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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정보

※ [월간 산 2005-08-23 16:08] [최선웅의 지도이야기 6] 산의 높이

※ [월간 산 2005-08-23 16:08] [최선웅의 지도이야기 6] 산의 높이

“모산봉을 1m 높이는 데 시민의 동참을 바랍니다”라는 구호 아래 온 동네 사람들이 흙을 운반해 산을 3자3치 높이는 재미있는 사건이 지난 6월16일 강릉에서 있었다. 강릉시 강남동 칠사당 남쪽에 위치한 104m의 모산봉(母山峰)은 강릉의 안산으로 밥그릇을 엎어 놓은 것처럼 생겨 ‘밥봉’이라고도 하고, 인재가 많이 배출된다 하여 ‘문필봉’이라고도 불렸는데, 조선 중종 때 강릉부사로 부임한 한급(韓汲)이라는 자가 강릉에서 큰 인물이 나오는 것을 두려워해 이 봉우리를 3자3치 깎아 내렸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때 깎인 3자3치를 복원하기 위해 강릉 사람들이 나선 것이다.

1995년 영국에서 제작된 ‘잉글리시맨’(원제 The Englishman Who Went Up a Hill but Came Down a Monutain)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전설 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로 무대는 1917년 웨일스 지방의 변두리 마을. 영국인 측량사 두 사람이 피넌가루라는 산의 높이를 측량해 지도에 표기하기 위해 이 마을을 찾는다.

이들이 측량한 산의 높이가 1,000피트(약 305m)에서 20피트가 모자라 측량법이 정하는 산의 높이에 해당되지 않자 ‘언덕’이라는 판정을 내린다. 오래 전부터 ‘피넌가루’를 자랑으로 여겨온 마을 사람들은 ‘산’을 지키려고 흙을 퍼올리고, 측량사들의 귀환을 저지하느라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산의 높이가 이해관계로 얽혀 큰 이슈가 됐다는 얘기다.

넓은 의미로 높이라는 것은 나무의 높이, 빌딩의 높이, 산의 높이 등 여러 가지로 표현되지만, 그 기준은 각기 다르다. 나무나 빌딩의 높이는 지면으로부터의 높이로 비고(比高)라 하고, 산의 높이는 해면으로부터 잰 높이라 하여 해발고도(海拔高度), 또는 표고(標高)라 하고, 비고에 반해 진고(眞高)라고 한다.

그러나 바다는 조수간만의 차가 있고, 파도나 해류 등에 의해 해수면이 일정치 않아 육지의 정확한 높이를 재기 위해서는 평균해면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닷가에 조수간만의 차를 측정할 수 있는 험조장(驗潮場)을 설치하여 오랜 기간동안 검조기록을 토대로 평균해면을 얻어낸다.

 

엄밀히 말하면 평균해면은 바닷물이 들고나는 바닷가이기 때문에 육상에 정확한 고정점을 설치해야 된다. 이렇게 육상에 설치된 평균해면의 고정점을 수준원점이라 하는데, 우리나라의 수준원점은 1963년에 인천시 남구 용현동 인하대 캠퍼스 내에 설치됐고, 그 높이는 26.6871m다. 이 수준원점을 기준으로 국도변이나 관공서, 학교 등지에 2~4km 간격으로 5,251개의 수준점을 전 국토에 설치해 높이를 측정하는 수준측량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지형도 상에서 산의 높이를 알 수 있는 것으로는 삼각점과 표고점, 그리고 등고선이 있다. 삼각점은 원래 위치의 기준이 되는 기준점으로, 측량을 위해 시야가 트인 곳에 설치해야 하기 때문에 산이나 구릉지대의 삼각점은 대부분 산정부에 설치되어 있다.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는 곳이 산정부라 하더라도 그곳이 반드시 가장 높은 곳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산의 높이를 놓고 종종 시시비비가 일어나기도 한다. 지역의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곳에 표시된 표고점도 해발고도인데, 지형도에서 보면 산봉우리가 있는 곳에 등고선 색깔과 동일한 색으로 표시된 표고점과 표고수치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지도를 들고 산행하다 보면 표고나 산이름이 없는 봉우리를 자주 만나게 된다. 이런 봉우리들을 흔히 무명봉이라 하는데, 이 봉우리의 높이를 알려면 등고선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봉우리가 있는 마지막 등고선의 높이와 그 다음 가상의 등고선과의 중간 높이를 잡으면 된다. 축척 1:25,000 지형도의 등고선 간격은 10m이기 때문에 봉우리의 마지막 등고선이 1210m인 경우 봉우리의 높이를 1215m로 추정한다는 뜻이다. 이 경우 몇m의 오차는 감안할 수밖에 없다.

 

최근 가야산이 산높이 때문에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 가야산의 주봉은 상왕봉(象王峰)으로 삼각점 표석이 있는 높이는 1,430m였다. 그러나 상왕봉 서남쪽으로 약 250m 떨어진 곳에 솟아 있는 바위봉인 칠불봉이 주봉인 상왕봉 보다 3m 높다는 것이 문제다.

현재 상왕봉에는 합천군이 세운 정상표석이 있고, 칠불봉에는 성주군이 세운 정상표석이 있어 저마다 가야산 정상임을 내세우고 있다. 성주군의 요청으로 2004년 2월 국토지리정보원에서 GPS측량기로 실측한 결과 상왕봉이 1,429.8m, 칠불봉이 1,432.8m로 의외의 결과가 나와 논란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 높이는 공표된 것은 아니지만 칠불봉이 상왕보다 2.6m 더 높고, 가야산의 높이가 2.8m 높아진 결과가 됐다.

지도를 보면 가야산의 주능선은 경북과 경남의 도경계를 이루며 성주군과 합천군이 가야산을 공유하고 있다. 행정경계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선이기 때문에 주능선의 산마루를 따라 경계가 그어졌다면 상왕봉과 칠불봉은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기 때문에 소유를 주장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삼각점의 높이를 측정할 때는 트랜싯에 의해 경사거리와 연직각으로부터 수평거리나 고저차를 측정하기 때문에 삼각점은 위치는 정확하지만, 높이는 수준점에 비해 정확도가 다소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 산의 높이는 빛의 굴절 등 측량기계에 의한 오차, 온도나 습도 등 기상변화에 의한 자연적인 오차, 측량하는 사람의 부주의나 미숙에 따른 인위적인 오차, 동일한 조건하에서 측정해도 발생하는 우연적인 오차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정확한 높이를 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단 몇 미터로 서열이 정해지고, 단 몇 미터로 이해가 엇갈리는 산의 높이는 이제 정확하게 재어 놓을 필요가 있다. 산은 그 높이로 존재가치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 글 최선웅 한국산악회 부회장·매핑코리아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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