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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기맥((完走)

땅끝기맥 8구간. 오소재→ 노승봉→ 두륜산(가련봉)→ 두륜봉→ 대둔산(도솔봉)→ MBC통신탑→ 닭골재

□ 땅끝기맥 8구간 

오소재 노승봉→ 두륜산(가련봉)→ 두륜봉→ 대둔산(도솔봉)→ MBC통신탑→ 닭골재

◇ 산행지 : 전남 해남군 북일면, 북평면, 현산면 일원

◇ 이동거리: 대전시청에서 오소재 298Km, 닭골재에서 대전시청 303Km  

◇ 산행일자 : 2014. 7.5()  날씨 흐리고 구름이 많음

◇ 산악회 및 참가인원 :  대전시 산사모 회원 21명(산행 친구: 기억 안남)

◇ 산행거리 : 도상거리 11km(실제거리 13.2Km)

<8구간> 오소재(2Km)-두륜봉-(3.5Km)-대둔산-(5.5Km)-닭골재

◇ 산행시간 : 선두 7시간 21분, 본인 산행 시간: 8시간, 최후미 9시간 30분 소요

◇ 시간대별 요약

- 05:00 대전시청 출발

- 08:16  오소재 도착

- 08:22  오소재 산행시작

- 08:26  222봉

- 09:36  노승봉

- 09:48  두륜산(가련봉)

- 10:09  만일재

- 10:27  두륜봉

- 11:21  508봉

- 11:58  대둔산(도솔봉)

- 13:45  308봉

- 14:40  410

- 16:22  닭골재 산행마침

- 17:50  후미 도착 닭골재 출발

- 18:55  진일관 식당

- 19:43  진일관 식당 출발

- 22:40  대전시청 도착

 

※ 특기사항

① 내 사진 위주의 산행기 작성으로 산행 시간및 기록  정확함

② 2016년 9월 6일~8일 산행 후기 작성

③ MBC 통신탑 주변 곤달비

④ 흐린 날씨로 조망 없었음

⑤ 산행 후 해남 진일관 식당 뒤풀이

 

※ 산행지도 및 고도표 

 

 

▲ 고도표는 돈민 친구의 블러그에서 가져 옴

 

※ 산행 후기

遊山者不可以無錄 而有錄之有益於遊山也 (유산자불가이무록 이유록지유익어유산야) : 산을 즐기는 자 기록 없어서는 아니 되고기록이 있음은 산을 즐기는데 유익하다퇴계 이황 선생님의 말씀처럼 산을 즐기기에도 기록은 필요하지만 잊지 않기 위해서도 기록은 필요하다. 땅끝 기맥은 한 구간을 제외하고 모두 했음에도 기록이 하나도 없다. 이번 산행기를 적으면서 느끼는 건 비록 미흡하더라도 후일에 기억을 돕기 위해 산행기는 꼭 남겨야 하는 게 정답인 것 같다게으르고 미루다 보니 스마트 폰이 바뀌면서 저장된 사진도 모두 유실되어 땅끝기맥 종주 사진도 여기 저기 찾아서 수집 하다 보니 한 구간 빠지고 다 했기에 다시 하지 않기 위해 정리 해서 기록한다. 느낀 점은 1구간과 똑같다

 

※ 산행 사진

▲ 오소재 산행지 도착

오소재로만 알았던 이곳 정류장에 오심재라고 적혀 있는 정류장 표시를 보고 오소재에 대한 유래를 알아보니 1959년 발간된 지명조사표에는 북평면과 북일면이 하나로 통합돼 있었고 당시 흥촌리 오소재를 오소재 또는 오심재로 불렀다고 한다. 산행기를 적으며 다시 산행 지도를 살펴보니 지도상 오심재는 지난 번 산행 마치고 씻은 약수터가 있는 곳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오심재와 만나는 것을 알 수 있다. 두륜산은 이번이 두 번째이지만 언젠가 날씨 좋은 날 다시 와야되니 그때 산행을 하게 된다면 고계봉부터 한 바퀴 돌아 보게 된다면 오심재는 자연히 만난다. 그러니 이곳은 오소재이고, 오소재 유래는 지난 산행기에 적었으니 생략한다.

 

▲ 오소재 단체사진

 

 

 ▲ 오소재 공원에 설치되어 있는 수준점: 수준점(BM; Bench March)이란 수준원점으로부터 표고를 정밀측정하여 영구적인 말뚝을 설치하고, 차후 부근의 수준측량에 이용할 수 있도록 그 표고를 국토지리정보원의 수준측량 성과표에 등록해 놓은 기준점을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수준점은 인천만의 평균해수면을 기준으로 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인천시 남구 용현동에 수준원점을 측설하고 그 표고를 정밀하게 결정해 놓았는데, 이 수준원점의 표고값은 26.6871m이다. 아울러 주로 국도 주변에 수준점을 설치하여 놓았는데 1등 수준점은 약 4㎞, 2등 수준점은 약 2㎞간격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 오소재 소공원 뒤로 이어진 들머리에서 산행 시작

▲ 오소재 산행 시작 약 4분만에 만나는 준,희님의 발자취 

▲ 산행기에 자주 등장하는 커다란 고인돌 모양의 바위

▲ 후답자의 사진에서 발췌 해 온 고계봉 모습 (아래의 내 사진과 비교 된다)

▲ 내가 찍은 고계봉 모습인데 캐이블카 지붕이 구름에 가려 안 보인다.

 

▲ 선답자의 산행기에 간혹 설악산 황철봉 구간과 비교되곤 하는 너덜지대인데 과장이 좀 심한 듯 하다.

 

 

 

 

 

 

▲ 노승봉 오름전의 모습인데 후답자의 사진을 보면 지금은 나무 계단이 잘 만들어져 있다.

▲ 노승봉 오름 전 흔히 말하는 통천문 형태의 암문 (이제 후답자들은 이곳을 통과 하지 않을 것 같다)

▲ 내가 산행 할 시의 노승봉 오름 전 모습이 지금은 아래 사진과 같다.

 ▲ 노승봉 오름전의 모습인데 지금은 이렇게 나무 계단이 잘 설치 되어 있다  (후답자의 사진 )

 

<노승봉(老僧峰 685m)> : 두륜산 도립공원 안에 있는 봉우리로, 해남군 북일면과 삼산면의 경계 능선에 있으며, 정상은 넓고 편편한 암반으로 되어있으며 한 쪽에 오석으로 된 자그만 표시석이 있다. 지도를 보면 국토지리원의 25,000 지형도에는 건너편 고계봉을 노성봉으로 표기하고, 이 봉우리에는 이름이 없다고 한다. 노승봉을 능허대(凌虛臺)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하늘 높이 나른다는 뜻으로 중국의 경승지나 건물에도 많이 등장하는 단어이다. 우리나라에서의 지명에도 많이 보이는데 황해도 해주, 강원도 고성, 경북 울진의 지명에서도 보인다. 허공을 가른다, 승천하다, 비상하다의 뜻의 관용화 된 표현으로, 중국과 조선시대에 보편화되어 해변 절경지에 많이 등장하는 지명이라고 한다.

 

▲ 노승봉에서 바라 본 고계봉 방면 (후답자의 맑은 날 사진이다)

 

고계봉 정상에는 케이블카가 설치어 있고, 그 아래에 오심재가 있다. 고계봉(高髻峰, 638m)의 ‘계(髻)’는 상투를 뜻하는 단어로 높은 상투봉 쯤으로 해석된다. 고개봉 아래 오심재는 옛날 산이 험하고 수목이 울창하여 산적들이 숨어서 지나는 과객들을 괴롭히므로 50명의 사람이 모여서 함께 넘었다고 하여 오십치(五十峙)라고도 불렀는데, 마치 백두대간길의 육십령과 비슷한 유래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 노승봉에서 바라본 가련봉 전경( 후답자의 맑은 날 사진)

 ▲ 노승봉에서 가련봉 가는 길(여기도 후답자의 사진을 보니 이제는 나무 계단이 설치 되어 있다)

▲ 노승봉에서 가련봉 가다 데크에서 본 두륜산의 최고봉인 가련봉의 모습 (후답자의 사진) 

▲ 노승봉에서 가련봉 가다 데크에서 본 내가 찍은 당시의 사진

▲ 노승봉에서 내려선 안부에는 [노승봉 가련봉 사이]의 이정표: ‘가련봉 0.2km’  ‘두륜봉 1km’  이정표의 '천년수'는 물(水)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만일암 터에 있는 천년묵은 느티나무(樹)를 말한다. 만일암의 만일(挽日)은 해를 잡아 맨다는 뜻으로 북미륵과 남미륵의 조성 전설과 관련하여 천년수(千年樹)에 해를 매달았다는 설이 전해져 내려오며, 만일암터에는 오층석탑이 서 있다.

 

 ▲  <두륜산 가련봉(迦蓮峰 703m)> :두륜산 도립공원중의 최고봉으로 해남군 삼산면과 북일면의 경계 능선에 있다. 두륜산은 가련봉을 비롯해 두륜봉(630m), 고계봉(638m), 노승봉(682m), 도솔봉(672m) 혈망봉(379m), 향로봉(469m), 연화봉(613m)의 8개 봉우리(두륜8봉)가 능선을 이루며 8개 암봉이 둥근 원형으로 천상(天上)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땅에서 연꽃이 솟아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서산대사는 두륜산의 지세(地勢)를 말하기를 “북으로는 월출산이 있어 하늘을 괴는 기둥이 되고, 남으로는 달마산이 있어 지축이 튼튼히 연결되어 있고, 동의 천관산, 서의 선은산이 홀연히 마주 솟아있다. 바다가 둘러 싸 지키고, 골짜기는 깊고 그윽하니 이곳은 만세토록 불훼의 땅이다”라고 하였다. 이 예언에 따라 산내의 고찰 대둔사와 산림은 임진왜란 때와 한국동란 때도 전화(戰禍)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  가련봉에서 바라 본 지나온 노승봉 방면의 후답자 사진 (노승봉 뒤로 고계봉의 모습이 보이고 노승봉에서 내리막길엔 없었던 나무 계단도 보인다.

 

 

 

▲  두륜봉 가면서 뒤돌아 본 후답자 사진 (지나온 노승봉 좌측과 가운데 무명봉 그리고 우측의 가련봉 모습)

▲ 만일재의 모습과 진행 방향 두륜봉(후답자의 사진에서)

▲ <만일재(挽日峙 549m)> : 해남군 북일면과 삼산면을 잇는 두륜산 내에 있는 고개로, 가련봉과 두륜봉 사이에 있으며, 고개 정상에는 넓은 헬기장과 이정표가 있다. 지명유래는 만일암지(挽日庵址)에서 따온듯 하며 ‘해를 당겨 놓았다’라는 의미하고 한다. 가을이면 억새가 지천으로 피어 억새천국을 이루는 곳이라고 한다. 만일재(挽日峙)는 천년수 설화와도 관계가 있다고 한다. 옛날 천동(天童)과 천녀(天女)가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지상으로 내려가 불상을 조각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낮동안 불상을 조성하지 못하면 다시는 천상으로 갈 수 없게된 두 사람은 꾀를 내어 천년수에 해를 묶어 해가 지지 못하게 하고, 천동(天童)은 남암에서 천녀(天女)는 북암에서 각각 불상을 조각했다. 그러나 천동보다 일찍 조각을 끝낸 천녀가 빨리 천상으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에 해를 묶어놓은 줄을 끊어버리는 바람에 천동은 영원히 하늘로 올라가지 못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실제로 북암과 남암을 가보면 이 전설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하는데 북암에서는 마애여래좌상이 남암에서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미륵불입상이 있다고 한다.

▲ 만일재 이정표

 ▲ 두륜봉 입구 삼거리 이정표: 두륜봉 정상은 기맥길에서 우측으로 약간 벗어나 있다. 안개로 시야가 어둡지만 두륜봉 정상 인증을 위해 우측 급경사 계단길로 오른다.

▲ 두륜봉 구름다리(사진은 찍기 나름인데 동물이 뽀뽀하는 모습이다. 계룡산 문다래미 같은 느낌이다)

▲ 두륜봉 구름다리 위에서 찍은 사진(후답자의 사진에서)

▲ 두륜봉에서 바라 본 모습(좌측 고계봉, 중앙 노승봉, 우측 가련봉의 모습)  

▲ 두륜봉: 대흥사에서 두륜산을 바라보면 마치 부처님이 누워있는 형상(臥佛)이라는데, 이곳 두륜봉(부처님 얼굴), 노승봉(부처님의 왼손), 가련봉(부처님의 오른손), 백년수(부처님의 심장), 고계봉(부처님의 발)에 해당된다고 한다.

 ▲ <두륜봉(頭輪峰 630m)>:두륜산 도립공원 봉우리 중 4번째로 높은 봉우리이지만, 두륜산의 주산으로 대접을 받고있는 봉우리다. 원래는 커다란 바위덩어리란 뜻으로 “한듬산”으로 불리다가, 그 이후 한듬, 대듬, 대둔으로 변해 대둔산(大芚山)으로 불리다가 백두산의‘두(頭)’와 중국 곤륜산의 ‘륜(輪)’을 따 두륜산(頭輪山)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정상석 아래 누워있는 오석(烏石)에는 해남 청년 사랑회에서 “산은 오르되 이름은 없고 천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젊은 피땀으로 세웠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 두륜봉 구름다리: 위치에 따라 사진의 모습은 다르다.

 

▲ 두륜봉 아래 안내도 옆으로 기맥길은 이어진다.

▲ 기맥길 안내하는 친절한 안내판(여기가 땅끝기맥입니다 하고 광고 하는 것 같다)

▲ 암릉구간에서 바라 본 두륜봉 가련봉 노승봉( 후답자의 맑은 날 사진에서) 

▲ 두륜봉에서 도솔봉 방향으로 산죽길을 지나면 100미터에 가까운 낭떠러지를 로프에 의지한 채 내려서야 한다.

 

 

 

▲ 두륜봉에서 도솔봉 방향으로 진행 하다 이 바위에서 한 번 내림길을 접하고 약 10분 정도 진행 하면 위봉(주봉) 갈림길이 나온다. 당시 나는 어딘지 모르고 지나쳤는데 다음 블러그 "골미의 세계여행" 글쓴이 재희님의 사진을 발췌해 소개 한다.

▲ 위봉(주봉) 갈림길: 땅끝길은 직진(녹색 화살표)이고, 왼쪽은 위봉으로 잘못 알려진 주봉(×533m)능선이다. 위봉에 대해 선답자인 조은산님의 좋은 글이 있어 발췌하여 기록한다. 국토지리정보원 고시사항을 보면 고시지명은 ‘주봉’, 표기지명(25,000)은 ‘위봉’으로 서로 상이하다. 국가에서 발행한 지도에 위봉으로 되어 있으니 자연 그리 부를밖에 없는데, 좀 더 자세히 살피면 ‘위봉’이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이곳 등산 안내도에도 위봉이란 명칭은 없고 ‘투구봉(주봉)’으로 표기되어 있다. 후에 만난 북일택시 기사님도 투구봉이라 했다. 투구 주(冑)를 밥통 위(胃)로 잘못 읽은 결과인데, 밥통과 투구가 무슨 연관이 있을까. 1918년 지형도(일제발행)를 살펴보면 한자표기가 胃(밥통 위)가 아니라 冑 (투구 주)字이다. “님 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만 찍으면~♬” 남이 되는 식이다. 위봉 胃峰(×), 주봉胄峰(○)

▲ 두륜봉에서 도솔봉 방향은 여름에는 산행을 피해야 할 곳이다. 엄청난 잡목과 위험한 암릉이 도사리고 있고 희미한 족적만이 있어 등로를 찾기 힘들다.

 

 

▲ 띠밭재 내려 가기 전의 508봉

▲ 508봉에서 약 6분 정도 진행 하면 나오는 띠밭재(498m) : 인명구조용 무인 감시카메라가 있고, 우측으로 ‘하산하는길 도로까지 0.4km’의 표지판이 놓여 있는데 대둔산 집단시설지구로 내려서는 길이다. 일부 기맥꾼들은 이곳에서 한 구간을 끊기도 한다고 한다. 

▲ 진행 방향 도솔봉은 아래 사진과 비교 된다.

▲ 진행 방향 도솔봉(맑은 날 후답자의 사진에서)

 

 

 

▲ 도솔봉 정상석이 위치한 곳에서 바라본 방송국 송신탑이 위치한 대둔산 도솔봉 방면 전경( 후답자의 사진에서) 가야할 대둔산(大屯山 673.2m) 정상부는 KBS, MBC, KT 등 여러 기관 시설이 점령하고 있다.

▲ <도솔봉(兜率峰 672m)> 정상석: 해남군 삼산면과 현산면, 북평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도솔봉 정상은 여기서 조금 더가서 통신탑이 있는 곳인데, 그곳은 갈 수 없으니 이곳에다가 정상석을 세워 놓았다. 우측으로는 연화봉, 혈망봉, 향로봉으로 이어지고 기맥길은 통신탑이 있는 직진으로 이어진다. 도솔이란 도솔천을 말하며 수미산(須彌山)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인 잇수의 단위, 40리에 해당함.)이 되는 곳에 있는 천계(天界). 여기에는 칠보(七寶)로 된 궁전이 있고 수많은 하늘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다음 구간인 달마산 구간에도 도솔봉이 있는데 그곳 정상에도 공군부대가 자리잡고 있다. 도솔봉 (670m) 이곳은 대둔산 정상이 아니고 대둔산은 673m 방송통신탑이 있는 곳이다.

 

 

 

 ▲ 방송통신탑 아래 이곳에서 곰취인줄 알고 많이 췌취했는데 후답자의 글을 보니 곤달비다. 

 ▲  지나온 대둔산 도솔봉 방면 전경

 ▲  620봉에서 내려서는데 다행이 가느다란 로프가 메어져 있다. 이곳에서 410봉 지날때 까지는 일반 등산객들은 다니지 않아서 로프같은 안전시설이 전혀 없어 땅끝기맥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구간이라고 한다. 산악사고가 가장 빈번한 곳이라고 하니 주의해야 한다.

 ▲  개구멍 만큼이나 좁은 공간을 힘들게 내려서는 곳도 있다.

▲  통신시설이 자리한 대둔산과 지나온 620봉 모습

 

 ▲ 308봉을 지나면 410봉 암릉이 이어진다.

▲ 완도 방향

 

 

 

 

 

  ▲  410봉 정상에 있는 '준.희'님의 표지

  ▲  뿌연 연무 사이로 완도대교가 어슴프레 드러나고, 완도를 잇는 13번 국도가 보인다

 

  ▲  NO 125 송전탑

▲  뿌연 연무 사이로 완도대교가 보인다.

  ▲  돌탑 

▲ NO 65 송전탑과 닭골재가 있는 13번 국도가 보인다. 

▲ NO 65 송전탑

 

▲ <닭골재(楮洞峙 58m)>:해남군 현산면 구산리와 북평면 남창리를 잇는 고개로, 새로 생긴 4차선의 도로가 시원스레 뚫려있고 그 옆에는 잊혀져가는 구 13번 국도가 있다.해남지(海南地志)에 기록된 닭골재를 보면 고개 아래에 있는 ‘딱골’이란 지명에서 비롯된 듯 하며, 딱골은 닥나무가 많은 동네라는 뜻으로 ‘저동(楮洞)’으로 기록되어 있다고한다. 그렇다면 이 고개의 원 지명은 저동치(楮洞峙), 즉 딱골재인데 변음이 되어 닭골재로 된 모양이다.

▲  닭골재 아래 산행 마침

▲  닭골재 씻었던 곳 

 

 

▲ 산행 마치고 해남 진일관 식당으로 이동 중에 보만식계 대장님 

▲ 산행 마치고 해남 진일관 식당으로 이동

▲ 진일관 식당 앞에서 김백기님이 폼 잡으라 해서 

 

▲  4인 기준  한상 10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