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산행기

산청 왕산(王山) 필봉산(筆峰山)

산공사이 2011. 3. 7. 17:34

□ 산청 왕산(王山) 필봉산(筆峰山) 

특리교→안부→필봉산→왕산→망경대→유의태 약수터→구형왕릉→주차장

 ◇산행지 : 경남 산청군 금서면 일원 

 ◇ 산행일자 : 2011. 3. 3(목)  날씨 : 맑음

 ◇ 산악회및 친구 : 소월 산악회 ( 홀로 ) 

 ◇ 산행거리 : 약 10 Km

 ◇ 산행시간 : 실제 산행시간 3시간 20분 < 점심 15분 포함>   

 ◇시간대별 요약 

      - 09:30  대전 IC 출발

      - 11:20  득리교 산행 입구 도착   

      - 11:22  산행 시작   

      - 12:30  필봉산 (점심 15분)   

      - 13:18  왕산       

      - 13:35  가짜왕산

      - 13:54  망경대

      - 14:12  유의태 약수터

      - 14:35  구형왕릉

      - 14:40  주차장 산행 마침

    

특기사항

① 둔철산 산행 코스도 있어 인원 분산으로 인한 불필요한 소요 시간 많았음. 

② 지리산, 남덕유산, 황매산등 청명한 날씨로 인해 조망 최고.   

③ 바람으로 인해 체감 온도 낮음. 

 

 왕산 필봉산 설명

왕산은 구형왕릉에서 등산로를 따라 20분가량을 걸으면 류의태 약수터로 이어진다. 한방에서는 물을 33가지로 분류하며 물의 종류에 따라 약효가 달라 가려 써야 한다고 한다. 한방에서 최고의 물은 천년 묵은 사람의 해골에 담긴 물을 이르는 천인수. 원효대사가 멋모르고 마셨다가 도를 깨닫게 된 바로 그 물이다. 그 다음으로 꼽는 물이 여름에 차고 겨울에 따뜻한 '한천수'로 류의태 약수터의 물이 이에 해당한다. 특히 서출동류수(西出東流水)인 이곳 물은 예부터 위장병과 피부병 등 불치병 치료에 효험이 있다고 전해져 멀리에서 약수를 뜨러 온다고. 의술의 신, 즉 신의로 추앙받는 류의태에 대한 산청 사람들의 무한한 경외감과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 하나. 이 지역 한의사들 사이에서는 약탕기에 류의태라는 이름 석자만 써붙여도 병이 나았다는 일화가 전해져 내려올 정도라는 것이 문화해설사 민향식씨의 설명이다.

필봉산과 왕산 자락 사이 류의태와 허준 선생이 의술활동을 펼친 곳인 금서면 특리에는 30만㎡ 규모의 전통한방휴양관광지가 조성돼 있다. 국내 최초로 한방을 테마로 한 건강체험관광지로 한의학박물관, 약용식물원, 약초삼림욕장, 한의학 시설, 쇼핑몰, 국새제작소 등을 갖추고 있으며 내년 완공을 목표로 한방자연휴양림 조성 공사가 한창이다. 한의학박물관에서는 한의학의 원리와 역사, 전통요법, 약초의 종류와 효능 등을 알아볼 수 있으며 한방체험실에서는 사상체질 자가진단과 함께 건강 나이 측정, 체지방 검사 등을 해볼 수 있다. 박물관 내에는 온갖 종류의 약초 향이 그윽해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보약을 지어먹은 느낌. 진귀한 약재들도 많이 전시돼 있는데 특히 웅담과 해구신은 중년 부부들에게 초인기다.  ㅡ 산청군 홍보실 자료 ㅡ

 

 구형왕릉 설명

산청 '전(傳) 구형왕릉' 허구인가 진실인가? 권덕영 교수 '후대에 덧붙여졌을 뿐' 문제 제기와 가락종친회·산청군 '왕릉 맞다' 심정적 확신

피라미드 같기도 하고 고구려 적석총 같기도 한 묘한 분위기의 거대한 석조물. 위로 올라갈수록 면적을 줄여가며 모나게 일곱 단을 쌓아 올렸는데 가운데 네모난 구멍(감실)은 역사와 소통하는 통로처럼 보인다. 경남 산청군 화계리 왕산 중턱의 사적 제212호 '전(傳)구형왕릉'. 구형왕은 가야의 마지막 왕이자 김유신의 증조 할아버지.

 

마을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내려왔다.

전쟁 와중에 왕이 전사하면서 "차라리 돌로 덮어 달라" 유언했다 하고, 살아남은 군졸들이 다급한 상황 속에서 돌 하나씩을 놓아서 쌓은 무덤이 바로 이 구형왕릉이라고. 잡석 하나하나마다 군사들의 눈물이 스며 있을 것이라고. 기자가 찾은 날에도 지팡이를 짚은 노파나 등산객 너나없이 숙연한 분위기로 그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다. 안내판의 구형왕릉 글자 앞에 붙은 '전(傳)'이란 접두어는 누군가에 의해 긁혀 있다. '민간에서 전해 내려왔다'는 수준을 넘어 이를 사실로 믿고 싶었던 이가 그랬던 것인가? 구형왕릉의 아우라는 그렇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다. 특히나 할아버지의 무덤으로 믿고 있는 가락종친회에겐 말이다

 

# 만들어진 역사?

구형왕릉을 달리 보는 시각도 있다. 권덕영 부산외대 교수는 원래 불탑이던 왕산의 석축이 이름없는 돌무더기로 방치되다가 언제부턴가 막연히 왕릉으로 전승됐고, 최종적으로 구형왕릉으로 확정됐다고 본다. 구형왕의 행적 역시 시대가 내려올수록 화려하게 구체화되어 간다고 했다. 대구사학에 최근 기고한 '금관가야 구형왕릉 전승과 역사화 과정'이란 논문에서다. 일단 그는 왕산의 이 왕릉을 비슷한 외형과 입지조건을 갖춘 경북 의성과 안동의 석탑리 유적과 비슷하다고 보고 있다. 왕릉이라기보다는 석탑에 가깝다는 것.

왕산의 석축구조물이 처음 문제가 되어 세상에 드러난 것은 조선 초 동국여지승람. 그 책엔 이렇게 적혀 있다. ' 산 속에 돌을 쌓아 언덕처럼 만들어놓은 게 있는데 네 면은 층계로 되어 있다. 민간에 전해오는 말로 왕릉이라 한다.' 조선 후기 증보문헌비고에 와서는 민간 전승을 인용해 신라 왕릉이라 했다가 1864년 김정호가 편찬한 대동지지에서 구형왕릉으로 확정된다. 구형왕릉 근처의 왕산사가 옛날 구형왕이 살던 수정궁터라는 기록까지 더했다. 지역에서도 역사는 덧붙여졌다. 1798년 산청군 유생 민경원이 우연한 기회에 왕산사에서 구형왕릉의 내력을 적은 산사기(山寺記)를 발견하고,구형왕과 왕비의 옷과 칼,영정까지 찾아냈다는 기록까지 보태졌다. 조선 초기까지 공식적으로 언급조차 되지 않던 왕산의 석축구조물에 대한 전승은 시대가 내려올수록 보다 구체적인 사실로 형상화되어 간 셈이다. 권 교수는 이런 분위기를 17세기 중엽 이후 조선의 향촌사회에서 성행했던 이른바 조상찾기와 유적 현창사업이라는 사회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 보고 있다. 어찌되었건,19세기에 들어서는 대대적인 구형왕릉 성역화 사업에 들어가 사당을 건립하고 묘역을 정비했다. 마침내 1971년 전구형왕릉의 이름으로 국가사적 제214호로 지정됐다.

 

# 역사화 작업은 현재 진행형

구형왕릉에 대한 역사화 작업은 현재진행형이다. 구형왕릉에서 남쪽 방향으로 1km쯤 올라가면 왕산사지가 나온다. 류의태(허준의 스승) 약수터로 가는 길에 있는 왕산사지에는 도처에 깨진 기와와 사금파리가 널려 있다. 경남문화재연구원에서 이달부터 발굴조사가 진행 중이다. 발굴 현장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종친회 어르신들이 찾아오고 있다. 잘하면 구형왕릉 앞에 붙어있는 전(傳)자를 뗄 수 있는 유물이 나올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현장은 이런 기대를 충족시키긴 어려워 보인다. 맨 밑바닥까지 땅을 팠지만 시기가 6~7세기까지 올라가는 유물은커녕 고려시대 유물도 나오지 않았다. 맨 밑바닥의 생토층에서 나온 15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백자편이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유물이다. 그래도 종친회에서는 발굴현장 내 능선 위의 조금 솟은 지점을 왕비의 무덤으로 믿고 있다. 거의 신앙에 가까운 믿음으로 구형왕릉과 왕산사를 보는 종친회와 산청군을 대하는 발굴단은 곤혹스럽다. 고고학은 물적인 증거로 이야기하는 과학이기 때문이다. 경남문화재연구원 정의도 실장은 "진짜로 기록과 부합하는 유물이 나왔으면 하는 게 간절한 소망"이라고까지 했다. "통상 낡은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낡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른바 '전통들'은 실상 그 기원을 따져 보면 극히 최근의 것일 따름이며,종종 발명된 것이다. "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그의 책 '만들어진 전통'에서 이런 말을 했다. 역사는 발견된 (discovered) 것인가 아니면 발명된(invented) 것인가? 전구형왕릉은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ㅡ 부산일보에서  발취 ㅡ

 

 왕산 필봉산 지도 

 

 산행 후기 

마땅히 갈 만한 산도 없고, 저녁에 모임이 있어 대전에 일찍 도착 하는 산을 찾다 보니 "소월 산악회"의 왕산 필봉산이 있다. 한 번 쯤 가 보려고 한 흔적이 산행 정보에 지도가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가려다 말았던 산" 이었는데 산행 전 다른 사람들의 산행기를 보니 산행 시간은 대략 4시간이면 충분해 보였다.

버스에 오르니 인원이 많지 않다. 대략 25명 정도였는데 산악회 측에서는 한 곳으로 모으려고 "둔철산으로 갔으면 어떠냐"고 의향을 물어 본다. "왕산에 갈 사람이 12명" 어쩔수 없이 두 패로 나뉘어졌고, "둔철산이 왕산 보다 어렵다"며 둔철산 입구에 일부를 내려주고 우리는 산청군 금서면 특리로  향했다.

버스에 내려서  등산화 끈을 조이는 남녀 각각 네명을 보면서 "아마도 저 네 사람 때문에 오늘 늦겠다"고 생각 하며 산행에 임했는데 대장님을 제외한 나머지 7명은 정말 잘 간다. 전날 마신 술의 여파로 필봉산엔 힘겹게 올라섰는데 조망이 너무 좋아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점심 식사를 해야만 컨디션이 좋아지듯 식사 후엔 선두와 거리 없이 진행 하여 왕산을 지나 유의태 약수터를 지나서는 최선두로 하산 했다.

 

 ※ 산행 사진 

 

 ▲ 산행지에 있는 산행지도 

 ▲ 왕산이 보이고.. 

 ▲ 한방 휴양지 입구 ( 호랑이 조형물이 특이 하다) 

 ▲ 현수교 

 ▲ 여름철에는 산행 코스를 이번과 반대로 이곳으로 내려 오면 씻을 물이 있어 좋을듯 하다. 

 ▲ 밤머리재와 웅석봉이 보인다. 

  ▲ 우측이 둔철산 

 

  ▲ 안전시설이 잘 되어 있다. 

 

  ▲ 산청읍과 둔철산

  ▲ 웅석봉

  ▲ 지리산 천왕봉

 

  ▲ 왕산

 ▲ 지리산 천왕봉이 너무 가까이 보였는데 사진으로 보니 ㅠ

 

 

 ▲ 뒤 돌아 본 필봉산

 ▲ 왕산에서 바라 본 지리산 천왕봉

 

 ▲ 마음은 쌍재로 진행 하여 지리산 천왕봉 까지 가고 싶지만..

  ▲ 멋진 소나무

  ▲ 가짜 왕산이라고 하는 곳의 표시석

  ▲ 가짜 왕산에서 바라 본 필봉과 뒤의 웅석봉

  

  ▲ 황매산이 조망되고..

 

 ▲ 망경대

 ▲ 유의태 약수터 갈림길 (이곳에서 왕능으로 하산 해도 된다)

 ▲ 유의태 약수터

 

 

 ▲ 구형왕릉

 

 

 ▲ 산행 마침

  ▲ 왕림사는 초라(?)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