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전산(金錢山 668m) : 의상대, 살짝 맛 본 릿지 산행
낙안 온천→ 입석 바위→극락문→의상대→금강암→금전산→금강암→ 낙안 온천
◇ 산행지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성북리 일원
◇ 산행일자 : 2023. 3. 5(일) 날씨 : 맑음
◇ 산악회및 친구 : 청백산악회, 산행지기
◇ 산행거리 : 약 4 km
◇ 산행시간 : 3시간 05분 <중식 10분, 정상 휴식 20분 포함>
◇ 시간대별 요약
- 06:00 반석역
- 06:35 오룡역 버스 탑승
- 10:30 금둔사 홍매화 구경
- 11:05 낙안온천 산행 시작
- 11:38 중식(10분)
- 11:48 중식 후 산행 시작
- 12:31 극락암
- 12:32 의상대
- 12:50 금전산 정상( 휴식 20분)
- 13:10 금전산 하산 시작
- 14:10 낙안 온천 산행 마침(1시간 20분 뒤풀이)
- 15:30 낙안읍성
- 16:23 낙안읍성 관람 마침
- 20:00 오룡역
- 20:30 반석역
※ 특기사항
① 금둔사 홍매화
② 낙안읍성
③ 의상능선 살짝 릿지
④ 여유 산행
⑤ 의상 릿지 우회, 원효릿지 포기
※ 산행 전 사전 조사
<순천 낙안읍성(順天 樂安邑城)> :고려 후기부터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선 전기에 흙으로 쌓은 성이다. 조선 태조 6년(1397)에 김빈길(미상∼1405년(태종 5))장군은 태조 이성계에 왜적을 막기 위해 낙안읍에 토성을 쌓아달라는 상소를 올려 낙안읍성이 처음 축조되었고, 『세종실록』에 의하면 1424년부터 여러 해에 걸쳐 돌로 다시 성을 쌓아 규모를 넓혔다고 한다. 읍성의 전체 모습은 사각형으로 길이는 1,410m이다. 동·서·남쪽에는 성안의 큰 도로와 연결되어 있는 문이 있고,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 성의 일부분이 성밖으로 튀어나와 있다. 성안의 마을은 전통적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당시 생활풍속과 문화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낙안 읍성은 현존하는 읍성 가운데 보존 상태가 좋은 것들 중 하나이며, 조선 전기의 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순천 낙안읍성은 미 CNN선정 ‘한국 최고 여행지 50선’뽑히기도 하였다..<출처:다음 위키백과>
※ 금전산 등산 지도
※ 금전산 산행 후기
지난 주 예약을 늦게 해서 꼭 가고 싶었던 석문산과 다산초당을 다녀오지 못해서 홍매화가 유명한 금둔사와 낙안읍성을 가기 위해 청백산악회에 금전산 예약을 다소 일찍 했다. 문제는 산행 친구가 릿지 산행을 잘 할 수 있을지 염려되었지만 예전에 청백산악회에 따라 갔을 때 위험 구간에서 선두가 밧줄을 내려 주어 큰 문제가 없었고 설령 위험구간이 나오면 우회하기로 했다. 6시에 반석역에서 탑승 했는데 오룡역까지는 26분 걸렸고, 청백산악회 버스는 6시 35분 정도에 도착하여 버스에 오르니 이게 웬걸 36인승이 아니고 45인승 버스였다. 다소 실망 했는데 회장이 45인승 버스에 대해 배차가 잘못 되었다며 미안하다는 인사를 한다. 그나마 다행인건 40인이 탑승했고 뒷좌석에 사람이 없어 배낭을 뒤에 둘 수 있어서 조금은 편하게 갔다. 시내를 한 바퀴 돌아 대전을 벗어나 벌곡 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했는데 김치 국밥은 먹을 만 했는데 산행친구가 금땡산악회 아침 식단이 젤 부실하다고 한다. 요즘 산행에 대해 신경을 덜 써서 마음에 안 드는데 음식까지 그러니 그 산악회는 안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순천까지는 먼 거리라서 식사 후에는 눈을 잠깐 감았는데 산행 일정을 바꾼다며 금둔사에 가서 매화를 구경하고 낙안온천에서 산행을 시작한다고 한다. 5명 정도가 릿지 산행을 하지 않는다고 불재에서 내려 산행을 시작했고 금둔사로 향했는데 홍매화는 사진으로 본 것만큼 예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특색이 있었다. 30분 정도 홍매화 구경을 하고 낙안온천으로 이동하여 산행을 시작했는데 시작점이 종중 산소가 많은 사유지라 빨리 금줄을 넘으라고 재촉한다. 정상 산길이 아니면 늘 그렇듯 초반은 등산로가 좋지 않았고 나무에 배낭이 자주 걸려 짜증도 났다. 사유지를 벗어나면서부터 등산로는 좋아졌는데 릿지 산행을 많이 한 흔적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조망도 좋아졌다. 산행시작 후 30분 정도 지나 리딩 하시는 분이 점심 식사장소가 마땅치 않다며 점심식사를 권해서 조망이 좋은 곳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고 조금 서둘러 산행을 시작했는데 그게 잘못이었다. 릿지 길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분이 릿지를 하려하자 리딩하시는 분이 신발도 릿지화가 아닌데 옆길로 가라고 권한다. 길이 있는 줄 알았으면 당연히 우회 했을 텐데 서둘러 산행을 한 게 잘못인 셈이었다. 산행 친구와 나는 우회를 선택했고 이후 진행은 등산로가 잘 되어 있어서 큰 어려움 없이 의상대에 올랐고 정상으로 향했다. 정상 인증 후 시간이 많이 남는 것 같아 정상에서 정상주 한 잔을 하고 하산을 시작했는데 내려와 보니 2등이었다. 산악회에서 제공한 하산주에 뒤풀이를 한 후 낙안읍성을 구경하고 대전으로 향했다. 순천이 워낙 뭔 곳이라 산행친구와 저녁도 같이 못하고 헤어졌는데 집에 와서 씻으니 9시다. 물만두에 소주 한 병 더 하며 하루를 마감했다.
※ 금전산 산행 사진
▲ 순천 매화 명소 금전산 금둔사에는 청매, 설매, 홍매 등 한국토종매화 100여 그루가 있으며 그중에서도 남녘의 봄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납월(음력12월) 홍매화 6그루가 있다. 주차장 위에는 ' 강마다 뜨는 달 ' 카페가 있어 주차도 편리하다.
▲ 산악회에서 금둔사(金芚寺)와 납월매(臘月梅) 구경 30분을 먼저 하고 산행을 한다하여 금둔사로 향한다.
▲ 금둔사는 백제 위덕왕 30년( 서기583 ) 담혜화상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정유재란으로 전소되었으나 선맥을 유지하여 오다가 현재의 건물은 1983년 선암사 칠전선원에 주석하던 수행승 지허대선사에 의해 다시 세워졌다고 한다.
▲ 대웅전 옆 홍매화가 예쁘게 핀 이곳은 납월 홍매로 유명해졌다. 납월 홍매는 양력 1월 말부터 3월까지 꽃을 피우는데 이 두그루가 첫째나무, 둘째나무로 수령은 1985년생이다. 납월은 음력 섣달을 달리 부르는 말로 금둔사의 매화가 추운 겨울을 이기고 피어남을 칭송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 납월 홍매(紅梅)
"찬 서리 고운 자태 / 사방을 비추어 / 뜰가 앞선 봄을 / 섣달에 차지했네." 신라 시인 최광유가 금둔사의 매화를 읊은 '납월매' 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 약간 경사가 오른편으로 오르면 순천 금둔사지 석조 불비상과 금둔사지 삼층석탑이 있다.두 가지 다 보물이라고 한다.
▲ 절과 매화를 보고 본격적인 산행에 임한다. 사유지임을 알리는 출입금지 안내문과 쇠금줄이 있다. 사유지이니 얼른 통과하라고 한다.
▲ 묘지 옆으로 오른다. 정상 산길이 아니면 늘 그렇듯 초반은 등산로가 좋지 않았고 나무에 배낭이 자주 걸려 짜증도 났다.
▲ 산행 시작 후 약 10분 정도면 능선을 만나고 조망도 좋아진다. 입석바위가 있는 이사진은 산행 시작 후 15분 정도에 만나는 풍경이다.
▲ 두 번째 암봉인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밧줄을 잡고 올랐는데 무서워서가 아니라 위험행동을 할 이유가 없어 진행 했다.
▲ 하산 할 능선 뒤로 낙안읍성이 보인다.
▲ 의상대와 원효대
▲ 이곳도 우린 우회했다.
▲ 의상릿지가 시작되는 곳이다. 우회로가 없는 줄 알고 릿지를 감행 하려다가 리딩 하시는 분이 우회로가 있다고 가르쳐 주어 과감히 포기 하고 우회로를 거쳐 금강암으로 향했다.
▲ 금강암 가는 길의 조리대 숲이 인상적이었다.
▲ 극락문이라는 한자가 양각 되어 있다. 두 개의 바윗덩어리가 서로 부딪혀 마주하며 생긴 작은 틈은 흡사 부처의 세계로 가기 위한 유일한 통로처럼 보이기 때문에 극락문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극락문을 지나면 바위사이의 석간수 약수터가 있다.
▲ 금강암 극락전 : 금강암은 송광사 말사에 속해 있는 암자라고 한다. 금강암은 백제 557년에 세워져 통일신라 시대에 의상대사가 중수한 유서 깊은 호남의 관음기도도량이었다고 한다. 금강암은 1948년 여순항쟁 때 부속전각들이 소실되고 암자는 폐사되어 방치되다가 각고의 노력 끝에 재건되어 지금의 소박한 모습에 이르렀다고 한다.
▲ 의상대의 돌탑
▲ 금강암의 마애불 : 붉은 입술이 인상적인데 무엇이 그리 급했을까? 못 본것 같은 이 느낌은 무언지 모르겠다.
▲ 의상릿지(올라 온 능선이다)
▲ 원효대
▲ 금강암에서 금전산 정상 가는 길의 돌탑
▲ 원효대에도 릿지 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 금전산(해발 668m) : 조계산에서 뻗어나온 한 지맥이 남쪽으로 흘러내리며 고동산을 거쳐 일으킨 바위산이다. 이 금전산의 옛 이름은 쇠산 이었으나 금전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한자의 뜻을 그대로 번역하면 금으로 된 돈 산이다. 그러나 실은 불가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부처의 뛰어난 제자들인 오백비구(혹은 오백나한)중 금전비구에서 산 이름을 따왔다" 고 금강암 스님들은 말한다. 출처 :다음백과 대한민국 구석구석
▲ 금전산 정상에서 20분간 정상주를 마시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다 하산 했다.
▲ 금전산 정상에서 하산을 시작 한 후 원효릿지 갈림길에서 뒤 돌아 보니 하산 하는 분들도 보였다.
▲ 금전산 정상에서 하산하며 바라 본 의상릿지 능선
▲ 낙안온천(0.6Km)/성북마을(0.8Km)/금전산정상(0.8Km) 갈림길, 국가점번호 다라 8582 5850
▲ 인위적으로 만든 듯 가운대 부분은 잘려져 있었다.
▲ 낙안온천 산행 마침
▲ 이곳 주차장에서 뒤풀이 하고 낙안읍성으로 이동 했다.
▲ 낙안읍성에서 바라 본 금전산
▲ 읍성은 부, 목, 군, 현 등 행정 구역의 등급에 따라 크기에 차이가 있었고, 크기는 주민의 수와 관계있었다. 조선 시대 내륙 지방에는 비교적 큰 고을에만 읍성이 있었고, 해안 근처에는 거의 모든 고을에 읍성이 있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남부 지역에 69개소, 『동국여지승람』에는 95개소, 『동국문헌비고』에는 104개소의 읍성이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전국 곳곳에 설치되었다. 이들 읍성은 조선 말기까지 존재했으나 1910년 일본의 읍성 철거령 때문에 대부분 철거되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읍성 중 대표적인 것은 정조 때 세운 수원읍성이다. 또한 낙안읍성, 비인읍성, 해미읍성, 남포읍성, 동래읍성, 보령읍성, 진도읍성, 경주읍성, 거제읍성, 홍주읍성, 언양읍성 등이 있는데 낙안읍성은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곳 중 하나다. 출처:다음 백과
▲ 낙안읍성은 외암마을처럼 입장료를 받는다. 연간 12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주요 관광지이므로 입장료 수입이 상당하다. 관람비 중 40퍼센트가 문화재관리비라는 명목으로 마을인들에게 돌아가며 학생들을 위한 교육비를 일부 보조하고 나머지는 환경정리비에 사용한다고 한다. 출처:다음 백과
▲ 낙안읍성의 각 문으로 들어가는 입구 양편에는 장승과 솟대가 세워져 있다.
▲ 낙안읍성 관람을 마치고 대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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