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대간 2차 17구간 [대전 산사모 백두대간 3차 남진 산행 제 23회째 ]
죽령→도솔봉→묘적봉→솔봉→흙목→싸리재→배재→시루봉→투구봉→촛대봉→저수령
◇ 산행지 : 충북 단양군 대강면. 경북 예천군, 영주시 일원
◇ 산행일자 : 2012. 2. 18 (토). 날씨 : 맑음 (강한 찬바람으로 올 겨울 산행 중 가장 추웠음)
◇ 참가인원 : 대전시 산사모 회원 38 명
◇ 산행친구 : 기대
◇ 산행거리 : 20.18km(포항 셀파산악회 실측거리 기준, 국립공원 이정표는 19.5km)
<17 구간> 죽령→5.8→도솔봉→1.7→묘적봉→1.05→묘적령→4.05→뱀재→2.6→싸리재→1.0→배재→3.98→저수령
◇ 산행시간 : 산행시간 9시간 10분<점심 15분 포함> - 선두 8시간 10분, 후미 11시간
◇ 시간대별 요약
- 03:20 대전 IC 출발
- 05:43 죽령 도착
- 05:45 죽령 산행 시작
- 08:24 도솔봉
- 09:11 묘적봉
- 09:39 묘적령
- 10:36 솔봉
- 10:51 점심 (15분)
- 11:20 헬기장
- 12:05 흙목 정상
- 12:33 싸리재
- 12:55 유두봉
- 13:03 배재 (야목 갈림길)
- 14:00 시루봉
- 14:21 투구봉
- 14:31 촛대봉
- 14:52 저수령 산행 마침
- 16:25 후미 산행 마침(현우)
- 16:45 알바 최후미 도착 (11시간 산행)
- 17:03 저수령 출발
- 19:20 대전 IC 도착
※ 특기사항
① 올 겨울 가장 추운 날씨 산행(강한 찬바람으로 너무 추웠음)
② 러셀 대체적으로 잘 되어 있었으나 북사면 눈 많음
③ 당초 계획 죽령~저수령~벌재에서 산행 속도 저하로 인해 저수령 산행 마침
④ 저수령 모닥불
⑤ 산행 후 저수령 뒤풀이(오리훈제),생라면 구이
※ 산행 전 사전 조사
<단양(丹陽) 지역명의 유래> 단양(丹陽)은 연단조양(鍊丹調陽)의 가취(佳趣)에서 시작되었으며 -『연단조양』의 연단은 신선이 먹는 환약을 뜻하며 - 조양은 빛이 골고루 따뜻하게 비춘다는 의미로 신선이 다스리는 살기좋은 고장이란 뜻으로 풀이되고 있음
[단양군]은 소백산맥(소백산)을 끼고 충청북도 북부, 동단부에 자리하는 군, 북쪽으로 강원도 영월군, 동쪽으로 경상북도 풍기읍, 남쪽으로 경상북도 예천군과 문경시,서쪽으로 제천시와 경계하고 있으며. 면적 780.1㎢ 인구 38,797명 군청 소재지는 단양읍 별곡리 이다.
<풍기읍 지명 유래> 신라시대에는 칭호가 미상이나 혹은 기목진(基木鎭)이라 하였다 하며 고려 때에는 기주라 칭하였다. 1018년 현종9(顯宗9)에 길주에 예속시켰다가 1172년 명종2(明宗2)에 감무(監務)를 두고 안동부 속현이 되었다. 그리고 1390년 공양왕2 (恭讓王2)에 은풍현이 편입되었고. 조선시대 1413년 태종13(太宗 13)에 기천(基川)이라 개칭하고 별호를 영정(永定) 또는 안정 순화소정이라 하며 현감을 두고 은풍의 고적아현(古蹟牙縣)을 소관하였다. 그후 문종왕의 태(胎)를 은풍 명봉산에 매안(埋安)함에 따라은풍의 풍(豊)자와 기천의 기(基)자를 따서 풍기(豊基)라 하고 현을 군으로 승격시켜 군수를 두었다. 은풍현은 신라 때 적아현이었는데 경덕왕 예천군의 속현이 되었다.고려초에 은풍으로 개칭하였고 현종때 안동에 예속되었다가 공양왕때 별호를 은산이라하여 래속하였다. 1457년 세조3(世祖3)에 단종복위운동의 진원지인 순흥이 폐부되어 그 일부가 풍기 관할이 되었다가 1683년 숙종9(肅宗9)에 순흥이 부로 복원됨으로 풍기에 귀속 되었던 일부 지역은 순흥으로 복귀 되었다.
※ 산행 후기
2주 연속 대간 산행을 해서 체력적으로는 자신이 있는데 문제는 추운 날씨와 대간 거리다. 2주 연속 눈이 많은 곳에서 산행을 하다 보니 눈으로 인해 산행 속도가 늦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산악회에서 목표를 벌재 까지 잡아 놓았으니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하지만 단체산행은 어쩔수 없는 일~! 산악회를 무조건 따라야 한다.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점심은 전과 동일하게 김밥과 컵라면으로 해결 하기로 하고 과음으로 인해 누적된 피로를 풀기 위해 낮잠을 자니 몸 상태가 좋아진 느낌을 받았다.
저녁식사를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은 오지 않는다. 뒤척이다 알람 소리에 눈을 뜨니 억지로 잠을 잔 느낌으로 개운하지 않다. 얼른 옷을 입고 집을 나서니 친구가 기다리고 있다. 김밥을 사고 원두막에 가니 천안의 박 선배가 "이번 거리가 너무 멀다"고 한다. 내가 생각해도 "눈이 많은 것과 추운 날씨를 감안해서 저수령에서 끊어야 한다"고 말을 주고 받았다.
버스에 오르니 회장님이 "오늘 산행은 벌재까지 간다"는 내용을 말씀 하시며 "2시를 넘어서 저수령을 통과 할 경우 벌재로 진행 하지 말라"고 한다. 지난 2주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름대로는 휴계소에 도착하면 그곳에서 스패츠를 먼저 착용 하고 아이젠은 내려서 착용 할 계획을 세웠는데 버스에 오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오창 휴계소에 도착한다. 스패츠를 착용하고 기타 산행 준비 사항을 챙긴 후 김밥 한 줄을 먹은 후 눈을 감았는데 생각 보다 빨리 죽령에 도착 했다. 모두들 산행 준비로 바쁜데 영선조는 이미 출발이다. 하지만 출발 부터 엉뚱한 곳을 다녀 온 후 산행을 다시 시작한다.
초입에 들어서자 현수막이 눈에 뛴다. 2월16일 부터 4월 30일까지 경방기간으로 출입금지를 안내 하는 내용이다. "산엔 온통 눈인데 경방 기간을 너무 일찍 잡은 것은 아닌지", 국립공원 관리공단의 탁상 행정에 기분이 좋지 않다. 현수막이 걸려 있다고 산행을 하지 않을 우리도 아니지만 암튼 출입금지를 알리는 현수막을 보니 기분은 좋지 않았다.
산행을 시작하자 마자 예상한 것과 같이 눈이 많다. 바람도 매섭고 긴 오르막이다. 다행인 것은 지난 2주의 대간 산행이 도움이 된 것인지 생각 보다 수월한 진행이다. 문제는 너무 춥다. 동트기 전이 가장 춥다 했는데 마스크를 내려 숨을 쉬자니 춥고 마스크를 올리고 긴 오름을 하려니 숨이 막힌다. 암튼 도솔봉을 가기 전 긴 오름에서 비교적 수월하게 올랐다. 삼형제봉 가기전에는 오랜만에 일출도 보았다. 아쉬운것은 나무가지 때문에 시야가 탁 트인 공간에서 보지 못함이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오랜만의 일출이라 추운 날씨에 대한 보상이라 생각 했다.
해가 뜨면 덜 추울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 갔다. 이렇게 혹독한 날씨도 처음이라는 생각이다. 2주 전 소백산에서의 칼바람은 잠깐 뿐이었는데 강한 찬바람이 체감 온도를 더욱 낮춰 엄청나게 춥다. 내 배낭의 물은 그나마 얼지는 않았는데 나중에 친구 배낭 속의 물은 얼었다니 얼마나 추운 날이었는지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다.
추워서 지도 꺼내 보는 일도 귀찮아서 삼형제봉은 어딘지도 모르고 지나쳤고, 도솔봉에서 유일한 증명 사진을 남겼는데 이후 산이름을 가춘 곳도 없이 봉만 있었지만 친구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 하기 어려울 정도로 추운 날씨는 계속 됬다. 심지어 점심을 먹을 때는 컵라면의 물이 중간에 미지근 했으니 날씨가 얼마나 추웠는지 ㅋㅋ 친구랑 둘이 대화 하면서 "따뜻한 방에 누워 있을 것이지 이게 뭔 개 고생이냐"며 목표산행의 어려움을 이야기 했다.
도솔봉에 오르니 날씨는 춥지만 조망이 좋다. 지난 구간의 소백산 천문대는 물론 비로봉도 조망된다. 이후 진행은 특별함이 없다. 묘적령을 지나 솔봉을 지난 후 점심 식사를 했다. 김밥도 차갑고 컵라면 물도 바로 식어서 어려운 가운데 식사를 마치고, "제발 선두에서 저수령에서 산행을 마쳐주길 기대 했다." "저수령에서 2시가 넘으면 산행을 중지 하라" 했는데 시루봉에 도착 하니 이미 2시다. 친구가 "오늘은 내 컨디션이 다른 때에 비해 좋다"고 했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산행 속도가 늦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진행이 더딘 것은 눈 산행 때문이다. 눈 산행은 평소 보다 최소 한 시간 이상 길어지는 것이 당연한데 무리한 목표를 잡은 것이란 판단 밖에 서지 않았다. 투구봉에 다다를 즈음 마주 오는 산행 팀이 있어서 선두에 대해 물어보니 선두는 아직 저수령에 도착 하지 않았나 보다. 투구봉을 지나 촛대봉에 도착해서 저수령 쪽을 보니 우리 버스가 보인다. 그제사 선두가 저수령에서 산행을 끝냈다는 확신이 서면서 이제 하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즐거움은 배가 된다.
저수령에 도착하니 영선조를 비롯해 약 14명 정도가 하산을 했다. 그정도면 오늘 상당히 컨디션이 좋았다는 것이 증명 된 셈이다. 얼른 옷을 갈아 입고 쏘맥으로 하산주를 했다. 날씨가 얼마나 추운지 돈민이 버너가 고장 나서 라면은 한번만 끓이고 포기 했다. 누군가 모닥불을 피웠는데 누가 와봐도 날씨가 너무 추우니 이해 했을 것이란 생각이다. 버스안이 추웠는데 모닥불에 라면도 구워 먹고 화력도 좋아서 후미를 기다리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길을 잘못 들어 가장 후미로 오신 분을 끝으로 산행은 모두 종료 되었고 대전으로 오는 길은 마신 쏘맥에 취해 깊은 잠속으로 빠져 들어 갔다.
※ 산행 사진
▲ 죽령 도착
▲ <죽령> 죽령은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과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경계의 소백산맥에 있는 고개로 높이 689m이고 도솔봉(兜率峰:1,314m)·연화봉(蓮花峰:1,394m)·국망봉(國望峰:1,421m) 등 높이 1,400m 내외의 높은 봉우리들이 이어져 있는 험한 지세 때문에 조선시대부터 조령과 더불어 영풍-단양 간의 주요교통로였다. 옛날 어느 도승이 짚고 가던 대지팡이를 꽂은 것이 살아났다 하여 죽령이라 했다 한다. 서쪽 사면은 충주호로 흘러드는 죽령천의 상류 하곡과 연결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아달라이사금 5년(158) 3월 죽죽이에 의하여 죽령 길이 개통되고 그의 이름을 따서 죽령이라 부르게 되었으니 연륜이 1800년이나 넘는다.
비교적 높고 험한 고개이므로 봇짐이나 등짐을 지고 걸어 다녀야 했던 시절에는 이 고개에 도둑떼가 들끓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도둑떼에게 아들을 잃은 할머니가 도둑소굴로 숨어 들어 망을 보다가 사람들에게 신호로 "다자구야 들자구야"라고 외쳐서 도둑떼를 사로잡는 데 공을 세워 이곳 주민들은 매년 대강면 용부원리의 산신당에 모여 다자구 할머니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중앙선이 이 고개를 통과하기 위해 '또아리굴'이라 불리는 루프식 터널을 건설했다. 죽령에서 단양까지의 서쪽 사면은 비교적 경사가 완만하여 높은 곳까지 개간되었고 동쪽 사면인 경상북도 풍기 쪽으로는 산림이 우거져 있다. 부근에 죽령 봉수와 보국사·희방사·죽죽사가 있으며, 중앙선을 따라 중앙고속도로(춘천-대구 간)가 있다. 옛날에는 죽령 고개를 넘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당연히 노잣돈을 노린 산적이 들끓지 않을 리 없다.
▲ 삼형제봉 가기 전 오랜만에 일출을 보았다.
▲ '도솔'은 "두솔(兜率)"의 변한 말이라고 한다. 정확하게 한자로 읽으면 두솔봉이지만 소백산 봉우리 이름은 대부분 불교용어로 도솔봉(兜率峰)에 '도솔'은 "두솔(兜率)"의 변한 말이다.
예) 1.도솔가(兜率歌):월명사가 지은 4구체 향가.
2.도솔천(兜率天):욕계 육천(欲界六天) 가운데 넷째 하늘
욕계 6천중 네 번째 하늘에 해당되는 도솔천(덕을 많이 쌓은 사람이 간다는 하늘)에서 그 이름이 유래하는 도솔봉. '만족시키다'의 뜻으로 지족, 희족, 묘족이라 하기도 한다. 도솔천에서는 손을 잡는 것으로 남녀가 '사랑을 나눈다'는 뜻이라고 한다.
▲ 도솔봉에서는 지난 구간의 소백산 천문대와 비로봉이 조망 된다.
▲ 도솔봉에서 증명 사진(잠시 사진을 찍기 위해 마스크를 약간 내려더니 흐메 추워라~!)
▲ 안전(?)을 위해 아래에 정상석이 또 설치되어 있다.
▲ 묘적봉
▲ 묘적령
▲ 솔봉
▲ 점심
▲ 흙목 정상:남쪽으로 나있는 임도 따라 가면 예천군 상리면 도촌리 흙목마을이 있다. 그 이름을 따 흙목정상이라한다.
▲ 싸리재:여기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면 단양 유황온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원용두가 되는 안부 사거리 이다
▲ 유두봉(아미산)
▲ 배재
▲ 시루봉
▲ 투구봉유래: 장씨라는 집에 아이가 태어났는데 아이가 귀주위에 올라가 있는 거야. 그래서 부모가 장수를 낳았다고 걱정을 해서 숨겨 놓았어. 옛날에는 장수를 낳으면 역적이잖아. 그래서 숨겼는데 그 뒤에 포졸들이 와서 “장수가 어디 있냐?” 그랬더니 모른다고 해서 부모를 죽였어. 그래서 이장수가 투구봉에서 바위를 굴렸어 그리고 나서 임진왜란이 일어났는데 장수가 그동안 기운을 너무 많이 써서 활약을 못했다는 거야. 그 뒤로 그 집에는 남자가 나면 장가를 못가고 딸을 낳으면 시집을 못 간다는 이야기가 있단다. (제보자 : 권봉기, 단성면 중방리.)
▲ 촛대봉
▲ 저수령 산행 마침
▲ 저수령(低首嶺) : 경북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와 충북 단양군 대강면 올산리를 경계로 한 도계(道界)로 옛부터 저수령(해발 850m)이라고 불렸다. 지금의 도로를 개설하기 전에는 험한 산속 오솔길로 경사가 급하며 지나다니는 길손들이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는 설과 저수령에서 은풍곡까지 피난길로 많이 이용되었는데 이 고개를 넘는 외적들은 모두 목이 잘려 죽었다는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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