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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 산행기

광교산, 백운산 종주

 

□ 광교산, 백운산 종주

광교저수지→형제봉→종루봉→광교산→백운산→광교 헬기장→고속도로 절개지→광교저수지

◇ 산행지 : 경기 수원시 장안구 광교동, 용인시 수지면 일원

◇ 산행일자 : 2013. 6. 25(화). 날씨 : 흐림

◇ 산악회 : 승용차 이용 홀로 산행 

◇ 산행거리 : 약 17 km 

◇ 산행시간 : 5시간 20분 소요 <중식 20분 포함>

◇ 시간대별 요약

- 11:30 광교 저수지 입구 (반딧불이화장실) 산행 시작

- 12:31 형제봉

- 13:09 종루봉(시루봉)

- 13:14 토끼재

- 13:35 광교산 (10분 휴식) 

- 13:51 노루목 대피소

- 14:03 억새밭

- 14:13 백운산 갈림길

- 14:20 백운산 (점심 20분)

- 15:00 헬기장

- 15:25 광교 헬기장 (지지대 갈림길)

- 16:22 고속도로 절개지 아래

- 16:50 광교 저수지 입구 산행 마침

 

특기사항

① 광교산 원점종주

② 홀로 산행

③ 이정표 잘 되어 있음(산행 지도 없이 산행 가능)

 

산행 전 사전 조사

<광교산(光敎山) 유래>:수원시 북쪽에 있는 해발 582m의 산이다. 한남 금북 정맥(漢南錦北正脈)의 주봉으로서 수원을 비롯한, 성남, 용인, 의왕시 등에 그 산자락이 걸쳐있다. 최고봉인 시루봉을 중심으로 북서쪽에는 백운산(564.2m), 남쪽으로는 형제봉(448m)이 위치하고 있다. 이 산은 풍수 지리학상으로 수원의 진산(鎭山)에 해당한다고 하는데,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도 수원의 진산이 광교산으로 표시되어 있다. 본국산경(本國山徑)에서는 ‘광교산이 광주 서남 오십리에 있고, 수원 동북 30리에 있다.’ 고 하였다. 이는 옛 수원 읍치를 중심으로 계산한 것이다. 현재 수원시 영역 내에서는 이의동, 상광교동, 하광교동 등에 걸쳐 광교산이 자리하고 있다. 하광교 소류지와 광교 저수지를 포함하고 있는 이 산은 수원권에 남아있는 유일한 청정 지역으로, 지난 1971년 상수도 보호 구역으로 지정 되었으며 약 6개 정도의 등산로가 있다.

이 산의 이름은 ‘광교산’, '광악산(光岳山), ‘광옥산(光獄山)’ 등으로 불리어졌다. 고려 야사(高麗夜事)에 의하면, 광교산의 원래 이름은 광옥산인데,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해 광교산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서기 928년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을 정벌하고 돌아가는 길에 광옥산 행궁에서 머물면서 군사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있었는데, 이 산에서 광채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이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주는 산이라 하여 산 이름을 친히 ‘광교(光敎)’라고 하였다 것이다. 1987년 경기도에서 발간한 「지명유래집(地名由來集)」에는, ‘아주 먼 옛날 수도를 많이 한 도사가 이 산에 머무르면서 제자들을 올바르게 가르쳐서 후세에 빛이 되었다고 해서 광교산이라 하였다.’고 나와 있다.

광교산은 수원 근교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날씨가 좋은 날 광교산 정상에 오르면, 동쪽으로 멀리 여주·이천, 서쪽으로는 경기만의 서해5도, 그리고 남쪽으로는 용인·평택·안성, 북으로는 서울의 북한산이 시야에 들어온다고 한다. 또한 사시사철 상림이 울창하여, 옛날에는 인근의 5개 부읍 주민들이 땔나무 걱정 없이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냉이, 씀바귀, 두릅, 취, 더덕, 고사리, 도라지, 머루, 다래, 버섯, 대추, 감, 약초 등 임산물이 늘 풍부하며, 꿩, 토끼와 같은 짐승도 야생하고 있다.수원의 아름다운 경치 8군데를 모아 놓은 수원 팔경 중의 ‘광교적설(匡嬌積雪)’은, 한겨울 눈에덮힌 광교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말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른 봄 최정상인 시루봉에 내리는 눈과 겨울 동안 쌓인 잔설 역시 손꼽을 만한 비경으로 꼽힌다.

광교산은 수원 하천의 근원이 되는 곳이기도 한다. 이곳에서 사계절 내내 흘러내리는 물은 관어동 폭포가 있는 계곡을 타고 동서남북으로 흘러가서, 수원, 용인, 안양, 화성 등의 거의 모든 하천을 이룬다, 동으로는 동막천, 풍덕천을 이루어 흘러가다가 숯내[탄천(炭川)]에 합류하면서 남한강으로 흘러가고, 서쪽으로는 미륵골과 알림으로 흘러 만석거(萬石倨), 서호(西湖)등에 머물다가 장지천으로 해서 오목천과 합류한다. 남쪽으로 흐르는 물은 광교 저수지에서 머물다가 화홍문을 거쳐 수원을 관통하는 수원천이 되고, 남서쪽 계곡에서 비롯된 물줄기는 이의동 산의실을 지나 원천리천을 이른다, 그리고 북쪽으로는 고천으로 해서 안양천에 합류한다.

1899년에 나온 『수원군읍지』를 보면, ‘광교산은 북으로 10리 거리 북부에 있으며, 기우제를 지내는 곳이 있고 고적이 많이 있다’고 나와 있는데, 현제까지도 많은 고적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다. 우선 꼽을 수 있는 것이, 일명 ‘우성위보(偶性尉洑)’, ‘우성위평(偶性位坪)’, 우평(偶坪)‘이라 불리는 지역이다. 백제왕 온조(瘟俎)가 지금의 광주 산성(廣州山城)지역인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에 도읍하고 사위 우성위(偶性位)와 딸을 보내어 이 곳에 살게 하였는데, 우성위가 계곡에서 흐르는 물을 막아 도랑을 만들고 보를 막은 것이라고 한다. 온조왕은 딸과 사위를 보기위해서 이곳에 가끔 찾아 왔는데, 이 때문에 온조왕을 위한 행진(行陣)을 지었으며, 왕이 먹는 우물인 ’정자산 고정(亭寺山故情)‘도 만들었다고 정한다. 또한 광교산에는 또 ‘종대봉(鐘臺俸)’과 문암(文岩)‘이라 불리는 바위가 있는데, 여기에는 신라 말기의 학자 최치원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한다. 최치원은 광교산 꼭대기에 종을 매달아 놓은 종루가 있는 곳에 올라 사방을 조망하곤 하였는데, 이 산봉우리를 종대봉이라 불렀고, 행전 동문 밖에 있던 바위 세 곳을 즐겨 찾으며, 그 바위 이름을 문암이라고 지어 불렀다고 전한다. 광교산에는 창성사(彰聖寺)를 비롯한 89암자가 고려 시대에 있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현재 그 자취는 찾을 수 없지만, 몇 군대의 절터와 기왓장이 출토되어 불령과 호국의 열이 어려있는 산이라는 전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광교산에 전하는 고적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는, 김준룡 장군(金俊龍 將軍)의 전승지(戰勝地) 및 전승비(戰勝碑)가 있다. 나만갑의 병자록(丙子錄)을 보면, ‘전라병사 김준룡은 빠르고 용감한 군사를 뽑아서 방진(方陣)을 쳐 사면에서 밖을 향해 공격케 하고 양식은 진 가운데 두는 방법으로, 적과 맞서 싸울 계책을 세웠는데, 그가 광교산에 웅거하자 남한산성과 거리가 30리 정도 밖에 안 되었다. 적이 날마다 공격해 왔지만, 그때마다 적을 수없이 죽이고 적의 명장(名將)도 죽였는데, 그 적장은 청 태종 한(汗)의 매부였다’고 나와 있다.실제로 김준룡 장군은 호남병마절도사 재위시, 병자호란이 일어나 인조가 남한산성에 포위되어 갇히게 되자, 근왕병(勤王兵)을 이끌고 10여일만에 광교산에 이르러 진을 치고, 청군을 맞아 격전을 벌인 끝에 청 태종의 사위 양길리[(樣吉利) : 백양고라(白羊高羅)라고도 한다]를 포함한 3명의 적장을 사살하고, 그 기세를 타고 적의 유격 기병대를 격파하여, 적의 목을 벤 것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청군은 광교산 계곡 곳곳에 쌓인 동료들의 시체를 태우며 처절한 곡성을 터뜨리기까지 했으니,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호항곡’이라는 지명이 이에서 연유된 것이다. 이러한 김준룡 장군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자연 암벽에 ‘충암공 김준룡 전승지(忠襄公金俊龍戰勝地)’ 라 음각한 것이 바로 전승비이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 전승비의 각자(刻字)는 채제공(蔡濟恭)의 명령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한다. 즉, 정조때 화성 축성에 필요한 석재를 광교산에 구하러 갔던 사람으로부터 이 사실을 전해들은 채제공이 위의 비문과 같이 전승지의 자연 암석에 명각(銘刻)토록 한 것이다.

 

광교산 등산 지도

 

 

 

산행 후기

광교산은 이미 세 번 정도 간 것 같다. 그래선지 1년 넘게 병점에 거주 하면서도 비교적 가까운 곳에 위치한 광교산에 한 번 가 봐야지 가 봐야지 하면서도 시간을 못 내다 마음을 다잡고 가보기로 했다. 병점에서 광교산 입구까지는 대중교통편이 좋지 않아 승용차를 이용해서 가야했기에 원점회귀 코스를 선답자의 산행기록을 통해 알아보니 광교저수지 옆 반딧불이화장실에서 출발하여 광교산과 백운산을 지난 후 광교 헬기장에서 광교저수지로 꺾으면 원점회귀가 가능 한 것을 알고 실행에 옮겨보기로 하고 광교저수지로 향했다.

반딧불이화장실에서 약 3분 오르니 편안한 능선이 시작된다. 이후 산길은 큰 어려움이 없고 형제봉을 오를 때 약간 힘이 들 뿐 대체적으로 편안한 느낌이었으나 다시 종루봉을 오르면서 힘겨움을 느끼지만 그 역시 큰 어려움은 없었다. 토끼재에서 광교산 정상인 시루봉 까지는 다시 오름이 지속되어 약간 힘겨움을 더 했지만 정상이 바로 앞이라는 생각에 숨을 가다듬고 오를 수 있었다. 정상에서는 과일도 먹고 인증 샷도 할 겸 잠시 머물다 출발했는데 구름이 많고 흐린 날씨 때문에 조망이 없어 약간 아쉬웠다. 백운산 정상에 가니 조망이 좋다. 가져온 김밥으로 점심을 하고 서둘러 지지대 고개 방향으로 갔는데 한남정맥을 하며 예전에 한 번 지나친 구간임에도 불구하고 기억이 없는 산길이었고 광교헬기장에 도착해서야 눈에 익은 곳이었다. 이후 광교헬기장에서 광교저수지로 가는 능선은 거의 산책로 수준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산길이 좋다. 고속도로가 가로 막고 있는 지점으로 내려서며 광교저수지 수변 산책로가 이어졌고 그 역시 산길은 편한 길이었다. 결국 원점 회귀하여 차량을 회수하였다. 

 

산행 사

 ▲ 광교 저수지 산행 기점

 ▲ 반딧불이화장실 우측 계단을 통해  산행 시작

 ▲ 반딧불이 화장실에서 3분 정도 오르면 경기대 갈림길로 본격적인 산행은 시작되며 산길은 편안한 산책길 같이 계속 이어진다. 

 

 ▲ 이정표가 잘 되어 있어 지도가 필요 없을 정도다.

 

 

 

 

 

 

 

 ▲ 형제봉 오르는 밧줄

 

 

 

 

 

 ▲ 비로봉 밑에 자리한 충양 김준룡 장군 전승지가 비석처럼 바위에 암각 되어 있다.

 ▲ 비로봉(종루봉)

 

 

 

▲ 광교산 표석과 삼각점

 

 ▲ 뒷면에는 광교산 표석이 한글로 암각 되어 있다.

 

 ▲ 노루목 대피소 (체육시설과 대피소 내에는 소량의 책이 비치 되어 있다)

 

 ▲ 억새밭이라고 하기엔 너무 적은 량의 억새

 

 

 

 

 

 

 

 ▲ 백운산 정상엔 팔각정과 전망대가 설치 되어 있다.

 ▲ 말도 안되는 의왕대간(?)~~! 의왕시는 만들어 내기도 잘한다.

 ▲ 지지대 방향으로 가는 중~!

 

▲ 통신대 헬기장  

 

 

 ▲ 광교산 헬기장( 한남정맥 길인 지지대 고개 갈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