찬

 

 유명산 정상에서 입구지 계곡으로 하산하려고 하였으나 휴식기간제 실시로 아쉬움만 남기고 자연휴양림으로 하산

 유명산 자연 휴양림 입구

박쥐소로 향한다.

 

 

 박쥐소

 

 

 

 

 

뒤풀이 장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