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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2차(完走)

12-3구간. 건의령→노루메기→피재

 

□ 백두대간 2차 12-3구간 [대전 대자연 산악회 백두대간 10차 북진 산행 제 33회째 ]

 

건의령터널건의령→노루메기→피재→비단봉→쑤아밭령→금대봉→두문동재→두문동

 

◇ 산행지 : 강원 태백시, 정선군 고한읍

◇ 산행일자 : 2012. 2. 11 (일). 날씨 : 맑음 (바람이 없어 따뜻한 편임)

◇ 산악회 : 대전 대자연 산악회 회원 30 여명

◇ 산행친구 : 홀로

◇ 산행거리 : 6.4km(포항 셀파산악회 실측거리 기준, 전체 산행 거리 16.1km-접속거리 제외)

<12-3구간> 건이령→6.4→피재
◇ 산행시간 : 산행시간 7시간 25분<점심 20분 포함>-건의령~피재(2시간 10분 산행)

◇ 시간대별 요약

- 06:55 대전 IC 출발

- 10:42 건의령 터널 도착

- 10:46 산행 시작

- 10:55 건의령(한의령)

- 12:53 노루메기

- 13:05 피재(점심 20분)

- 13:56 낙동정맥 분기점

- 15:25 비단봉

- 15:44 쑤아밭령

- 17:21 금대봉

- 17:45 두문동재

- 18:08 두문동 산행 마침

- 19:50 후미 도착

- 19:55 두문동 출발

- 23:00 대전 IC 도착

 

특기사항

① 보충 구간 ( 대자연 산악회 소구간제와 맞지 않아 두 번 산행 해야함)

② 북사면 눈이 많아 산행의 어려움(준 러셀 수준)

③ 매봉산(천의봉 들리지 않음)

④ 건의령~피재 이후 산행은 서비스 구간

⑤ 날씨 따뜻해 눈 녹아 신발 젖어 발 시러움

 

산행 지도및 고도표

 

 

산행 후기

산사모에서 2차 백두대간을 하면서 딱 한 번 빠진 적이 있다. 장모 생신인데 산에 간다니 눈이 커지는 집사람을 보니 도저히 산에 간다는 말이 안 나와서 눈 딱 감고 처가에 갔는데 마침 기대 친구도 그때 장모 생신으로 빠져서 “나중에 둘이 보충을 가면 되겠구나!” 했는데.. 그 후 친구는 “보충 산행에 대해 의미 없다며 빠진 두 구간은 하지 않겠다며 차라리 체력 훈련을 위해서 보문산에서 만인산 까지 산행이나 하자”며 나를 꼬드긴다. 나 역시도 두 번째 백두대간을 하다 보니 한 번 빼 먹은 것에 대해 큰 의미를 찾지 못하면서도 한 번 빠진 것이 목에 가시가 걸린 것 같이 영 마음에 걸리고 보충을 하지 않다보면 계속 빠지고 싶은 충동이 들 것 같아 보충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보충해야 할 구간이 강원도 태백시로 거리가 멀고, 타 산악회에서 쉽게 나오는 구간도 아닌데다 대자연 산악회를 따라 가자니 소 구간으로 해서 두 번 따라 나서야 하고 시간도 늦게 출발하여 대전에 늦게 도착하니 월요일 인천으로 출근 하려면 피곤하여 적잖은 부담이 있어서 다음으로 미룰까 생각 하다가 가서 안 되면 피재에서 건의령 까지 짧게 하려는 마음으로 산행 신청을 했다. 친구와 갈 때는 김밥에 컵라면으로 점심 식사 준비를 했는데 혼자 가니 이번에는 "도시락도 준비해 달라" 하니 집사람도 백두대간 두 번째 하면서 뭘 보충을 하냐는 식이다. 이래저래 산에는 가고 싶지 않지만 다음 주 산사모의 백두대간 계획이 10시간 30분으로 산행 시간이 긴대다가 인천에 올라 오면서 계속된 과음으로 부족한 운동을 할 겸 마음을 다잡고 배낭을 꾸렸다.

산행시간이 5시간 반으로 비교적 짧아서 물도 500리터 두 병이면 충분 할것 같고 간식으로는 곶감과 비상식량으로 초콜릿 등을 챙긴 후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 식사를 한 후 원두막으로 가니 비교적 많은 사람이 대자연 산악회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아시는 분은 하나도 없었는데 버스가 도착하고 김영섭 대장이 안내하는 33번 좌석으로 이동을 하다 보니 아시는 분 두 분이 눈에 뛴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좌석에 앉으니 인원이 너무 적다. 일명 버스에서 황제 자리라고 평하는 통로에 앉고 옆 사람이 없으니 편하기는 한데 산악회 측에서 비용을 적게 받으니 인원이 적어 적자나 나지 않을까 미안하기도 했다. 배낭을 풀고 자리에 앉은 뒤 산행지 설명을 하는데 김대장의 똑같은 멘트가 이어진다. 안녕하세요~! 저는 대자연 산악회 김영섭입니다. 오늘 백두대간 일요 산행에 참여 해 주신 ~~~~ 근 일 년이 넘게 대자연을 찾지 않았으나 언제나 멘트에 변함없음이 빙그레 웃는데 이번 산행은 시작의 편함을 위해 두문동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건의령에서 시작한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건의령에서 피재까지만 짧게 할까 하는 강한 유혹이 있었지만 그때 가 봐서 판단하기로 하고 눈을 감았다.

산행지인 태백시 건의령 터널에 도착하기까지 두 번의 휴게소 방문도 있었지만 워낙 먼 거리라 3시간 40분이 넘게 소요 되었고 단체사진 찍고 출발하니 11시가 가깝다. 아이젠을 착용 할까 하다가 도로 상태가 아이젠을 하기도 안하기도 어설퍼서 스패츠도 착용하지 않고 산행을 시작했다. 건의령에 가까이 갈 무렵 선두 대장은 임도에서 갑자기 치고 올라가는데 설송님이 더 진행해야 한다는 말에 한 번 더 하신분이 맞는다는 판단에 나는 설송님을 따라 진행했더니 과연 포장도로 따라 조금 진행하니 건의령이 나왔다. 선두를 따라 가신 분들은 결국 알바 아닌 알바를 한 셈이다.

산행을 시작하고 새목이재는 모르고 지나쳤지만 포장도로가 있는 노루메기는 어딘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피재에 도착하니 선두가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나도 피재에서 점심을 했는데 이곳에서 산행을 그만 둘까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피재에 도착하기 까지 눈이 제법 많았는데 스패츠를 안 한 탓도 있겠지만 날씨가 따뜻해 눈이 많이 녹아 발이 많이 시리고 여분의 양말을 갈아 신었지만 신발이 많이 젖은 편이라 고민을 하다가 이곳에서 산행을 마치면 너무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 같아 피재에서 매봉산으로 향했다.

매봉산을 오르다 낙동점맥 분기점에서 4명을 만났는데 그들의 말에 의하면 은대봉까지 러셀이 안 되어 있다고 한다. 은대봉이 아니라 비단봉 이후를 말하는 것 같았는데 그들 말에 의하면 자기들이 비단봉 까지 갔다가 러셀이 안 되어 있어서 돌아오는 길이란다. 황급히 김대장에게 전화를 해서 선두 7명이 앞서갔다는 말과 함께 내용을 전달하니 매봉산이 가까우니 더 진행 해 보고 탈출은 선두의 의견을 들어보자고 한다. 산행을 마칠까 고민하다 바람의 언덕에 가서 진행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는데 매봉산(천의봉) 입구에 오니 러셀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매봉산은 두 번이나 갔었기에 포기 하고 바람의 언덕으로 향하니 한 분이 매봉산에 올라간 선두를 기다리고 있다. 조금 기다리니 선두가 왔는데 일단 나는 러셀이 되어 있다는 비단봉 까지 가기로 마음먹고 선두를 따라 갔는데 비단봉 오르는 북사면은 과연 러셀이 잘 되어 있지 않아 힘겹게 올라서야 했다. 이미 되돌아가기에는 늦어서 비단봉 아래에서 탈출을 시도 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선두를 계속 따라 갔는데 결국 그것이 완주 하게 만들었다. 비단봉에서 금대봉 까지 북사면의 많은 눈은 발을 한 번 잘못 디디면 허벅지까지 빠져 많은 고생을 해야 했다. 앞사람의 발자국만을 따라 가다 보니 보폭도 안 맞고 거의 준 러셀 수준이었다. 금대봉에 도착해서야 이제 산행은 다했다는 마음이 들면서 힘들어도 안정을 되찾았다. 금대봉에서 두문동재까지도 눈이 많아서 힘들었지만 산행 종료가 눈앞이니 그대로 약간 즐거운 마음이었다.

두문동에 도착해서 산행을 마치니 이미 피재에서 탈출 한 2명도 있었고 선두 팀 7~8명이 있었다. 배고픔에 컵라면과 막걸리 세 잔을 마시니 배가 빵빵하다. 후미가 정확히 나 보다 1시간 40분 뒤에 도착했고 대전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김대장님이 어려움을 토로 한다. 본래 태백 국토 관리사무소에 연락을 하고 왔는데 보통 산행시간과 비교 했을 때 눈으로 인해 많은 고생을 했다는 내용이 주였고 인원의 적음으로 인한 고충 등이었다. 2주 후의 보충 산행 상황은 어찌될지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산행 사

▲ 건의령 터널 산행 시작

▲ 건의령:한의령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건의령(巾衣嶺)’으로 표기돼 있다. 건의령의 유래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간다.한의령(寒衣嶺) 푯말에는 “태백 상사미에서 삼척 도계로 넘어가는 고갯길로 건의령(巾衣嶺)이라고도 한다. 고려말 때 삼척으로 유배 온 공양왕이 근덕 궁촌에서 살해되자 고려의 충신들이 이 고개를 넘으며 고갯마루에 관모와 곤복을 걸어 놓고 다시는 벼슬길에 나서지 않겠다고 하며 고개를 넘어 태백산중으로 몸을 숨겼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유서 깊은 고개이다. 여기서 관모와 관복을 벗어 걸었다고 하여 관모를 뜻하는 건(巾)과 의복을 뜻하는 의(衣)를 합쳐 건의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라고 적혀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표지판은 건의령으로 고치는게 좋을 듯 하다)

▲ 건의령에 있는 백두대간 안내도(다음 보충 구간이다)

 

▲ 표지판을 보고 왔는데도 우왕좌왕이다. 선두대장은 임도로 치고 올라가서 아직 뒤 따라 오지도 못하고 있다.

▲ 비단봉 이후와 비교는 안되지만 많은 눈으로 고생이다. 이 지점을 지날 즈음 선두대장이 추월 해 간다. 이후 새목이는 산등이 잘록하여 새의 모가지처럼 생겨서 새목이라고 하며 혹은 새(사이)에 있는 고개라는데 그유래는 잘 모르겠고 어딘지 모르고 지나쳤다.

▲ 노루메기: 노루가 눈을 들어 산봉우리를 쳐다본다는 주장봉망형지(走杖峰望形地)로 일명 노루목이라고 하고 노루가 많았던 지역에 마을이 생기면서 노루메기라 부르며 마을의 지형도 마치 노루의 목처럼 생겼다고 한다. 땅 모양이 노루목처럼 생겼다면 노루가 많아서라기보다는 그냥 그 생긴 모양을 따라 노루모가지->노루메기로 변한 건 아닌지 그렇게 해석하는 이도 많다.

▲ 노루메기에서 피재 가는 길은 포장도로를 따라 아래 이정표 까지 진행 해야 한다.

 

▲ 이곳에서 다시 산길로 접어 든다.

[피재(避재):해발920m]:삼척 사람들이 난리를 피해 이상향으로 알려진 황지(지금의 태백)로 넘어온 고개란 뜻에서 피재라고 알려진 이 고개는 지금은 삼척을 거쳐 동해로 빠지는 오십천과 낙동강과 한강의 분기점에 있어 삼수령(三水嶺)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삼수령 조형물 앞에는 '빗물의 운명'이 이렇게 적혀 있다.'하늘이 열리고, 우주가 재편된 아득한 옛날 옥황상제의 命으로 빗물 한 가족이 大地로 내려와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겠노라고 굳게 약속을 하고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었다.이 빗물 한 가족은 한반도의 등마루인 이곳 三水嶺으로 내려오면서 아빠는 낙동강으로 엄마는 한강으로 아들은 오십천 강으로 헤어지는 운명이 되었다. 한반도 그 어느 곳에 내려도 행복했으리라. 이곳에서 헤어져 바다에 가서나 만날 수밖에 없는 빗물가족의 기구한 운명을 이곳 三水嶺만이 전해주고 있다.' (이곳에서 유일한 증빙 사진)

삼수정

 

 

 

▲ 피재에서 매봉산 오름은 포장도로로 되어 있다.

▲ 포장도로 이 지점에서 산으로 다시 접어 든다.

▲ 낙동정맥 분기점

▲ 매봉산(천의봉)과 바람의 언덕

 

 

 

 

 

 

 

▲ 바람의 언덕 (말은 그럴싸 한데 바람은 소백의 칼바람이 으뜸)

▲ 차량을 이용해 올라 오는 관광객을 위한 가짜 매봉산 표석

 

▲ 이곳 까지 많은 눈으로 오르기 힘들었지만 이후 진행은 더욷 더 ㅠㅠ

▲ 함백산의 모습이 조망 된다.

▲ 쑤아밭령

▲ 에고고 눈 눈..발 잘못 디디면 허벅지 까지 빠져 나오려면 여간 고생이 아니다. 앞사람 발자국 따라 조심 조심~!

▲ 금대봉의 모습

 

▲ 두문동재

▲ 두문동재의 모습

▲ 두문동 터널 쪽

▲ 두문동 산행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