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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 100명산 산행기

64. 운악산(雲岳山) : 경기도 가평군 하면, 포천군 화현면

운악산(雲岳山) : 원통산, 서봉, 동봉

노채고개→원통산→서봉→운악산→47번국도→명덕삼거리

◇ 산행지 :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가평군 하면, 상면 일원  

◇ 산행일자 : 2009. 7.  4(토)  날씨 : 구름 약간 

◇ 산악회및 친구 : 대전시청 산사모 산악회 26명. 산행친구: 강연호 ,최돈민, 이기대

◇ 산행거리 : 18.69km (트랭글 기준)

◇ 산행시간 : 6시간 15분 산행 (점심 15분 포함)

◇ 시간 대별 요약

 - 05:20  대전 IC 출

 - 08:11  노채고개 도착

 - 08:15  산행시작

 - 08:40  원통산

 - 11:03  애기봉     

 - 11:14  운악산 서봉

 - 11:16  만경대 점심(15분)  

 - 11:40  운악산 동봉   

 - 13:03  47번 국도   

 - 14:26  명덕 삼거리 산행마침.

 - 15:10  후미 도착.

 -15:12 명덕삼거리 출발

 - 18:10  대전IC 도착

 

※ 특기사항

① 한북정맥 산행기로 100명산 산행기 대체.  

② 산행 후 씻을 곳 없음.

③ 숲이 우거져 여름 산행지로도 적합함.

④ 경기 오악.

⑤ 추후 산행 다시 할 곳. 

 

※ 산행 전 사전 조사

<운악산(雲岳山·935.5m)>: 양주의 감악산, 가평의 화악산, 개성의 송악산, 과천의 관악산과 함께 경기도의 5대 명산으로 꼽히던 경기오악(京畿五岳)이다. 그리고 풍우(風雨)의 조화가 구름 속에서 일어난다고 해서 산이름에 운()자가 붙었으니, 그 뜻은 천문의 기운이 응결된 땅이란 의미일 것이다. ‘()’은 산 높고 험준하다는 뜻이니 결국 운악(雲岳) 천문의 상서로운 기운이 응결된 높고 준험한 산이란 뜻이 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여지지> <포천군읍지> <산도후기(山圖後記)>에는 한양 동쪽의 모든 산은 현등산으로 중조(中祖)를 삼으니 운악산은 뭇산의 조종(祖宗)이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운악산은 한북정맥에서 갈라져 나온 거의 모든 산들의 모태가 되는 산뿌리라고 할 수 있겠다. 운악산 이름은 <동람도-경기첩>,청구도,세종실록지리지,해좌승람,대동여지도>, <경기 37관도>, <경기 38관도>, <대동지지-가평조>, <여지도-경기첩>, <동여도>, <대동여지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기록이 보인다.  <동국문헌비고> <해동도>에는 운악(雲岳)이라고 기록했으며, <해동여지도> <포천군읍고지도>에는 현등산 기록만이 보인다. <동여비고> <경기고지도첩> <여지도> <천하여지도책-경도도>에는 운악산과 현등산(懸燈山)을 병기했다. 그리고 광무년간(1899)에 편찬된 <포천군읍지>에는 운악산은 포천 고을로부터 동쪽으로 30리쯤에 있는데, 곧 현등산 동쪽에 있는 산이다라고 기록했다. 이는 기록자가 매우 부정확하게 오기한 경우이다. 또 고산자 김정호는 운악산과 현등산을 <대동여지도>에 병기하면서 운악산의 동편에 현등산을 그렸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기록을 근거로 하여 똑같은 산을 가평 사람들은 예전부터 현등산이라고 불렀고, 포천 사람들은 운악산이라고 불렀던 것이라고들 말한다. 실제로 가평쪽(조종면 상판리)에 현등사라는 절이 있어서 이 주장은 더욱 그럴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이 또한 이 지방사람들의 엉터리 믿음인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광무읍지> <대동여지지> 산천조를 살펴보면 예부터 가평과 포천 고을에서 모두 이 산을 운악산으로 인식했던 사실을 기록으로 분명히 남겨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운악산의 대표적인 산이름은 운악산이 분명 옳다고 하겠다. 다만 현등사라는 큰 절이 있었기 때문에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예로부터 현등사라는 절이 있는 산이라고 인식하고는 현등산이라고도 향명으로 불렀을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현등사사적기>에조차 보조국사 지눌이 망일사 원통암에 머물며 운악산을 바라보니 산 속에서 삼일동안이나 밝은 빛을 내뿜었다. 지눌이 기이하게 여겨서 그 곳을 찾아가니 과연 관음전이 우뚝 서있고 남쪽 바위 위에 옥등(玉燈)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그래서 절을 중창하고는 등불()이 걸려있던() ()’이라고 하여 현등사라 이름을 정하니 산이름도 현등산이 되었다고 기록했다. 따라서 본래 산이름은 운악산이었는데 현등의 신이한 행적 때문에 현등사가 세워지면서 또 다른 산이름으로 현등산이 되었다고 그 유래를 비교적 정확하게 밝히고 있다. 출처 월간산 : 향토사학자 : 이수영

 

※ 운악산 산림청 100명산 선정 사유 :  주봉인 망경대를 둘러싼 경관이 경기 소금강이라고 불리울 만큼 뛰어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하였으며 천년고찰인 현등사 및 백년폭포, 오랑캐소, 눈썹바위, 코끼리바위, 망경대, 무우폭포, 큰골내치기암벽, 노채애기소 등 운악8경이 유명하다.

 

 운악산 산행 등산 지도 

 

 

※ 운악산 산행후기

목요일 화악산을 다녀 온 뒤 하루 쉬고 또 다시 가평이라니, 엉덩이가 견뎌 내기 힘들 정도로 연일 강행군이다. 그것도 내일은 다시 강원도 화천의 수피령을 가야하니 조금 걱정이 앞서지만 어쩌겠나? 일정이 잡혀 있는 대로 정맥이니 가야지. 무박도 자주 갔었는데 매번 정맥에 임할 때 마다 잠과의 전쟁이다. 여전히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4시 10분에 일어나 아침을 해결하고 원두막으로 향했다. 설송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버스에 승차해서는 잠을 청한다. 이천 휴게소에 잠시 정차 한 후 노채고개에 도착해서 단체사진을 찍고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에 임하자마자 천연 비아그라라는 야관문 밭을 만났는데 한 번 뒤처지면 따라 붙기 힘드니깐 관심도 없이 산행에 임해야 한다. 지난 번 금남 정맥시의 보복(?)인지 연호 형님 계속 치고 나가는데 나는 항상 몸이 늦게 풀리 듯 처음엔 늘 고생스럽다. 30여분 만에 원통산에 도착 해 기념사진 찍고 열심히 뒤 따라가니 운악산 서봉이 가까이 다가오는데 무심코 뒤 따라 갔더니 어이쿠~! 낭떠러지 같은 곳에 돈민 친구와 이 대장님이 그곳으로 통과 한단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권광진씨 일행 중에 지난번에 사고를 당한 지점이란다. 그래서 보충 산행 왔다는데 사고 많이 나는 지점으로 위험천만인 곳이다. 나와 일행들 모두는 우회하기로 결정하고 우회하는데 이번 산행 중 가장 힘든 구간이었다. 힘겹게 서봉에 올라 바로 옆 만경대에서 식사를 하는데 돈민 친구 “하 하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단다. 점심만 하면 몸이 풀리 듯 이후 산행은 비교적 순탄했다. 47번 국도를 지나 군부대 철조망 옆으로 올라선 후론 편안한 등로였다. 산행 마치고 쏘맥으로 피로를 풀고 물이 귀해 고양이 세수와 수건으로 대충 닦고 대전으로 오는 동안에는 잠에 취해 있었다.

 

※ 운악산 산행사진

 ▲ 노채고개 : 포천군 일동면과 가평군 조종면의 경계다. 단체사진 남기고 산행 시작

▲ 원통산이란 이름은 원통사 절이 있어 생긴 지명으로 ‘원통(圓通)’이란 본래 ‘관음보살의 자비가 두루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는 뜻으로, 원통산에 소재한 원통사에서도 관음보살을 모신 관음전을 중심 법당으로 하고 있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한국지명 유래집                                                                                                                                

▲ 두시간여 산행 하자 운악산 서봉의 모습이 서서히 들어온다.                                                                        

 

▲ 암릉길                                                                                                                           

▲ 이 대장님 바위에 앉아 통화중이고 우리는 우회 애고 힘들어.                                                          

 ▲ 하지만 목숨 걸어야 한다 ㅎ 돈민 친구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단다.                                                

 

 

 ▲ 더워서 반팔 반바지로 갈아 입고 애기봉  남근바위 인증 

▲ 운악산의 유래 : 봉래(峰萊)양사언의 시에 으르기를 꽃 같은 봉우리는 높이 솟아 은하수에 닿았고"에서 화현면과 궁예왕성의 지명이 되는 단서가 보인다. 운악산은 이름그대로 뾰족한 기암괴석의 봉우리가 구름을 뚫고 솟아서 그모습이 마치 서기(瑞記)를 품은 한 떨기 향기로운 꽃과 같다, 그래서 지명이 雲岳山 이다, 유적지로는 궁예성터,궁궐터,만경대,신선대,병풍바위,미륵바위,코끼리 바위,눈썹바위 등이 있고 주봉 만경대를 중심으로 산세가 험하여 기암절벽으로 산을 이루고 있어 그 경치가 절경이며, 구름이 산을 감돌아 신비감마저 느끼게 한다. 화악산.감악산.관악산,송악산과 함께 경기 5악중의 하나라" 경기 소금강"으로 그 이름을 자랑하고 있다. 출처:운악산 표지석

▲ 운악산 서봉과 동봉거리는 불과 5분 거리다.

 

▲ 남근석..동산의 남근석과는 비교가 안된다.                                                                                 

 칠거지악(七去之惡)은 중국, 한국 등 유교문화권에서 남편의 일방적인 의사표시로 아내와 이혼할 수 있는 일곱 가지 이유, 다시 말해 이혼사유이다. 글자 그대로는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일곱가지 잘못'이라는 뜻이다. 《공자가어》에 처음으로 이런 내용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일곱가지 잘못은 다음과 같다. 1.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음(不順父母) 2.아들이 없음(無子) 3.음탕함(不貞) 4.질투함(嫉妬) 5.나쁜 병이 있음(惡疾) 6.말이 많음(口說) 7.도둑질을 함(竊盜) 그러나 칠거지악에 해당하는 잘못을 지었더라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경우에는 내쫓지 못하도록 하였다. 1.내쫓아도 돌아가 의지할 곳이 없는 경우 (有所取無所歸不去) 2.함께 부모의 삼년상을 치른 경우 (與共更三年喪不去) 3.전에 가난하였으나 혼인한 후 부자가 된 경우 (前貧賤後富貴不去) 이런 세 가지 경우를 삼불거(三不去) 또는 삼불출(三不出)이라고 한다. 세종실록에 칠거지악과 삼불거의 사례가 언급되어 있다. 좌찬성(左贊成) 이맹균(李孟畇)의 처 이씨(李氏)가 나이가 거의 일흔이 되었지만 남편이 계집종을 총애하자 이를 질투하여 계집종을 움 속에 가두고 학대하여 굶겨 죽였다. 세종은 사간원에서 이맹균을 탄핵하는 상소를 받고 그를 귀양보냈으나 그의 부인은 벌하지 않았다. 사헌부에서는 부인 이씨가 자식도 없고 질투가 심하니 칠거(七去)의 도리에서 이거(二去)를 범했다며 내쫓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세종은 삼불거를 인용하여 '전에는 빈천하다가 나중에 부귀해지면 버리지 못하는 것이고, 함께 삼년상(三年喪)을 입었으면 버리지 못한다'면서 부인을 이혼시킬 수 없다고 반대했다. 출처:위키백과

▲ 뒤돌아 본 운악산 (망경대가 뚜렸하다)

▲ 채석장이 있다. 그 유명한 포천석을 채취하는 곳인 듯하다. 운악산 한쪽 모서리를 흉물스럽게 파내고 있는데 처음처럼 되돌릴 수 없지만 나중에 복원이라도 잘 했으면 좋겠다.

▲ 47번 국도 무단횡단.                                                                                                           

▲ 군부대 철책이 가로막고 우측 능선으로 철책따라 등로가 이어진다.

 

▲ 명덕삼거리 산행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