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여름에다녀왔는데 정말 좋았어요
마치 설악산의 공룡능선을옮겨놓은듯..
한번꼭 가보세요!
보릿잎 살차고 진달래 필 무렵
-2004. 3. 27(토요일) 흐린후 맑음
-석문산-소석문-덕룡산(서봉)-동봉-첨봉갈림길-476봉(주작산)-작천소령-수양마을
-강진 주작,덕룡산
집을 출발한지 3시간만에 강진 석문리에 도착한다.
비릿한 바다내음이 물씬하게 베어나오는 남도 땅
그 곳의 소금강이라 일컬어지는 석문산 협곡은
하늘로 치솟은 기암괴석들이 길을 사이에 두고 웅장한 성채를 이룬다
아직은 찾는이 없어서 일까
협곡을 맴돌아 나오는 석문천의 절세비경도 보아주는이 없으니
공허하고 황망하다.
덕룡주작산의 들머리 소석문을 산행초입으로 삼지않고
덕륭의 줄기에서 잘려져 살짝 떨어져 있는 석문에서 치고 오르려는 이유는
바로 협곡의 절경을 위에서 굽어보고 싶어서다.
텅빈 주차장에 홀로 세워둔 차가 쓸쓸해 보여 자꾸 뒤를 돌아보며
산행의 첫걸음을 뗀다.
도로옆 절개지 사면쪽으로 빨간 표지기가 보인다
강진 금릉 산악이라 쓰여진 리본을 따라 산 자락으로 살며시 스며든다.
다가올 고행의 시작인지도 모른체...
초입 등로는 잡목이 일정너비로 깔끔하게 베어져 있다.
산객을 위해 누군가 배려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편안한 길을 고마운 마음으로 오른다.
그러나 잠시 뒤
묘1기를 지나치자 등로는 첨봉암벽에 가로막힌다.
그동안 간간히 보이던 빨간표지기도 사라져 보이질 않는다.
우회로가 없을까 숲을 더듬지만 지나간 흔적이 없다.
다시 내려 갈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바위쪽을 유심히 살펴 틈세사면을 치고 오른다.
한 피치 정도 오르니 날카로운 바위 꼭대기에 선다.
발 밑은 보기에도 아찔한 직벽의 낭떨어지다
문제는 계속해서 올라야 할 길이 칼날처럼 뾰족한 능선길이다.
선답자의 흔적도 없고 길도 확신할 수 없으니 망설일수 밖에
칼날능선의 반대편은 석문천으로 떨어지는 직벽의 허공이다.
릿지로 치고오르려 해도 뒤에 따라붙는 아내가 걱정이다.
더 이상의 진행은 무리라 생각하고 온 길을 되돌릴 수 밖에 별 도리가 없다.
원점으로 돌아와 암벽의 좌측사면을 치고 오른다.
너덜과 가시덤불을 뚫어야 하는 험한길이다.
이미 땀은 온몸을 적시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아름답게 꽃망울을 터트린 진달래 조차도 길을 막아서는 방해물에 지나지 않는다.
맹감나무 가시가 손등을 매섭게 할퀸다
뒤에 따라붙는 아내는 그 줄기에 몸을 칭칭 동여매고 오도가도 못한다.
발버등 쳐보지만 그럴수록 맹감나무의 공격은 거세진다.
"뭐 해"
물끄러미 바라보다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너무 우수워
껄껄 거리며 얼킨 줄기를 풀어준다.
인생길 또한 지금 걷는산행길과 별반 다를게 없을 터
앞서간 사람들의 뒤를 따라가는 길은 편하고 빠르게 갈 수 있는 지름길 이지만
흘리는 땀은 적고 차겁다.
그러나 남들이 가지않는 길을 헤쳐나가려 함은 더디고 어려운 일
그래서 그 안에서 흘리는 땀방울은 뜨겁고 짜고 많다.
어치피 딱 한 번 가는 인생길 뒤 돌아볼때 후회스럽지 않아야 하기에
한 번쯤 진실된 땀방울속에 젖어봄도
인생을 책임있게 사는 조건의 일부는 아닐런지...
칼날암봉의 끝에서 내려보는 석문협곡의 풍광은 일품의 비경이다.
암벽의 틈세로는 군데군데 분홍의 진달래가 만개하여 직벽의 강성함을 삭혀준다.
바위와 조화를 이룬 숲은 새순이 돋아나기 시작하고
연록빛 색감이 나무가지 주위에 투명하게 맴돈다.
힘들여 올라온 만큼의 보상을 단단히 해 줄 모양이다.
난 좀더 많은 댓가를 얻기위해 사위를 바삐 움직여 비경을 담기에 여념이 없다.
다시금 능선길을 찾기위해 가시덤불과의 한판 육박전을 치르고서야
석문협곡에서 올라온 석문산 정상에 선다.
소석문부터 시작되는 덕룡의 긴 줄기가 한 눈에 들어온다.
뒤를 돌아보니 바위암벽이 열두자 병풍처럼 웅장하게 드리워 있다.
석문협곡의 반대편 성채이다. 절벽에 붙어있는 석문사가 위태롭게 보인다.
1시간 40여분을 헤매고서야 덕룡의 실질적 몸둥이인 소석문에 내려선다.
여기서 작천소령까지는 대략 7.5여km
도로공사 때문인지 뿌해진 봉황천 돌다리를 건너자
등로는 다시금 능선까지 급사면오름을 요구한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셈이다.
능선에 올라설 쯤 큼직한 암봉에 밧줄이 매여있다.
나 또한 이줄을 잡고오르면서 “유격유격” 소리가 절로 나오던데
능선에 올라선뒤 잠깐 쉬고 있는 동안
뒤에 따라붙은 한 무리의 산객들도 줄을 잡고오르면서
유격유격 소릴 계속하여 해댄다.
대한민국 사나이라면 유격의 지독함을 잊을리 있겠는가
그 얼마나 몸서리쳐지는 군대훈련인가
그 지독함이 각인되어 유격과 비슷한 상황을 맞이하면
자신도 모르게 절로 흘러나오는 구호일게다.
< 만덕광업분기봉 사면 >
덕룡의 초입능선길은 아기자기한 면모를 갖춘다.
살짝이 굽이쳐 흐르다가 적당히 오름과내림을 반복한다.
암봉과 흙길이 번갈아 나타남에 그 평온함이 마치 지리의 연하선경길을 걷는듯 착각케 한다.
만덕광업 분기봉까지 이르는 길에는
진달래의 분홍빛 향연이 봄산행의 진수를 보여준다.
곱디고운 색감은 가슴을 벌렁거리고 살랑대는 바닷바람이 솔잎을 스쳐 지날적마다
새 순에서 발광되는 녹빛은 찬연하기만 하다.
하늘은 얇은 구름에 가리워 흐릿하지만 가끔식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는 햇빛에
산란되는 덕룡의 광채는 더 없이 새롭고 싱싱하다.
만덕광업 분기봉을 넘자 덕룡의 순탄한 모습은 자취를 감추고
드디어 용의 사나운 본성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까다로운 암벽을 서너번 지나치니 동봉에 당도하고
급기야 감추어진 덕룡의 화신이 동봉정상에 이르자 그 모습을 드러낸다.
바라보는 동봉에서 서봉을 향해 고개를 쳐든 용의 머리는
겹겹히 중첩된 기암괴봉의 군락지대다.
승천하지 못한 용의 분노가 사납게 표출된 듯 거칠게 돌기된 암봉의 기세는
용의 등짝을 타고올라 용아에 들려는 산객의 다리를 마구 흔들어 놓는다.
가히 덕룡의 심장부라 할 만큼 동봉과 서봉사이의 암봉은 장대하고 힘찬 기개를 자랑한다.
덕룡의 주봉격인 서봉에 올라서기 직전 배꼽시계가 울어댄다
시간을 보니 12시를 넘어선 시간인지라
바위에 몸을 앉히고 푸른 보리밭을 굽어본다.
그 끝자락 해안선 너머로
희미하게 윤곽이 잡혀지는 천관산의 마루금을 조망하며
맛 있는 한끼를 떼우니 오늘도 살아숨쉬는 의미를 어렴풋 알 것 같기도 하다.
동봉과 마주해 있는 서봉산정은 덕룡의 중심이 된다.
서봉의 조망은 광활하게 펼쳐진 주작의 억세능선을 따라
두륜산의 거대한 봉들이 실루엣되어 가물거린다.
바로앞 암봉은 닭벼슬 같기도 하구 부채를 펴놓은듯한 모양세로 이채롭게 자리하고 있다.
지나온길은 덕룡의 긴 꼬리가 일직선상에 놓여져 있고
소석문과 석문에서 잘려진 슬픔을 감춘채 멀리 만덕산까지 줄기차게 이어져 있다.
너른 보리밭이 펼쳐진 강진벌 앞으로 다도해의 물결이 넘실대고
잔잔한 바다에 투영된 섬의 그림자가 한가로히 아름답다.
서봉을 내려서자 암봉을 비껴가는 우회로가 있으나
아내는 거들떠보지도 않은채 오직 칼날능선을 고집하며
재미나게 줄달음친다.
"힘들게 왔는데 능선을 타야지 왜 우회해"
동봉과 서봉을 지나치고
용의 투구봉을 스쳐지나니
덕룡이 왜 너그러운 용으로 불리워졌는지를 알 것 같기도 하다.
거친 암봉숲을 헤쳐 나오면 반드시 평탄한 흙길위를 걷게한다.
< 암봉군락지대의 마지막 안부, 수양마을 중간 내림길 >
닭벼슬 모양의 암봉사면을 지나치고 어느덧 덕룡이 남겨놓은 마지막 암봉을 향해
나아가는 산객의 걸음은 조금씩 지쳐가는데
안부에 있는 수양마을 갈림길을 지나치자 거대한 암봉의 절정이 다가오고
힘들여 오름에 바위사이 틈세로 이어진 등로는 동백과 상록수림에 휩쌓여
바위와 숲의 터널을 만들어 놓았다.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거친 암봉길을 달려온 산객에게
달콤한 휴식을 취하게 할수 있는 참으로 멋지고 운치있는 곳이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준비한 과일을 먹으며
모처럼 포근한 휴식속에 빠져든다.
산행이란 가야하는길 아니던가
오랜 머무름은 깊은 여운을 남기어 가고자 하는길의 상처로만 남을 뿐
싫다하는 육신을 달래며 재촉하는 앞 길은
기암절벽을 짜릿하게 내려서야 하는 라스트릿지를 연출하고서야
광활한 억세능선에 안착시킨다.
억세밭을 지나고 첨봉갈림길에 이르니 구름이 걷혀진 하늘에서는
맥없이 출렁거리는 억세의 시신들 위로 따사로운 햇빛이 마구쏟아져 내린다.
메마르고 탈색된 누런빛의 물결속에서 새롭게 움트는 생명들
그래서 더욱 또렷하고 번뜩이는 지도 모를일이다
봄은 새로운 창조가 아니라 생명의 연장선상에서
새롭게 덧칠되는 하나의 과정이라 생각됨은....
개인적 생각으론
공작새가 날개를 펼쳤다는 주작의 형상은
양 날개는 덕룡산과 작천소령을 지나 오소재로 향하는 암봉능선이 될 것이며
이를 따라 양날개의 중심에 있는 476m봉이 주작의 주봉이 되는 셈인데
강진이정표에는 주작의 머리와 부리에 해당되는 봉을 주작산의 주봉으로 칭한다.
산행내내 우뚝하게 솟아 앞길을 인도하던 476m봉에 올라선다
멀게만 느꼈던 두륜산의 가련봉 등이 가깝게 보이고
작천소령 고갯길을 지나 오소재까지 이어지는 또 하나의 암릉구간이
강한 유혹의 손짓을 해대는데
단숨에 덤벼들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보물처럼 귀하게 가슴속에 숨겨두어 훗날 다시 찾을것을 기약하며
작천소령을 향해 하산을 결정한다.
지루한 고갯길을 따라 수양마을에 이르는 동안 봉양제에서 품어져나오는 청초한
물빛에 마음을 다시금 씻어보고
보릿잎 살 붙어가는 소릴 들으며 바라본 덕륭의 자태는
너그럽고 순박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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