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대간 2차 10구간 [대전 산사모 3차 백두대간 남진 산행 제 12회째 ]
백복령→원방재→상월산→이기령→갈미봉→고적대→연칠성령→바른골→무릉계곡 →삼화사
◇ 산행지: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강릉시 옥계면. 동해사 삼화동 일원
◇ 산행일자 : 산행일자 : 2011. 8. 20 (토). 날씨 : 맑음 (바람이 불어 대체로 시원했음)
◇ 참가인원 : 대전시 산사모 회원 55명.
◇ 산행친구 : 기대, 진석
◇ 산행거리 : 도상거리: 18.25 Km (이탈 약 6.7Km 제외 ) GPS 거리 :28.6 Km
<10구간> 백복령→7.09→원방재→1.5→상월산→1.6→이기령→6.25→고적대→1→연칠성령
◇ 산행시간 : 순수 대간 산행 시간 7시간 10분, 합계 산행시간 10시간 20분<중식 15분 포함>
◇ 시간대별 요약
- 01:20 대전 IC 출발
- 05:00 백복령 도착
- 05:00 백복령 산행시작
- 07:30 원방재
- 08:06 상월산 (대간 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상월산)
- 08:20 상월산 (산림청 상월산)
- 08:49 이기령
- 09:34 샘터
- 09:55 점심 (15분)
- 10:43 갈미봉 (수병산 갈림길)
- 11:14 고적대 삼거리
- 11:45 고적대
- 12:10 연칠령성
- 13:22 사원터
- 13:57 문간재
- 14:20 쌍폭
- 14:24 용추폭포
- 15:06 삼화사 산행 마침
- 15:20 무릉계곡 삼화사 주차장 산행 마침
- 16:10 후미 도착 묵호항 이동
- 17:51 묵호항 출발
- 21:05 대전 IC 도착
※ 특기사항
① 혹서기임을 감안하여 산행 코스 줄이고 무릉계곡 하산.
② 연칠령성 이후 하산 길 무릎 통증.
③ 계곡 알탕 못함(무릉계곡 입구 높은 담장 설치되어 있음)
④ 총원 55명으로 인해 45인승 버스와 25인승 2대 출발.
⑤ 산행 후 묵호항 뒤풀이(문어회와 오징어, 숭어회)
※ 산행지도및 고도표
※ 산행 후기
구간을 나눌 때 일반적으로 댓재 까지 진행 한다. 하지만 "이번 구간은 혹서기 임을 감안하여 체력적인 부담과 무릉계곡을 구경하기 위해서 연칠령성에서 삼화사로 하산한다"고 한다.무릉계곡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 동해로 휴가를 가서 동해안 명소를 둘러보고 무릉계곡 입구에서 쌍폭포와 용추폭포를 구경한 추억이 있는 장소라서 한 번 더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출발 전 새로 산 것 같은 신발(AS)과 새로 산 배낭을 시험 삼아 사용 해 보지도 않아서 배낭을 메어 몸에 맞추어 보고 거울을 바라보니 집사람은 산에만 가려면 기분이 좋아서 저런단다. 사실은 장거리 산행에 나서는데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물품을 착용 하려니 적잖은 부담이 돼서 몸에 맞춰 보느라 그러는 것인데 그런 모습이 즐거워 보였나 보다.
지난 산행에서 친구 녀석이 함께 하지 못해서 불편한 점이 여럿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아침 식사다. 지난번에는 혼자 식사 할 것을 생각 해 우유와 빵을 준비 했다 설사로 인해 혼이 난 경험을 하고 이번엔 친구가 집으로 데리러 오면 김밥을 사야지 했는데 친구 차를 가로막고 있는 차 때문에 데리러 오지 못한다 해서 서둘러 택시를 타고 원두막으로 가는 도중에 택시를 세워 놓고 김밥을 세줄 샀다.
버스에 오르니 좌석 상태가 안 좋다. 의자가 뒤로 젖혀지지 않아 고생을 한 경험 때문에 4시간 가까이 차를 타고 이동 할 일이 상당히 부담스럽다. 원래 차에서 깊은 수면을 취하지 못하는 편이기도 한데 좌석이 불편해선지 거의 뜬눈으로 차안에서 있어야 했다. 산행지가 가까워 오면 준비하라고 실내등이 켜지는데 그때 등산화를 신고 아침식사를 하려고하니 꼬불꼬불한 길을 올라가느라 그래선지 갑작스런 멀미로 인해 아침식사는 포기해야 했다.
산행지에 도착하니 또 우르르 몰려간다. 약간의 멀미로 준비가 늦어져 출발 역시 늦게 했는데 친구에게 오늘은 쉬엄쉬엄 가자고 하니 천하무적인 놈이 5주 동안 산행을 못해서 천천히 가면 더 좋단다. 그렇게 산행은 시작 되었고 1시간 40여분 뒤 1022봉에서 김밥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원방재에 도착하니 천하무적인 놈이 임도를 이용해 상월산은 버리고(?) 이기령으로 직접 가잔다. 나도 그런 마음이 은근 슬쩍 들지만 그렇다고 원칙을 크게 벗어 날 수는 없는 일이고 또한 상월산 정상 인증 샷도 남기고 싶어 힘들어도 쉬엄쉬엄 올라가자고 했다. 대간 꾼들이 말하는 진짜 상월산 정상에 오르니 여러 사람들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린 조금 더 진행 한 이후에 식사를 하자하고 계속 진행을 했다.
이기령에 도착하니 차를 주차하고 야영 하는 텐트가 보인다. 부러운 시선을 감추지 못하고 친구에게 우리도 언젠가는 저런 산행을 하자고 하고 갈미봉으로 향했다. 갈미봉 가는 도중 샘터를 발견해 모두들 즐거운 마음으로 샘터 물을 마시는데 나는 물이 충분해서 위생상 가져온 물이 더 좋을 것 같아 내 물만 마셨다.
갈미봉으로 오르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저기쯤이 갈미봉이겠지 하면 역시 또 다른 봉우리가 기다리고 있어서 체력보충을 위해 점심을 하고 진행 했는데 많이 힘이 들었다. 이기령에서 약 두 시간이 소요 되었고 이후 한 시간 가까이 고적대 오름 역시 힘겨움을 더해갔다. 아마도 산행시간이 5시간을 넘어가면서 체력적인 부담이 더해 가고 있었는가 보다.
연칠성령에 도착하면 하산이니 산행이 거의 끝난 줄 알았는데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 한 곳 까지 상당한 지루함이 있었다. 다리에서 이상 신호가 오기 시작해서 평상시 하산 속도에 비해 상당히 속도를 낮추었는데도 불구하고 끝내 통증이 오기 시작하면서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굳이 이렇게 몸을 혹사 시켜가면서 대간 산행을 계속해야 하는지 의문도 들었고, 체중이 많이 나가니 무릎 관절에 이상이 오니 살을 빼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암튼 그 시간 이후 산행은 즐거움이 아니라 잔인한 시간이었다.
50m밖에 안 되는 칠성봉은 물론이요 하늘문 구경은 생각하기조차 싫었다. 하지만 쌍폭포와 용추폭포는 다시 보고 싶어서 아픈 다리를 끌고 끝내 돌아보고 왔다. 이제 무릉계곡 입구만 가면 되는데 사람들은 입추에 여지없이 몰려들고 있었고 아픈 다리는 극에 달아 주차장 까지 너무 힘들고 멀게만 느껴졌다. “삼화사 구경 하자”는 친구의 말에 고개만 설레설레 흔들고 차가 있는 곳으로 가서 씻을 곳을 찾으니 화장실 밖에 없단다. 관리소에서는 입장료 징수를 위해 주차장 아래계곡에 담장을 쳐놓고 상수도 보호라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린다. 할 수 없이 화장실에서 도둑(?) 샤워를 하고 후미를 기다리는데 금방 도착 했다. 내가 다리 아파 못 걸은 생각은 안하고 빨리 왔다는 생각만 했으니 쩝~!
몸이 지쳐선지 묵호항에서는 술도 먹기 싫어 배고픔을 만회하려고 회만 입에 쳐 넣으니 맛이 너무 없다. 다른 사람들은 너무 맛있게 먹는데 나만 깨질깨질~! 더욱이 술도 맛이 없으니 배는 고프고 지치고 차에 오르니 의자는 불편하니 애고고~! 대간 이거 정말 힘드네. 쩝~!
※ 산행 사진
▲ 백봉령(白鳳嶺, 780m)은 삼척에서 소금이 넘어오는 소중한 길목으로 정선 사람들에게는 매우 소중했던 고개다.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한 지형도에는 '엎드릴 복(伏)자'를 써서 백복령(白伏嶺)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이름은 원래 이름이 아니고 일제에 의해 바뀐 이름이라고 한다. 옛 기록을 살펴보면 '대동여지도'에는 백복령(白福嶺)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택리지'에는 백봉령(白鳳嶺)으로 기록되어 있다. '흰 봉황'이라는 뜻이다. 또한 산경표에는 '일백 백(百)'자를 써서 백복령(百福嶺)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외에도 '증보문헌비고'에는 백복령(百福嶺)과 백복령(百複嶺)을 혼용하면서 희복현(希福峴)이라는 다른 이름도 전하고 있다. '복을 바라는 고개'라는 뜻이다. 이렇듯 백봉령은 여러 개의 이름을 지니고 있다. 대부분의 이름이 상서롭거나 복을 바라는 의미의 이름이지만 현재 공식적으로 쓰고 있는 이름인 백복령(白伏嶺)은 그 뜻이 사뭇 다르다. '백기를 들고 항복하는 고개'라는 정도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국립지리원이 아직도 이 고개의 이름을 백복령(白伏嶺)으로 쓰고 있다면 마땅히 바로 잡아야 할 일이다. 한 가지 다행한 것은 현지의 이정표에는 모두 백봉령으로 쓰여 있다는 사실이다. 백봉령이라는 이름은 '하얀 봉황의 고개'이니 그 뜻도 좋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현지의 이정표와 사람들의 뜻을 따라 이 고개를 백봉령(白鳳嶺)으로 표기한다.
▲ 백봉령 산행 시작.
▲ 처음 만나는 이정표
▲ 두번째 만나는 이정표( 계속 백복령이 아닌 백봉령이라 표기 되어 있다)
▲ 헬기장(1022m) 이곳에서 김밥으로 아침 식사
▲ 원방재 : 동해시 관촌 마을에서 정선군 임계면 가옥리를 잇는 고개다. 고개를 사이에 두고 가목리에는 부수베리 계곡이, 관촌 마을에는 서학골 계곡이 흐른다. 서학골이라는 이름은 학이 둥지를 틀고 살았던 데서 비롯했다. 서학골은 사악골 또는 삿골로도 부른다. 원방재에 대한 유래가 없어 사전을 검색 해보니 “원방”은“먼 지방”, 또는 먼 곳을 뜻 하는 것으로 보아 먼 거리의 고개를 힘들게 넘나들던 사람들이 만들어 낸 이름 같다고 한다. 여기서 부수베리는 부싯돌을 벼리는 곳 이라는 말과 뾰족한 부싯돌 마을이라는 이야기가 공존한다고 한다. 이기령에서 부터 부수베리 마을까지는 약 9km의 임도로 이어진다고 한다.
▲ 처음보는 조망 (지나온 1022봉)
▲ 상월산(上月山): 유래는 찾을 길이 없었다. 다만 국어사전에서 “상월(上月)”은 지난달의 옛말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떠오르는 달을 맞이하는 산이 아닐까 싶다. 대간 꾼들이 말하는 상월산이고 20여분 뒤 산림청이 말하는 상월산에는 헬기장이 있다.
▲ 산림청이 주장 하는 상월산
▲ 이기령(耳基嶺, 810m):“동기(銅基)”의 순수 우리말로 구리터가 있던 마을의 이름에서 유래 되었다. “구리터”의 중간 자음 ㄹ이 탈락되어 “구이터”가 되고 “구이”가 “귀”로 축약되어 “귀이(耳)로 표기되었다 한다. 동해시 관로동과 정선 부수베리를 잇는 고개이다. 산행 방향 좌측으로 석연암이 있는 동해시(東海市) 이기동(耳基洞)이 있다.
▲ 이기령에 있는 백두대간 설명판 (야영 하는 사람이 부럽기만 하다)
▲ 갈미봉 오름길의 샘터 (제법 많은 량의 물이 있었다)
▲ 갈미봉(葛味峰 1,260m):전국적으로 같은 이름이 많이 있다. 모두 같은 어원으로 쓰인 것으로 보이며 “갈”은 나누다(分)와 “미”는 山을 뜻하니 두 개의 봉우리를 말한다. '갈미봉'이란 순수한 우리말로서 봉우리가 두 개로 갈라져 있는 산이라고 하는데, 높은 봉우리에 갈미봉이라 붙였고 수병산과 함께 두 개의 봉우리를 이룬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수병산(괘병산) 이정표도 있다. 욕심 같아서는 수병산을 다녀오고 싶지만 진행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 포기 했다.
▲ 갈미봉에 있는 수병산(괘병산) 이정표
▲ 이정목에는 고적대 삼거리라고 적혀 있다. 이곳으로 하산해도 무릉계곡으로 갈 수 있다.
▲ 운무가 끼어 조망을 할 수 없었는데 그나마 이런 바위라도 봐서 위안을 삼으며 진행
▲ 고적대(高積臺) : 정선군, 삼척시, 동해시의 분수령을 이루는 산으로 기암절벽이 대를 이루어 신라 고승 의상대사가 수행하였다고 전해지는 고적대는 동쪽으로 뻗혀진 청옥산, 두타산이 아울러 해동삼봉(海東三峰)이라 일컬어지며, 신선이 산다는 무릉계곡의 시발점이 되는 명산으로 높고 험준하여 넘나드는 사람들의 많은 애환이 서린 곳이다. 동쪽으로 흐르는 수계(水系)는 전천(箭川)으로, 북쪽으로 흐르는 수계는 임계천(臨溪川)으로, 남서쪽으로 흐르는 수계는 골지천(骨只川)으로 각각 흐르는데, 동쪽 비탈면은 급경사를 이루나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무릉계곡으로 이어져 경관이 수려하고, 서쪽 비탈면은 경사가 비교적 완만하다.
▲ 연칠성령(連七星嶺): 백봉령과 댓재 한 중간에 위치한다. 청옥산, 두타산 등반 후 하산을 시작하는 기점으로 가장 많이 이용한다. 연칠성령은 '빼어난 여러 봉우리(七星)을 연결하는(連) 고개(嶺)'라는 뜻이다. 동해시 삼화동의 무릉계곡에서 문간재를 넘어 호계를 지나 막다른 골짜기에 들어서면 하늘로 올라갈 듯한 가파른 산길이 있어 삼척시 하장면 중봉리 당골로 넘어가는 산마루가 연칠성령이다. "이 재를 넘어 다니기가 하도 험난하여 난출령(難出嶺)이라 했다고도 한다. 또 산마루에 망경대가 있다. 무릉골을 거슬러 문간재가 있고 이곳에서 일곱 험준한 산등성이를 넘는다. 조선조 인조 원년(1623년) 澤堂 “李植”이 중봉산 단교암에서 은퇴 하였을 때 이곳에 올라 한양의 임금을 사모하며 바라 본 곳이라 하여 망군대(望君臺)라고도 부른다." 작은 돌탑이 있는 망군대는 모르고 지나쳐 왔다.
▲ 연칠성령에 있는 또 다른 이정목
▲ 연칠성령에서 내려 오며 처음 보는 이정목에는 칠성폭포라 되어 있는데 폭포는 자세히 보지 못했다.
▲ 처음 만나는 계곡이라 발도 담그고 가고 싶었는데 얼굴에 흐르는 땀만 씻고 무릎이 아파 서둘러 가야 했다.
▲ 사원터에 있는 대피 시설
▲ 사원터
▲ 이런 곳에서 발담그고 라면 끓여 먹는 사람들을 보았는데 너무 부러웠다. 애휴 대간 산행이 뭔지~!
▲ 문간재 (신선봉 갈림길) : 다리 통증이 심해서 신선봉은 다음에 올 때 오르기로 했다.
▲ 문간재로 연결된 철계단 (이곳 부터 등산로 시설이 잘 되어 있다)
▲ 칠성봉에서 못 본 모습을 계단으로 내려 오며.
▲ 선녀탕
▲ 박달계곡과 오른쪽의 다른 계곡의 물이 하나가 되게 하는 두타산 쌍폭포
▲ 용추폭포(龍湫瀑布):용추라 부르고 있는 이 폭포는 상중하(上中下)3연(淵)으로 되어 있있는데, 상 ,중담은 옹형(甕型:옹기 항아리 모양)이고, 하담은 주위 둘레 20m, 깊이는 알 수 없으며,중연에는 절벽으로 떨어져 내리는 폭포수는 흰 명주(明紬)천에 구슬이 달린 것과 같이 아름답고 그 수원은 청옥산에서 흘러내리는 옥수로서 물줄기가 폭은 2m, 높이는 10m이다.1797년(正祖21년) 삼척부사 유한준(兪漢雋)이 바위에다 용추라고 조각하고 제사를 지냈으며, 그 후 한발(旱魃)시엔 기우제(祈雨祭)를 올리는 제단이 되기도 했다.
▲ 학소대
▲ 삼화사
▲ 삼화사 위의 폭포는 설악산 토왕성 폭포와 비교 대상은 아니지만 닮은 듯 하다.
▲ 무릉반석:무릉계 반석은 1000평이 넘는 대반석이다. 반석 주위 군데군데 노송이 서 있는 사이로 무릉계 반석을 내려다 보는 금란정이 오른쪽에 보인다. 금란정으로 가기 전 길가에 '중대천석 두타동천(中臺泉石 頭陀洞天)'이라고 쓴 글이 새겨져 있다. 봉래 양사언이 썼다고 일중 김충현이 고증하여 새로이 양각한 것이다. 원래의 글씨는 무릉계 반석 왼쪽 아래쪽에 남아 있으나 세월의 풍상과 계류에 휩쓸려 내려온 돌과 모래의 힘으로 거의 마멸되어 흔적만 남아 있다시피 한 것을 재현하여 옛사람이 감동한 두타산 무릉계의 빼어남을 기린 문장을 전승하려 한 것이다.
▲ 매표소 입구
▲ 주차장 산행 마침.
'백두대간2차(完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1구간. 댓재→황장산→큰재→귀네미마을 갈림길(광동댐 이주 단지) (0) | 2012.11.05 |
---|---|
11구간. 연칠성령→청옥산→박달령→두타산→통골재→댓재 (0) | 2012.11.05 |
9 구간. 삽당령→두리봉→석병산→고병이재→생계령→백복령 (0) | 2012.11.05 |
8 구간. 대관령→능경봉→골폭산→닭목재→화란봉→석두봉→삽당령 (0) | 2012.11.05 |
7 구간. 진고개→노인봉→소황병산→매봉→곤신봉→선자령→새봉→대관령 (0) | 2012.1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