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산 (黃石山, 1190m) : 황석산성, 피바위, 북봉
사방댐→피바위→건물지→황석산→건물지→피바위→우전마을
◇ 산행지 : 경남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일원 (네비:우전마을)
◇ 산행일자 : 2022. 1. 16(목). 날씨 : 맑음
◇ 산악회및 친구 : 승용차 이용, 기대, 기대친구
◇ 산행거리 : 5.2km ( 이정표 거리)
◇ 산행시간 : 3시간 산행 ( 중식 40분, 마을길20분 미포함)
◇ 시간 대별 요약
- 06:00 기상
- 07:00 반석역
- 07:50 용전동 주민센터 출발
- 09:20 우전마을 사방댐 도착
- 09:25 사방댐 산행 시작
- 09:44 피바위
- 10:26 건물지
- 10:45 정상/동문지 갈림길
- 10:58 황석산 정상
- 11:09 정상/동문지 갈림길
- 11:33 건물지(점심 40분)
- 12:46 피바위
- 13:02 사방댐
- 13:23 우전마을 산행마침
- 14:55 중리동
※ 특기사항
① 황석산 두 번째 산행 (2005. 10. 8 황석산, 거망산 산행)
② 승용차 이용
③ 원점 산행 (황석산 최단 코스)
④ 매서운 칼 바람
⑤ 점심 식사 만찬(반주 포함 40분)
※ 산행 전 사전 조사
< 함양 황석산성(咸陽 黃石山城)> :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에 있는 해발 1,190m의 황석산 정상에서 뻗은 산마루를 따라 골짜기를 감싸며 육십령으로 통하는 요새지에 쌓은 삼국시대 산성이다.고려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고쳐 쌓았고 임진왜란 때는 큰 전투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성은 돌로 쌓은 부분과 흙으로 쌓은 부분으로 되어있고, 문은 동·서·남·북동쪽에 있다. 성 안에는 크고 작은 건물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당시엔 성의 둘레가 29,240척(약 8.9km)이며, 성 안에는 창고가 있었다고 한다. 선조 30년(1597)에 왜군이 침입하자 이원익은 왜군이 쳐들어올 것을 판단해 주민들과 성을 지켰으나 백사림이 도망가자 결국 함락당한 사연이 있는 성이다. 현재도 성 안에는 작은 계곡이 있어 물이 마르지 않기에 전략적으로 가치 있는 곳임을 알 수 있다. 출처:위키백과
※ 황석산 산림청 100명산 선정 사유 : 거망에서 황석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있는 광활한 억새밭 등 경관이 아름답고 황석산성 등 역사적 유적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하였으며 정유재란 당시 왜군에게 마지막까지 항거하던 사람들이 성이 무너지자 죽음을 당하고 부녀자들은 천길 절벽에서 몸을 날려 지금껏 황석산 북쪽 바위 벼랑이 핏빛이라는 전설이 있는 황석산성이 있다.
※ 황석산 등산 지도
※ 황석산 산행 후기
황석산은 이번이 두 번째 산행이다. 2005년 10월 8일 황석산~거망산 산행을 했었는데 당시는 유동마을로 올라 거망산 정상에서 지장골로 하산하여 용추폭포를 구경하고 다시 유동마을 쪽으로 하산했던 것 같다. 황석산 산행기는 정상 인증 사진이 없어 산행기를 적지 못하고 있다 금년 1월 13일 금강투어 산악회에서 일정이 잡혀 평일이라도 다녀오리라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구성원이 안 된다고 산악회에서 취소하는 바람에 친구와 가게 되었다. 지난 주 친구의 생일에 축하주를 하던 중 황석산 이야기를 했었는데 친구가 같이 가 준다는 이야기에 16일에 가기로 했는데 친구가 본인차로 가자고 하기에 점심은 발열 식품(전투식량)으로 하기로 하고 내가 준비하기로 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쉽게 잠자리에 들지 못해 산행 전날에 반주로 포도주를 마시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선지 새벽 5시에 일어나 뒤척거리다 6시 알람소리에 다시 깨어 본격적으로 준비를 마쳤다. 반석역에서 7시 지하철을 타고 정부청사역에 하차하여 102번 버스로 환승을 하고 가는데 친구에게 연락이 온다. 어디서 내릴 건지 알려주면 그곳에 가있겠다고 하여 용전동 주민 센터에서 하차한다고 하니 그곳에서 기다리겠다고 한다. 황석산까지는 대략 1시간 30분이 소요 되었는데 금산 휴게소에서 잠시 쉰 후에 산행 초입인 사방댐에 도착하니 최단코스라서 그런지 차량이 거의 빼곡할 정도였다. 빼곡할 정도라야 7~8대 주차 할 수 있을 정도의 주차 공간인데 도착한 시간이 상당히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주차 할 공간이 없는 것을 보면 일명 검은 소와 산림청의 100명산 덕을 많이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 역시도 인증을 위해 오긴 했지만 산은 제철에 가야하고 코스 또한 길게 잡아야 함이 원칙인데 승용차를 이용한 산행은 원점회귀를 원칙으로 해야 하니 친구의 의견을 따라 정상만 다녀오기로 하였으니 마음은 조금 편한 마음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요사이 꾸준한 산행 때문인지 산행 초반부터 피바위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진행 할 수 있었는데 동네산만 주구장창 다닌 나에 비해 함께한 친구들은 요사이 제법 많은 산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산을 다녔기에 내가 뒤쳐질까봐 걱정을 했는데 결론부터 말해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앞선 산행이었으니 그동안의 노력은 배반을 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피바위에서 황석산성 시작점까지 오름이 진행 된 후 이후 건축지까지는 평지를 걷는 기분이었고 건축지에서 동문지 갈림길까지는 급 오름이었지만 쉬엄쉬엄 꾸준히 오른 탓에 함께한 일행보다 먼저 올랐고 잠시 기다렸다 동문지에 함께 가보니 많이 위험한 듯해서 동문지 정상은 포기하고 황석산 정상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선답자가 정상엔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분다고 귀띔 해 준다.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 겨우 사진 두 장 남기고 서둘러 하산을 시작 했다. 하산하며 비교적 바람이 불지 않는 곳을 찾던 중 건물지 옆을 택하여 점심식사로 전투식량과 떡국으로 점심을 했는데 연화산 산행 시 어떤 사람이 극찬을 했었던 그 떡국은 느끼하여 다시 먹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반주로 포도주도 마시고 식사를 마치고 하산을 시작하면서는 내 페이스로 진행을 했고 친구 일행에 비해 이른 하산을 한 후에는 친구에게 혼자서 마을로 하산을 시작하겠다고 전화 한 후 20여분을 걸으니 친구의 차가 도착하여 3시경 대전에 도착해서는 중리동에서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한 후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 집에 도착하여 피자에 쏘맥으로 다시 한잔 한 후 잠에 취했다.
※ 황석산 산행사진
▲ 우전마을 사방댐 : 산행지 도착. 황석산 최단코스로 이용되는 이곳은 네비로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577-1 또는 '우전마을회관 ' 찍고 마을 안쪽으로 가다보면 <황석산 등산로> 이정표 따라 가면 작은 주차공간이 나온다. 또는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황석 산성길 123 찍고 도착하면 50m정도 직진하면 된다. 사방댐 옆으로 주차는 약 7~8대 가능 하다. 참고로 화장실은 없다. 굳이 화장실을 이용 하려면 우전마을 들어오는 초입 바로 오른쪽에 있는 거연정 휴게소를 이용해야 할 것 같다.
▲ 사방댐으로 흘러 내리는 계곡물
▲ 사방댐 주차 공간의 안내도
▲ 황석산 최단코스 등산 안내도
▲ 사방댐 주차장의 이정표
▲ 주차하고 임도따라 50여m 올라가면 보이는 이곳의 이정표가 실질적인 산행 초입이다. 사방댐 주차장의 이정표나 등산로 초입의 이정표나 거리는 같이 표시되어 있다. 그만큼 사방댐 주차장에서 이곳과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 실질적인 등산로 초입에서 계단을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 시구목골의 우전마을 주민들의 식수보호 안내문: 피바위까지 계곡 길 따라 힘들지 않게 올라 갈 수 있다. 계곡은 우전마을 식수로 사용하는 관계로 씻는 행위 등을 자제해야 된다. 겨울철이라 씻지도 않겠지만 계곡물은 얼어 있는 상태였다.
▲ 산행 시작 후 조금 지나면 너덜 오르막길이 나온다.
▲ 산행 시작 후 700m 온 거리에 이정표와 피바위에 대한 안내판이 있다. 선조 30년 정유년(1597)에 조선을 다시 침략한 왜군 14만 명 중 우군 2만 7천 명이 그해 음력 8월 16일에 왜군의 가또, 구로다 등의 지휘로 이곳 황석산성을 공격해 왔다. 이때 안의현감 곽준과 전 함양군수 조종도는 소수의 병력과 인근 7개 고을의 주민들을 모아 성을 지킬 것을 결의하고 관민남녀 혼연일체가 되어 조총으로 공격하는 왜군에 맞서 활과 창칼 투석전으로 처절한 격전을 벌였으나 중과부적으로 마침내 음력 8월 18일 황석산 성은 함락되고 말았다. 왜구와의 격전이 벌어지면서 여인들도 돌을 나르며 부서진 병기를 손질하는 등 적과의 싸움에 온갖 힘을 다 하였으나 황석산성이 함락되자 여인들은 왜적의 칼날에 죽느니 차라리 깨끗한 죽음을 택하겠다고 치마폭으로 얼굴을 가리고 수십척의 높은 바위에서 몸을 던져 순절하고 말았다. 꽃다운 여인들이 줄줄이 벼랑으로 몸을 던졌으니 이 어찌 한스러운 비극이 아니겠는가! 그때의 많은 여인들이 흘린 피로 벼랑 아래의 바위가 붉게 물들었다. 피맺힌 한이 스며들어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에도 그 흔혈은 남아 있어 이 바위를 피바위라 한다. (설명문에서)
▲ 피바위는 선조30년 정유년(1597)에 왜군에 의해 황석산성이 함락되었고 전쟁에서 돌을 나르면서 같이 싸웠던 여인들이 왜구의 손에 죽느니 차라리 깨끗한 죽음을 택하겠다고 치마폭으로 얼굴을 가리고 높은 바위에서 몸을 던져 순절하였다. 그때 많은 여인들이 붉은 피로 바위를 붉게 물들였다하여 피바위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피바위는 빙벽 등반 하기 좋게 꽁꽁 얼어 있었다.
▲ 이곳에서 뒤쳐진 일행을 위해 잠시 기다렸다 같이 사과 쥬스 한 봉지 마시고 출발 했다.
▲ 평상시에는 있으나 마나 한 밧줄인데 암릉이 얼은 부분이 있어 미끄러워 밧줄을 잡고 올라갔다.
▲ 딱 절반 온 곳이다.
▲ 황석산성이 나올 때 까지는 제법 오르막이다.
▲ 황석산성 남문지: 이곳 부터 건물지까지는 평탄한 길이다.
▲ 삼국시대 산성으로 형식은 계곡을 감싸듯이 쌓은 포곡식(包谷式) 산성인데, 당시 상황으로 보아 신라가 백제와 대결하기 위해 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전기까지 고쳐 쌓았고 정유재란(1597)때는 왜적과 격전을 벌여 500여명이 순국한 곳이기도 하다.
▲ 산성길 아니면 옆길 걷다가 리본이 많이 걸려 있는 곳에서 건물지 방향으로 좌측으로 진행한다. 산성길을 따라가면 남봉으로 갈 수 있는데 등산로가 좋지 않아 겨울철에는 위험해서 좌측 건물지 방향으로 진행했다. 건물지(0.6km)까지는 편안한 산책로 수준이다.
▲ 이정표는 잘 되어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 건물지에 도착했다. 거북바위와 황석산 정상으로 갈라지는 삼거리다. 왼쪽으로 가면 거북바위 600m, 오른쪽으로 가면 황석산 정상 600m이다. 이곳에서 황석산정상 방향으로 올랐다가 거북바위쪽으로 내려올 예정이었는데 일행들이 북봉은 가지 않겠다고 하여 거북바위는 정상 오르다 멀리서만 보고 원점회귀 했다.
▲ 황석산성 안의 계곡 주변에서 크고 작은 건물 터가 확인되었다. 지표조사에서 군대의 창고인 군창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으며 황석산성 관련 문헌에서도 약 70석의 군량미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평상시에 인근 고을의 군창을 황석산성에 두어 긴급한 상황에 대비하였고, 전쟁시에는 주민들이 대피하여 적군과 맞서 싸웠다. 관련문헌 : 신증동국여지승람
▲ 네이버에 검색해 보니 건물지(建物地)란 "어떤 건물이 있던 터"라고 한다. 눈으로 봐도 예전에 건물이 있었을 법한 곳이다.
▲ 정상/동문지 갈림길(유동마을/우전마을 갈림길) : 황석산 정상 100m 전이며 황석산성 안내판이 있다.
▲ 정상으로 가기 전 동문지로 먼저 향한다.
▲ 황석산성 동북문지 : 사적 제322 호인 함양 황석산성은 안의면과 서하면의 경계에 위치한 황석산(해발 1,190m)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으로 황석산 정상에서 좌우로 뻗은 능선을 따라 전북 장수와 진안으로 가는 길목에 축성되어 있다. 형식은 계곡을 감싸듯이 쌓은 포곡식(包谷式) 산성인데, 당시 상황으로 보아 신라가 백제와 대결하기 위해 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전기까지 고쳐 쌓았고 정유재란(1597년) 때는 이곳 황석산성에서 함양군수 조종도와 안의현감 곽준 등이 외적과 격전을 벌여 500여 명이 순국한 곳이기도 하다. 성벽의 전체 길이는 2,750m, 높이는 3m 정도이고, 산성의 면적은 444.609 평방미터 인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산성의 둘레가 29,240척(약 8.9km)이며, 성 안에는 창고가 있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성문은 동.서.남.동북쪽의 4곳에 있으며, 산성안의 계곡 주변에서는 크고 작은 건물터가 확인되었다. 이곳 동북문지는 정유재란 당시 일본군이 공격하던 주요 지점이었다.(안내문 중에서)
▲ 황석산 정상 모습
▲ 황석산 정상가기 전 동문지로 향했으나 동문지 정상은 위험해서 되돌아서 황석산 정상으로 향했다.
▲ 황석산 정상 오름 전 바라 본 북봉 (2005년 거망산 가면서 지나갔기에 오늘은 거북바위도 눈으로만 감상했다)
▲ 황석산 정상가다 바라 본 남봉(다음 숙제로 남겨 놓았다)
▲ 황석산(1192.5m) : 남덕유산 남녘에 솟은 범상치 않은 바위산이다. 백두대간 줄기에서 뻗어 내린 네 개의 산 기백, 금원, 거망, 황석 가운데 가장 끝자락에 흡사 비수처럼 솟구친 이 봉우리는 덕유산에서도 선명하게 보인다. 가을철에는 거망에서 황석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광활한 억새밭이 장관이다. 금원, 기백산과의 사이에는 그 유명한 용추계곡이 있다. 6.25때 빨치산 여장군 정순덕이 활약했던 곳이 바로 이웃의 거망산이다. 황석산성은 함양땅 안의.서하 사람들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중요한 유적이다. 정유재란 당시 왜군에게 마지막까지 항거하던 이들이 성이 무너지자 죽음을 당하고 부녀자들은 천길 절벽에서 몸을 날려 지금껏 황석산 북쪽바위 벼랑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다. 인근의 정자가 유명하며 특히 농월정, 동호정, 거연정, 군자정 등 경상도의 정자 문화를 대표한다. 출처:다음 백과, 대한민국 구석구석
▲ 황석산 인증(최단코스는 원치 않았는데 일행들이 있으니 어쩔 수 없다)하고 우전마을로 내려 선다.
▲ 황석산 정상에서 20m 내려서면 북봉과 거망산으로 가는 갈림길의 이정표
▲ 건물지에서 바람을 피해 점심 식사를 했다. 운전도 친구가 하니 반주로 포도주 한 잔 거나하게 만찬을 즐기고 이제 부터는 혼자서 빠른 속도로 하산을 진행 한다.
▲ 점심 식사 (발열식품)
▲ 하산하며 바라 본 월봉산(?) :정상부의 눈이 파란 하늘과 조화를 이룬다.
▲ 산행 종료 기점인데 일행이 내려오지 않아 계속 걸어 내려 간다.
▲ 전석(磚石)이란게 궁금하여 다음 어학 사전을 찾아 보니 "진흙에 모래나 석회 따위를 넣고 이겨 틀에 넣고 높은 온도에서 구워 낸 건축 재료" 라고 한다.
▲ 우전마을로 내려서며 바라 본 황석산의 모습
▲ 우전마을 이고에서 조금 지나니 친구 차가 와서 산행을 마친다.
▲ 고속도로에서 바라 본 무룡산(?)
▲ 고속도로에서 바라 본 덕유산 (구름과 파란 하늘 덕유산의 설경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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