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대간 2차 18구간 [대전 산사모 백두대간 3차 남진 산행 제 24회째 ]
저수령→문복대→벌재→폐백이재→황장재→황장산→작은차갓재→안생달리
◇ 산행지 : 충북 단양군 대강면. 경북 예천군 상리면. 문경시 동로면 일원
◇ 산행일자 : 2012. 3. 3 (토). 날씨 : 맑음 (따뜻한 편 이었음)
◇ 참가인원 : 대전시 산사모 회원 42 명
◇ 산행친구 : 기대
◇ 산행거리 : 14.14km(포항 셀파산악회 실측거리 기준, 접속거리 : 안생달~작은차갓재 1.2km제외)
<17구간> 저수령→6.06→벌재→4.56→황장재→0.92→황장산→2.6→차갓재
◇ 산행시간 : 산행시간 6시간 30분<점심 20분 포함> 후미 7시간 20분
◇ 시간대별 요약
- 05:15 대전 IC 출발
- 07:18 저수령 도착
- 07:23 저수령 산행 시작
- 08:21 문복대
- 08:36 들목재
- 09:30 벌재(후미 기다리며 휴식 12분)
- 09:42 벌재 출발
- 10:22 점심 (20분)
- 12:09 황장재
- 12:47 황장산
- 13:34 작은차갓재
- 13:45 폐광(와인바)
- 13:52 안생달마을 산행 마침
- 14:40 후미 도착
- 15:20 안생달 출발
- 17:30 대전 IC 도착
※ 특기사항
① 따뜻한 날씨
② 눈 많이 녹아 아이젠 착용 불편
③ 벌재 경방 기간으로 인해 우회함
④ 산행 후 안생달 마을 뒤풀이: 오리훈제, 라면
⑤ 대전 도착 친구 호프집 뒷풀이
※ 산행 전 사전 조사
<생달마을에 대한 재미있는 지명유래>
생달리(生達里)는 '산달' 또는 '산다리' 로 불리웠는데 '안산다리'와 '바깥산다리'가 있다.생달은 산과 달만 볼 수 있는 두메산골이라는 뜻으로 산(山)월(月), 산다리라는 마을 이름이 생겼고, 그 후 생달이라는 이름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마을 어귀에 다리가 있고 그 다리에서 사람이 떨어졌으나 죽지 않고 살았다 하여 산(生)다리라 해서 산다리라는 마을 이름이 되었다는 속설도 있으며, 한 마을 뒷산에 고불형(顧佛形)의 명당(名堂)이 있다는 풍수설(風水說)에서 안산다리 마을입구에 '고불목'이라는 자연부락이 위치하고 있다.
<안산다리 마을> 안산다리마을에는 백두대간 종주자들이 주로 찾는 민박집이 여러 곳 있다. 황장산 기슭 동로면 일대는 오미자로 유명하다. 생달1리에는 오미자청을 만들며 농·산촌을 체험할 수 있는 오미자체험마을도 있다. 면소재지에서 생달리간 도로변(적성리)에는 풍수설과 관련한 전설이 깃들어있는 말(馬)무덤이 수령 300년 된 큰 소나무와 어우러져 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에서 귀화한 두사충이 조선의 팔대 명당 중 하나라고 전하는 명당을 적성리에서 발견,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정탁의 머슴에게 일러주어 나중에 정탁의 아들이 찾아나섰는데 타고온 말이 갑자기 뒷발질을 해 머슴이 즉사하자 화가 나 말의 목을 베어 묻었다는 곳이다. 산악인들이 간단하게 술 한 잔 하며 황장산 산행을 결산하는 장소로 많이 애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시내 쪽으로 차로 10분쯤 가면 경천호가 나오고 이어 도로변에 황희 정승 후손들이 500년을 빚어온 명주 ‘호산춘’ 제조장(산북면 대하리, 054-552-7036)이 나온다. 호산춘은 장수 황씨 사정공파 종택에서 전승돼온 솔향 그윽한 가양주로 이곳에서만 구할 수 있다.(출처:산림청)
※ 산행 지도및 고도표
※ 산행 후기
5주 연속 대간 산행이다. 한 번 빠진 구간 때문에 7주 연속 대간 산행을 해야 하니 큰 어려움은 없다. 다만 지난주는 겨우 세 시간 산행을 했고 양촌 사무실의 복잡한 일 때문에 딱 한 번 계족산에 갔으니 산행에 대해 조금 걱정은 되지만 산행 시간이 6시간 예상으로 워낙 짧으니 체력적으로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 했다.
“친구에게 날씨도 따뜻하고 구간도 짧으니 각자 도시락을 준비하자”고 했더니 “그냥 김밥에 컵라면으로 해결 하자”고 한다. “아침은 각자 해결 하던지 아님 산악회에서 제공하는 김밥을 먹자”고 했는데 나는 4시에 일어나 아침 식사를 하고 친구를 만나 원두막으로 갔다. 버스에 올라 산행지 설명을 듣고 눈을 감았는데 잠은 오지 않는데 너무 피곤하다. 일반적으로 무박이 있는 날이면 금요일에 낮잠으로 피로를 풀었는데 사무실 일을 해결 하려고 한 주 동안 시달렸더니 저수령 도착 할 즈음에는 눈이 떠지지 않을 정도로 만사가 귀찮아서 산행 준비도 하지 않고 버스에서 내렸다.
오랜만에 밝은 시간에 산행 시작을 할 수 있으니 단체 사진도 찍고 산행을 시작 했다. 눈이 없을 것으로 예상 하고 스패츠는 착용 하지도 않고 스틱만 펴고 산행을 시작 했는데 두 번 넘어지고 나서야 불편해도 아이젠을 착용 했다. 장구재에 도착하니 1차대간 때의 일이 생각난다. 당시 나는 희한한 경험을 했었다. 그때 대자연 산악회를 따라 가며 산악회에 미리 양해를 구하고 나 혼자서 산행을 했었다. 다른 사람들은 하늘재에서 산행을 시작 하여 벌재까지 산행을 했고, 나는 저수령에서 역으로 안생달 마을 까지 보충 산행을 해야 했기에 혼자 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 무박 산행을 왔었는데 저수령에서 산행을 시작하고 한참을 가다보니 다시 저수령에 도착해 옛날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었다. “산속을 밤 세워 열심히 걸었는데 아침에 보니 제자리더라”라는 식의 옛날이야기처럼 저수령에서 산행을 시작해 저수령에 왔으니 그런 느낌이었다. 이번엔 날이 밝은 상태의 산행을 하다 보니 그 지점은 장구재에서 우측으로 돌아서 내려갔기에 그랬던 거 같다.
장구재 이후 문복대까지는 특별함이 없고 꾸준한 오름이다. 인증 사진 한 장 남기고 서둘러 벌재로 향했는데 페이스가 좋지 않다. 당뇨 환자인 나는 당 조절을 잘 해야 하는데 아침을 먹은 지 오래됐는데도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니 상태가 안 좋아 졌나 보다. 친구는 산행 직전 김밥을 먹었다고 하니 나와 식사 때가 맞지 않아 벌재에 가면 간식이라도 챙겨 먹자고 했는데 벌재에 도착 할 즈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분명 벌재에서 단속 공무원에게 붙들려 있다고 생각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앞서간 이들 모두가 모여 있다. “후미를 기다려 전원이 벌재에서 약간 우회하여 통과하고 차갓재에서도 모두 모여 하산 한다”는 회장님의 말씀을 듣고 간식을 챙겨 먹고 후미를 기다렸다.
벌재에서 약간 우회 하여 헬기장에 올라 선 이후 점심 식사를 했다. 어차피 모여서 하산 한다니 여유를 가지고 산행하기로 했는데 점심 식사를 하고서도 컨디션은 좋지 않아 황장산에 오를 때 까지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황장산 이후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밧줄을 잡고 내려가야 하는 구간에서 인원이 몰려 한참을 기다린 것 외에는 그 이후 빠른 걸음으로 하산 할 수 있었다.
작은 차갓재에 도착하니 안생달로 하산을 유도한 표식이 보인다. 당초 계획은 차갓재까지 진행하기로 했었는데 다음 구간을 하늘재에서 시작하여 작은차갓재로 끊을 모양이다. 안생달 마을에 도착하니 선두는 모여서 오리훈제를 굽고 있다. 씻고 옷을 갈아 입고 쏘맥을 마셨다. 그것으로 유난히 힘들었던 산행도 끝이다.
※ 산행 사진
▲ 저수령 도착
▲ 저수령(低首嶺) : 경북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와 충북 단양군 대강면 올산리를 경계로 한 도계(道界)로 옛부터 저수령(해발 850m)이라고 불렸다. 지금의 도로를 개설하기 전에는 험한 산속 오솔길로 경사가 급하며 지나다니는 길손들이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는 설과 저수령에서 은풍곡까지 피난길로 많이 이용되었는데 이 고개를 넘는 외적들은 모두 목이 잘려 죽었다는 전설이 있다.
▲ 저수령 단체 사진(광명님 사진에서)
▲ 저수령 산행시작
▲ 저수령에서 산행 시작 하자 마자 나오는 해맞이 제단석
▲ 해맞이 제단석에서 해를 보며
▲ 저수령에서 봉우리를 하나 넘으면 나타나는 장구재(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 가면 저수령이 나온다) 옛날 방곡리나 명전리에서 저수령을 거쳐 경상도 예천으로 넘어가는 중요한 고개였다. 지금은 승용차 통행이 불가능한 오솔길 정도로 남아있다. 장구재에 대한 유래는 여러 곳을 찾아 보아도 알 수 가 없다. 이곳에서 아이젠을 착용 했는데 내 모습이 있어서 산사모에서 퍼옴.
▲ 문복대(門福臺,1074m)는 경북 문경시와 예천군, 충북 단양군의 경계지점에 위치한 저수재와 벌재사이에 있는 백두대간상의 산으로 백두대간이 죽령, 도솔봉, 향적봉, 저수령을 지나 문경시로 들어오면서 처음으로 큰 산을 이뤘는데 이 산이 바로 문복대다. 백두대간 산줄기가 소백산을 거쳐 예천군을 지나 문경 땅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지켜 서서 복(福)을 불러오는 문(門)과 같은 첫 산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운봉산이라고도 불리는 문복대는 한줄기가 북으로 뻗어 수리봉·신선봉과 도락산을 두고 있다. 정상 표지석은 2001년 가을 문경의 산들모임산악회에서 이곳에 세워 지나는 산행객들에게 길잡이가 되도록 했다.
▲ 문복대에서 바라 본 천주산(중앙)과 공덕산(우측)
▲ 들목재: 돌목재라고도 하는데 그 유래는 알 수 없다
▲ 벌재 표지석에 있는 곳에 선두 팀이 모여 있다
▲ 벌재로 가려면 이곳에서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단속원이 있어 좌측으로 내려가 벌재를 우회 했다.
▲ 벌재:라는 이름은 붉은재에서 왔다고 한다. 벌재의 남쪽마을이 문경시동로면인데 이 이름 에서 고개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적성리의 적 자가 붉은적“ 赤”이어서 고개이름이 ‘붉은재‘ 가 된것을 이고장말로 벌재라고 했다는 것이다.
▲ 벌재에 모두 모여 있다 후미를 기다려 한꺼번에 우회 했다
▲ 백두대간을 약간 벗어 나서 우회 하는 중
▲ 벌재에서 오르면 나오는 헬기장
▲ 천주산(좌측)과 공덕산(중앙)
▲ 좌측 황장산
▲ 황장재
▲ 황장산: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한 1/25,000지도에 황정산(黃庭山)으로 표기되어 있고, 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에는 작성산(鵲城山)으로 표기되어 있고 문경 군지(1982년)에는 황장봉산(黃腸封山)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정확한 이름은 황장산이라 부르는 것이 옳다.그것은 황장목이 많고 1925년 조선총독부 임시 토지조사국에서 발행한 『조선의 산악 명칭과 소재 높이』에 황장산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현존하는 노인들이 황장산이라고 부르고있다. 작성(鵲城)과 봉산(封山) 표석이 있는 산이며, 울창한 계곡과 암릉에 많은 등산객이 찾고 있다. 황장산의 이름은 황장목이 많은 데서 유래했다. 황장목은 왕실에서 대궐이나 임금의 관, 배 등을 만드는 데 쓰는 최고 품질의 소나무를 말한다. 송진이 꽉 차 속살은 누렇고, 목질이 단단하고 결도 곱다. 조선 숙종 때(1680년)는 나무 보호를 위해 벌목과 개간을 금지하는 봉산(封山)으로 정하고 관리를 파견, 감시했다. 당시 세워진 봉산 표석(지방문화재 제227호)이 명전리에 남아 있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과도한 벌채 등으로 황장목이 없다.
▲ 황장산 정상을 지나 차갓재 가는 길에 만난 밧줄 구간을 지나면 육산으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지체 되어 시간 많이 소요 됨)
▲ 작은 차갓재
▲ 폐광을 와인바로 개조 중이다.
▲생달리(生達里)는 '산달' 또는 '산다리' 로 불리웠는데 '안산다리'와 '바깥산다리'가 있다.생달은 산과 달만 볼 수 있는 두메산골이라는 뜻으로 산(山)월(月), 산다리라는 마을 이름이 생겼고, 그 후 생달이라는 이름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마을 어귀에 다리가 있고 그 다리에서 사람이 떨어졌으나 죽지 않고 살았다 하여 산(生)다리라 해서 산다리라는 마을 이름이 되었다는 속설도 있으며, 한 마을 뒷산에 고불형(顧佛形)의 명당(名堂)이 있다는 풍수설(風水說)에서 안산다리 마을입구에 '고불목'이라는 자연부락이 위치하고 있다.
▲ 산행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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