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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둘레 산길

대전 둘레 산길 2구간

대전 둘레 산길 2구간

금동고개 돌탑봉 떡갈봉 삼각점봉 안산 먹치 만인산 태조 태실 만인산 휴게소

◇ 산행지 : 대전광역시 중구 대사동, 구완동, 이사동, 금동 일원

◇ 산행일자 : 2021. 1. 27 (일). 날씨 : 맑음

 산악회및 친구 : 승용차 2대 이용(만인산 부킹, 금동이동), 상섭

◇ 산행거리 : 13.1km(접속거리 미포함)

◇ 산행시간 : 5시간 40분 산행( 중식 15분 포함)

◇ 시간 대별 요약 

- 09:58 만인산 휴게소 

- 10:35 금동 고개 산행 시작

- 11:42 떡갈봉( 휴식 10분)

- 12:55 점심(15분)

- 14:19 안산

- 15:28 만인

- 16:05 태실

- 16:15 만인산 휴게소 산행 마침

 

※  특기사항

 둘레 산길 2구간 3회째

② 승용차 2대 이용(만인산 부킹, 금동이동)

③ 1구간 이어 2구간만은 첫 산행(두 번 모두 보~만 산행)

④ 김밥 한 줄 점심

⑤ 산행 후 뒷풀이 안함

 

※ 산행 전 사전 조사 

< 대전둘레산길 2구간 (만인산길) > :  만 길이나 높고 깊은 만인산!

만인산은 태봉산이라고도 부르는데 조선 태조 이성계의 태실이 이곳에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산은 동구의 남쪽 끝에 있기에 대전 시민들이 마을 뒷산처럼 쉽게 찾지는 못하지만 만인산 휴양림은 가족과 함께 산길을 걷기에 참 좋은 곳이며, 특히 연인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3대 하천 중 대전천의 발원지가 바로 만인산 봉수레미골에 있으며, 산길이 부드럽고 낙엽송이 주변에 잘 어우러져 있어 멋진 분위기를 자아낸다. 2구간 코스는 동구와 중구의 구계와 대전시계에 주로 형성되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산길이라 주위를 잘 살피며 산행해야 한다. 만인산 정상에 오르면 주변의 조망이 좋고 특히 서쪽 능선이 아름답다. 근처에 서대산과 정기봉이 보이고 멀리 보문산, 식장산, 천비산이 눈에 들어온다. 2구간 주변에 신채호선생생가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태실과 주민들이 많이 찾는 만인산 푸른학습원, 만인산 휴양림, 만인산 휴게소가 있다. (출처 : 대전광역시청홈페이지)

 

 대전둘레산길 2구간 등산 지도및 관련자료

 

 

 

※ 산행 후기

대전둘레산길잇기는 산행기 작성일 현재 4회째 2구간을 진행 중이다. 처음 둘레산길 구간을 걸은 것은 2006 326일 만인산에서 시작하여 식장산을 종주 한 것이 처음 이었는데 당시엔 보만식계를 종주하는 차원에서 4 8일 식장산에서 계족산을, 4 16일에 보문산에서 만인산을 걸으면서 총 3회에 걸쳐 보만식계를 완성했다. 둘레산길잇기 기준이라면 1~5구간을 3구간으로 한 셈이다. 그 이후 2006년에 나머지 구간과 20007년에 또 다시 한 바퀴를 돌아 총 2회에 걸쳐 둘레산길을 완주 했으나 산행기나 사진이 없어 3회차인 이번엔 12구간으로 나누어 2020년에서 2021 2월에 걸쳐 산행을 마무리 하였기에 산행기를 남기고자 이번에 적고 있다. 다만 산행기는 그때그때 적어야 그날의 느낌을 다 적을 수 있는데 게으름으로 인해 당시의 느낌을 다 적지 못해 아쉬울 뿐이다.

 

※ 산행 사진 

 금동고개 : 대전 동구 장척동과 금동 마을을 넘나드는 포장 2차선의 산서로가 지나가는 고개로, 총 12구간으로 구성된 대전둘레산길 중에서 보문산에서 시작한 1구간이 끝나고 만인산을 지나 태실까지 이어지는 2구간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지난 구간에 이어 금동고개 2구간 시작한다. 금동고개 버스노선은 친구와 나 둘 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오기가 상당히 어려워 이번에는 각자 차를 가지고 만인산휴게소에서 만나 차 한 대를 휴게소에 두고 섭이 차를 이용하여 금동고개로 와서 산행을 시작했다.

대전둘레산길 2구간 시작점이라는 안내판과 금동고개 이정표(만인산10.3km /떡갈봉3.0km)을 지나 산행을 시작하면 풀밭 능선을 잠시 지나고 우측으로 금동 마을이 내려다보이며 다시 숲으로 올라 작은 봉우리를 지나서 내려서면 떡갈봉을 향한 본격적인 오름길로 들어선다.

▲ 제법 가파른 데크 계단 길을 오르면 잠시 완만한 능선 오름길이 이어지더니, 468.9봉을 오르지 않고 우회 할 수 있는 길이 나온다.

KT이동통신 기지국

▲ 이정표(만인산8.2km /떡갈봉0.8km /산정말1.6km /금동고개2.2km)가 있는 무명봉 

475봉 신정말 갈림길 봉우리의 이정표 : 대전둘레산길을 걷는 분들은 이곳 475봉에 작은 돌탑이 있다고 돌탑봉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는데 무명봉이다.

떡갈봉(499.2m) : 대전시 동구 삼괴동 부락에서 맨 끝에 보이는 높은 산봉우리를 떡갈봉이라 부르는데, 떡이 열리는 참나무가 있었다고 하여 떡갈봉이라 불린다고 한다.

 

떡갈봉의 전설 : 옛날에 나무를 해서 금산장에 나가 그 나무를 팔아서 근근이 생활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식구래야 자기와 홀어머니 하나뿐인데 어머니가 먹고 싶다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서 어머니에게 드리는 효자였다. 산아래 집을 짓고 사는 그들에겐 가난이 몸에 배었지만 그의 어머니는 자식을 잘 둔 덕분에 잘 먹고사는 편이었다. 어느새 세월은 흘러서 아들이 서른이 넘었지만 장가를 못 보내서 어머니는 혼자서 부지런히 일하는 그의 아들이 불쌍하기만 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이 장터에 나가면 으레 뒷마당에 있는 고목나무 아래에 찬물을 떠놓고 산신령님께 아들이 장가를 들어 며느리가 하나만 들어오게 해달라고 빌곤 했다. 아들은 항시 부지런해서 그날도 지게에 어머니가 먹고 싶다는 조기를 두어 마리 매달고 집에 돌아왔다. 그때 아들이 집에 들어오는데 뒤에 고운 처녀가 따라 들어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색시를 만나서 데리고 들어오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게를 받쳐 놓고 아들도 색시를 보고 어리벙벙하는데 뒤따라 들어온 색시는 노상 뒤를 돌아보더니, 「마님, 저 좀 숨겨주세요. 저를 잡으러 포졸들이 오고 있어요.」 하고 애원하므로 어머니는 그 색시를 뒤뜰 짚 더미 속에 감추어 주었다. 색시를 감추고 앞마당으로 나오는데 포졸들이 몰려와선 여기서 색시를 못 봤느냐고 다그쳐 묻자 아들은 눈만 끔벅거리는데 어머니가 말하기를 저쪽 산너머로 도망갔다고 하니까 포졸들은 그쪽으로 바삐 쫓아가는 것이었다. 그날부터 쫓기어 이 집에 들어온 색시는 사화에 몰려 삼족을 멸하는 어는 대감집 딸로서 도망 다니다가 이 집에서 숨겨주자 이 집 며느리가 되었다. 어머니의 기쁨은 말할 수가 없었다. 색시는 고운 옷을 버리고 촌부의 옷으로 갈아입고선 부지런히 일을 했다. 아들도 나무를 해서 금산장에 불이 나게 다녀와선 자기의 아내와 집안일을 하고 해서 집안이 옛날보다 훨씬 깨끗해졌으며 아들이 글공부를 하여 집안에 윤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산으로 나무하러 갔다가 바위에서 뒹굴어서 다리를 다쳐 꼼짝도 못 하게 되었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해 와야 그날그날 살아가는 그들에게 큰 타격이 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다리를 다친 아들 대신 며느리가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게 되었다. 며느리가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면 겨우 집에서의 땔감밖에 안되었다. 며느리는 열심히 일을 했다. 고왔던 손이 터지고 얼굴 색깔이 검게 타고 너무 지저분한 옷을 걸치고 다녔지만 어딘지 모르게 깨끗한 아낙이었다. 밤에는 남편을 앞에 앉히고 가르쳤다. 천자문부터 시작하여 논어까지 슬슬 뜻을 새겨나갈 때 어머니가 덥석 병석에 눕게 되었다. 어머니는 병석에 누워서 찹쌀떡이 먹고 싶다 하자 아들과 며느리는 밤새 잠을 못 이루었다. 그 이튿날 아침 일찍이 며느리는 산으로 올라갔다. 오늘은 일찍 나무를 해서 금산장에 나가 팔아서 찹쌀떡을 사 오기 위해서였다. 어둠을 뚫고 산에 올라온 며느리는 열심히 나무를 했다. 나무를 해서 한 다발 꼭꼭 묶고 빨리 금산장에 다녀와야겠다고 머리에 이고 나오는데 그때서야 해가 뜨기 시작했다. 며느리는 걸음을 재촉해서 봉우리 한가운데로 나오는데 언뜻 앞을 바라보니 큰 참나무에 무엇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며느리는 신기해서 가까이 가보니 참나무에 매달린 것은 모두 찹쌀떡이었다. 며느리는 덥석 나무를 내려놓고 그 떡을 따기 시작했다. 그래서 찹쌀떡을 가지고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드렸다. 그 이튿날 산봉우리 그 참나무를 찾았다. 역시 찹쌀떡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며느리는 또 떡을 따 가지고 집으로 오는데 집 앞에 꽃가마가 놓여 있었다. 사화에서 풀려 그를 데리러 온 한양의 꽃가마였다. 며느리와 아들, 어머니는 그대로 모두 한양으로 떠나는데 며느리가 시녀를 시켜 떡이 열려있는 산봉우리에 다녀 가자고 하여 꽃가마를 타고 산봉우리에 갔었다. 허나 그 참나무는 있는데 이상하게도 떡은 간 데가 없었다. 며느리는 한양으로 발길을 돌리며 이 봉우리를「떡갈봉」이라 불렀다는데, 그래서 지금까지 떡이 열리는 나무가 있었다 하여「떡갈봉」이라 부르며 이 집 아들은 한양에서 아내 덕분에 큰 벼슬을 하였다 한다.

▲ 떡갈봉의 이정표(만인산7.4km /금동고개3.0km)

떡갈봉에서 잠시 진행하면 무인산불감시카메라와 삼각점이 있는 얼갱이산이다. 얼갱이산(490m)은 무인산불감시시설과 삼각점(금산 418)이 자리 잡은 산으로, 얼갱이가 체를 뜻하는데 이곳과 무슨 연관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실제 산행시는 그곳에 아무런 표식이 없어 얼갱이산인지도 모르고 지나쳐 왔다. 산이름을 언제부터 누가 그렇게 불렀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현재 산행기에 얼갱이산이란 이름이 간간이 나오니 굳어질지도 모르겠다.

좌측 상소동의 동구청소년수련원 방향 갈림길 이정표(만인산6.3km/청소년수련원2.5km/금동고개4.1km)

▲ 말라 버린 나무가 오히려 멋진 자태를 만들고 있다.

어남동갈림이정표(만인산5.6km /어남동/금동고개4.8km)

평상과 이정표(만인산5.3km/어남동/금동고개5.1km/떡갈봉2.1km)가 있는 443에는 추운 날씨를 감안하여 비닐 포장을 치고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도 이곳에서 아래로 잠시 이동하여 엄마손 김밥 한 줄로 점심식사를 했다.

점심 식사 한 곳

▲ 가파르게 내려가다 다시 오르내린다.

▲ 용궁사 갈림길의 이정표(만인산3.5km /용궁사0.6km /금동고개6.9km)

▲ 지난 번에 비해 오늘은 친구가 컨디션이 좋은것 같다.

이정표(만인산 2.6km /시경계 어남동/금동고개7.8km) 

 안산(424m) 정상에는 국가지정번호 표시판(다마 9330 0097)이 있다. 안산에서 만인산 정상까지는 약 1시간 10분정도 소요된다.

북쪽 지나온 떡갈봉 방향

안산을 뒤로하고 급경사 내림 길을 내려서면 먹티고개다. 보이는 마을은 먹치마을이다.

먹티고개 이정표(만인산 1.6km /금동고개8.9km)

먹티고개는 대전시 동구 하소동과 금산군 복수면 목소리를 잇는 고개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난다. 먹티고개는 석탄이 많이 묻혀있어서 주위가 온통 시커멓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실제로 먹티고개에 가까워지면 주변에 석탄처럼 시커먼 흙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먹티고개에 내려서는 마지막 내리막길과 만인산 오름길에는 2014년 말경 사유지란 이유로 철조망으로 등로를 막았었는데 20162월경 대전시에서 문제가 됐던 해당사유지를 매입했고 철조망등을 철거해 산행에 불편함이 없도록 만들었으며 아울러 계단 등 편익시설을 설치해 시민들의 안전산행을 도왔다고 한다.

이정표 (만인산0.4km /태실2.1km /휴양림2주차장1.1km /금동고개1.0km)

▲ 만인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 둘레산길1~2구간 산 정상에는 정상석은 없다. 만인산 정상 역시 삼각점 안내문, 삼각점(금산22/2003재설), 이정표(정기봉3.1km /태실1.7km /학습원2.3km /만인루0.5km)겸 정상표지목, 만인산 봉화대터 안내문이 있다.

만인산(萬仞山, 538m) : 충남 금산군 추부면과 대전광역시의 남쪽 동구 하소동 일대에 걸쳐있는 산으로, 고조선 때부터 정상에 봉수대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태실(胎室)이 있는 산이라고 해서 태실산(胎室山) 또는 태봉산으로도 부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진산)"군의 동쪽 20리에 있다. 성봉(星峯)이 있는데 땅이 두텁고 물이 깊으며 봉우리가 기이하고 빼어나게 우뚝 솟아 모양이 마치 연꽃같이 생겼다. 우리 태조의 태를 묻었다."라고 하여 관련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그만큼 산이 깊고 높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산으로, 일설에는 수많은 골짜기가 모여 산을 이루어서 만인산이라 불렸다고도 전해진다. 여지도서(진산)에는 "태실산(胎室山)은 군 동쪽 30리에 있다."라고 하여 태조 이성계의 태실이 안치되어 있던 만인산을 '태실산'으로 기록하고 있다. 1872년지방지도(진산)에는 만인산 아래 태조대왕 태실로 표기된 석실이 그려져 있다. 하소동에서 금산군 추부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태봉재라 한 것도 이에 연유한 것이다. 원래 태조의 태실은 함경도에 있었으나 무학대사(無學大師)가 만인산의 터가 명당이라 이곳으로 옮겨왔다. 태조 이성계의 태실은 일제강점기 때 파괴되었다가 복원되어 만인산 동쪽 자락에 위치한다. 산봉우리의 모양이 만발한 연꽃 모양을 닮았다. 숲과 계곡이 아름다운 곳으로 등산로와 숲속 자연탐방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만인산 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있다. 동쪽 능선에 만인루(萬仞樓)가 있으며 주변 일대가 조망된다. 남쪽 기슭에는 중부대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동쪽에는 금산군 추부면이 위치하며, 대전천이 만인산 계곡에서 발원한다.

만인산 정상을 뒤로하고 작은 돌탑을 지나면 나무 계단을 따라 급하게 내려선다.

휴게소 갈림 이정표 (태실1.0km /학습원1.2km /휴게소0.7km /만인산1.0km) 

이정표 (정기봉2.0km /태실0.5km /만인산1.5km)

출렁다리

대전둘레산길 2구간의 종료와 3구간의 시작점으로 조선 태조대왕의 태실이 자리한 태봉재다. 태봉재는 대전시 하소동에서 금산군 추부면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며 푸른학습원에서 설치한 출렁다리가 있다. 좌측 계단길로 내려서도 되지만 재미삼아 출렁다리로 건넌다

태조대왕 태실

태조대왕 태실(太祖大王 胎室) : 조선을 건국 한 태조 이성계의 태()를 안치했던 곳이다. 본래 함경도 용연(龍淵)에 있었으나 태조 2(1393) 당시 전라도 완주군 진동현이었던 현재의 금산군 추부면 마전리로 옮겨 왔다. 태실은 몇 차례 중수 및 개수되었으며 일제강점기인 1928년 조선총독부에서 태실을 훼손하여 태항아리를 창덕궁으로 옮겨갔고 1993년 지역 주민들이 남은 석비와 석물을 수습하여 현재의 위치에 복원하였다. 비석 전면에는 '태조대왕 태실'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고, 후면에는 중건한 시기(1689)가 새겨져 있다. 무학 대사가 함경도 용연지역에 있던 태조의 태를 옮겼으며 태자의 태도 함께 이곳에 묻었다. 그래서 나라에서 이 산을 봉산이라 정하였으며 조선 개국 이래 성역화한 곳이다.

▲ 태실 안내문

▲ 태봉재

이정표(휴게소0.2km /태실 /만인산1.7km /정기봉 1.4km)에서 휴게소로 향하며 2구간 산행을 마친다.

▲ 만인산 휴게소 주차장에서 내 차를 이용 금동고개로 차량을 회수하러 간다.

▲ 봉이 호떡을 사려고 사람들이 줄서 있다.

 

 

▲ 봉이호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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