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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 산행기

운악산(雲岳山) : 서봉, 동봉, 현등사.

운악산(雲岳山) : 서봉, 동봉, 현등사.

운주사→약수터→대궐터→애기→서봉→동봉→절고개→현등사→주차장

◇ 산행지 :  경기도 포천시 하현면 하현리, 가평군 하면 운악리 일원

◇ 산행일자 : 2022. 12. 3(토) 날씨 : 맑음

◇ 산악회및 산행 친구 : 금강 산악회, 산행지기

◇ 산행거리 : 7.43 Km

◇ 산행시간 : 4시간 8분 산행 < 점심 25분 포함>

◇ 시간 대별 요약

 - 06:30  반석역

 - 07:30  신탄진 휴게소(조식)

 - 10:30  노채고개

 - 11:04  하현리 주차장 도착

 - 11:13  운주사 입구 주차장 산행시작

 - 11:55  약수터 중식(25분)

 - 12:20  약수터 출발

 - 12:41  대궐터

 - 13:12  애기봉

 - 13:23  서봉 

 - 13:32  동봉(운악산 정상)  

 - 13:44  남근바위 전망대

 - 13:54  절고개(백호능선/현등사 갈림길)

 - 14:00  코끼리 바위

 - 14:38  현등사

 - 15:15  문일주문 입구

 - 15:21  하판리 산행마침  

 - 16:07  하판리 출 

 - 18:50  한국병원 도착  

 

※ 특기사항

① 운악산 두 번째 산행

4명 노채고개 산행

첫 눈 밟는 산행

④ 운주사현등사 코스 첫 산행

⑤ 발열식품 중식

 

※ 산행 전 사전 조사

<운악산(雲岳山·935.5m)>:양주의 감악산, 가평의 화악산, 개성의 송악산, 과천의 관악산과 함께 경기도의 5대 명산으로 꼽히던 경기오악(京畿五岳)이다. 그리고 풍우(風雨)의 조화가 구름 속에서 일어난다고 해서 산이름에 운()자가 붙었으니, 그 뜻은 천문의 기운이 응결된 땅이란 의미일 것이다. ‘()’은 산 높고 험준하다는 뜻이니 결국 운악(雲岳) 천문의 상서로운 기운이 응결된 높고 준험한 산이란 뜻이 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여지지> <포천군읍지> <산도후기(山圖後記)>에는 한양 동쪽의 모든 산은 현등산으로 중조(中祖)를 삼으니 운악산은 뭇산의 조종(祖宗)이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운악산은 한북정맥에서 갈라져 나온 거의 모든 산들의 모태가 되는 산뿌리라고 할 수 있겠다. 운악산 이름은 <동람도-경기첩>,청구도,세종실록지리지,해좌승람,대동여지도>, <경기 37관도>, <경기 38관도>, <대동지지-가평조>, <여지도-경기첩>, <동여도>, <대동여지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기록이 보인다.  <동국문헌비고> <해동도>에는 운악(雲岳)이라고 기록했으며, <해동여지도> <포천군읍고지도>에는 현등산 기록만이 보인다. <동여비고> <경기고지도첩> <여지도> <천하여지도책-경도도>에는 운악산과 현등산(懸燈山)을 병기했다. 그리고 광무년간(1899)에 편찬된 <포천군읍지>에는 운악산은 포천 고을로부터 동쪽으로 30리쯤에 있는데, 곧 현등산 동쪽에 있는 산이다라고 기록했다. 이는 기록자가 매우 부정확하게 오기한 경우이다. 또 고산자 김정호는 운악산과 현등산을 <대동여지도>에 병기하면서 운악산의 동편에 현등산을 그렸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기록을 근거로 하여 똑같은 산을 가평 사람들은 예전부터 현등산이라고 불렀고, 포천 사람들은 운악산이라고 불렀던 것이라고들 말한다. 실제로 가평쪽(조종면 상판리)에 현등사라는 절이 있어서 이 주장은 더욱 그럴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이 또한 이 지방사람들의 엉터리 믿음인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광무읍지> <대동여지지> 산천조를 살펴보면 예부터 가평과 포천 고을에서 모두 이 산을 운악산으로 인식했던 사실을 기록으로 분명히 남겨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운악산의 대표적인 산이름은 운악산이 분명 옳다고 하겠다. 다만 현등사라는 큰 절이 있었기 때문에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예로부터 현등사라는 절이 있는 산이라고 인식하고는 현등산이라고도 향명으로 불렀을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현등사사적기>에조차 보조국사 지눌이 망일사 원통암에 머물며 운악산을 바라보니 산 속에서 삼일동안이나 밝은 빛을 내뿜었다. 지눌이 기이하게 여겨서 그 곳을 찾아가니 과연 관음전이 우뚝 서있고 남쪽 바위 위에 옥등(玉燈)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그래서 절을 중창하고는 등불()이 걸려있던() ()’이라고 하여 현등사라 이름을 정하니 산이름도 현등산이 되었다고 기록했다. 따라서 본래 산이름은 운악산이었는데 현등의 신이한 행적 때문에 현등사가 세워지면서 또 다른 산이름으로 현등산이 되었다고 그 유래를 비교적 정확하게 밝히고 있다. 출처 월간산 : 향토사학자 : 이수영

 

※ 운악산 산림청 100명산 선정 사유 :  주봉인 망경대를 둘러싼 경관이 경기 소금강이라고 불리울 만큼 뛰어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하였으며 천년고찰인 현등사 및 백년폭포, 오랑캐소, 눈썹바위, 코끼리바위, 망경대, 무우폭포, 큰골내치기암벽, 노채애기소 등 운악8경이 유명하다.

 

 운악산 산행 등산 지도 

 

 

※ 운악산 산행후기

운악산은 화악산,감악산,관악산,개성 송악산과 더불어 경기 오악 중의 하나이며 1대간 9정맥 중 한북정맥에 속한 산이기도 하다. 한북정맥은 포천시와 가평군의 경계이며 운악산의 서쪽은 포천시, 동쪽은 가평군이다. 운악산은 한북정맥을 하던 200974일 노채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원통산을 거쳐 다녀오고 이후로 다시 가지 못했으며 능선 산행만 했으니 옆 줄기 산행이 하고 싶었는데 산행 친구에게 토요일 산행지에 대해 제안을 하니 금강을 따라 가평 운악산을 가자고 하여 선택을 했다. 가평 까지 가려면 긴 시간을 버스에 있어야 하니 산행 예약 시 산악회 총무에게 앞자리나 중간자리 요청을 했는데 다행히 중간 자리를 배정해 주었다. 늘 그렇듯 대전 시내를 한 바퀴 돌아 신탄진휴게소에서 산악회가 제공하는 아침 식사를 했는데 다른 때에 비해 아침 식사가 맛이 있었다. 식사 이후 먼 거리이므로 잠을 청해 보았으나 비몽사몽이었고 식사 시간까지 포함하여 노채고개는 4시간 만에 도착하였으니 먼 거리였다. 차창 밖을 보니 경기도라 그런지 눈이 제법 쌓여 있어서 아이젠을 준비하지 않아 약간 걱정되었는데 노채고개에서 4명이 내렸고 운주사 주차장에는 약30분 더 소요되어 114분에 도착하였다. 산행준비를 하고 산행을 시작한 후 약 40분정도 진행을 하니 식사하기 좋은 장소가 있어 발열 식품으로 식사를 하고 산행을 계속했는데 눈이 제법 쌓여 있어 산행하는데 불편했다. 산행 시작 후 정상엔 2시간 10분 만에 도착하여 인증을 하고 산악회에서 안내한 현등사로 향했는데 공부를 덜 한 탓에 눈썹바위가 있는 능선을 놓치고 곧이곧대로(?) 하산한 셈이어서 산행 후 산행기를 적으면서는 다음에 다시 가라는 가 보다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암튼 눈이 조금 쌓여 있는 까닭에 절고개인 백호능선 갈림길에서도 안전을 위해 현등사를 택해 하산을 시작했는데 역시 눈이 쌓여 있어 조심해야 했다. 적멸보궁이 있는 현등사에서 딴생각을 하다 빙판에 넘어지기도 했지만 현등사 이후는 시멘트 길이어서 하산하는데 어려움이 없었고 주차장에 도착하여 산악회에서 제공하는 막걸리 석 잔을 하고 차량에 탑승했는데 돌아오는 길은 2시간 40분 만에 한국병원에 도착하여 먼 생각이 덜 했다. 산행친구와 중촌동 뒷고기 집에서 뒤풀이를 하고 집으로 향하며 일정을 접었다.

 

※ 운악산 산행사진

▲ 노채고개에 4명을 내려주고 포천시 화현면 화현리 운주사 입구 광장 주차장에 도착, 화장실을 다녀 온 후 산행을 시작한다.

▲ 운악사 방향으로 진행

 운악산 등산로의 특징은 한북정맥 길인 애기봉~서봉~동봉~절고개 길을 기준으로 서쪽은 포천이고 동쪽은 가평으로 나뉘어져 포천 쪽에서 올라가는 길과 가평 쪽에서 올라가는 길로 나뉘게 되며 포천 쪽에서 올라가는 길은 크게 3개의 길이 있는데 운주사, 운악사,대원사를 통해 올라가는 길이 있다. 우리는 비교적 수월한 1코스 운주사 쪽의 길을 택해 올라간다.

▲ 운주사 입구 광장 주차장에서 포장도로 따라 약 5분간 진행하면 아래의 1코스와 2코스 갈림길이 나온다.

▲ 1코스와 2코스 갈림길이 나오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 포천시에서 2022년 6월 20일 부터 12월 16일까지 1코스 안전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1코스는 비교적 정비가 잘 되어 있다.

 

▲ 폭포 전망대

▲ 팔각정에서 바라 본 무지치폭포 

 

▲ 약수터 인근에서 바라 본 무지치폭포 : 예전지도에는 무지개폭포라고 되어 있는데 '무지개 폭포'는 홍폭(虹瀑)이라고도 하고 무지치 폭포라고도 하며 왕건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도망 온 궁예가 상처를 씻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 약수터 인근에서 무지치폭포를 바라 볼 수 있는 곳인데 언제 어떤 세력이 쌓았는지 정확한 기록이 없어 산 이름을 따서 운악산성으로 부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 약수터에서 발열식품으로 점심 식사를 했다. 

▲ 약수터

▲ 점심 식사 했던 곳으로 비박하기 좋은 장소였다.

▲ 점심 식사는 이곳 이정표 옆이 더 좋을 것 같다. 긴 의자도 둘 있고 했빛이 들어 왔다.

▲ 그늘진 곳의 고드름은 이제 겨울이 한참임을 말해 주고 있다.

대궐터 인지 또는 절터였는지 철저한 지표조사와 발굴이 요망되는 곳인데 규모로 보아 대궐터라고 하기엔 너무 작아 보였다.

 대체적으로 등산로는 잘 정비 되어 있었다.

고드름이 겨울 풍경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눈이 오면 상당히 미끄러울 것 같은 사다리형 철계단을 오르면 멋진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2코스 구간 같은데 산행을 해 보지 않았으니 확실치 않다. 

▲ 한북정맥 산행 시 직등 하지 않고 우회 했던 사라키 바위 구간이 전망 된다. 당시 한 친구는 위험한 암릉 구간을 직등하다 무서워 죽을 뻔 했다고 했었다. 사라키 바위에 대해 유래를 알아보았으나 알 수 없다.

 한북정맥 산행 시 애기봉을 갔었기에 안가려고 했더니 동행한 친구가 100m밖에 안되는데 안가려고 하느냐는 말에 애기봉으로 갔다.

애기봉

 한북정맥 산행 시

뒤 돌아 본 애기봉

▲ 운악산 서봉으로 올라가는 길

▲ 서봉의 이정표에서 포천 2코스로 100m 진행하면 전망 좋은 만경대가 나오는데 다녀 왔다고 공부를 소홀이 한 탓에 가보지 못하고 진행했다. 다시 오면 포천2코스로 올라 가평 2코스로 하산 하든 해야겠다.

▲ 운악산의 유래 : 봉래(峰萊)양사언의 시에 으르기를 꽃 같은 봉우리는 높이 솟아 은하수에 닿았고"에서 화현면과 궁예왕성의 지명이 되는 단서가 보인다. 운악산은 이름그대로 뾰족한 기암괴석의 봉우리가 구름을 뚫고 솟아서 그모습이 마치 서기(瑞記)를 품은 한 떨기 향기로운 꽃과 같다, 그래서 지명이 雲岳山 이다, 유적지로는 궁예성터,궁궐터,만경대,신선대,병풍바위,미륵바위,코끼리 바위,눈썹바위 등이 있고 주봉 만경대를 중심으로 산세가 험하여 기암절벽으로 산을 이루고 있어 그 경치가 절경이며, 구름이 산을 감돌아 신비감마저 느끼게 한다. 화악산.감악산.관악산,송악산과 함께 경기 5악중의 하나라" 경기 소금강"으로 그 이름을 자랑하고 있다. 출처:운악산 표지석

 한북정맥 산행 시

포천에서 세워둔 등산안내도에 1,2,3코스가 있다면 가평 등산안내도에도 똑같이 1,2,3코스가 있어 무심코 반대코스로 하산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하니 코스를 1~6으로 조정하면 좋을 듯한데 지자체간에 협의가 안되어 정상에는 가평군 정상석과 포천시 정상석 두 개가 각 지역 방향을 바라보고 세워져 있으니 보기 안 좋다.

상고대도 있고 대전에 비해 눈이 내린 풍경도 있어 겨울임을 실감케 한다.

 

▲ 운악산 서봉과 동봉거리는 불과 5분 거리다.

▲ 가평에서 세워둔 운악산 비로봉

▲ 가평 현등사와 포천3코스 갈림길의 이정표

▲ 맑은 날에는 포천과 일동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운악산의 동봉 근처인데 약간 아쉽다.

남근바위 뒤로 2코스로 하산 했어야  미륵바위, 눈썹바위를 지나왔을텐데 기회되면 다시 가야 겠다. 남근석은 동산의 남근석이 단연 최고다.

 칠거지악(七去之惡)은 중국, 한국 등 유교문화권에서 남편의 일방적인 의사표시로 아내와 이혼할 수 있는 일곱 가지 이유, 다시 말해 이혼사유이다. 글자 그대로는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일곱가지 잘못'이라는 뜻이다. 《공자가어》에 처음으로 이런 내용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일곱가지 잘못은 다음과 같다. 1.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음(不順父母) 2.아들이 없음(無子) 3.음탕함(不貞) 4.질투함(嫉妬) 5.나쁜 병이 있음(惡疾) 6.말이 많음(口說) 7.도둑질을 함(竊盜) 그러나 칠거지악에 해당하는 잘못을 지었더라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경우에는 내쫓지 못하도록 하였다. 1.내쫓아도 돌아가 의지할 곳이 없는 경우 (有所取無所歸不去) 2.함께 부모의 삼년상을 치른 경우 (與共更三年喪不去) 3.전에 가난하였으나 혼인한 후 부자가 된 경우 (前貧賤後富貴不去) 이런 세 가지 경우를 삼불거(三不去) 또는 삼불출(三不出)이라고 한다. 세종실록에 칠거지악과 삼불거의 사례가 언급되어 있다. 좌찬성(左贊成) 이맹균(李孟畇)의 처 이씨(李氏)가 나이가 거의 일흔이 되었지만 남편이 계집종을 총애하자 이를 질투하여 계집종을 움 속에 가두고 학대하여 굶겨 죽였다. 세종은 사간원에서 이맹균을 탄핵하는 상소를 받고 그를 귀양보냈으나 그의 부인은 벌하지 않았다. 사헌부에서는 부인 이씨가 자식도 없고 질투가 심하니 칠거(七去)의 도리에서 이거(二去)를 범했다며 내쫓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세종은 삼불거를 인용하여 '전에는 빈천하다가 나중에 부귀해지면 버리지 못하는 것이고, 함께 삼년상(三年喪)을 입었으면 버리지 못한다'면서 부인을 이혼시킬 수 없다고 반대했다. 출처:위키백과

절고개 : 백호능선/현등사 갈림길이다. 백호능선으로 진행하려다 눈이 온 상태라 현등사로 하산 했다.

코끼리 바위

누군가 오래전에 거주한 흔적이 있는 작은 집이 있는데 철거해야 될 것 같다.

 정상부터 여기까지는 1.6km로 비교적 짦은 거리이나 거친 바윗길과 경사가 심한 암벽길이 계속되기 때문에 조심해서 내려 와야 한다. 이후 현등사부터는 포장도로라 편한 길이다. 최단코스로 현등사까지 차를 가져 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겐 용납이 안 되는 부분이다.

 현등사 바로 전 빙판에 꽈당~! 겨울엔 딴 생각하지 말고 아래를 잘 쳐다 봐야 낙상사고를 방지 할 수 있다.

▲ 현등사 절내에는 병을 치유하는 "약사여래좌상"을 모신 "만월보전"과 "금동석가삼존상"을 모신 "영산보전"이 있다. 만월보전 좌측으로 적멸보궁 가는 길이 있는데 현등사 적멸보궁은 우리나라 최초의 적멸보궁으로 건립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적멸보궁은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건물이다. 진신인 사리를 모시고 있는 이 불전에는 따로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불단(佛壇)만 있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에는 불사리를 모신 곳이 많지만 그 중 대표적으로 5대 적멸보궁이 있다. ①영축산 통도사의 적멸보궁, ②오대산 중대(中臺)에 있는 적멸보궁, ③설악산 봉정암(鳳頂庵)에 있는 적멸보궁, ④사자산 법흥사(法興寺)에 있는 적멸보궁, ⑤태백산 정암사(淨巖寺)의 적멸보궁이다. 현등사 적멸보궁에 올라 가 볼까 하다가 얼마나 올라 가야 할지도 모르고 불자도 아니어서 현등사 경내만 둘러 보고 그냥 지나쳐 하산했다.

▲ 오층석탑 옆의 나무가 멋져서 한 컷

▲ 민영환바위 : 민영환은 이곳을 자주 찾아 울적한 심사를 달랬다고 전해진다. 민영환이 자결한 이후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 바위에 민영환이라는 글씨를 새겼다고 한다. 눈이 덮여 있어 글씨는 보지 못했다.

 

가평 3코스 이정표 

▲ 한북제일지장극락도장(漢北第一 地藏極樂道場)이란 한자가 새겨진 일주문을 지나면 산행은 종료다.

▲ 한북제일지장극락도장 일주문 전면에는 운악산현등사라고 한글로 표기 되어 있다.

▲ 현등사 일주문을 지나면 그 옆 공간에 구한말 일제의 압제에 맞서다 순국하신 계정 민영환, 면암 최익현, 3인을 모신 삼충단이 있다. 1905년 일제가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하지 조병세, 민영환 선생은 자결로서 구국의 결의를 보여줬다. 특히 면암 선생께서는 의병을 조직해 일제와 맞서 싸우다가 체포된 후 일제의 음식을 먹을 수 없다며 1906년 일본 대마도에서 순국했다. 그런데 무엇이 그리 바쁜지 삼충단 추모비는 보지 못하고 그냥 왔다.

▲ 현등사 매표소는 현재 운영을 하지 않고 있다.

▲ 조종면 운악리 운악산 두부마을

 

 조종면 운악리 주차장 산행마침, 청량리까지 운행하는 버스가 있었다.

중촌동 뒷고기 집에서 한 잔 하고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