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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기맥(完走)

진양기맥 2구간. 수망령→금원산→기백산→상비재→바래기재→솔고개→개목고개

 

□ 진양기맥 2구간 [진양기맥 산행 1회째 ]

용추사→수망령→금원산→기백산→늘밭고개→상비재→바래기재→솔고개→개목고개

◇ 산행지 : 경남 함양군 안의면. 거창군 위천면,마리면 일원

◇ 산행일자 : 2012. 11. 17(토). 날씨 : 흐림

◇ 참가인원 : 대전시 산사모 회원 36명

◇ 산행친구 :  금원산 까지는 오후조, 기백산 이후 영선조

◇ 산행거리 : 약22.9km ( 접속구간: 수망령→용추사6km 포함 )

<2구간>수망령→2.5→금원산→4→기백산→4.75→상비재→0.25→580.7봉→1바래기재(3번 국도)→2→솔고개→2.4→개목고개

◇ 산행시간 : 후미기준 8시간 소요 예상, 산행시간 7시간 25분 <중식 15분 포함>

◇ 시간대별 요약

- 04:40 기상 (조식)

- 05:30 반석역

- 06:05 대전 시청 출발 

- 07:40 용추사 입구 주차장 도착

- 07:54 산행시작

- 09:01 수망령 접속

- 09:59 금원산

- 10:04 동봉

- 10:08 유안청 폭포 갈림길

- 10:25 수망령 임도 갈림길

- 10:40 점심(15분)

- 11:16 누리덤

- 11:26 고학마을 갈림길

- 11:44 금곡 갈림길

- 11:49 상촌 갈림길 1

- 12:19 상촌 갈림길 2

- 12:22 819봉

- 12:52 상비재

- 13:03 580봉

- 13:21 바래기재

- 14:22 솔고개

- 14:28 과수원

- 15:17 개목고개 산행 마침

- 16:02 후미 도착(8시간 10분)

- 16:30 개목고개 출발

- 18:35 대전 시청 도착

 

특기사항

① 진양기맥 1구간 경방 기간으로 내년 1월로 연기 

② 기백산 이후 등산로 정비 안되어 있음 (잡목, 가시넝쿨, 칡넝쿨)

③ 금원산까지 고전 오후조, 이후 기백산 이후 영선조 동행 산행

④ 비온 뒤 추운 날씨 였음

⑤ 산행 후 개목고개 뒤풀이(소시지 김치 볶음과 라면) 

 

산행지도및 고도표  

 

산행 후기

1대간 9정맥 완주 후 앞으로 목표산행은 없다고 스스로 다짐했는데 또다시 2차 대간을 완주해야 했다. 목표산행이 없으면 지속적인 산행이 있을 수 없으므로 선택한 결과였는데 백두대간을 두 번째 하다 보니 1차 때와는 달리 새로운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9정맥을 또 하고 싶은 마음은 없던 차에 기맥을 시작 한다고 하니 기맥에 도전하기로 했다. 산경표에는 언급되지 않은 기맥이지만 산줄기를 이어 탄다는 마음으로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쯤은 목표산행을 해도 목표산행에 얽매이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시작하기로 했다.

당초 산사모에서 1구간은 남덕유산에서 수망령으로 산행 계획을 잡았으나 경방기간임을 감안 하여 2구간을 첫 산행으로 재차 공지되어 올라왔다. 산행공지 후 산행 참석 댓글을 보니 참석인원 모두 만만치 않은 실력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기맥이니 만큼 참석인원 거의 모두가 백두대간 1회 이상은 완주한 분들이란 예상은 했지만 면면을 살펴보니 1대간 9정맥 완주한 분들도 수두룩하고 산을 잘 타는 쟁쟁한 분들만 있다. 친구는 아직 정맥을 완주하지 못해 정맥만 참석한다고 하니 이제 부터는 혼자인데 다행히 명단에 정병채 형님과 안용진 형님 두 분이 있다. 두 분 모두 산행에 있어서는 나보다 뛰어난 분들이니 나의 페이스에 맞춰 달라고 부탁 드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짐을 꾸렸다.

산행을 준비 하면서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 일기예보다. 금요일과 주말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시간대별 예보를 보니 다행히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에는 비가 올 확률이 낮다. 하지만 우의는 상하의 모두 챙겨 배낭에 넣고 갈아입을 옷가지도 충분히 챙겨서 가방에 넣었다. 아침은 집에서 하고 가고 6시 시청 출발이니 반석역에서 첫차를 타면 충분하여 알람을 맞춰놓고 잠을 청했다. 하지만 산행 전 늘 그렇듯 잠을 설친 후 일어나 시청으로 향해야 했다. 버스에 오르니 백두대간과 9정맥을 하며 만난 분들이 대부분이고 낯선 분들은 많이 보이지 않는다. 출발 시간에 거의 딱 맞춰 도착하다 보니 자리는 역시 없어 뒷자리로 가니 반가운 두 분이 있다. 병채 형님 옆에 앉은 용진 형님 옆에 앉아 남은 정맥에 대해 여쭤보니 이제 딱 두 구간 남으셨다 한다. 모두 대단한 열정이다.

밤에 잠을 설친 만큼 차안에서는 비교적 깊이 잠을 잔 것 같다. 그 때문인지 산행지에는 너무 일찍 도착한 느낌이다. 단체사진을 찍고 역시 우르르 출발 한다. 수망령까지 시멘트 도로라 예상은 했지만 엄청난 속도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순간에 병채 형님과 용진 형님을 놓쳐 버린 이후엔 거의 꼴찌 수준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언제나 초반이 힘든데 후미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더 힘든 듯 했다. 금원산 정상가기 전에 깁백기 후미 대장님을 만나 뒤에 겨우 5명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후 비익조님과 셋이서 산행을 계속했다. 금원산을 지나자마자 나는 식사를 하자고 했다. 당뇨 환자인 나는 식사조절을 잘 못해 이미 컨디션 난조였고 식사를 해야만 컨디션을 찾을 것 같아 바람이 불지 않는 곳 능선에서 식사를 했는데 식사를 하는 동안 후미 5명이 앞질러 지나갔고 식사를 마친 후에는 최후미에서 벗어나고자 속도를 높였다.

기백산 정상을 지나면서 식사하는 인원들이 종종 눈에 띠면서 후미에서 벗어난 느낌을 받았는데 바래기재로 가는 도중에 영선조를 만났다.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알고 보니 회장님이 밤새 과음을 하시고 수면을 하지 않고 오셔서 선두가 천천히 가는 상황이었다. 영선조를 만나기 전 병채 형님과 용진 형님도 만나 뵈었는데 속도가 늦는 나는 한 눈 팔 틈을 만들지 않고 인사만 하고 지나쳤다.

바래기재까지는 이정표도 잘 되어있고 선답자들의 시그널도 곳곳에 걸려있어 큰 어려움 없이 진행 했으나 바래기재에서 이후 진행 하는 데는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 국도를 횡단해야 함과 이정목이 없어 잠시 선두는 고전(?)했는데 다행이 진입로를 잘 찾아 다시 진행을 시작했는데 이정표는 잘되어 있으나 잡목과 칡넝쿨 그리고 가시나무로 인해 신경을 곤두서며 산행에 임해야 했다. 많은 선답자들이 지나간 길이지만 워낙 다니지 않은 산길은 길이 뚜렷하지 않아 눈이 와서 쌓여 있다면 등로를 찾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암튼 바래기재 이후엔 특별함이 없는 산길이고 개목고개에서 산행을 잘 마쳤다. 씻을 곳이 없어 옷만 갈아입은 후 소시지 김치볶음으로 하산주를 하고 대전으로 향할 수 있었는데 역시 거의 모두가 선두로 하산을 했고 후미와의 시간차이는 거의 없었다.

 

산행 사

▲ 용추계곡 입구 도착

용추계곡 : 옛날 안의현에는 세곳의 빼어난 절경을 간직한 곳이 있어 '안의 삼동' 이라 전한다. 이곳 용추계곡은 '깊은 계곡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진리삼매경에 빠졌던 곳' 이라 하여 '심진동'이라 불리우기도 한다. 용추계곡 입구에 들어서면 심진동의 진수라 할 수 있는 심원정이 있다. 유학자 돈암 정지영이 노닐던 곳에 그 후손들이 고종 3년 (1806년)에 세운 것으로 수수하고 고풍스런 정자에 오르면 마음까지 맑아 진다는 청신담과 층층이 포개진 화강암 무리가 한눈에 펼쳐진다고 한다.(출처:함양군 홈페이지) 하지만 우린 차를 타고 장수사 입구까지 왔으니 심원정은 차후에 들려보아야 할 것 같다.

▲ 장수사 조계문(용추사 일주문): 신라 소지왕 9년(487)에 각연대사가 장수사를 창건할 때 건립하였다고 전하는 문으로써 측면으로 기둥이 하나로 된 일주문이다. 일주문은 사찰로 진입할 때 제일 먼저 통과하는 문으로 일반적으로 기둥 하나로 지탱하는 건물이다. 장수사는 1951년 6. 25동란때 불타버리고 일주문만 남아 있다가 1975년에 중건하였다. 이 문에는 『덕유산 장수사 조계문』이란 현판이 걸려 있는데 건물은 간격이 4. 1m로 좌우 기둥 둘레가 3m, 높이 3m로 창방위에 평방을 돌려 높은 포작의 다포계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정면에 공간포가 5구, 측면에는 3구가 놓여 있고 정면과 측면의 공포 간격은 동일하다. 일주문으로는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규모가 대단히 크며, 이를 가능케 한 견실한 결구형태와 세밀한 치목수법은 대단히 뛰어났다. 주초는 자연석으로 덤벙주초이다. 현재 용추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하여 '용추사 일주문'이라고 부르기도 하니, 장수사는 이제 잊혀진 절이나 다름 없다.

 

 

▲ 장수사 조계문 앞 단체사진

 

▲ 산행 시작

 

용추사 : 신라 소지왕 9년(487)에 각연대사(覺然大師)가 창건한 옛 장수사와 4대 부속 암자중에서 현존하는 유일한 사찰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인 해인사(海印寺)의 말사(末寺)이다. 6.25동란때 소실되어 1953년 안의면 당본리에 있는 봉황대에 별원을 차려 놓았다가 옛터의 복원을 추진하여 1959년 재건하였다. 주변 경관이 수려한 자연속에 위치하고 있으며 옛 장수사의 흔적을 간직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4호인 『덕유산장수사 일주문(德裕山長水寺 一柱門)』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가 보존 되어 있으며, 이곳 장수사에서 설파 상언대사(雪坡 尙彦大師)가 전국의 승려들을 모아놓고 화엄경(華嚴經)을 강의 했던 유명한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용추사 뒤편 용추계곡 상류에는 기백산군립공원과 용추자연휴양림이 있고 서북쪽 산 정상에는 정유재란때 왜구와의 혈전이 벌어졌던 황석산성(사적 제322 호)이 있다. 우린 진행 하기 바빠 절은 구경도 못하고 서둘러 가야 했다. (사진 인터넷 펌)

▲ 용추폭포 : 함양 심진동 용추폭포는 우리나라 동천구곡의 대표격인 안의삼동(安義三洞)의 하나인 심진동을 대표하는 경관으로, 심진동 상류에 있는 용추폭포를 유람하면 안의삼동의 명승유람이 끝이 난다는 말이 있으며, ‘용추폭포’라는 이름의 수많은 폭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대표적인 명소이다. 용추폭포는 높이 약 15m, 호소의 직경이 약 25m로 지우천 상류에 형성된 좁은 골짜기를 따라 자리 잡고 있으며 주변의 울창한 삼림과 암반 위를 흐르는 맑은 계류, 용추에서 떨어지는 우레와 같은 폭포수, 그 아래의 깊은 연못 등이 어우러진 명승지이다.

*안의삼동(安義三洞): 옛날 안의현에 있는 세 곳[(화림동(花林洞), 원학동(猿鶴洞), 심진동(尋眞洞)]의 빼어난 절경을 간직한 곳을 의미하며, 영남 제일의 동천이었음. *동천(洞天):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 (사진 인터넷 펌)

▲ 거망산 갈림길

 

용추자연휴양림 [ 龍秋自然休養林 ] : 1993년에 개장했으며, 구역면적은 159만㎡, 1일 수용인원은 1,000명이다. 함양군청에서 관리한다. 용추계곡 자연휴양림이라고도 한다. 해발 1325m의 금원산 수망령 기슭, 깊은 계곡의 아름다움으로 진리삼매경에 빠졌던 곳이라 하여 심진동이라 불렸던 용추계곡 입구에 조성했다. 이 일대가 6·25전쟁 직후 빨치산의 은거지였을 만큼 용추계곡은 깊은 골짜기에 풍부한 수량과 다양한 수종의 원시림으로 이루어져 자연경관이 수려하다. 심원정을 비롯하여 매바위, 상사바위, 용추폭포 등의 비경이 있으며 숲 속에는 취나물, 더덕, 오미자 등이 산재해 있다.휴양림에는 무학(자초)이 말년에 기거했다는 은신암, 삼국시대 축성되었다는황석산성(사적 322)에 이르는 등산로가 있으며, 삼림욕장, 산책로, 광장, 전망대 등의 편의시설과 야외교실, 체력단련시설, 물놀이장, 농특산물판매장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출처]:용추자연휴양림  두산백과

 

 

수망령(水望嶺): 수망령이란 이름을 풀이해 보면 ‘물을 바라보는 고개’라는 뜻이지만 실제 물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수망령에 대한 유래를 살펴보다 보니 이곳에서는  용화교가 창립된 곳이라고 한다.

용화교[ 龍華敎 ]:증산교(甑山敎) 일파이다. 이근하는 남원유생 김광찬(金廣贊)의 제자로, 강증산(姜甑山)이 전한 「도리원서문(桃李園序文)」과 『용화경(龍華經)』을 연구한 끝에, 「도리원서문」이 『용화경』에서 유래된 것임을 알고 불교와 선교(仙敎)의 장점을 취하여 1926년 동지들을 규합, 경상남도 함양군 대화면 상원리(지금의 안의면 상원리)의 수망령(水望嶺)에서 이 교를 창립하였다.1928년 경상남도 거창군 북성면 월성리에 포교소를 두고 포교하여 신도가 한때는 400여 명에 이르렀으나 1930년 이근하의 사망으로 소멸되고 말았다.일심성경(一心誠敬)ㆍ수행언태(修行言泰)ㆍ극연성리(極硏性理)ㆍ화순도덕(和順道德)ㆍ수계이신(守戒履信)ㆍ친인자애(親仁慈愛)ㆍ환난상부(患難相扶)ㆍ인욕대도(忍欲大導) 등 8강령이 제시되었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정례기도행사를 하였다. 경문(經文)과 주문(呪文)을 반복하여 독송하면 경문의 진의를 터득하고, 영감작용에 의하여 병마(病魔)가 스스로 물러가 병이 치료되며, 점차 지각이 열려 큰 안락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쳤다.(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수망령에 있는 등산 안내도(이곳에서 좌측으로 거망산 황석산으로도 이어 진다. 금원산 기백산 네 산을 환 종주 하기도 한다)

수망령에 있는 금원산 방향 계단

 

▲ 올 겨울 처음 본 눈

 

▲ 금원산의 유래: 금원산의 본디 이름은「검은 산」이다. 옛 고현의 서쪽에 자리하여 산이 검게 보인데서 이름 하였다.이 산은 일봉(一峰), 일곡(一谷)이 모두 전설에 묶여 있는 산이다. 금원산 정상아래 바위에는 황금원숭이의 비밀이 전해진다. 금원산은 옛날 금원숭이가 하도 날뛰는 바람에 한 도승이 그를 원암이라는 바위 속에 가두었다는 전설에 유래해 금원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유래가 있다. 금원암은 마치 원숭이 얼굴처럼 생겨 낯바위라 하는데 음의 바꿈으로 납바위라 부르고 있다.

 

▲ 동봉

▲ 뒤 돌아 본 금원산

▲ 동봉

▲ 동봉에서 바라 본 기백산 

 

 

유안청(儒案廳)폭포 갈림길: 유안청폭포은 원래 이곳에 있던 가섭사로부터 유래하여 가섭도폭이라 불렀는데, 조선시대에 들어와 지방에서 치뤄지는 향시 준비를 위해 유생들이 공부하던 유안청(儒案廳)이 들어서서 유안청계곡이라 불렀다.

 

▲ 이곳에서 수망령으로 갈 수 있는 임도가 있다.

 

 

 

▲ 전망데크에서 바라 본 누룩덤과 기백산

 

 

봉우리의 바위들이 마치 누룩더미로 쌓은 여러 층의 탑처럼 생겼다 하여 ‘누룩덤’이라고도 한다.막걸리 재료인 누룩을 포개 놓은 듯한 형상의 누룩덤은 보는 위치에 따라 모습을 각각 달리하는데 커다란 꽃상여인가 하면 석관(石棺), 혹은 보물상자로 보이기도 한다.

 

▲ 뒤 돌아 본 누룩덤

▲ 기백산(箕白山1331m)은 키 큰 하얀산이란 뜻도 있으며 기백산의 이름은 이십팔수(二十八宿) 별자리의 하나 이며, 청룡이 다스리는 기(箕)와 인연을 갖고 있다. 음양 가운데 양(陽)인 남성적인 산으로 보아 흰 것을 상징한 학(鶴)을 불러 산 아래 마을 이름으로 고학을 갖고 산은 백(白)자를 써 기백(箕白)이다.(출처: 산림청 숲에 온)

 

▲ 고학마을 갈림 이정표(기백산 정상 300m, 하산길 4.8km, 고학마을)

 

 

 

 

▲ 이곳에서 선두와 만났다.

 

 

 

▲ 819봉

▲ 상비재

▲ 상비재에 있는 계단

▲ 상비재에서 올라 오면 있는 580봉

 

▲ 바래기재에 있는 등산 안내도

▲ 바래기재에 있는 식당

▲ 바래기재:함양군 안의면과 거창군 남상면의 경계로 옛날 남편이 한양으로 과거보러 갈 때 그 아내가 이 고개까지 남편을 바래다주고 또 이 고개에서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여 바래기재라고 이름 지었다 한다. 또 하나의 설은 유래는 옛날에 한양에서 고위 관료들이 진주 관아를 왔다가 갈때에 진주목사(晋州牧使)가 이곳까지 바래다주었다고 하여 ‘바래기재‘라고 불렀다고 한다는데 전자가 맞는 유래인 것 같다.

▲ 바래기재에서 우측으로 진행

▲ 바래기재에 있는 3번 국도 지하 통로를 지나 좌측 진행

▲ 바래기재 지하 통로를 지나 시멘트 길을 따라 오르면 아래 이정표를 만나다.

 

 

▲ 뒤 돌아 본 기백산

 

 

▲ 솔고개

 

▲ 과수원

 

 

 

▲ 개목고개 산행 마침

▲ 개목고개에 있는 이정목

개목고개 유래: 개목고개는 함양군 안의면과 거창군 마리면의 경계로 이곳은 감나무와 감나무의 사촌격인 개암나무가 많이 자생했던 곳으로 개암나무 즉 개목이 많이 자라고 있다고 해서 개목고개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도 감나무는 뿌리가 약해서 개암나무 뿌리에 감나무를 접붙인다고 한다.

 

▲ 개목고개에서 보만식계 이정재 대장님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