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 100명산 산행기

51. 선운산 (禪雲山) : 전북 고창군 심원면

산공사이 2023. 2. 17. 13:30

□ 선운산 (禪雲山, 336m) : 경수산, 수리봉, 개이빨산, 천마봉, 청룡산, 국기봉

주차장→ 경수산→개이빨산→천마봉→청룡산→국기봉→사자바위도솔제주차장

◇ 산행지 : 전북 고창군 심원면 연화리 일원

◇ 산행일자 : 2021. 02. 28(일) 날씨 : 맑음

◇ 산악회및 산행 친구 : 자차 이용. 승열

◇ 산행거리 : 트랭글거리 19km

◇ 산행시간 : 7시간 5분 (점심 15분 포함)

◇ 시간 대별 요약

- 06:20 대전 월드컵 경기장

- 08:22 선운사 주차장 도착

- 08:26 산행 시작

- 09:32 경수봉 표시석(경수산 왕복 7분 소요)

- 10:21 마이재

- 10:36 수리봉

- 11:19 1984재설 삼각점

- 11:21 견치산 갈림길(왕복 23분소요)

- 11:32 견치산

- 11:55 소리재

- 12:07 용문굴(중식 15분)

- 12:43 낙조대

- 12:45 천마봉

- 13:14 배멘바위

- 13:25 청룡산

- 13:35 도솔암/쥐바위 갈림길

- 13:48 쥐바위

- 13:58 국기봉

- 14:18 사자바위

- 14:43 투구바위

- 14:54 도솔제

- 15:15 선운사

- 15:30 대원사 선운사 주차장 산행 마침

 

※ 특기사항

① 선운산 네 번째 산행

 선운산 1~4구간 종주(비학산 쪽 제외 미니 종주)

③ 친구 차 이용(원점회귀 산행)

④ 산림청 선정 100명산

 

※ 산행 전 사전 조사

< 선운사 (禪雲寺)>: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도솔산(兜率山)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승려 검단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오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本寺)이다. 창건에 대해서는 신라의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과 577년(위덕왕 24)에 백제의 고승 검단(檢旦, 黔丹)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1707년(숙종 33)에 쓰여진 「도솔산선운사창수승적기(兜率山禪雲寺創修勝蹟記)」는 전자의 설을 취하고 있는데, 대략 다음과 같은 창건설화를 기록하고 있다. 신라의 진흥왕은 왕위를 버린 첫날밤에 좌변굴(左邊窟:진흥굴, 도솔암 밑에 있다.)에서 자다가 꿈속에서 미륵삼존불(彌勒三尊佛)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는 것을 보고 감동하여 중애사(重愛寺)를 창건하였으니 이것이 이 절의 시초라고 하였다. 이 창건설화는 진흥왕이 만년에 왕위를 버리고 출가했다고 하는 사실에 따라 형성되었겠지만, 당시에 이 지역이 신라 땅에 속했을까 하는 문제가 있다. 또 검단의 창건설을 보면 위덕왕 24년은 진흥왕이 왕위에서 물러난 지 2년 뒤에 해당한다. 그런데 검단과 해구(海口)에 있는 검단리(檢旦里)와 관련된 설화가 있다. 즉, 옛날에 검단선사가 바닷가의 사람들에게 소금 만드는 법을 가르쳤기에 해안 사람들은 선운사에 소금을 시납하였다는 것이다. 두 설은 모두 설화이기에 어느 것이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가장 오래된 조선 후기의 사료에는 모두 진흥왕이 창건하고 그 뒤에 검단선사가 중건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선운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선운산 산림청 100명산 선정 사유 : 산세는 별로 크지 않으나 숲이 울창하고 곳곳이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어 경관이 빼어나며 천연기념물 제184호인 동백나무 숲이 있는 등 생태적 가치가 크고 도립공원으로 지정(1979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하였으며 백제 위덕왕 24년(577년) 검단선사가 창건한 선운사(禪雲寺)와 수령 5백년의 동백나무 3천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선운사 동백 숲이 유명하다.

 

 선운산 등산지도

 

 

 

 

 

 

※ 선운산 산행 후기

선운산 산행기록을 찾아보니 2004년 2월 24일 매표소에서 도솔암,견치산,청룡산을 다녀온 기록이 있고 그로부터 다시 한 달 뒤인 3월 19일에 선운산을 다시 다녀온 기록이 있다. 그리고 가자산악회에서 2019년도쯤에 선운산을 다녀왔었는데 사진도 한 장 없어 다시 가기로 마음먹고 있다가 승열이 친구가 쉬는 날로 일정을 잡고 나름대로 산행시간과 코스를 마음속으로 결정하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산행시간은 조절하기로 했다. 이번 산행엔 승열이 친구 차를 가져가기로 했기에 반석역에서 아침과 점심용 김밥을 네 줄 구입하고 월드컵경기장으로 가서 승열이를 만나 선운사 주차장을 가는 도중 휴게소에서 김밥과 함께 우동을 시켜 아침 식사를 하고 선운산으로 향했다. 선운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경수산으로 오르는 코스를 찾으니 이정표를 쉽게 찾을 수 있었으나 문제는 초입이 어딘지 찾지 못하여 약간 주춤거려야 했다. 초입만 찾으면 그 후로는 빠른 진행을 시작 할 수 있는데 고질병(?)이 발목을 잡는다. 승열이에게 먼저 가라고 한 후 볼일을 본 후 친구를 따라 잡으려 하니 초입이 조금 힘들었는데 바로 뒤에서 남녀 한 팀이 따라 붙어 오름길이 약한 나는 그들에게 양보하고 천천히 내 페이스로 꾸준히 오르니 능선길에 접속했고 그 이후론 그다지 큰 어려움 없이 경수봉에 도착했다. 경수봉에서 인증을 하고 우측으로 약 3분정도 가니 삼각점과 갈림길 이정표가 있다. 다시 경수봉으로 가 마이재를 거쳐 선운산의 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 수리봉에 도착하니 대략 두 시간 만에 정상에 섰으니 이제부터 산행은 보너스라 생각했고 견치산 갈림길에서는 언제 또 여기에 올까 싶어 견치산 정상을 향했고 약 25분 만에 왕복했다. 소리재에 도착 천마봉으로 갈까하다 용문굴도 들려보자는 생각에 용문굴에 가서 점심 식사를 하고 낙조대에 오르니 얼마 전에 관저동 부동산 모임에서 산행이 아닌 야유회 때 갔었던 도솔암이 눈에 들어온다. 낙조대와 붙어 있는 천마봉 정상석에서 인증을 하고 배멘바위로 향하려니 경방기간 금줄이 걸려 있다. 여기까지 왔는데 내려가기에는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에 친구에게 금줄을 넘자고 부추겼고 누가 뒤에서 보고 신고할까 싶어 재빠르게 계단을 넘어 산속으로 빠져드니 다시 평온함이 찾아온다. 베멘바위 근처에 가니 배멘바위로 오르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으나 조망에 대한 큰 의미를 못 찾아 청룡산으로 향했다. 청룡산에서 인증을 하고 도솔암/쥐바위 갈림길에서 친구는 도솔암으로 진행하자고 한다. 나는 능선을 타고 가다 시간이 안 되면 좌측으로 탈출하면 되니 계속 진행을 하자고 했는데 결론적으로 그게 미니 종주격인 4구간을 완주한 셈이 되었다. 와이프 생일이라 집에 빨리 가야 한다는 친구 때문에 시간적 조바심이 많았던 산행이었지만 다행히도 완주하는 산행을 했고 집으로 올라오는 길은 서해안 고속도로를 이용하였기에 반석역까지 친구차를 이용하여 편히 집에 온 후 2주 만에 반주로 소주 한잔을 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

 

※ 선운산 산행 사진

▲ 선운산 도립공원 주차장에 도착하니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주차장 텅 비었고 사람도 없어 썰렁 했다. 사진에서 보이는 다리를 건너 우측의 모텔 쪽으로 진행하면 경수산으로 가는 길이다.

 경수봉으로 향한다. 

 아스팔트를 따라 계속 걸으면 아래의 이정표와 만난다.

 경수봉 안내가 되어 있는 곳으로 향하면 집 앞 좌측길로 들어서면 산길 초입이 시작된다. 이곳에서 경수산을 거치지 않고  마이재로 가는길도 있다. 우린 당연히 경수산으로 향했다.

 첫 이정목 이곳에서 뒤늦게 트랭글에 접속 했다.

 나를 앞서 갔던 두사람과 묵묵히 나의 페이스에 발을 맞춰 주는 친구의 뒷모습 

 수다동/관리사무소 갈림길(올라온 주차장)

 진행 방향 좌측으로 올라온 주차장이 보이는 첫 조망

경수산(鏡水山, 444m)은 선운산 도립공원 일원에 있는 산으로 "경수산-선운산(禪雲山:336m)-견치산-개이빨산(345m)-청룡산(314m)"으로 이어지는 작은 산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며, 경수산 이라는 명칭 유래는 경수산에서 바라보는 곰소만(줄포만)의 바닷물과 주진천(인천강)의 물이 거울 같이 맑다고 해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약 3분정도 진행하면 부안 308, 1997년 재설 삼각점이 있고 멋진 바다 조망이 펼쳐진다. 당연히 다녀와야 했기에 배낭을 벗고 우측으로 향했다.

경수봉 표지석이 있는 곳의 삼거리 이정표(경수봉, 심원 1.5km, 관리사무소 2.93km, 마이재2.2km)에서 잠시 심원면 방향으로 진행 한다. 산정상에서는 남쪽과 북쪽 일부를 전망할수 있다.

▲ 경수봉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약 3분 진행 하면  서해바다와 줄포만, 우측의 소요산도 조망된다. 이곳에서 하전리 갯벌 체험마을(3.3km)로 갈 수 있다.

 

▲ 경수봉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철계단 아래로 진행 한다.

▲ 경수봉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가지 않아도 진행 하다 보면 이런 조망을 또 볼 수 있지만 소요산과 삼각점등이 있으니 후답자에는 다녀 오길 권장한다.

▲마이재 유래는 찾아 봐도 알 수 없다. 마이재에는 좌측 석상암(0.7km) 우측 심원면(2.5km) 수리봉(0.7km) 경수봉(2.2km) 이정표가 있다.  석상암(石床庵) 갈림길인데  절 옆으로 널찍하고 평평한 바위에서 유래한 이름인 석상암은 법당과 칠성각만 남아있는 작고 아담한 절이라고 한다. 우린 수리봉으로 향한다.

▲ 선운산 정상의 수리봉(336m)이다. 독수리 모양의 형상이라서 수리봉인 이곳은 도솔산(兜率山)이라고도 했으나, 유명한 거찰 선운사가 있어 현재는 선운산이라 불리고 있다.

 

선운산은 577년(위덕왕24)에 검단선사가 선운사(禪雲寺)를 창건하면서 불리던 이름으로 선운이란 말은 신선이 구름 속에서 참선을 한다는 뜻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선운산의 선은「봉선한다」「참선한다」는 뜻의 선(禪)인데 선(仙)으로도 쓰인다고 하였다. 그러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진흥왕의 국사인 의운국사(義雲國師)가 청해서 선운사를 창건했다라고 기록하여 창건자나 창건 연대를 승리자인 신라의 역사로 고치므로 선운산의 유래에 대해 잘못된 견해가 있다.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도 선운산으로 나와 있으며 고려사(高麗史)악지와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선운산가」와「선운산곡」이라는 기록이 보이고 백제 유민들이 부르던 다섯 가지 노래는「선운산가」「지리산가」「방등산가」「정읍사」「무등산가」이며 그 중 「선운산가」는 장사현(지금의 무장면과 해리면 지역) 사람이 군대를 갔다가 때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부르는 노래라고 한다. 따라서 산 전체를 지칭할 때는「대동여지도」와「고려사」악지의「선운산곡」에 근거해서 선운산으로 표기하고 나머지 봉우리들은 선운산의 주봉을 도솔봉 또는 수리봉 상봉은 경수봉·청룡봉·개이빨봉·천마봉 등으로 불러야 한다고 한다. 조선 성종 연간에는 선운산의 형세가 1만 필의 말들이 뛰어오르는 모습이며 임금과 신하들이 잔치를 벌이는 모습이고 또 만물의 근원에 돌아간 신선이 모이는 형상이라고 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향토문화전자대전)

 선운산 정상(수리봉)에서 내려서다 보이는 좌측이 지도의 개이빨산(346.6m)이고 중앙이 322.4m의 실제 개이빨산

▲ 분기점에는 수리봉(1.9km), 도솔암(2.32km), 소리재(0.87km), 견치산(0.62km) 표시에서 우측(서)으로 틀어 잠시 오르면 아래 사진 작은 돌탑에「고창409, 1984재설」낡은 삼각점이 설치된 국토정보지리원 발행 지도에 개이빨산 표기된 곳이나 도립공원에서 표기한 견치봉은 북서쪽으로 이어진 남산(270.6m)으로 이어지는 x346.6m이며 모양으로 보아도 지도보다는 이곳 이정표의 x346.6m이 개이빨 형태의 바위들이다

 

 중앙이 개이빨산(346.6m) 우측으로 남산이다.

▲ 평상이 있는 곳에는 견치산 입구 표시가 있는데 개이빨산(0.5km)로 표시되어 있어 왕복 1km를 다녀오려면 시간이 소요될 것 같아서 다녀올까 망설이다가 여기 까지 와서 견치산을 다녀오지 않으면 안될것 같아 견치산으로 향한다.

▲ 국사봉으로 표시 해 놓은 견치산( 등산로 마지막이라고 해 놓았는데 암릉으로 당연히 올라간다.)

 견치산 정상 인증

 견치산 정상에서 보는 서해 바다 조망이 일품이다.

 견치산 정상을 다녀와서 소리재 방향으로 가다 만난 신화대(조리 대나무) 터널을 지난다.

 

 바위벽이 천마봉이고 그 너머 높은 산이 국기봉, 천마봉 우측 낙조대 너머 병풍바위와 우측  배맨바위 

 

 대장금 촬영지 용문굴(장금 어머니 돌무덤이 있던 곳)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용문굴 위에도 올라가 보고

 

 

▲  용문굴 위에서 찍은 사진

▲ 대장금 촬영지 낙조대 (최상궁이 자결 한 장소라고 한다)

 천마봉 인증하고 배맨바위로 향한다.

 천마봉에서 바라 본 도솔암

 천마봉에서 바라 본 사자바위

 천마봉에서 바라 본 좌측 진행 방향 가야할 곳에 절벽을 이룬 293m 병풍바위 오름에는 스테인리스 계단이 허공에 비스듬하게 걸쳐진 모습이고 우측은 낙조대

 경방기간 현수막을 보고 잠시 고민하다 배맨바위로 가기 위해 병풍바위로 서둘러 올라 간다.

 병풍바위에서 뒤 돌아보니 낙조대, 개이빨산, 수리봉, 경수산, 소요산이 한 눈에 들어오는 환상의 조망이 펼쳐진다.

 병풍바위에서 진행 하며 바라 본 배맨바위

 배맨바위 위에 웅성거리는 사람 소리가 들려 온다. 특별함이 없을 듯 해서 지나쳐 왔다.

 「계선암(繫船岩) 배맨바위」 : 배를 정박하여 밧줄로 묶은 바위에 대한 암석 유래담이다. 이 바위는 높이 20m, 둘레 100m 정도의 퇴적암 무더기로 민둥한 산등성이에 위치하여 멀리서도 쉽게 시야에 들어온다. 멀리서 보기에는 아기를 업고 있는 사람 모양 같기도 하다. 1992년 고창군지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고창군지』에 실려 있으며, 2009년 고창군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고창군지』에 「배맨바위」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지금은 이곳에서 십여 리 떨어진 곳에 서해와 해안선이 접해 있으나 예년에는 이 산 정상까지 바닷물이 들어와서 배를 이 바위에 매어 달았다고 하는 데서 ‘배맨바위’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곳까지 배가 들어왔다는 것은 주변 산의 계곡에서 가끔 조개껍질이 발견되고 바위가 모두 퇴적암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증명이 된다. 그동안 지각의 변화가 수억 년을 변화했다는 일면을 보여주는 증거의 바위이기도 하다.「계선암 배맨바위」의 주요 모티프는 ‘배를 정박하여 밧줄을 묶은 바위의 흔적’이다. 이 이야기는 멀리서 보면 아기를 업고 있는 사람 모양 같은 바위 형태이지만, 배를 정박하여 밧줄로 묶은 것 같기도 해서 바위의 기능에 따라 배맨바위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유래를 담은 지명 전설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계선암 배맨바위」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청룡산 인증하고 서둘러 진행 한다.

 청룡산에서 바라 본 해리면 소재지

 청룡산을 지나자마자 도솔암으로 하산 할 수 있는 등산로가 보인다. 쥐바위 방향으로 진행한다.

▲ 쥐바위

▲ 배맨바위는 내가 보기에 거북의 형상이다. 우측의 천마봉도 사람의 얼굴로 보이는 등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 보인다.

 

▲ 국기봉 이곳에서 희어재,비학산으로 갈 수 있는데 우린 사자바위 방향으로 등산로를 택했다.

▲ 사자바위

▲ 사자바위에서 바라 본 천마봉

▲ 사자바위에서 바라 본 천마봉과 도솔암

▲ 위험구간이라고 우회 표시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안전시설은 잘 되어 있다. 특히 돌을 박아 놓은 발판이 인상적이다.

▲ 도솔제와 구황봉과 우측 병풍바위

▲ 도솔제로 내려서는 곳에 있는 이정표 (지도를 보면 예전에는 직전 할 수 있었는데 현재는 우측으로 유도 했다)

▲ 투구 바위 아래에서는 여러명이 모여 있었고 차례로대 암벽 훈련 중이었는데 몰상식하게 담배 피우는 노땅도 있었다. 한마디 하려다 참고 그냥 내려 왔다.

 

▲ 도솔제

 

 

▲ 선운사 대웅전

 

▲ 산행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