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리산(智異山) 칠암자(삼정산) 산행
음정마을→도솔암→영원사→삼정산→상문주암→문수암→삼불사→약수암→실상사
◇ 산행지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일원
◇ 산행일자 : 2016. 5. 14(토) 날씨 : 맑음
◇ 산악회 : 충일산악회 (기대)
◇ 산행거리 : 약 15.4 km
◇ 산행시간 : 6시간 40분 소요 <중식 20분 포함>
◇ 시간대별 요약
- 05:30 기상 아침 식사
- 06:12 반석역
- 06:40 정부청사역 산악회 버스 탑승
- 09:18 음정마을 도착
- 09:25 음정마을 산행 시작
- 09:44 임도 시작
- 10:07 임도 갈림길(도솔암-벽소령 대피소 갈림길)
- 10:58 도솔암
- 11:45 영원사
- 11:52 중식 (20분)
- 12:12 영원사 출발
- 13:30 삼정산(왕복 20분 소요)
- 13:40 상문주암
- 14:05 문수암
- 14:27 삼불사
- 15:26 약수암
- 15:52 실상사
- 16:05 산행 마침
- 16:38 남원시 산내면 출발
※ 특기사항
① 금지구역으로 부처님 오신날만 개방 ( 암자마다 절밥,과일,차등 다양한 공양)
② 영리 산악회 2년여만에 따라감
③ 이른 식사로 인한 체력저하로 초반 컨디션 조절 실패 고전
④ 산행 후 다음 날 근육통
⑤ 산행 후 마을 입구 식당 앞에서 씻음
※ 산행 전 사전 조사
<삼정산 (三政山)> :높이 1,225m로 삼도봉~토끼봉~명선봉~별바위등~영원령~삼정산으로 이어지는 지리산국립공원 중북부 능선상의 봉우리로,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과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의 경계에 있다. 뱀사골의 동쪽 산록에 해당되며, 만수천(川)과 덕전천(川)의 분수계를 이루는 봉우리이기도 하다. 지리산 능선상의 봉우리이지만 삼정봉(峰)이 아니라 삼정산(山)이라고 부른다. 산세가 부드럽고, 곳곳에 기암과 고사목·노송들이 어우러져 있어 경관이 빼어나다. <함양군지>에는 한자가 삼정산(三丁山)이라고 되어 있으나,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삼정산(三政山)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삼정산이란 이름이 산의 동쪽 기슭에 입지한 하정·음정·양정이란 세 마을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면, 삼정산(三丁山)이라는 한자 이름이 정확한 표기로 판단된다. 삼정산 등반코스는 일명 '암자순례길'이라고 한다. 남원 쪽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실상사 산내암자인 약수암을 거쳐 차례로 삼불사·문수암·상무주암에 이를 수 있고, 삼정산을 지나 영원령 쪽으로는 영원사·도솔암이 있다.
<칠암자 개요>: 지리산 주능선이 삼각봉(1,462m)에서 북서로 뻗다가 영원령(1,292m)에서 북동으로 휘어져 전라북도와 경상남도의 도계를 이루는 능선이 지리산 북부능선 혹은 삼정산(1,225m)능선으로 이 능선이 품고 있는 도솔암(약1,165m), 영원사(약895m), 상무주암(약1,162m), 문수암(약1,060m), 삼불사(약990m), 약수암(약560m), 실상사(약330m) 등 7곳의 암자와 사찰을 흔히 지리산 칠암자라 부르는데, 이들 중 실상사 약수암 삼불사 문수암 상무주암 영원사는 누구나 쉽게 다녀올 수 있지만 깊은 산중 골짝에 묻혀있는 도솔암만은, 잦은 통제기간에 묶여 출입이 어려웠지만 석가탄신일에는 개방하니 이들 三寺와 四庵子를 연계한 산행을 지리산 칠암자 순례라 한다.
※삼정산 산행지도
▶ 코스 :음정마을-①도솔암-②영원사-③삼정산-상무주암-④문수암-⑤삼불사-⑥약수암-⑦실상사-매표소
※ 산행 후기
건강을 위해 열심히 산행 했던 2년 전에 비하면 지금은 거의 산행 초보 수준이다. 그러다보니 영리 산악회를 따라 나선다는 것도 조심스러워 2주 동안 계룡산과 둘레산길인 빈계산~구봉산 구간을 다녀 온 후 교차로 산행정보를 보니 눈에 띠는 곳이 있다. 부처님 오신 날만 되면 단골처럼 등장하는 “지리산 7암자 순례 산길” 산행이 다. 암튼, 7암자 산행 산악회가 다섯 곳이나 있는데 그 중에 버스 연계를 보니 충일 산악회가 나와 친구가 버스 타기에 적절한 운행 코스라 충일 산악회에 산행 신청을 했다.
5시 반에 기상 아침 식사를 한 후 지하철을 타고 정부청사역에 내려 산악회 버스를 탔다. 산악회에서 제공하는 찰밥으로 아침 식사를 하라고 휴게소에 들렀지만 친구나 나나 아침 식사를 하고 왔었기에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결론적으론 이른 아침 식사 때문인지 산행 시작 후 컨디션 난조로 엄청 힘든 산행을 해야만 했다.
음정마을에 내려 산행을 시작하고 도솔암 가기 전 능선에 오르기 까지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는데 다음부터는 식사 시간 조절을 잘해야겠다. 영원사에서 제공하는 비빔밥으로 점심 식사를 한 후에도 한동안 고전은 계속되었는데 삼정산 갈림길에서 친구가 만류한다. 다시 또 와도 되니 삼정산은 정상은 패스 하자고 한다. 다시 오기 어려운 곳이라 판단되어 배낭도 내팽개쳐 버린 후 삼정산 정상을 다녀왔는데 정상에서 내려 온 이후로는 정상적인 컨디션 회복으로 수월한 산행이 시작되었고 무사히(?) 산행을 잘 마쳤다. 암튼, 다음 산행부터는 식사 시간이라든지 컨디션 조절을 잘 해야겠다.
※ 산행 사진
▲ 음정마을 도착
▲ 아래 사진 처럼 벽소령 표지석이 있는 곳
▲ 벽소령 표지석은 멀리서만 감상 했다.
▲ 음정(陰丁)마을:양정, 하정마을과 합하여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에 속하며 또한, 음지에 위치한 집단촌으로 취락을 이루고 살아간다는 뜻에서 음지정제라고도 한다.
▲ 음정마을에 있는 함안 버스 시간표
▲ 음정마을에 있는 이정표(벽소령 8.4Km, 벽소령대피소 6.7Km를 가리킨다.
▲ 음정마을에 위쪽에 있는 '수덕제' 라는 제각을 지나서 좌회전하여 방향을 잡는다.(첫 이정표에서 약 3분 소요)
▲ 임도가 시작 되는 바리케이트가 있는 곳인데 컨디션 난조로 약 16분 정도 걸렸고 초반 부터 너무 힘들었다
▲ 벽소령대피소와 도솔암 갈림길에 있는 출입통제 표시판이 도솔암 가는 길을 잘 안내하고 있다(임도 시작 약 23분 소요)
▲ 도솔암: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954번지에 소재하며 도솔암은 청매 인오(靑梅印悟, 1548~1623)가 수행하던 유서 깊은 사찰로 1987년 해인사 혜암스님이 중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도솔암에는 목조관음 보살상이 있다고 하는데 이 목조관음보살좌상은 1707년(숙종 33)에 수조각승 진열을 비롯하여 6인의 조각승이 참여하여 조성한 작품으로. 진열은 17세기말에서 18세기 전반까지 경상·전라·경기 등지에서 폭넓게 활약한 18세기의 대표적 화승이라고 한다. 진열과 함께 이 불상제작에 동참한 계초(戒椘), 신연(信衍), 태응(太應), 태원(太元), 청휘(淸輝) 등도 경상·전라지역에서 활동하며 18세기말까지 조각승의 계파를 형성하였다고 한다. 이 작품은 진열이 제작한 여러 작품 가운데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사례로, 진열의 초기 작품과 18세기 초의 조각 경향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고 한다. (출처:다음 백과사전 제공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화 중앙 연구원) (산행 시작 후 약 1시간 30분 만에 도솔암에 도착했다. 이상한 건 스님의 머리가 스포츠 머리로 너무 길었다. 사전에 공부 하지 않아서 목조관음보살상도 보지 못했다.)
▲ 도솔암 입구 ※ 결제(結制) ⇒ 불교에서 안거(安居) 제도를 준수하거나 시작함
▲ 도솔암에서 영원사 가는 길은 내리막길이다.(이곳 역시 도솔암 가는 길을 잘 안내 하고 있다)
▲ 대전 산악회 다섯 곳에서 왔다.
▲도솔암에서 계곡길을 타고 내려와서 영원사로 가기 위해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는 길을 따라 간다.
영원사는 경상남도 함양군 지리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데, 일명 삼정산으로 불리는 곳으로 해발 920m의 고지대에 가람이 자리하고 있다. 경남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양정마을에서 남서쪽 지계곡을 타고 도솔암을 지나 삼각봉 북쪽 능선으로 올라가는 중간쯤에 위치한 영원사는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함양읍에서 지리산 영원사로 가는 길은 재미난 이야기로도 가득하다. ‘가루지기전’의 주인공 변강쇠와 옹녀의 전설이 깃 들인 함양 오도재가 영원사 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옛날 내륙지방 사람들이 지리산 장터목으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야 했던 고개가 바로 오도재인데, 함양에서 인월 쪽으로 가다보면 조동 마을이 나온다. 조동 마을 입구에서 오도재를 통하면 바로 변강쇠와 옹녀가 정착한 등구 마천이 나온다. 마천마을을 지나면 하정마을이 나오고 지리산자연휴양림과 영원사로 가는 이정표를 만난다. 영원사 방향으로 가파른 산길을 따라 오르고 오르면 지리산 중턱에 자리한 영한사가 있다. 지리산 해발 9백여 미터의 산중턱에 자리한 영원사는 통일신라시대 영원대사가 창건한 이래 서산, 청매, 포광 스님 등의 당대 선지식들이 주석한 바 있는 수도도량이다. 지리산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영원사는 지리산 주능선의 한가운데인 삼각고지에서 북으로 뻗은 삼정산을 뒤로 하고, 벽소령이 병풍처럼 앞으로 펼쳐져 있는 산세가 수려한 곳이다. 한때는 주변의 울창한 수림을 이용하여 너와로 이었던 100칸이 넘는 9채의 전각들로 웅장한 가람의 모습을 지녔을 만큼 내지리(內智異)에서 제일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영원대사가 영원사 부근에 토굴을 파고 8년을 계속 참선 수도를 하였으나 깨우침을 얻지 못해 수도처를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산길을 터벅터벅 걸어 내려오다 물도 없는 산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고기 낚는 시늉을 하고 있는 노인의 말을 듣고 다시 참선 수도를 하고 깨우침을 얻었다고 한다. 영원대사가 창건할 때 얽힌 일화부터 예사롭지 않은 수도도량인 영원사는 고승들이 스쳐간 방명록이라고 할 수 있는 조실안록(組室案錄)을 보면 부용영관(芙蓉靈觀), 서산대사, 청매(靑梅), 사명(四溟), 지안(志安), 설파 상언(雪坡 常彦), 포광(包光) 스님 등 당대의 쟁쟁한 고승들이 109명이나 이곳에서 도를 닦았다는 기록이 있다. 너와 지붕으로 된 웅장한 선방에 당대의 고승들이 즐비했던 영원사의 위용은 여순사건과 6.25전란으로 가람이 완전 소실되어 지금은 몇 개 남은 주춧돌과 부도들로 웅장했던 옛가람의 모습만 더듬을 뿐이다. 하지만 영원사 인근 산 곳곳에 흩어져 남아 있는 고승들의 호를 딴 부도들은 이름 있는 스님들이 수도하였던 곳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오랜 세월을 지키고 서 있다. 또 영원사에서 남쪽으로 마주보이는 산중턱의 토굴에서 오랫동안 참선한 수도승 청매스님의 방광사리탑과 선문염송설화(禪門念頌說話) 30권을 기록했다는 구곡각운대사의 사리를 보존했다는 상무주암의 필단사리 3층 석탑 등도 지난날의 유서 깊은 영원사의 선풍(禪風)을 말해주고 있다. 출처:다음 백과사전 제공: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두류선원' 이라고 쓰여 있는 영원사
▲ 점심 공양을 위해 줄을 서야 한다.
▲ 감사한 마음으로 맛있게 식사를 했다.
▲ 영원사에 있는 이정표(중식 후 다시 산행 시작이다)
▲ 빗기재:왼쪽은 영원령 가는 길이고, 오른쪽 길은 상무주암으로 가는 길 (오른쪽으로 진행 한다)
▲ 지리산이 조망 된다. 좌측 끝이 천왕봉~!
▲ 상무주암으로 내려가는 길 바로 전에 왼쪽으로 삼정산 가는 길이 있다.삼정산 정상 까지 약 10정도 소요 된다.
▲ 삼정산 인증(이후론 컨디션이 회복 되어 즐거운 산행이 되었다.)
▲ 삼정산 정상에서 지리산이 조망된다. 삼정산 정상에서 약수암으로 진행 해도 되나 암자 순례를 위해 다시 내려 간다.
▲ 상무주암: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지리산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약간의 수행승들과 함께 창건하고 일체의 바깥 인연을 끊고 내관(內觀)에만 힘썼다. 이 때 보조국사는 『대혜보각선사어록(大慧普覺禪師語錄)』 가운데 “선이란 고요한 곳에도 있지 않고 또한 시끄러운 곳에도 있지 않고 사량분별(思量分別)하는 그 어느 곳에도 있지 않다.”고 하는 글귀를 읽고 크게 깨달았다고 한다. 그 뒤 1200년에 조계산 송광사로 옮겨 수선사(修禪寺)를 만들었다.보조국사의 대오 이후 이 절은 성지화 되어 많은 승려들의 수행처가 되었으나 역사는 뚜렷이 전하지 않는다. 현존하는 당우는 인법당(因法堂)만이 있으며, 절 왼편에는 작고 불완전한 삼층석탑 1기가 있다. 이 탑은 고려 말의 고승인 각운(覺雲)의 필단사리탑(筆端舍利塔)이다. 각운이 『선문염송설화(禪門拈頌說話)』30권의 저술을 완료하였을 때 붓통 속에 떨어졌다는 사리를 봉안한 탑으로서 서광을 발하였다고 한다. 출처:다음 백과사전 제공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화 중앙 연구원
▲ 상무주암에서는 떡과 과일, 식사를 제공 하고 있었는데 점심 식사는 먹어서 떡과 과일로 요기 했다. 사진 촬영 금지라는 푯말을 무시하고 사진을 찍다 여러 명이 혼나기도 했다. 상무주(上無住)란 부처님도 발을 붙이지 못하는 경계(上)이고, 머무름이 없는 자리(無住)라는 뜻이라고 한다.
▲ 문수암
▲ 문수암 천인굴: 임진왜란때 1천명의 주민이 난을 피했다고 하여 '천인굴'이란 이름이 붙여진 동굴이라고 하는데 무슨 1천명 ? 20명도 많을 것 같다.
▲ 14명도 북적 거린다. ㅎ
▲ 삼불사에서는 차를 제공 하고 있었다.
▲ 약수암
▲ 실상사: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에 있는 절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828년(흥덕왕 3)에 홍척(洪陟)이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실상산문(實相山門)을 개산(開山)하면서 창건하였다. 홍척은 도의(道義, 道儀)와 함께 당나라에 들어가 선법(禪法)을 깨우친 뒤 귀국하였다. 그 후 도의는 장흥 가지산에 들어가서 보림사(寶林寺)를 세웠고, 홍척은 이 절을 세운 뒤 선종(禪宗)을 전파하였는데, 풍수지리설에 의거하여 볼 때 이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간다고 하여 이 절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그 뒤 2대조 수철(秀澈)을 거쳐 3대조 편운(片雲)에 이르러서 절을 크게 중창하고 선풍을 더욱 떨치게 되었다. 그러나 1468년(세조 14)에 화재로 모두 불타버린 후 200년 동안 폐허로 남아 있었고, 승려들은 백장암(百丈庵)에 기거하면서 그 명맥을 이어왔다. 그 뒤 1679년(숙종 5)에 벽암(碧巖)이 삼창(三創)하였고, 1684년 계오(戒悟)가 현재의 극락전(極樂殿)인 부도전(浮屠殿)을 지었다. 1690년에 침허(枕虛)를 중심으로 300여 명의 수도승들이 조정에 절의 중창을 상소하여 1700년(숙종 26)에 36동의 건물을 세웠다. 또한 1821년에는 의암(義巖)이 다시 중건하였으나 1882년(고종 19)함양 출신 양재묵(楊載默)과 산청 출신 민동혁(閔東赫)에 의해 사찰건물들이 불타 없어지는 수난을 겪었으며, 1884년에 월송(月松) 등이 중건하였다. 1903년(광무 7) 익준(益俊)이 승당을 지었으며, 1932년 칠성각을 세웠다. 특히 불상에는 보화(寶貨)가 많이 들어 있다 하여 일찍이 도굴꾼들에 의해 훼손된 적이 있었다. 그 불상의 복장(腹藏)에는 효령대군(孝寧大君)의 원문(願文)과 사경(寫經) 및 인경(印經)이 수백 권이나 들어 있었고, 고려판 화엄경소(高麗板華嚴經疏)등 보기 드문 서적도 몇 가지 있었다고 한다. 그 중 일부는 도난당하였고, 나머지는 건물과 함께 불타 버렸다고 한다. 1986년 요사로 사용 중인 선리수도원(禪理修道院)을 건립하였고, 1989년 천왕문을 세웠다. 1991년 범종각을 짓고, 1996년 화엄학림(華嚴學林) 강당과 학사를 건립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현존하는 당우로는 보광전(普光殿)을 비롯하여 약사전·명부전·칠성각·선리수도원·누각·천왕문·화엄학림강당과 학사,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극락전과 부속 건물이 있다. 당우 가운데 보광전 안에는 조선시대에 조성된 비로자나불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베트남에서 이운해 왔다는 종이로 만든 보살입상이 있고, 범종이 걸려 있다. 종은 1694년(숙종 20)에 만든 것으로 종을 치는 자리에 일본의 지도 비슷한 무늬가 있다. 이것을 치면 일본이 망한다는 소문이 떠돌아서 일제 말기에는 주지가 문초를 당하기도 하였다. 이 절에 소장된 중요문화재로는 백장암삼층석탑(국보 제10호)을 비롯하여, 실상사수철화상능가보월탑(實相寺秀澈和尙楞伽寶月塔, 보물 제33호), 실상사수철화상능가보월탑비(보물 제34호), 실상사석등(보물 제35호), 실상사부도(보물 제36호), 실상사삼층석탑(보물 제37호) 2기가 있다. 그리고 실상사증각대사응료탑(實相寺證覺大師凝寥塔, 보물 제38호), 실상사증각대사응료탑비(보물 제39호), 백장암석등(보물 제40호), 실상사철제여래좌상(보물 제41호), 백장암청동은입사향로(百丈庵靑銅銀入絲香爐, 보물 제420호), 실상사약수암목조탱화(實相寺藥水庵木彫幀畵, 보물 제421호) 등이 있다. 또한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5호로 지정된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서 1832년에 의암이 중건하면서 부도전에서 극락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내부에는 지불(紙佛)인 아미타여래좌상과 1985년에 조성한 아미타후불탱이 봉안되어 있다. 이 중 실상사삼층석탑은 상륜부가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걸작품으로 불국사 석가탑의 상륜부를 복원할 때 이 탑을 본떠 복원하기도 하였다. 1980년 2월 2일 도굴꾼에 의하여 크게 파손된 것을 문화재관리국의 기술진들이 원형대로 복원하였다. 또한 약사전에 봉안되어 있는 철제여래좌상(보물 제41호)은 수철이 4,000근의 철을 들여 주조한 통일신라시대의 걸작품이다. 이 불상은 현재 지리산 최고봉인 천황봉과 일직선상에 있는데, 우리나라의 정기를 일본으로 보내지 않겠다는 호국적 이념에서 이곳에 안치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절에는 실상사위전개량성책(實相寺位田改量成冊,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88호)이 있으며, 절 입구에는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 중요민속자료 제15호)을 비롯한 석장승들이 남아 있어 장승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절 일원이 사적 제309호로 지정되어 있다. 실상사는 1998년에 문을 연 귀농학교로도 유명하다. 당시 주지스님이었던 도법스님이 만든 학교로서 1997년 우리나라에 IMF로 인해 실직자가 된 사람들 가운데 농촌으로 돌아와 정착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였다. 이곳에서는 모든 작물을 유기농으로 재배하는 등 생태환경운동의 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현재 인드라망생명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지리산 실상사를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출처:다음 백과사전 제공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화 중앙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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