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양산(曦陽山) '봉암사(鳳巖寺) 산행
은티마을주차장→ 산성터→ 희양산→ 안성골→ 백운대(마애불) → 봉암사→- 최치원유적 주차장
◇ 산행지 : 충북 괴산군 연풍면. 경북 문경시 가은읍 일원
◇ 산행일자 : 2023. 5. 27 (토) 날씨 : 맑음
◇ 산악회및 친구 : 금강산악회, 산행지기
◇ 산행거리 : 약 13.8km
◇ 산행시간 : 5시간 45분 <중식 30분, 절 구경 1시간 45분 포함>
◇ 시간대별 요약
- 06:30 반석역
- 09:18 은티마을주차장 도착
- 09:24 은티마을
- 09:30 주막집 산행시작
- 09:48 희양산/구왕봉(호리골재)/ 은티마을 갈림길
- 10:10 희양 폭포
- 10:50 산성터
- 11:02 산성터/구왕봉/희양산 정상 갈림길
- 11:17 희양산 정상
- 11:23 희양산 정상 출발
- 12:00 안성골 시작점
- 12:38 외딴집(암자)
- 12:54 마을회관 중식(30분)
- 13:24 마을회관 출발
- 13:50 봉암사
- 14:28 백운대(마애불)
- 14:51 봉암사 일주문
- 15:05 최치원유적공원주차장 산행완료
- 15:10 주차장
- 15:15 산행완료 출발
- 16:17 문장대 농원 막걸리 뒤풀이
- 16:50 속리산 휴게소
- 18:00 중리동 하차
- 23:30 반석 집 도착
※ 특기사항
① 봉암사 첫 방문(점심 공양 자장면)
② 희양산 네 번째 산행
③ 희양산 정상 세 번째 방문
④ 희양산 정상석 인증
⑤ 안성골 첫 산행
※ 산행 전 사전 조사
<희양산 > : 문경시 가은읍과 충북 괴산군 연풍면의 경계를 이루고 문경새재에서 속리산 쪽으로 흐르는 백두대간의 줄기에 우뚝 솟은 신령스러운 암봉이다. 옛날 사람들은 희양산을 보고 갑옷을 입은 무사가 말을 타고 앞으로 나오는 형상이라고 했다. 지증대사가 희양산 한복판 계곡으로 들어가 지세를 살피니, 산은 사방에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으니 마치 봉황의 날개가 구름을 치며 올라가는 듯 하고 계곡물은 백 겹으로 띠처럼 되었으니 용의 허리가 돌에 엎드려 있는 듯하였다"고 감탄한 산이라고 전한다. 태백산을 일으켰던 백두대간 줄기는 여기에서 다시 서쪽으로 휘어지면서 이 일대에서 가장 험준한 산세를 이뤄 놓았고, 이들 산 가운데 가장 빼어난 산이 바로 희양산이다. 남쪽 자락에는 음력 초파일 하루를 제외하고는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조계종 특별수도도량인 봉암사가 있다.
<봉암사 (鳳巖寺)> :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이다. 신라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희양산파(曦陽山派)의 종찰(宗刹)로 879년(헌강왕 5)에 지증대사인 지선(智詵)이 창건했다. 935년(태조 18)에 정진대사 긍양(兢讓)이 중창하고, 1431년(세종 13)에는 기화(己和)가 중수했다. 1674년(현종 15)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신화(信和)스님이 재건했다. 1915년 세욱(世旭)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현존 당우로는 극락전과 요사채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聞慶鳳巖寺智證大師塔:보물 제137호)·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국보 제315호)·문경 봉암사 3층석탑(보물 제169호)·문경 봉암사 정진대사탑(聞慶鳳巖寺靜眞大師塔:보물 제171호)·문경 봉암사 정진대사탑비(보물 제172호) 등이 있으며 이 절의 서북쪽 계곡에 있는 거대한 암벽에는 높이 600cm의 봉암사마애보살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1호)이 새겨져 있다. 출처:다음 백과 사전
※ 희양산 등산 지도
※ 희양산 산행 후기
희양산에 처음 간 건 2006년 9월 2일 이었다. 하지만 스님들이 정상 입구를 막고 있어서 가지 못했고 정상에 간 건 2007년 8월 4일 이었다. 정상석은 깨져 있었지만 조그마한 돌에 누군가 매직으로 써 놓았고 그것이 없었다면 정상인지도 분간 하지 못할 만큼 매력도 없었고 운무도 많았다. 특별했던 건 노루 두 마리를 보았고 라면까지 끓여 먹는 호사를 부렸다고 백두대간 1차 산행기에 적혀 있다. 두 번째 정상을 오른 건 2012년 5월 5일에 백두대간 2차 때 정상에 올랐었는데 그때는 조망도 좋았고 특이 했던 건 산행 중 방송인 김제동씨와 유수 스님(법륜 스님 제자)을 보았다는 것이다. 당시 동행한 우리 산행팀(구강회, 장대정님)은 알아보지도 못하고 인사를 했는데 후미는 스님과 김제동씨와 사진까지 찍고 내려 왔다. 그 이후로 희양산에 대한 매력을 찾지 못해 가지 않다가 이번에 금강을 따라 나선 것은 부처님 오신 날이라 스님들이 정상도 지키지 않을뿐더러 새로이 단장한 정상석 인증과 안성골을 따라 하산하면 1년에 한 번 일반인에게 공개한다는 봉암사도 다녀올 수 있어서 산행을 신청했다. 산행 전 산악회에 들어가 보니 산행 코스가 지름티재에서 오르는 것으로 되어 있다. 부처님 오신 날 그 코스는 산행객들이 전국에서 몰리는지라 나는 산성터 코스로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 안성골 코스 역시 처음 가는 코스라 다른 분의 산행기를 열심히 보고 또 보았다. 그 덕분에 갈림길은 머릿속으로 외울 만큼 자신감을 가지고 산행에 임할 수 있었다. 출발 당일 점심은 김밥으로 해결 하고자 반찬은 싸지 말라고 했는데 김밥 집에 도착하니 6시 30분부터 영업을 시작 한단다. 금강 버스 출발 시간과 같아 휴게소에서 충무김밥을 사기로 하고 버스에 올랐다. 신탄진 휴게소에서 산악회에서 제공한 아침식사를 하고 충무 김밥을 사서 점심 준비는 끝마쳤다. 산행지에 도착하여 볼일을 보려하니 화장실이 너무 더러워 산행 초입 주막집에서 양해를 구하고 준비를 마치니 이미 모두 가 버리고 없다. 후미로 출발해도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한 탓에 걱정은 없었지만 그래도 마음은 바빠졌다. 갈림길 두 세 곳에서 잘 찾아 오르는데 갑자기 뭔가 이상해서 살펴보니 지갑이 없다. 지난 번 산행시에 똑같은 경험을 했는데 정신 차리지 못함을 후회하면서 부지런히 뛰어 내려가니 다행히 후미에서 다른 분이 맡기고 가셨다며 찾아 주셨다. 산행 하는 분들은 지난번도 그렇고 이번도 그렇고 참 고마운 분들이 많다. 물 한 모금 마시고 산행 코스를 잘 모른다며 졸졸 따라 다니시는 남자 한 분을 잘 챙겨 정상근처까지 왔는데 정상에서 기다려도 그 분이 오시지를 않는다. 얼른 내려가 절 밥을 먹고 싶은 마음과 행여나 스님들이 정상에 올라와 안성골로 가는 길을 막을까 노심초사 하는데 산행지기는 좀 더 기다려 보자고 한다. 잠시 기다리다 두 가지가 염려 되어 재촉을 했다. 일단 금단의 울타리만 넘으면 조린 마음이 가라앉듯이 철조망을 조심스레 여러 번 넘으니 평온한 길이 나온다. 조릿대 길과 너덜 길을 넘으니 시원한 계곡물 소리가 흐르는데 날씨가 흐린 것으로 나와 있던 구라청의 예보와는 달리 비가 많이 내린다. 우의를 안 입을까 하다 이정표가 없어 어느 정도 남아 있는지 알 수가 없어 미루다가 옷이 젖어 가는 속도에 따라 결국 우의를 입고 내려오니 지도에 외딴집이라 표기 되어 있는 암자가 나온다. 그곳에서 그곳을 지키는 스님 두 분이 있었는데 비를 피해 밥 먹을 곳을 물으니 산림보존지역으로 산림경찰이 다닌다는 뻥과 여기도 같은 절인데 봉암사는 뭐 하러 가느냐는 핀잔을 하며 누가 물으면 산에서 내려 온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내려가다 보면 마을 회관이 있으니 그곳에서 식사를 하라고 한다. 마을회관 정자에서 비 소리를 들으며 식사를 하는데 정상에서 헤어졌던 분이 오신다. 반찬도 없다기에 같이 식사 하자고 하니 막걸리를 건네는데 주막집에서 산 옥수수막걸리 맛이 기가 막히게 좋았다. 우의도 없다하여 산행지기가 선뜻 여분 우의도 선물했는데 고마워 하셨다. 식사를 마치고 봉암사에 가니 이게 웬걸 아직 점심 공양이 끝나지 않았다하여 줄을 서니 자장면을 점심으로 준다. 점심식사를 했기에 조금만 받아 식사 했는데 휴게소에서 산 충무 김밥 보다 맛이 있었다. 공부한 코스대로 절 구경을 하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데 산악회 버스가 온다. 서둘러 탑승하니 다행히 낙오된 분 없이 모두 다 잘 탑승했는데 문제는 옷 갈아입을 시간을 주지 않아 찜찜한 기분으로 버스에 앉아 있어야 했다. 1시간 정도가 지난 뒤 한적한 곳에 버스가 정차하여 막걸리 뒤풀이를 하는 동안 옷을 갈아입고 막걸리 서너 잔을 하고 대전으로 향했다. 대전에 도착하기 전 저녁을 집에서 한다하니 마나님과 딸이 밖에서 식사한다 하여 나도 중리동에서 칼국수에 소주 한잔 하고 2차 맥주 한 잔하고 집으로 향했다.
※ 희양산 산행사진
▲ 은티마을 주차장에 도착 했다. 희양산은 백두대간을 하며 두 번 정상에 올랐고 처음 간 기록은 2006년 9월 2일 기록이 있다. 세 번은 왔지만 안내산악회인 금강에서 불기 2567년 부처님 오신 날에 경북 문경의 희양산을 거쳐 1년에 단 한번 산문을 개방하는 봉암사를 간다하여 봉암사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해 신청하였고 동참 하게 되었다. 산행 들머리는 은티마을(괴산군 연풍면 주진리 514-5) 주차장에는 화장실, 희양산식당 등이 있는데 화장실은 관리가 안되어 사용 하기 불편했다.
▲ 희양산 들머리인 은티마을로 가는 동구 밖의 장승과 은티마을 유래비와 은티 버스정류장이 있다.
▲ 1812년 작성된 동절목(洞節目)에는 인지동 의인촌리(義仁村里)로 기록되어 오다가 1910년 경술국치 후 왜인들이 의인(義仁)은 한국의 민족정신이 함유되었다하여 은티(銀峙)로 개칭되었다는 내용의 은티마을 유래비
▲ 남근석 :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은티는 여궁혈에 자리하고 있어 동구밖에 남근을 상징하는 물체를 세워야 마을이 번창하고 주민들이 아들을 많이 낳을 수 있다고 하여 전나무와 남근석을 세워 놓고 매년 음력 정월 초 이튿날을 마을의 평안과 동민가족 모두의 안녕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 2006년 처음 희양산에 오며, 백두대간 종주를 하면서 만났던 추억의 장소다. 초창기만 해도 간단하게 막걸리나 한잔씩 하고 지나가던 허름한 가게였는데 언제부턴가 깨끗한 식당으로 변해있다. 토종닭, 찌개나 전골, 그리고 두부김치와 녹두전, 더덕구이, 도토리묵 등 메뉴도 도시 식당처럼 다양하다.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을 사용했는데 점심때 얻어 마신 이 집의 옥수수 막걸리가 참 맛 있었다. 다음에 가면 꼭 사서 올라야 겠다.
▲ 주막을 지나자마자 길이 둘(이정표 : 희양산← 4.4Km/ 마분봉→ 4Km)로 나뉜다. 왼편으로 방향을 잡아 시멘트 포장길을 따른다.
▲ 잠시 후, 이번에는 시루봉으로 가는 길(이정표 : 구왕봉↑ 3.3Km/ 시루봉↖ 3.2Km/ 은티마을↓ 0.4Km)이 나온다. 구왕봉 방향으로 간다.
▲ 한옥(韓屋)으로 한껏 멋을 부린 ‘은티산장’을 지난다.
▲ 이번에는 양옥으로 지어진 ‘은티펜션’이 나타난다.
▲ 뒤돌아보면 은티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계속 길은 너른 과수단지(果樹團地) 사이를 지난다. 언젠가 하나 꼭 따 먹고 싶었던 사과나무가 많았다. 봄이면 예쁜 꽃으로 치장된 ‘하얀 길’이지만 여름철엔 녹음 짙은 ‘녹색 길’로 변하고, 가을이 되면 빨간 ‘사과 길’로 바뀌기 때문에 누군가는 사과밭 길을 일컬어 ‘카멜레온(chameleon) 길’이라고도 했다고 한다.
▲ 그렇게 약 20분쯤 진행하자 시멘트포장 길이 끝나면서 길이 둘로 나뉜다. 이곳에는 이정표(희양산↖ 3.6Km/ 구왕봉(호리골재)↗ 3.0Km/ 은티마을↓ 0.8Km) 외에도 이곳이 희양산의 들머리임을 알려주는 표지석(백두대간 희양산)과 산행안내도, ‘국가지점번호 표지판(라바 43765902)’, 입산통제 경고판 등 다양한 시설물들이 설치되어 있다.
▲ 희양산 산행안내도,
▲ 이곳에서 희양산 방향으로 들어선다. 비록 비포장이지만 아직도 길은 임도처럼 널찍하다. 그렇게 5분 조금 못되게 걸으니 또 다시 길이 둘로 나뉜다. 지름티재로 올라가는 길과 산성터로 연결되는 길이 나눠진다. 이정표가 없고 바닥 돌에 매직으로 지름티재와 산성터를 표시하고 있다. 공부한 덕에 산성터로 큰 어려움 없이 왼쪽으로 진행 했다.
▲ 희양산 방향으로 들어선지 약 20여분 오르면 골짜기에 가로로 걸터 앉은 암반(巖盤)을 만난다. 장마철에라도 찾아온다면 멋진 폭포(瀑布)로 변한 경관을 눈에 담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곳을 ‘희양폭포’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건폭(乾瀑)으로 있는 날이 더 많으니 폭포’라고 부르엔 왠지 어색해 보인다. 이쯤에서 지갑을 떨어 트린 것 같다.
▲ 물기가 없는 골짜기에는 거대한 바위들이 널려있다. 엄청나게 큰 바위가 있는가 하면 시루떡을 층층이 쌓아놓은 모양의 낭떠러지가 이어지기도 한다. 그 위에 묘하게 걸터앉은 낙락장송(落落長松)은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 공부를 열심히 한 덕에 이곳에서 우측으로 진행 했는데 길이 좋아 보여 좌측으로 간 분들은 길이 없는 곳을 치고 올라 왔다고 한다.
▲ 희양산성(曦陽山城)의 성벽(城壁)이 있는 능선에 도착했다.
▲ 산행 시작 1시간 20분만에 산성터 갈림길의 이정표에 도달 했다( 희양산→1.0Km/시루봉← 2.2Km/ 은티마을↓ 3.2Km ), 좌우로 백두대간 능선 길이다.
▲ 점심 식사하기 좋은 마당바위를 지난다.
▲ 이정표(구왕봉→ 1.5Km/ 시루봉↓ 3.0Km)의 희양산 방향의 표식은 없다. 초행자들을 당황하게 만들기 딱 좋은 장소다. 봉암사는 1982년부터 수도에만 정진할 수 있도록 사찰은 물론 일대 임야까지 일반인의 출입을 막았다. ‘금단의 사원’ 전통의 시작 이었다. 정상표지석까지 세워놓은 정상을 올라가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이곳에서 15분 정도면 정상에 도달 할 수 있다.
▲ 이정표(구왕봉→ 1.5Km/ 시루봉↓ 3.0Km)가 있는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내려서면 지름티재를 거쳐 구왕봉으로 연결된다. 지름티재를 거쳐서 이곳 희양산으로 오를수도 있지만 밧줄이 많고 병목 현상이 많아 오늘 같은 날은 산성터로 오르는 것이 더 좋다. ‘지름티재’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연풍과 봉암사를 연결하는 지름길이다. 지금은 봉암사로 가는 길은 막아 놓아 지름티재는 사거리가 아닌 삼거리가 되었다.
▲ 정상으로 향한다. 잠시 오르면 암릉이 시작된다. 오른쪽으로 수백 길의 암벽(岩壁)이 까마득하게 펼쳐진다. 암벽 위로 난 길은 넓어 위험하지 않다. 앞이 보이는 봉우리는 구왕봉(九王峰, 898m)으로 골산(骨山)이다. 구왕봉은 지증대사가 절을 세울 때 연못에 살던 아홉 용(龍)들이 이 봉우리로 쫓겨 왔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 멀리 칠보산과 보배산, 낙가산으로 짐작되는 산봉우리들이 눈에 들어온다.
▲ 능선에서의 조망은 뛰어나다. 솔향과 함께 백두대간의 준령들이 펼쳐진다. 대야산과 속리산이 그리고 서쪽으로는 악희봉과 민주지산이 아득하기만 하다.
▲ 서너 평쯤 되어 보이는 정상은 걸어 온 암릉에 비해 흙으로 되어 있고 정상에는 커다란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자연석의 앞뒷면에 한글과 한자로 ‘백두대간 희양산’이라고 새겨져 있다. 처음 보는 정상석인데 2015년 4월에 희양산의 정상석을 교체했다고 한다. 당시 희양산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작고 초라한 기존의 표지석을 봉암사와 협의해서 높이 1.5m, 폭 0.8m의 큰 표지석으로 교체했다고 했다. 글씨는 봉암사의 원근스님이 썼다고 한다. 들머리에서 이곳 정상까지는 1시간 45분이 걸렸다.
▲ 희양산은 문경시 가은읍과 충북 괴산군 연풍면의 경계를 이루고 문경새재에서 속리산 쪽으로 흐르는 백두대간의 줄기에 우뚝 솟은 신령스러운 암봉이다. 옛날 사람들은 희양산을 보고 갑옷을 입은 무사가 말을 타고 앞으로 나오는 형상이라고 했다. 지증대사가 희양산 한복판 계곡으로 들어가 지세를 살피니, 산은 사방에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으니 마치 봉황의 날개가 구름을 치며 올라가는 듯 하고 계곡물은 백 겹으로 띠처럼 되었으니 용의 허리가 돌에 엎드려 있는 듯하였다"고 감탄한 산이라고 전한다. 태백산을 일으켰던 백두대간 줄기는 여기에서 다시 서쪽으로 휘어지면서 이 일대에서 가장 험준한 산세를 이뤄 놓았고, 이들 산 가운데 가장 빼어난 산이 바로 희양산이다. 남쪽 자락에는 음력 초파일 하루를 제외하고는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조계종 특별수도도량인 봉암사가 있다.
▲ 정상에서 안성골로 가는 길은 철조망이 가로 막고 있다. 점심 먹기에는 조금 이른 것 같고 절 밥을 먹고 싶은 마음과 행여나 스님들이 정상에 올라와 안성골로 가는 길을 막을까 노심초사 하는데 산행지기는 따라 온 분을 좀 더 기다려 보자고 한다. 잠시 기다리다 두 가지가 염려 되어 재촉을 했다.
▲ 일단 금단의 울타리만 넘으면 조린 마음이 가라앉듯이 철조망을 조심스레 여러 번 넘으니 조릿대가 있는 평온한 길이 나온다.
▲ 안성골로 이어지는 하산 길은 제대로 된 산행로가 아니다보니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가파른 경사 길과 너덜 길을 지나야 되고 중간엔 성터도 보인다. 길은 있지만 막아 놓았으니 희미한데 시그널이 중간 중간 있고 잘 찾아보면 길은 분명히 있다.
▲ 안성골 시작점에는 희양산 정상에서 하산 시작 약 35분만에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 희양산 안성골은 2002년 1월에 문경시와 남부지방산림청과 합동으로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 되어 입산금지구역이다.
▲ 안성골에서 퐁당 하고 싶은 욕심은 많았지만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며 빗방울을 약하게 뿌리기 시작하니 마음이 조급해 지기 시작했다.
▲ 안성골에는 기암도 많았고 청정한 느낌 그 자체 였다.
▲ 안성골 하단 부분이다. 이때 비가 많이 오기 시작해 우의를 꺼내 입어야 했다.
▲ 지도에 외딴집이라 표기 되어 있는 암자가 나오며 실질적인 산행은 끝이다.
▲ 이곳에서 봉암사로 가지 못하게 지키는 스님 두 분이 있었는데 비를 피해 밥 먹을 곳을 물으니 산림보존지역으로 산림경찰이 다닌다는 뻥과 여기도 같은 절인데 봉암사는 뭐 하러 가느냐는 핀잔을 하며 누가 물으면 산에서 내려 온 것이 아니라고 말하라며 내려가다 보면 마을 회관이 있으니 그곳에서 식사를 하라고 한다.
▲ 희양산 정상에서 하산 시작한지 1시간 30분만에 원북2리 마을 회관에 도착하여 충무 김밥으로 점심 식사를 했다. 이때가 12시 54분이었으니 절에 가면 점심 공양이 끝났을 것으로 생각했다. 마을회관 정자에서 비 소리를 들으며 식사를 하는데 정상에서 헤어졌던 분이 오신다. 반찬도 없다기에 같이 식사 하자고 하니 막걸리를 건네는데 주막집에서 산 옥수수막걸리 맛이 기가 막히게 좋았다.
▲ 마을 회관에서 조금 내려 오니 봉암사로 가는 다리가 나왔다.
▲ 봉암사로 가는 도보 길을 새롭게 조성한 듯 야자매트는 깨끗했고 비가 오는데도 사람이 많았다.
▲ 봉암사로 가는 길에 본 연꽃은 흰색과 분홍색 두 종류가 있었다.
▲ 연잎 위의 빗물이 이채로웠다.
▲ 봉암사 가는 길에는 볼거리가 많았다.
▲ 마을 회관에서 봉암사까지는 대략 35분 정도 소요 되었다.
▲ 봉암사는 부처님의 법대로 살자는 봉암결사라는 단체를 결성해 다양한 개혁 운동을 펼치다보니 많은 스님들이 모여든 의미 있는 사찰이라 조계종 종단에서 스님들의 수도와 정진을 위한 특별수도원으로 지정해 일반 관광객이나 신도들의 참배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일 년 중 딱 하루 부처님 오신 날만 개방한다. '봉암사 결사'란 해방직후 혼란기 일제시대 지배의 영향으로 타락한 왜식 불교가 판을 치던 시절 1947년 후일 조계종 종정을 지내신 성철스님 그리고 청담스님,자운스님,운봉스님 등 4인 선사께서 부처님의 뜻대로 살아보자는 결의를 갖고 결사도량을 찾으니 그곳이 봉암사 였으며 조계종의 역사적 전환점이 된 중요한 사건이었다.
▲ 봉암사에 도착한 시간은 1시 50이었다. 그런데 늦은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점심 공양을 하고 있었다.
▲ 봉암사 점심 공양은 자장밥 이었는데 점심식사를 했기에 조금만 받았는데 휴게소에서 산 충무 김밥 보다 훨씬 맛이 있었다.
▲ 봉암사 대웅보전 앞에는 오색 연등이 있고 뒤로 희양산이 연무에 휩쌓여 있다.
▲ 봉암사 극락전, 경순왕이 피난시절에 원당으로 지은 곳이라고 한다.
▲ 대웅보전 밖에서는 길게 줄을 서서 관불의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관불의식이란 부처님 오신 날 갓 태어난 부처님의 몸을 씻겨 드려 탄생을 축하하고 그와 같은 공덕으로 우리 모두가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서 하루 속히 깨달음을 이룰 수 있기를 원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 지증대사탑
▲ 지증대사탑비(국보315호). 비문은 고운 최치원이 지었고 글씨는 분황사의 승려 석혜강이 썼다고 한다.
▲ 삼층석탑과 대웅전, 연등이 한가지색인 하얀색으로 특이하다. 연등에 색칠할 시간도 아껴 수도에 정진하기 때문에 흰등을 단다고 한다.
▲ 범종각
▲ 예전의 대웅전이었던 금색전, 그래선지 뒤에는 대웅전이라 적혀 있다.
▲ 봉암사 마애미륵여래좌상(보물 제2108호)은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자리 잡고 있다. 국내 마애불 중 비교적 큰 편으로 17세기 승려 환적당 의천의 제자인 명찰이 지은 문집 '풍계집'에 현종 4년인 1663년에 환적당이 주관하여 마애불을 조성하고 사적비를 세웠으며 환적암을 지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 불상 옆 바위에 새겨진 백운대(白雲臺) 암각 글씨는 최치원의 글씨라고 전해오나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 봉암사 백운대 계곡은 예로부터 ‘봉암용곡(鳳巖龍谷)’이라 불려왔다. 봉황과 같은 바위산에 용과 같은 계곡이 흐른다고 해서다. 20여리에 이르는 계곡에는 맑은 물줄기가 분재 같은 노송을 벗하며 넓은 암반 위를 힘차게 흘러내린다.
▲ 마애불을 보고 돌아 나와 물을 베고 누웠다는 침류교를 지난다.
▲ 희양산 봉암사(曦陽山 鳳巖寺) 일주문, 뒷면은 봉황문이라 적혀 있다. 이제 절을 벗어 난다.
▲ 가은읍 원북리(가은읍 원북길 301)에 위치한 고운 최치원 야유암 역사유적 공원은 봉암사지증대사탑비(국보 제315호)의 비문을 쓴 신라시대 최치원 선생의 친필인‘야유암(夜遊岩)’석각 주변에 고운 선생의 명시와 오랜 세월 그의 자취를 찾아온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시문을 새기고 주변을 정비한 공간이라고 하는데 역사유적공원은 지나쳤다.
▲ 가은읍 원북리 주차장 산행 마침
▲ 한 시간여를 달려 문장대 농원에 도착 막걸리 뒤풀이를 했다.
▲ 돌아 오는 길의 속리산 휴게소, 뒤의 산은 구병산이다.
'명산 산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소담악과 환산(고리산) (0) | 2023.09.14 |
---|---|
소백산 (천동리→비로봉→국망봉→상월봉→늦은맥이→어의곡) (0) | 2023.09.14 |
연화도 연화봉과 반하도, 우도 (1) | 2023.09.14 |
천상의 화원 곰배령 야생화 (0) | 2023.09.14 |
서산 가야산, 일락산, 개심사 왕벚꽃, 청벚꽃 (0) | 2023.09.14 |